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작가인 유용주는 자신의 작품을 짧은 한마디로 압축해 말한다. ‘내 문학은 내 삶뿐이다.’ 외침 그대로 그의 밑바닥 삶에서 우려낸 글이다.

 

왕양명의 말대로 내가 있어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있어 내가 있다.” 는 말을 증명하듯 그의 세상과의 부딪힘이 자아를 깨닫게 하고 문학의 시작이다.

 

엉망진창이고 만신창이로 바졌던 늪은 늪이 아니라 그를 지탱해준 뿌리의 근원이었고, 늪에서의 멍들고 만고풍상의 통곡이 그대로 글이 되었다.

 

살아낸 흔적이 글로 된 작품을 읽는 일은 긴장되고 엄숙하며 읽을거리로 읽어버릴 수 없다.

자신만의 선택만으로 꾸려진 삶이 아니니 그에게만 해당된다고 말할 수 없을 터.

들려오고 보여지는 기막힌 삶들이 주인이 따로 없었음을 나도 최근에야 경험했다.

삶이란 얼마나 깊고 오묘한 것인가. 50년을 넘게 살고 깨달았고, 자식들의 그 먼 길이 많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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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31일 남편 회사가 부도가 났다.

30일 채권자들을 피해 집을 떠나 2005. 1. 21. 분당집으로 돌아왔다.

 

콘도, 엄마집, 양평 나형이네집 2개월, 대전 둔산동 3개월 등 거처를 옮겨 다니던 6개월 동안에 50년 동안 살아오던 그 세월이 문득 낯설고, 두려웠다.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동안은 남편이나 자식, 부모에게 표정관리를 따로이 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그 중 13편의 메모가 남겨져 있다. (42~53)

 

그 후 아르바이트를 했고, 딸 시집 보냈고, 남편이 있는 중국으로 옮겨가 사는 동안, 또 남편과 돌아와 2개월 동안 마음은 근심으로 팍팍했지만 아무것도 도모할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책읽기였던 모양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내 삶은 그래서 느리고, 나는 그 삶을 순하게 받아들였고 더딘 흐름 속에 읽고, 쪽지에 건성건성 흔적만 남겨 두었다.

 

53권부터 107권까지는 3년 동안 방치해두었던 낙서들을 정리해 기록한 셈이다. 계속 읽고 남기면서 고달픈 시간에 제대로 마음 정리를 했을 리 없고 내 기억력조차 도무지 믿을 게 못 되어 난감하지만 먼 훗날 그나마 내 세월의 흔적이 이 노트뿐일 듯싶어 이 작업을 계속하기로 한다.

 

그래도 계속 읽고 써대고 했던 것을 보니 내가 이 짓을 퍽이나 좋아하는 모양이다.

지나간 좋았던 시절, 운 나쁜 이들이나 가는 길인 줄 알았던 그 까칠한 길을 가던 이즈음의 시간들마저 하느님께 감사하고, 남은 내 세월 하느님께 봉헌한다.

 

귀차니즘에 빠지지 않는 날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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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짜리 화자 짱아가 집 식모인 봉순이 언니를 통해 사회를 알아가며,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눈부신 경제발전의 시대인 60, 70년대 아현동, 신촌 일대를 배경으로 성장해 독립의 나이에 이르면서 어머니이며, 친구, 자신의 분신이었던 봉순이를 떨쳐내는 과정이 반성 어린, 인간적인 모습으로 편하게 쓰여졌다.

 

벚꽃 핀 창경원에서 부모, 친척에게 버려져 짱이와의 인연은 시작된다.

 

동네 세탁소의 건달 총각 병식이와의 도망이 그녀 삶의 잘못 끼워진 첫 단추. 가난한 집에 시집 가 사별 등 닥치는 애환을 그녀의 방식으로 개척해가며 아버지가 제각기인 자식 젯을 두고, 50세에 이르며 또 다른 남자와 인생살이를 시작하는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끈질긴 새길 찾기.

 

그녀가 모든 것을 놓고, 절망과 포기를 택했다면......

자유로운 현실 속에서 시간에 모든 걸 맡기려는 무책임이 오히려 잘못 끼워진 단추를 바로 보게 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모험을 동반한 새 인생살이를 긍정적인 사고로 보아야 하는지.

 

자신을 굳게 맏고, 자신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는 늘 무언가를 선택해야겠고, 조절했고, 헛됨을 깨달았을 때 씨익 웃어버리고, 또 서둘러 다른 운명에 쉬임 없이 도전하고.

 

나에게도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짱아의 나이였을 때 원서동에서의 계숙이 언니, 명태찌개의 눈알을 숟가락 뒤끝으로 콕 파먹던 통통하고 여드름 투성이의 꼬마 기순, 지금 내 나이쯤에 가정을 꾸리겠다고 나간 누룽지를 얇게 잘 구워냈던 할머니(지금 우리 아들의 나이에 나는 내 나이의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틈틈이 수학원리을 펴들고 있었던 검정고시 지망생 최순정.

