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들이 공부를 잘해서 카이스트에 입학했다. 자랑스러운 아들을 자랑하기 여념 없었던 친구는 어떤 주제나 어떤 말이든 카이스트를 넣어서 짧은 글짓기를 만드는 도사가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카이스트라는 단어를 발화하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강박관념 환자가 되었다. 그 친구와 한 시간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최소한 카이스트라는 말을 열 번 이상 들어야만 그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아들에게 전화를 느닷없이 걸어서 아무개야, 카이스트에서 우리 집까지 자동차로 얼마나 걸리지?’라고 묻는 식이다. 좀 유난스럽다 싶었는데 평소 고매하기로 유명한 내 아내마저도 그 친구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 줌 강연을 하는 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강연 시간에는 다른 곳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 마치면 집에 돌아오라고 부탁을 했다. 전화를 받은 아내는 평소 같으면 알았어로 충분했을 텐데 최소한 동료가 3명 이상 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굳이 말하였다. ‘아니, 또 줌으로 인문학 강연을 한다는 거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섯 2022-08-28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히 자랑스러웠나 봅니다^^ 재미있네요.

박균호 2022-08-28 17:00   좋아요 0 | URL
재미나다니 감사합니다 !!

추풍오장원 2022-08-28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어머니도 아들 고시합격을 지금껏 자랑하시곤 하지요..^^

박균호 2022-08-28 18:19   좋아요 1 | URL
오 고시는 누구나 인정하는 자랑거리죠.
 

지난 주말 <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를 바탕으로 좀 강연을 했다. 줌 강연은 이제 겨우 익숙해졌는데 여전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은 강의 진행자가 내 소개를 할 때다. 우선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오글거린다. 그리고 내가 그간 써 온 책을 나열하는 것도 마치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부끄럽다. 그런데 그날은 진행자분이 내가 그동안 쓴 책 사진을 모아서 한 장의 사진으로 올리셨다. 새삼스럽고 놀랐다.

 

나는 그동안 13권의 책을 썼는데 내 서재에는 대략 3~4권만 있다. 즉 한때 열렬한 그리고 탐욕스러운 책 수집가였던 내가 정작 내가 쓴 책은 수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내 작은할아버지께서는 평생 수필을 써셨고 동인지에서도 글을 발표하셨는데 언젠가 단행본으로 펴내셨다. 아마도 정부 지원금을 받아서 낸 것일 텐데 상업성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어서 수십 권이 집안에 쌓여있었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더랬다. 책을 썼는데 왜 독자에게 있지 않고 저자의 집에 쌓여있는가 말이다. 그때부터 자신이 쓴 책이 집에 쌓여있는 것이 어쩐지 쪽팔(?)리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내 서재에는 남아 있는 공간이 전혀 없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꼭 필요하고 중요해서 글을 쓰는데 도구가 되는 책들이 우선이지 내가 쓴 책은 찬밥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내가 그동안 쓴 책들을 모아서 찍은 사진은 부끄럽지도 민망하지도 않다. 또 앞으로 내가 영원히 찍지 않는 사진이 될 수도 있잖는가. 사진을 올려주신 진행자분께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려서 사진을 받았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2-08-22 1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박균호님 같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무슨 책을 냈는지도 모르는데 사후에 어느 독자가
가지고 있어 대박나는 로망.
그러려면. 제가 굉장히 유명한 작가로 죽어야 하는데…ㅠㅋㅋ

아니, 요즘엔 자기 블로그에 글만 올려도 작가라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데 박균호님을 작가라 부르지 않으면 누굴 작가라 불러야 하는 건가요?
자본주의 세상 에서 원고료로 만원 한 장이라도 받으면 전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작가는 돈 버는 직업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명예직이지.
그러니 누리십시오.^^

박균호 2022-08-22 12:34   좋아요 3 | URL
ㅎㅎㅎ 유명한 작가로 죽는 건 이번 생은 틀린 것 같구요. 스텔라님 말씀대로 즐기면서 살아야겠습니다.

mini74 2022-08-22 1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봤자 책! 갖고 있습니다. ㅎㅎㅎ 그래도 책 *^^* 이죠.

박균호 2022-08-22 14:04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그냥 2022-08-22 1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번에 책한권 내고 저자가 되었답니다.
누가 작가라고 하면 손발이 오글거려
오늘 처음 말해 본답니다.ㅎㅎㅎ

mini74 2022-08-22 20:11   좋아요 1 | URL
축하드립니디 *^^*

박균호 2022-08-22 20:33   좋아요 2 | URL
우와...축하합니다. 제목을 알려주소서 !!!

