여의었다는 말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자식들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놀랍게도 딸자식이 결혼한 부모에도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딸을 여의었다는 말은 딸이 결혼했다는 뜻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지만 딸은 출가외인이다는 말이 흔했던 전통사회에서는 말 그대로 시집을 가면 친정에 여간해서 올 수 없었기 때문에 딸이 결혼하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으로 생긴 말일 테다.

 

시어머니에게는 집 대문 비밀번호도 알려주지 않을뿐더러 반찬을 가져오더라도 집 앞에 두고 그냥 가야지 욕을 먹지 않는 요즘 시대는 딸을 여의었다는 표현이 낯설긴 하다. 그런데도 나는 딸아이가 결혼하면 무척 섭섭할 것 같다.


말 그대로 딸아이를 여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23살이 되도록 연애 한 번 못해본 딸아이를 생각하면 어쩐지 짠하다. 도대체 이 녀석은 무슨 낙으로 세상을 산다는 말인가. 고등학생 땐 대학입시만을 위해서 집중했고 막상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는 이제 취업에 집중한다. 광고동아리, 공공기관 대외활동을 하며 대기업 인턴으로 벌써 세 군데 째 근무한다.

 

그런데도 딸아이가 첫 소개팅을 한다는 말을 듣고 어쩐지 이젠 정말 딸아이가 우리만의 딸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밤 열 시쯤 전화했는데 받지 않는 딸에게 유독 민감했다. 딸아이는 전화를 무음으로 설정해서 그랬을 뿐인데 말이다. 사실 소개팅남은 내가 들어도 건실하고 바른 청년이다. 인문학 전공자이지만 영상&공학 학문을 복수전공을 하며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 준비를 차곡 차곡한다. 어쩌면 내 딸아이보다 더 수도자 같은 생활을 하며 술조차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운동도 규칙적으로 꾸준히 한다.

 

그러나 소개팅남이 딸아이에게 잘 들어갔냐고(사실 그 청년은 딸아이와 같은 학교이고 심지어는 같은 기숙사 건물에 산다) 안부 인사를 했을 뿐 다시 만나자는 말이 없다고 했을 때 아내는 아쉬워했지만 나는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네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해버렸으니. 아버지의 질투를 눈치채고 정신없이 깔깔 웃는 딸아이가 유난히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밤이다. 그러나 그 소개팅남이 공주처럼 예쁜 연예인이 아니라 다소 개성 있는 미녀 연예인을 닮았다고 말했다고 들었을 때는 약간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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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7-24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이제 따님 걱정은 그만하시고 사모님과 더 의미있는
좋은 시간 갖으시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박균호 2022-07-24 20:01   좋아요 1 | URL
ㅎㅎ 그게 맘대로 안되요 ㅠㅠ

mini74 2022-07-25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빵 터지죠 ㅎㅎ 우리 아버지 남편한테 술 한잔 드시곤 무르기 없기다 하셨다는데 ㅎㅎ아버지 보고싶네요 . ㅠㅠ

박균호 2022-07-25 12:33   좋아요 1 | URL
아버님이 다정하시고 재미난 분이셧군요.

서니데이 2022-07-25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보고 깜짝 놀랐어요. 무슨 일인가 하고요.
예전에는 여의다,라는 말을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거의 못 들어본 것 같기도 해요.
아직도 쓰긴 하겠지만, 주변에 결혼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일수도 있고요.
잘읽었습니다. 더운 하루 시원하고 좋은 시간 되세요.^^

박균호 2022-07-26 06:54   좋아요 2 | URL
어이쿠...그러고보니 놀랄 만 하네요 ㅎㅎㅎㅎㅎ 공감과 염려 정말 감사해요.
 

퇴근길에 병원에 실습 나간 제자들을 찾았다. 원래는 짬뽕을 사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치킨으로 대신했다. 인턴으로 일하는 딸아이가 가끔 측은하게 생각된다. 월급을 250만 원이나 받는 딸아이는 그러고 보니 벌써 23살이고 성년이 한참 지났다. 


