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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는 책, <그림책 작가의 작업실>에서 아카바 수에키치 편에서 그가 <삿갓 지장보살>을 그릴 때 장면마다 눈 내리는 방식, 질감을 구분해서 그렸다.’는 부분을 읽었다.

눈 내리는 방식과 눈의 질감을 구분해내는 관찰력과 감성은 어떤 것일까. 일순간 경외감이 들었다. 그런 것은 나와는 관계없을 예술가들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것이겠지.

그가 그린 눈을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수호의 하얀말>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듯하다. 그리고 <임금님과 아홉 형제>도 있고.

<수호의 하얀말>은 몽골의 민화고 <임금님과 아홉 형제>는 중국의 민화이니, (헌데 우리나라 전래동화에도 이와 비슷한 오형제 이야기가 있다.) 일본 작가인 그의 대표작이 공교롭게도 일본의 것은 아닌 셈이다. 여하튼 아카바 수에키치는 옛이야기의 달인이다. 일본과 대륙의 옛이야기들을 그 전통과 분위기를 잘 살려 그렸다.

 

그의 주인공들은 둥근 얼굴에 찢어진 눈, 영락없는 동양인의 모습이다. 복스러운 듯도 하고, 귀여운 듯도 하고, 순수해보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꼭 다문 입에서는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수호의 하얀말><임금님과 아홉 형제> 모두 수탈자로부터 고통 받는 민초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해학보다는 꿋꿋함이 느껴지는 분위기이다. 둘의 다른 점이 있다면 수호는 결국 하얀 말을 잃었고, 아홉 형제는 임금님의 강짜로부터 벗어나 승리했다는 점. 그래서 수호의 하얀 말은 끝까지 처연하고, 아홉 형제의 임금님은 우습다.

 

앞서 눈의 질감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내가 <수호의 하얀말>에서 가장 마음을 빼앗겼던 그림은, 바로 몽골의 하늘 그림이다. 그가 그린 드넓은 초원의 하늘은 다 다른 색깔이고 다 다른 모양인데, 한참을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고, 볼수록 가슴 먹먹하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첫 페이지의 드넓은 초원 가득 걸린 쌍무지개 장면과 수호가 말을 빼앗기고 친구에게 업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의 검은 먹구름 덮인 하늘의 모습이다. 그것은 그가 몽골에서 찍었다는 사진 속의 하늘과 똑같으면서도, 또 전혀 다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 자연을 인간의 눈을 통해 그린 다는 것은 역시나, 예술가의 영역이겠지.

가끔 이렇게 예술을 한다는 이들이 한없이 부러운 날이 있다. 하지만 그럴 때는 또 이런 책에 흠뻑 빠져 있는 것이 약이다. 감동하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니까 말이다. 내 몫은 그것이라고 위안해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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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책이 감동적이거나, 유익하거나, 교훈을 줄 필요는 없다. 익살맞고 재미있기만 한 책도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아니, 오히려 배꼽이 빠지도록 웃기고 재치 넘치는 책들이 오로지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오늘 만난 책 <지렁이의 일기>도 그러한 책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책 표지에는 말 그대로 지렁이가 일기를 쓰고 있다. 매우 똘망똘망해 보이는 소년 지렁이다. 지렁이인데도 불구하고 아들로 삼아 키우고 싶을 법하게 제법 진지하고 건강하고 똘똘해 보이는 표정이다. 게다가 뒷표지를 살펴보면 풋, 하고 웃음이 나온다. 지렁이 소년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65일자의 일기를 쓰고 있는데, “누군가 지금 내 일기를 훔쳐보고 있는 것 같아...” 란다. 아마도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귀엽기까지 한 이 지렁이, 정말 키워보고 싶다.

 

<지렁이의 일기>는 거창하게 지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걸 모두 다 준다, 땅굴을 파는 건 지구를 도와주는 일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환경을 다룬 이야기는 아니다. 진지하다가도 갑자기 딴 소리하는 초딩 아들 녀석 같이 -나는 비록 아들이 없지만서도- 진득하지 못한 진짜 리얼 지렁이 소년의 일기다.

지렁이 소년은 엄마, 아빠, 누나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학교도 다니고, 거미하고는 친구 사이다. 하지만 그의 일기를 보면 지렁이만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일기를 훔쳐보는 이유다.

 

지렁이는 오늘 거미에게 땅굴 파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다리 없는 지렁이가 다리가 무려 8개인 거미에게 땅굴 파는 법을 가르쳐주다니. 결국은 실패다. “, 관두자.” 라며 가르치기를 포기하는 지렁이. 거미의 능력이 그것밖에 안됨에 실망한 눈치다. 하지만 거미에게 거꾸로 매달리는 법을 배운 다음날의 일기에는 지렁이는 거꾸로 매달릴 수 없다는 걸 알았다.”는 겸손한 한 줄이 들어있다. 그러니 자고로 아이들이란 친구로부터 자신의 한계를 배우며 자라는 법이다.

 

4월 어느 날의 일기에는 낚시철이 시작되어서 가족 모두 땅 속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나는 문득 <안네의 일기>가 생각이 났다. 가끔은 사람의 역사나 지렁이의 일상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기도 하다.