 

30년의 세월이 우리에게 말해준다.

찬바람에 구르는 낙엽같이 허무해도, 밭두렁에 박힌 돌같이 적적해도 내가 나를 어찌해 볼수 없다는 것. 그녀도 어쩔 수 없었던 게다. 정지된 자신이 두렵고, 가슴 저려 달리고 또 달리기를 택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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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이윤기씨의 그리스 로마 신화 3권을 모두 읽은 셈이 된다.

 

1, 2권은 지상과 천상을 넘나드는 신들의 정사가 흥미로웠고, 인간적으로 묘사된 그들이 자취가 남긴 이 시대에 침투되어있는 영향력(신들의 이름에서 파생되어 나온 영어의 어휘, 신들에게서 느껴지는 의혹이나 엉뚱함마저도 우리에겐 끊임없이 매력이나 유혹으로 가까이 와 있다.)이 상당한 탓에 지적 충족을 위해 헷갈리며 혼동해가며 읽어내려갔다.

 

3권을 접하고 비로소 저자가 신화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독자에게 무얼 말하고자 하는가 이해할 것 같았다.

 

저자가 원하는 이 책의 본래 제목은 아리아드네의 실꾸리였다고 한다. 너무 어렵다는 출판사의 권유로 포기했지만 아직 역시 실꾸리는 그가 간직하고 싶어하는 삶의 진실이 아닌지......

들어가면 되돌아 나올 수 없는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 왕자에게 아리아드네 공주가 건네준 실꾸리. 그렇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제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자신만의 실꾸리.

아무런 종교도 갖지 않은 저자는 모든 종교의 근원이자 세상살이의 근본을 담고 있는 옛사람들의 신화를 그의 실꾸리로 삼고 싶었음이리라.

 

사람이 만들어 낸 신들의 이야기. 그들은 알았고 그 앎이 바로 지혜였다. 인간에게 사랑받는 이들이 신들의 사랑과 축복도 받는다는 사실을. 이웃에게 한 약속이 신에게 한 약속이라는 것을.

신들은 앎이나 겨루어 볼 상대가 아니라 믿음이며, 한 가닥의 실꾸리 자체라는 것을 3권을 읽으며, 마음이 가장 시렸던 이 겨울을 인내하며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삶의 스승으로 삼는다는 시 한수. 마음 깊숙한 곳에 던져주는 선배의 한마디 충고 같다.

 

The way it is (삶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By 윌리엄 스탠포드

 

그대가 붙잡고 따라가는 하가닥 실이 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면서도

이 실은 변하지 않아

그대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모두 궁금해하니

그대, 이 실이 무엇인지 설명해야겠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이 실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이걸 잡고있는 한, 길 잃을 염려는 없지.

슬픈 일들은 일어나게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다치기도 하고 죽어가기도 한다

그대 역시 고통 속에서 나이를 먹어가겠지

세월이 펼치는 것은 그대도 막을 수 없으니

오로지 실만은 꼭 붙잡되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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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반 만에 이 저자를 만나게 되어 반갑고 설레는 맘으로 표지를 들추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작가로서가 아닌 한 인간 신영복에 대해 오랜도안 가슴에 새겨두었다.

20년 넘는 수감생활을 자신의 귀한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주위를 감싸안으며 살아가는 그의 지적인 고뇌의 시간들에 아픔과 감동을 느꼈다.

언젠가 문교부 장관의 후임자 명단에서 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기대감이란......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를 교육자로써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 또 오히려 혼란을 줄 우려가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이해찬씨가 발탁되었다.

 

그가 어찌할 수 없었던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자신을 단련시킴으로써 축적된 해박한 지식과 깊은 명상, 통찰로 여과된 사고가 늘 아깝고 아쉬웠는데 그간 사회에서 굳건한 지식인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더불어숲은 그가 남미, 유럽을 여행하면서 관광객으로서의 시선을 뛰어넘어 저편의 그늘지고 숨겨진 내면을 서간체 식으로 써 내려간 것이다. 자기 성찰을 솔직한 경어체로 적음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고맙고, 따뜻한 편지를 받아보는 느낌이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다.

 

통상적이고 객관적인 지나침이 아닌 역사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신선한 충격과 비판적 의식이 나의 무지와 무심에 강한 자극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친 회의와 교조적인 눈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따랐다.

그가 통일 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내 선입관 때문일까?

, 자본주의, 개인적 욕망, 산업화시대의 경쟁력, 약육강식에 지나친 가슴앓이를 앓고 있음이 내게는 안타갑게 느껴지기조차 했다.

 

그가 후기에 남겨놓은 오늘의 곤경이 비록 우리들이 그동안 이룩해놓은 크고 작은 달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하더라도 다만 통절한 깨달음 하나만이라도 일으켜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대전 오피스텔에서 두렵고 망막한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쓴다. 작가가 내게 어떤 깨달음을 요구하는 것일까. 내가 동정을 느끼던 남의 상처가 내 아픔이 되었을 때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그조차 애정 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까. 구입해서 보관해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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