그런데 매일 생사를 오가는 병원에서 무급으로 고생하는 내 제자는 겨우 18살이다. 덩치가 산만 한 남학생 녀석이 실습을 나가면서 안아달라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러거나 어쨌거나 비 오는 날 치킨은 언제나 행복하다. 제자들은 그저 먹는 즐거움이 행복하겠지만 정년이 8년밖에 남지 않은 나로서는 이 순간 또한 내 인생에서 가장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될 것임을 안다.


치킨을 먹고 나서 계산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치킨 4마리와 콜라 1.8ℓ를 두 병 먹었는데 6만 원이 좀 넘게 나왔다. 알다시피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에 가면 웬만한 메뉴가 2만 원이 넘는다. 치킨집에 약간 늦게 도착한 내가 아이들에게 먼저 메뉴를 시켜 놓으라고 했더니 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가장 저렴한 것만 골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치킨을 먹자는 아이들이 콜라를 시키지 않았다. 내가 콜라를 시키지 않았다면 그 아이들은 아무런 음료 없이 각각 다른 치킨 4마리를 먹을 처지였다. 한 참 자라는 아이들이 치킨을 먹을 때 콜라만큼 땡 기는 게 또 있을까. 선생을 배려하느라 그 유혹을 참아낸 것이다. 생각할수록 울컥해진다. 내 아이들이 자라서 큰 성공을 거둘지는 장담 못 하겠다. 그러나 그들은 무척 좋은 사람이고 자라서도 좋은 사람이 될 것은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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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7-16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서 그런 건가요. 치킨도 가격이 상당하네요.
콜라 없으면 안될 것 같은데, 학생들도 선생님 생각으로 그랬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보낸 시간 좋으셨을 것 같아요.
박균호님,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박균호 2022-07-16 23:28   좋아요 3 | URL
네 제가 돈을 많이 쓸까봐 콜라를 참은거지요. ㅎㅎㅎ 배려심이 깊은 착한 아이들이에요. 감사합니다 !!

기억의집 2022-07-16 23: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멋지세요!!제자분 힘내시라 응원해 주고 싶네요. 저도 자식 생각하니..’짠합니다.

박균호 2022-07-16 23:28   좋아요 2 | URL
응원 정말 감사합니다 !!

바람돌이 2022-07-17 0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착한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좋은 어른이 될게 분명한걸요. 치킨이 쌌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가장 맛있는 치킨이었을거고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될겁니다.

박균호 2022-07-17 09:32   좋아요 2 | URL
좋은 말씀 고마워요 !!

stella.K 2022-07-17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가 마침 초복이라 저의 집도 통닭을 먹었습니다. 저의 동네 통닭은 좀 싼데. 두 마리에 만오천원요. 짠하기도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그러셨겠어요.^^

박균호 2022-07-17 12:20   좋아요 2 | URL
네 짠한 마음이 더 커죠 ㅠㅠ 그래도 대견해요.
 

딸아이는 어렸을 때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다. 언제나 잘 시간이 되면 내 옆에 누워 이야기를 졸랐다. 이야기의 종류는 다양했다. 나 어렸을 적 살았던 시골 이야기, 어디 책에서 읽은 자투리 이야기, 심지어 군대 이야기까지.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모두 열광했다.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니 내 이야기 창고는 금방 바닥이 드러났고 나는 매일 머리를 쥐어짜며 창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영특한 딸아이는 오늘 한 이야기가 전에도 했던 것이며, 때로 몇 가지 이야기는 짜깁기한 것임을 금방 알아차렸을 텐데 그래도 손뼉을 치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들었다. 심지어 내 말솜씨가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는데도, 신기한 마술이라도 구경하듯이 이야기마다 열중했다.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심지어 노래 경연대회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 참가자가 주목을 받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소설에 비유하는 것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본능에서 비롯한다. 세상 사람들은 결국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

