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었다는 말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자식들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놀랍게도 딸자식이 결혼한 부모에도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딸을 여의었다는 말은 딸이 결혼했다는 뜻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지만 딸은 출가외인이다는 말이 흔했던 전통사회에서는 말 그대로 시집을 가면 친정에 여간해서 올 수 없었기 때문에 딸이 결혼하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으로 생긴 말일 테다.

 

시어머니에게는 집 대문 비밀번호도 알려주지 않을뿐더러 반찬을 가져오더라도 집 앞에 두고 그냥 가야지 욕을 먹지 않는 요즘 시대는 딸을 여의었다는 표현이 낯설긴 하다. 그런데도 나는 딸아이가 결혼하면 무척 섭섭할 것 같다.


말 그대로 딸아이를 여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23살이 되도록 연애 한 번 못해본 딸아이를 생각하면 어쩐지 짠하다. 도대체 이 녀석은 무슨 낙으로 세상을 산다는 말인가. 고등학생 땐 대학입시만을 위해서 집중했고 막상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는 이제 취업에 집중한다. 광고동아리, 공공기관 대외활동을 하며 대기업 인턴으로 벌써 세 군데 째 근무한다.

 

그런데도 딸아이가 첫 소개팅을 한다는 말을 듣고 어쩐지 이젠 정말 딸아이가 우리만의 딸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밤 열 시쯤 전화했는데 받지 않는 딸에게 유독 민감했다. 딸아이는 전화를 무음으로 설정해서 그랬을 뿐인데 말이다. 사실 소개팅남은 내가 들어도 건실하고 바른 청년이다. 인문학 전공자이지만 영상&공학 학문을 복수전공을 하며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 준비를 차곡 차곡한다. 어쩌면 내 딸아이보다 더 수도자 같은 생활을 하며 술조차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운동도 규칙적으로 꾸준히 한다.

 

그러나 소개팅남이 딸아이에게 잘 들어갔냐고(사실 그 청년은 딸아이와 같은 학교이고 심지어는 같은 기숙사 건물에 산다) 안부 인사를 했을 뿐 다시 만나자는 말이 없다고 했을 때 아내는 아쉬워했지만 나는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네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해버렸으니. 아버지의 질투를 눈치채고 정신없이 깔깔 웃는 딸아이가 유난히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밤이다. 그러나 그 소개팅남이 공주처럼 예쁜 연예인이 아니라 다소 개성 있는 미녀 연예인을 닮았다고 말했다고 들었을 때는 약간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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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7-24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이제 따님 걱정은 그만하시고 사모님과 더 의미있는
좋은 시간 갖으시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박균호 2022-07-24 20:01   좋아요 1 | URL
ㅎㅎ 그게 맘대로 안되요 ㅠㅠ

mini74 2022-07-25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빵 터지죠 ㅎㅎ 우리 아버지 남편한테 술 한잔 드시곤 무르기 없기다 하셨다는데 ㅎㅎ아버지 보고싶네요 . ㅠㅠ

박균호 2022-07-25 12:33   좋아요 1 | URL
아버님이 다정하시고 재미난 분이셧군요.

서니데이 2022-07-25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보고 깜짝 놀랐어요. 무슨 일인가 하고요.
예전에는 여의다,라는 말을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거의 못 들어본 것 같기도 해요.
아직도 쓰긴 하겠지만, 주변에 결혼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일수도 있고요.
잘읽었습니다. 더운 하루 시원하고 좋은 시간 되세요.^^

박균호 2022-07-26 06:54   좋아요 2 | URL
어이쿠...그러고보니 놀랄 만 하네요 ㅎㅎㅎㅎㅎ 공감과 염려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