바람돌이 2022-08-22 1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3권의 책을 썼는데 당연히 작가님 맞으시죠. 아유 저렇게 모른거 보면 뿌듯하셨겠어요.
그래도 서재 한켠에 작가님 책 코너 하나쯤 꼭 만드시길....^^

박균호 2022-08-22 20:34   좋아요 3 | URL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자보다 훌륭한 바람돌이님 같은 독자분들이 많이 계셔서 부끄럽습니다.

그냥 2022-08-23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제목은 빅토리 노트입니다. 김하나의 육아일기와 저의 에세이 몇 편을 엮어 냈어요.
이곳은 너무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많아서 입밖에 소리 내어 말하기가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75세에 첫 책을 내는 사람도 있다는 말은 하고 싶네요. 운이 좋아서 3쇄에 들어 갔답니다.

박균호 2022-08-23 13:16   좋아요 0 | URL
네이버에 김하나 작가 어머니...라고 검색하니까 딱 뜨서 이미 주문했습니다. 감사히 잘 읽어볼께요. 3쇄 축하합니다 !!
 

페이스북 친구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거두절미하고 이번에 새로 나온 <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를 서명본으로 받고 싶단다. 사실 댓글을 주고받은 기억도 없어서 누군지 잘 모른다. 내 책이 그것도 서명본이 갖고 싶다니 얼마나 고마운 독자인가. 다만 내가 지극히 악필이라는 것을 주지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천재는 악필이라며 위로까지.

 

이어서 내 계좌와 책값을 알려달라고 하신다. 내가 부자는 아니지만, 한 푼이 아쉬운 입장이지만 돈을 받는 것은 왠지 민망하다. 가끔 이런 분이 계신 데 그냥 제 책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은 그냥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늘 하던 대로 폐친이신대 책값을 어떻게 받겠냐며 그냥 보내드리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아주 혼을 내신다. 폐친이 아니면 누가 책을 사주겠느냐. 공짜로는 누구에게도 보내지 말라고 하신다. 이토록 따뜻하고 정감이 넘치는 분이라니.

 

몹시 화가 많이 나신 듯했다.

 

작가는 자갈 먹고 사느냐. 버릇 나빠진다. 그냥 준다는 말은 이 시간 이후로 하들들 마라. 공짜로 줘 버릇하니까 사람들이 공짜만 바란다. 당당하게 계좌랑 금액 보내고 입금하지 않으면 보내지 마라.

 

연이은 호통에 아주 몸 둘 바를 몰랐지만 정말 고마운 말씀이었다. 별수 없이 책값을 받아야겠는데 정가는 그렇고 해서 만원만 보내달라고 했는데 책값 똑바로 알려달라고 또 혼내신다. 택배비는 내가 부담하겠다고 했더니 웃기는 바보 같은 작가님이라신다. 아울러 책 내고 망하시려고 작정했느냐고도 하셨다. 온전히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자 그분은 홀연히 인사를 남기고 채팅창을 떠나셨다.

 

나도 한 성깔 하는 사람이라 그냥 지기는 그렇고 해서 세종도서 선정에 빛나는(?)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을 함께 보냈다. 그분의 호통이 들려올 듯하다. 그래도 괜찮다. 팔이 땅으로 꺼질듯하며 기운이 빠지는 날, 나를 일으켜 세워주신 분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8-18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있는 페친분! 박균호님도 더불어 멋있어요.
이번 책 저는 아주 재밌게 읽어서 지금 열심히 리뷰 쓰고 있어요. ㅎㅎ

박균호 2022-08-18 15:18   좋아요 1 | URL
제가 멋진 건 아니죠 ㅎㅎㅎ 바람돌이님의 서평 설렙니다 !!

서니데이 2022-08-18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독자분이네요.
박균호님 좋은밤되세요.^^

박균호 2022-08-19 01:25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서니데이님은 최고의 독자이시죠 ^^ 언제나 감사해요.
 

아내와 나는 종종 드라마를 함께 본다. 아내는 드라마 내용도 내용이지만 드라마 세트를 유심히 본다. 가구는 어떤 것이 있는지. 벽지는 어떤 것을 둘렀는지. 또는 출연자들이 든 가방이나 액세서리도 놓치지 않고 본다. 가끔 아내의 취향에 맞는 소품을 보면 인터넷에서 검색하더라. 신기한 것은 출연자들이 사용하는 소품의 브랜드. 가격 등 정보가 인터넷에서 모두 나와 있더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대목이다. 왜 드라마 소품에 관한 궁금증은 이토록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배경지식은 이토록 찾기 어렵냐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 <나스타샤>에는 캐나다의 신기하고 재미난 문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정작 주인공들이 만나고 사랑을 나누며 정다운 이웃이 생활하는 동네라고 설정된 웰드릭에 관한 정보는 아무리 찾아도 알 수 없었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직접 찾아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캐나다의 작은 동네 웰드릭은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저자가 설정한 가상의 지명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포기했다. 내 책 <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소설을 읽고 나면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싶었다. 가령 <죄와 벌>에서 주인공 로쟈가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나는 것으로 나오는데 대체 시베리아 유형지는 어떻게 생겨났고 죄수들은 그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해할 독자도 있기 마련이다.