 

소설은 가장 공을 들여 만든 정교한 이야기이다. 게다가 단순히 이야기만 담고 있지 않다. 작가가 소설에 자신의 삶을 녹여내면서 동시대 사회의 역사, 사건, 문화, 생각을 모두 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은 아주 풍성하고 생생하다. 역사학자나 사회학자가 연구한 몇백 년 전 사회의 모습보다 당대의 소설가들이 묘사한 사회의 모습이 더 생생한 이유다


소설은 문학 장르로써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품는다. 이렇게 재미난 소설에 나이 오십이라는 경륜이 더 해지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서사가 태어난다. 우리는 누구나 소설 같은 생애를 살아오지 않았는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라는 소설의 눈으로 청년 시절 읽었던 소설을 읽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기 마련이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급하게 삼켰던 청춘의 독서를 되새김질하기에 좋은 시절이다. 새로운 소설을 만나는 것도 즐겁지만 빛바래고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는 옛 책을 꺼내놓고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설렘과 감동을 추억하는 것은 더욱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줄거리를 따라가기 급급해 미처 살피지 못한 소설에 얽힌 뒷이야기, 배경 이야기를 파헤치고 찾아보는 것은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러고 보면 소설은 당대의 사회문화의 특징적인 요소가 총집결된 결정체가 아닌가. 소설은 단순히 줄거리로만 읽기에는 아깝다. 좋아하는 드라마 주인공이 입은 옷과 가방이 어느 회사 제품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는 것처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이 어떤 배경을 통해서 탄생했는지 알아가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이 책에서 다룰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예로 들어본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 로쟈의 범죄와 처형이라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시 러시아 사회와 인간의 심리를 다룬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주인공의 하숙집, 거리, 다리 등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주인공 로쟈를 추적하는 예비 판사의 수사 기법은 오늘날 경찰에게도 좋은 참고 자료다. 그뿐인가, 마치 소설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경험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살인자의 심리가 생생하고 뛰어나게 묘사된다.


우리의 국민 소설 춘향전도 읽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제공한다. 춘향전에는 춘향과 이 도령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 사회의 공고한 신분제도에 반발하는 민중의 분노가 담겨 있고, 벼슬아치의 행태도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히 느껴진다.


또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는 추리를 해가며 읽어야 하는 탄탄한 전개도 재미나지만, 작가가 즐긴 음악과 책이 끝도 없이 등장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글 속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 보면, 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는 즐거움에는 텍스트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면서 우리는 하루키가 영위했던 낭만의 시대를 공유한다.

 

이렇듯 소설은 이야기를 누리는 즐거움과 함께 역사, 사회, , 종교, 그리고 한 시대를 관통한 문화를 읽는 즐거움도 누리게 해준다. 좋은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뛰어난 인문학 서적 여러 권을 읽는 것과 같다. 나는 이런 경험을 소설 인문학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이야기를 접하는 즐거움이 소설 인문학이다. 인문학도 따지고 보면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20권의 소설에는 당대 사람들의 세상살이가 생생하게 녹아 있다. 그 이야기와 함께라서 나는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한 인문학책들도 재미나고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제 그 즐거움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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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7-15 1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용하셔서 이때쯤 또 책을 내시지 않을까 했는데 맞았네요.ㅋ
하지만 이렇게 소설 인문학을 내실거라곤 상상 못했습니다.
소설은 비록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늘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입니다.
맞아요. 나이 50이 넘으면 소설도 다르게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흥미로운 책 같습니다. 찜했다가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2022-07-15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20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7-15 18: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책 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목차 보니까 익숙한 책이 많아서 반갑네요. <해변의 카프카> 이야기는 완전 공감이 가네요 ㅋ 책에 나온 음악들도 갠적으로좋아하는 음악이어서 더 재미있었던거 같습니다~!! 10판 인쇄까지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박균호 2022-07-15 20:11   좋아요 3 | URL