 

5월엔 할아버지의 예의범절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듣고 처음만난 개미에게 아침인사를 한다. 맙소사, 그 개미 뒤로 600마리가 넘는 개미들이 줄지어있을 줄이야. 지렁이는 하루 동일 서서 인사를 해야 했다. 가끔 어른들 말씀을 곧이곧대로 듣다가 낭패를 보는 날도 있는 것이다.

 

하루는 자기가 아주 예쁜 줄 아는 누나에게 누나 얼굴은 누나 꼬리랑 똑같이 생겼으니 거울을 봐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누나는 충격을 받았겠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나와 지렁이 친구 거미는 뒤집어지도록 웃었다. , 지렁이의 엄마는 그렇지 않았으니, 그날 꽤 야단 좀 맞았을 거다.

 

이렇듯 지렁이 소년의 일기는 익살맞다. 초등 아들 내미의 일기를 읽듯이-다시 말하지만, 나는 아들은 없지만, 딸의 일기를 훔쳐 읽는 것도 꽤 재미있다.- 아이들의 생각은 솔직하고, 진솔해서 바로 그 부분에서 웃음이 터져나오는 법이다. <지렁이의 일기>도 그렇다. 우리의 일상과 다른 듯 닮은. 그것이 이 책의 교훈일까? 어떤 생명이라도 어쩌면 제 나름의 생과 일상이 있을 거라는? 그렇게까지 말하자면 밑도 끝도 없이 지구를 들먹이며 끝나는 이 책의 결말처럼 아쉽기도, 어거지 같기도 할 것이다. 그냥 공감대라고만 해두자.

 

하지만 사실은 공감까지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냥 재밌으면 그만이다. 배꼽 빠지게 웃기지는 않을지 몰라도 입꼬리 비실댈 정도로는 웃음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니, 귀엽고 장난스러운 이 지렁이 소년의 일상을 킥킥대면서 훔쳐보자. 장마 지나고 꿈틀대며 올라오는 지렁이들이 아마 꽤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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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책을 소장하는 데는 여러 계기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을 만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구입을 위해 지갑을 잘 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림책들은 대부분 만나자마나 어머, 이건 정말 사야해.”라고 두말 않고 업어온 녀석들이다.

그들은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읽히는 그림책의 고전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신작이다. 혹은 나만 알고 있는 개인적인 추억들이 담겨있는 작품들일 때도 있다. 어찌되었건 그것들을 데려올 때는 늘 설렜었다. 책장을 죽 둘러보고 있으면 그것들을 품에 안고 왔던 때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럴 땐 나도 구두나 가방을 사 모으면서 아기라고 부르는 셀럽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 중에 희한한 이유로 데러온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우리집에 오는 데에 자기소개서 덕을 좀 봤다. 재미있는 것은 그 자기소개서가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제 아버지의 자기소개서가 너무나 달변이라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이를 데려와 버린 것인데, 그러니 아이는 제 집안의 후광을 업고 우리집에 입성한 셈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박연철이다. 나는 그 당시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들어보았었다. 그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야기하고 또 이를 새롭게 풀어내는 작품들로 제법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내가 작품도 읽어보지 않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 아버지의 어릴 적 이름이 연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한번쯤 그의 대표작인 <어처구니 이야기><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떼루떼루>라는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이 아이를 나는 먼저 만나게 된 것이다. ‘떼굴떼굴도 아니고, ‘떼구르르도 아니고 떼루떼루라니. 떼로 몰려다닌 다는 말인가. (알고보니 떼루는 재미있다는 뜻을 가진 여흥구라고 한다. 혹은 남사당놀이 중 꼭두각시 놀음에 사용되는 주제곡이라고도 하는데, 어찌되었든 내가 이를 처음 들어본 까닭은 내가 무식해서였던 것이다.)

그래? 박연철의 신작이라고?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

 

나는 어떤 책이건 껍데기부터 본다. 앞표지, 뒷표지 꼼꼼하게 다 보고 면지까지 한번 쓰다듬고나서, 판권기는 가끔 빼먹기도 하지만, 작가 소개를 읽게 되었는데...

 

내 얼굴은 푸른 수염이 나고 못생겼어요. 나이도 많은데 아직까지 결혼도 못 했지요. 사실 내가 결혼을 못 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을 잡아먹기 때문이에요. 걱정하지 말아요, 이 책을 읽는 친구를 잡아먹지는 않으니까요. 나는 아이들을 요리하는 커다란 솥도 가지고 있어요. 작은 문에서 아이들을 꺼낸 다음 솥에 풍덩 집어넣고 국자로 떠올려서 뼈를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잠들지 않는 거위를 안고 한 소녀가 나를 찾아왔어요.

 

박연철의 자기소개가 이랬다.

아이들을 잡아먹는 작가. 아이들 요리하는 커다란 솥도 가지고 있다는, 그러나 자기 책을 읽는 어린이는 잡아먹지 않겠다고 넉살좋게 말하는 이자는 괴상망측한 자기소개에 독자들을 기함하게 만들더니, 한 술 더 떠 자기소개를 끝맺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잠들지 않는 거위를 안고 한 소녀가 찾아왔다더니, 그래서 어찌되었느냐고!