 

<춘향전>에서 이 도령이 어느 날 갑자기 암행어사가 되어서 나타나는데 대체 이 도령은 과거 시험 정보를 어떻게 알고, 어떻게 시험 준비를 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시험에 합격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것뿐인가. <마담 보바리>에서 보바리 부인이 초대받은 귀족의 저택에서 대체 어떤 음식을 먹었길래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상류층 사회를 꿈꾸며 일탈을 했는지도 알려주고 싶었다.

 

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의미하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라는 말이 대체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는지도 알려주고 싶었다. 이 말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안다면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리라. 따지고 보면 소설의 배경을 찾는 것은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즐겁게 읽고 소설은 온전히 내 몸속으로 소화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는 이 과정에 작은 디딤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리의화가 2022-08-16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소설을 읽을 때 상황과 배경에 주목하면서 읽는 것 같아요. 물론 인물과 서사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배경에서 소설이 나왔는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 아무래도 읽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박균호 2022-08-16 11:46   좋아요 1 | URL
아...정말 감사합니다 !! 재미가 있어야 할텐데...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어요”!

이웃 마을에서 산책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동네 서점 주인에게 들은 말이다. 머리털 나고 처음 듣는 소리다. 누구에게도 낯선 말일 것이다. 그 동네 서점 주인은 내가 사는 마을에 있는 큰 참고서 서점에서 독립해서 단행본 중심으로 자신의 서점을 열었다.


그 양반은 책이 없으니까 서점에 오지 않는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웬만한 지방 동네 서점은 그 양반 말마따나 진열된 책의 70~80%가 참고서다. 그러니 책을 좋아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서점에 가봐야 읽을 만한 책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말인데 과연 일리가 있다.

 

그 양반의 서점에는 민음사 전집이 수백 권 꽂혀 있었다. 웬만한 동네 서점에는 그 자리에 문제집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서점 주인의 말이 이어졌다. 동네 서점에 단행본을 많이 비치하면 독자들은 인터넷 서점보다 동네 서점을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면 택배를 받고 상자를 버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지 않느냐? 과연 듣고 보니 그렇다. 인터넷 서점이 편한 것 같지만 택배 상자를 분리수거해야 하고 무엇보다 실물을 보지 않고 주문했으니 막상 실물을 접하고 실망하는 때도 많지 않은가. 산책하다가 동네 서점에 들러 실물을 들춰보다가 구매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간편하고 안전한 책 구매 방법일 수도 있다. 어쨌든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이 많이 팔려서 행복한 사람을 만나서 나 또한 행복해졌다.

 

문제집을 주로 취급하다 보면 학교에 가서 영업을 해야 하고 수십 권의 책을 직접 옮기고 하는 노동도 뒤따른다는 말에 고개를 꺼들이게 된다. 그 서점에서만 백 권이 넘게 팔렸다는 “불편한 편의점을 쓰다듬으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 주인장에게 참고 있던 말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왜 내 책은 한 권도 없는 겁니까?” “<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말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8-15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2-08-15 15:41   좋아요 1 | URL
ㅎㅎㅎ 네네 그렇군요. 감사해요 !

stella.K 2022-08-15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서점 주인 개념있는 분 같습니다.
원래 책은 그렇게 발품을 팔아야지 온라인으로 사지 말라고 하더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 박스 뜯는 건 일이긴한데 나이든 사람들은 오프에서 책 사면
어깨가 나가죠. 많이 살 수도 없고, 픽업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박스 뜯는 건 마찬가지죠.
온라인이 또 좋은 건 10% 할인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중고책을 살 수 있다는 거죠.
정말 오프가 온라인을 이기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ㅠ

아참, 마지막 말씀 지당하십니다. 잘 하셨습니다.ㅎㅎ

박균호 2022-08-15 20:32   좋아요 0 | URL
오프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이 더 재미나긴 해요. 요것 조것 만져 보고 들쳐보고 ㅎㅎㅎ
그리고 갈 때 마다 한 권 씩 사오는 재미도 있고요. 문제는 산책길에 편하게 들릴만한 좋은 동네 서점이 없어요 ㅠㅠ
그리고 격려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