네 고맙습니다. 익숙한 책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캐내는 것이 이 책의 콘셉트 입니다..ㅎㅎㅎ

감은빛 2022-07-15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이스북에서 새 책을 내셨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축하드리고 널리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아직 오십이 아니라 패스 하겠습...... 농담입니다. ^^

박균호 2022-07-16 05:36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패스 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페이스북 친구라니 누구신지 궁금하네요 ^^

감은빛 2022-07-16 06:43   좋아요 3 | URL
페이스북도 감은빛입니다. ^^

mini74 2022-07-15 2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군대이야기 좋아하는 딸이라니 ㅎㅎ 복받으셨습니다 *^^* 새책 출간 축하드려요. 오십 ㅠㅠ 그렇지요. 뭔가 ㅎㅎㅎ 저도 관심이 갑니다. 하루키이야기 좋아요 *^^*

박균호 2022-07-16 05:36   좋아요 2 | URL
하루키 매력적인 작가이지요. 딸아이는 저에게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귀여워요 ㅎㅎ

서니데이 2022-07-15 22: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상품페이지에 나오는 간략한 소개도 좋지만, 이렇게 자세한 내용도 좋은 것 같습니다.
책을 읽기 전 어떤 내용이 될 지 상상해보게 되니까요.
새 책 출간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이번 책도 베스트셀러 되시면 좋겠습니다.
박균호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박균호 2022-07-16 05:37   좋아요 3 | URL
그런가요? 응원 정말 감사합니다 !!!

2022-07-21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2-07-21 18:00   좋아요 0 | URL
아...그런 애로점이 있었군요 ㅠㅠㅠ 모쪼록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래요 !!!

2022-07-24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2-07-24 20:02   좋아요 1 | URL
네네 언제나 즐거운 오십대가 되길 바랍니다 ^^
 

작년에 나온 <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이 3쇄를 찍게 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2천부씩 찍는 출판사라 제법 많이 팔린 셈이다. 그다지 주목을 받는 다는 흔적이 전혀 없어서 어디서 누가 사는지는 잘 모르겠다. 


=========



오늘 직장에서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시집에 일을 하러 간 며느리에게 그 집 여자 어른이 이런 소리를 했단다. “시집을 왔으면 이 정도는 배워왔어야지” 딸자식 가진 아빠로서 피가 거꾸로 솟는 망언이다. 그런데 그 망언을 들은 며느리의 일성이 통쾌하다. “저는 시집을 온 것이 아니고 결혼을 한 것뿐이에요” 이 말을 투척한 후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단다. 


곰곰이 내 딸아이를 생각해봤다. 시댁에 가서 저런 망언을 들으면 저토록 통쾌한 한 방을 먹였으면 좋겠다. 며칠 후 딸아이가 본가에 왔는데 잘 됐다 싶어서 딸아이를 곁에 앉혔다. 내가 들은 사연을 그대로 들려준 후 네가 그 상황이면 ‘시집을 온 게 아니고 결혼을 했을 뿐이다’라고 반박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딸아이의 나지막한 대답이 이랬다.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래야 내 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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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9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력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박차고 나와야 한다고.... 연습도 시켜야 함요. 그 시댁은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가 없는거예요. 그거 받아주면 한도 끝도 없다는게 제ㅠ생각이에요. ㅠㅠ
그래도 박균호님 책 3쇄 출간 축하드립니다. 졸은 책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균호 2022-06-29 22:32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

stella.K 2022-06-30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스! 맞아요. 결혼했지 시집 온거 아니죠.
그래도 따님 막상 안 그럴걸요? ㅎ
축하드립니다!^^

박균호 2022-06-30 13:20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오랜만이에요 ^^ 공감도 감사합니다!