 

혹시 본 내용에 이에 대한 힌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열심히 떼루떼루를 읽어보았지만, 잠들지 않는 거위는 커녕, 소녀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면, 이것은 자신에 대한 비유일까. 그렇다면 혹시 잠들지 않는 거위를 안은 소녀와 푸른 수염이 상관관계를 가지는, 나만 모르는 어떤 스토리가 있는 것일까. 내가 워낙 무식하니까,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어리둥절한 사이, 나는 박연철에게 빠져버렸다. 그리고 잠들지 않는 거위를 안고 푸른수염을 찾아온, 아마도 예쁘든지 귀엽든지 할 게 분명할 것 같은 소녀의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박연철이 다음 책을 내면, 그놈도 꼭 사가지고 와야겠다고 다짐해 버렸다.

 

그렇게 해서 떼루떼루는 내게로 온 것이다.

 

지금은 떼루떼루가 가진 본연의 이야기-꼭두각시 놀음-에 더 마음이 가지만, 세상 처음 저런 자기소개서를 들이민 작가가 정말이지 위대해 보였던 그때의 콩깍지는 여전히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떼루떼루의 형제들을 줄줄이 입양해올 모양이다.

 

훗날, 다른 책들을 보고 확인한 결과 다른 모든 책들도 이상하리만치 독특한 미완의 자기소개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각각이 아무 연관성이 없는 것을 보면, 안타깝게도 거위와 소녀와 푸른수염의 사연은 아마도 절대로 풀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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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이 아빠딸그림책 시리즈
이갑규 지음 / 한림출판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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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방방이로 뛰어 들어간다.

‘친구들과 폴짝폴짝 뛰어놀다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빠를 손짓하여 부른다.

망설이던 아빠는 방방이 안으로 들어가

‘폴짝폴짝 뛰다가’ 자신도 모르게‘흥분해버려서’

방방이를 종횡무진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마침내 아빠는, 의도치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모두 내쫓아 버리고

아이들의 항의에 다른 엄마아빠들도

“아이들 노는데 뭐 하는 거냐며” 따지기 위해

방방이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그렇게 어른들로 가득 찬 방방이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한 페이지에 한 두 문장이 다이지만

마치 동시를 읽는 마냥 글이 압축적이고 리듬감 있다.

점층적으로 변해가는 어른들의 표정과 몸짓, 몸이 기억하고 있다가 기지개 한편으로 구현되는 갖가지 포즈들이 밖에서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보다 더 다양하고 가지각색이다.

 

양 페이지에 걸쳐 방방에서 노는 어른들과 방방 밖에서 다시 무리를 지어 새롭게 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 모두 보여주면서

그들이 커서 어른이 되고 어른도 그들을 거쳐 지금이 되었음을,

사람은 누구나 ‘노는 동물’임을,

잘 노는 것으로 행복을 가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어른이 된 우리가 지금 논다고 하는 이 행위들이 진짜 노는 것이 맞는지 의심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그렇다면 나는 최근 언제 노는 것처럼 놀았었던지,

그게 기억이 안 날정도로 오래되었다면 지금 내가 혹시 행복에서 멀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미친척하고 아이들과 함께 방방이로 뛰어 들어가 놀아볼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나 무리야, 라며 접고 나서도

<방방이>의 어른들이 한없이 부러워 그림책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어른과 아이를 갈라놓는 무형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그들의 표정이 내게 덮어씌워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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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 권정생 선생님이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 평화 발자국 1
권정생 지음, 이담 그림 / 보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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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생의 동화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는 분단의 이유와 아픔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다.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는 삼십년 전 전쟁때 각각 폭탄과 국군의 총에 희생되어 북으로 돌아가지 못한 영혼들이다. 두 영혼은 전쟁으로 인한 아픔과 고향을 잃은 그리움을 서로 도닥이며 위로한다.

 곰이는 곰이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옛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저씨는 왜 오누이끼리 싸웠냐고 묻는다.  아저씨는 이야기를 각색하여 남북이 싸워야 했던 이유를 들려준다. 두 마리의 호랑이가 엄마를 잡아먹고 오누이의 집에 와서 앞문과 뒷문을 지키며 서로 자신이 엄마라며 문을 열라고 하는데, 누이는 앞문의 호랑이가 엄마임에 틀림없다 하고, 동생은 뒷문의 호랑이가 엄마임에 틀림없다 하니, 한참을 싸우다 각각 자신의 믿음대로 앞문과 뒷문을 열어 그렇게 두 호랑이에게 잡아먹혀버렸다고 말이다.

 

 아이들이 읽기에 조금 어렵고, 그림도 어둡지만,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비유한 6.25 이야기는 어른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한반도의 정세가 이번 주가 고비네, 8월이 위기네 하는 마당이니,

 뒷편의 윤구병의 헌사에 들어간 그가 어릴때 불렀다는 노래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 속지 마라. 일본놈 일어나니 조선사람 조심하세." 가 (조금 각색은 필요하겠지만) 여전히 유효하다는 이 씁쓸함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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