다섯 2022-07-15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간 출간하셨더군요. 주문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박균호 2022-07-15 10:52   좋아요 1 | URL
앗...어케 아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 - 포르쉐 UX 디자이너가 들려주는, 2023년도 세종도서 교양부문 추천도서
박수레 지음 / 책만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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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제목이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라고 해서 자동차 디자인 전공자나 실무자를 위한 교과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동차 인터페이스 변천사로 돌아보는 인간 중심 디자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부제를 미처 살피지 않고 이 책을 지나친다면 당신은 인간의 운전 생활을 조금이라도 편리하게끔 백 년 이상 치열하게 연구해온 온갖 종류의 아이디어 역사를 모르고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디자이너를 위한 책이 아니고 모든 운전자를 위한 책이다. 아니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자동차야말로 현대의 문명과 기술이 총 집결된 결정체니까. 책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기계에 달린 수십 가지의 유틸리티가 어떤 취지에서 개발되었고 어떻게 발달하여 왔으며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알려준다.

자동차라는 생활방식의 가장 흥미로운 보고서
 


ⓒ 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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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이면서 공간이고, 도구이면서 생활 방식인 자동차가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지고 볶아온 흔적을 추적하고 자동차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이게 왜 여기에 붙어 있는 건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구해온 결과가 바로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다. 굳이 자동차광이 아니더라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주제다.

이 책의 저자가 하는 일은 '자동차 UX 디자인'이다. 자동차 디자인은 알겠는데 자동차 UX 디자인은 무엇일까? 잘 모른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2015년 소셜 미디어 링크드인에 의하면 부모에게 설명하기 불가능한 직업 TOP 15 중 1위가 바로 이 직업이니까.
 
만약 당신이 자동차 UX 디자인을 한다면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자동차 핸들에 들어가는 버튼은 몇 개가 좋을까? 와이퍼 스위치는 오른쪽이 좋을까? 비상스위치는 어느 정도 높이에 달리는 게 맞을까? 볼륨 조절은 몇 단계로 나눠놓는 것이 가장 편할까? 그러니까 UX 디자인은 운전자가 보고 만지고 조작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심미적, 기능적, 상징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이다.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에는 글러브 박스, 컵 홀드, 창문, 사이드미러, 에어컨, 시트 조절 스위치, 시가잭, 계기판을 비롯한 운전자가 조작하는 유틸리티에 대한 흥미로운 탄생과 진화 과정 그리고 속사정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당신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언제나 동고동락한 존재는 부모나 배우자가 아니다. 바로 여러분의 자동차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자동차의 소소한 도구들이 우리의 편리함과 안락함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 뒤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인가?
 
자동차 안에 생화를 꽂는 꽃병이 있다?

그럼 글러브 박스부터 시작해볼까? 우선 차량 수납공간을 왜 글러브(장갑) 박스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마차와 비슷하게 생겼던 초기 자동차를 모는 운전자는 시린 바람에 덜덜 떨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바람막이(앞 유리창)가 생겨났는데 찬바람에 손이 시리면 운전 자체를 하기가 힘드니 방한 장갑을 하나씩 꼭 챙겨야 했다.

또 파워스티어링이 아니었던 초기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방향을 돌리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하고 손에 굳은살이 박이기도 했을 테니 장갑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자동차의 대표적인 수납공간인 글러브 박스가 처음부터 조수석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시트 밑에서 출발해서 운전석으로 갔다가 또 다른 장소로 유목민처럼 이사한 것이 글러브 박스였다. 그러다가 1933년 클로슬리 모터스가 최초로 자동차에 라디오를 장착했는데 이를 계기로 대시보드의 중앙에 라디오, 운전석에는 계기판, 조수석에는 글러브 박스가 자리 잡은 오늘날의 익숙한 레이아웃이 완성된다.
 
전기자동차가 미래형 자동차로 주목받지만 따지고 보면 전기 자동차가 내연 기관 엔진보다 더 먼저 나왔다. 1832년에 로버트 앤더슨이 원유 전기 마차를 만들었는데 내연 기관 엔진은 1800년대 후반에야 나왔다. 당시 전기자동차는 구조가 간단하고 운전이 쉬워서 여성에게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이 주로 애용하는 전기차에 여성의 취향을 저격해서 자동차 전용 꽃병이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에는 참으로 많은 운전자가 자동차에 꽃을 꽂아두고 다녔다. 그리고 이 꽃은 전기자동차의 특성상 달고 다니는 배터리 냄새를 없애주는 방향제 역할도 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꽃보다 훨씬 효력이 강력하고 편리한 방향제가 많으니 '차 속의 생화'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1957년식 폭스바겐 비틀에는 개인이 원하는 꽃병을 차에 달았다.
▲  1957년식 폭스바겐 비틀에는 개인이 원하는 꽃병을 차에 달았다.
ⓒ 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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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이미 파워 윈도 기능이 있었다?

군생활을 할 때 우리 부대의 전승기념관에서 선배들이 한국전쟁 때 탈취했다는 김일성의 승용차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승용차의 모델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가 놀란 것은 그 차에 무려 파워 윈도 기능이 장착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1990년대 후반까지 수동을 창문을 여닫아야 하는 소형차를 몰았다. 이미 그 당시에도 웬만한 차는 파워 윈도가 장착되어 있어서 내 차를 타는 사람이 '아니, 창문을 직접 손으로 올려야 해요?'라며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면 왠지 모를 굴욕감을 느꼈더랬다.

그런데 북한의 김일성은 이미 1950년대에 파워 윈도 기능을 사용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는데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읽고 그 궁금증을 해결했다. 파워 윈도 기능은 이미 1940년식 '패커드 180'이라는 자동차에서 실현되었다. 그러니까 1950년대에 몰았던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일성의 자동차에 파워 윈도가 장착된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파워 윈도가 장착된 1942년식 패커드 180
▲  파워 윈도가 장착된 1942년식 패커드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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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돌출된 형태의 파워 윈도가 일반적이었다가 지금은 당기면 올라가고 아래로 누르면 내려가는 방식의 파워 윈도로 바꿨다. 나는 후자 파워 윈도를 사용하면서 돌출형 형태를 그리워했다. 왜 자동차 인터페이스가 퇴보를 하는가 싶어서 의아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아이들이 창문 사이에 목을 내밀고 기어오르다가 실수로 돌출형 파워 윈도를 발로 밟아서 생기는 인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동차는 호위무사처럼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애쓴다. 변속기만 해도 그렇다. 변속기가 P에 있는 줄 알고 착각하고 내렸다가 화를 당하는 운전자를 막고 그 밖에 다양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위아래로 밀고 당기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방식에서 탈피해서 기어 변경마다 일종의 턱을 만들어 놓는 스텝 게이트 변속기가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기어 변경이 단번에 빨리 되지 않고 덜컥거린다고 화를 낼 일이 아니다.
 

스텝 게이트가 없는 변속기(좌)와 스텝 게이트가 장착된 변속기(우)
▲  스텝 게이트가 없는 변속기(좌)와 스텝 게이트가 장착된 변속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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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은 우리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온 힘을 기울이지만 운전을 하는 재미 자체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테슬라는 '차 문을 열면' 전원이 들어오는 전기 자동차를 진즉 개발했지만, 엔진을 시작하는 신성한 행위 즉 시동 버튼을 누르는 행위 없이 차를 움직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운전자를 위해서 '시동'버튼을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내연 기관처럼 우렁찬 소리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슈웅~'하는 효과음 정도는 잊지 않았다.
 
누가 소장 가치가 있는 추천 해달라면 나는 가장 먼저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즐거움과 안전을 위해서 불철주야 애쓰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동차 속에 숨겨진 인류의 흥미로운 역사를 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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