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산골에는 산울림 영감이 바위에 앉아 나 같이 이나 잡고 홀로 살러라.

 

이 책으로써 노스님의 저서는 그만 접해도 될 것 같다. 대신 그분의 생각을 옮겨놓아 펴보면서 나의 흩어진 영혼을 수습, 정리해보는 게 중요하다.

새기어 행함이 눈으로 읽는 것보다 나을 것이요, 이제 내 몫이다.

 

* 오늘 나는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고, 그러했다. 이것이 바로 내 현재의 실존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내 업을 이룬다.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더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더 알려고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더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 일 없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다만 억지로 꾸미지 말라. 그대로가 좋다.

 

*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버리고, 혀는 부드러워 살아남는다.

 

* 홀로 사는 사람은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된다.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 병고로서 약을 삼으라.

(2004. 9. 이 시기를 의미없이 산다는 것은 진정 패배를 뜻하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길어질지 모르나 내 고난의 시기의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통일 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20년을 감옥살이를 한 신영복 교수를 생각한다.)

 

* 이런 일(오두막 도배)을 하고 있으면 망상과 졸음으로 어설픈 참선을 몇 시간 하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고 투명하다. 일로써 공부를 삼음이고, 마음 닦는 일이다. 다 마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타파의 무소의 뿔)

 

* 나이 70에 어떤 직위에 있는 것은 통행금지 시간이 되었는데도 쉬지 않고 밤길을 다니는 것과 같아서 그 허물이 적지 않다.

 

* 번뇌가 보리()를 이루고 성사가 열반(해탈)에 이르는 디딤돌이다.

 

* 묵은 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듯 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은 꿈 속에 사네.

 

*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그는 느리게 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느림은 개인의 자유를 일컫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느리게 사는 지혜는 1.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라. 2. 신뢰할 만한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3. 취미를 가져라. 4. 꿈을 가져라. 5. 가릴 줄 알아라. 6. 마음의 고향 즉, 존재의 퇴색된 부분을 간직해라. (피에르 쌍스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 살짝 스치기만 할 것이지 움켜잡지 말라. 움켜잡는 순간 그대는 복잡한 삶 속으로 빠져 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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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줄거리는 비록 한 쪽에 불과할 1980년대의 농촌 이야기. 게다가 모든 이들의 대화가 농도 짙은 사투리와 말장난을 나열한 듯한 대사로 짜증이 나 몇 차례 책장을 덮기도 했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문장, 외국어 한 마디가 오히려 납득이 빠른 간결한 문체에 익숙한 터라 너절한 넋두리를 참아내지 못한 탓이었다. ‘이문구라는 대작가에 대한 예의로 인내를 거듭한 결과 큰 수확을 얻어낸 셈이다.

우리 조상들의 오랜 애환과 정서가 녹아 들어있는 진득함, 척박한 환경에서 서로 보듬어주고 감싸 안기 위한 지혜가 이런 표현과 비유를 생산케 했으리라.

 

직설적이고 솔직함이 경박함으로 치부되었던 조상들의 시대에서 강한 긍정은 강한 부정을 앞세워야 했고 맹렬한 비판이야말로 뜨거운 의지를 담고 있었음이리라.

 

촌사람 이문구는 우리말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해 매끄러운 문장을 마다했다.

읽어낼수록 우러나는 농축된 표현들을 기록해두고 기억하고 새겨보고자 한다. 감히 활용할 수조차 있다면 말의 달인이 되겠지.

 

아들 교육을 핑계로 이미 서울로 가 근근이 살아가는 큰 아들 응두, 농촌을 뜨고 싶어 틈틈이 서울을 기웃거리는 작은 아들 영두. 효자도 불효자도 아닌 이 두 자식을 둔 문정(文正 : 이 마을의 터줏대감 이 씨는 자신을 그리 칭하기로 스스로 정했다.)은 특별한 낙 없이 빠듯하게 살아가는 육순의 노인이다.

산 너머 남촌의 줄거리는 이 노인이 친구 심 씨의 아들 의곤이를 다방에서 처음 만난 처녀 하양과 맺어주려는 계획에 착수하는 것, 이것이 300페이지를 채우는 모두이다.

나머지를 차지하는 진한 토속어 속담들이 풍부하게 등장인물들의 속내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쥐구멍에 홍살문 세우려고 주제넘은 궁리를 하다.

지게를 져도 서울 지게가 가볍다고 기어 올라 갔으니 올라서나 자빠지나 다 제할 탓인즉 두메 고뿔이 서울 몸살더러 환약 써라 탕약 써라 할 일이 아니다.

그건 또 육개장에 보리밥 마는 소리냐

아무리 이물스럽기가 이무기 손위라도 유만부득이지 그 모로 닮은 빨래판 같은 상판에 사람 음식 들어가는 입으로 짐승 다음 가는 소리만 아갈거리던 화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까치 소리가 까마귀 소리로 들려.

농지 개량한 논 팔아 수리조합 봇물을 산폭이니 늙게 집세기 신고 산길 걷게 된 따분한 신세.

송아지 주고 강아지 얻은 턱이지.

그래 봤자 엄지 손가락으로 새끼 손가락 할퀴는 격이지.

웬 여자가 남의 왕십리로 넘어가는겨.

날 잡은 사람이 자루 잡은 사람을 당할 수 있나.

그 하면 된다는 생각은 뒀다가 애 낳고 싶은 때나 하고.... 나도 설악산 지리산에서 밥 해먹고 동해 바다 서해 바다에서 멱감은 사람이여.

이 노인네가 겉만 두붓모지, 속은 떫고 검은 게 도토리묵이네.

겨울바람 버릇없고, 여름비 염치없다고, 하늘 하나 쳐다보고 사는 사람이 삽을 먼저 집어야 할지 쇠스랑을 먼저 들어야 할지.

살찐 사람 따라서 부으라는 말 같네. 타령은 들을만 하더니 후렴이 틀렸구먼.

쇠고기는 본처 맛이고 돼지고기는 애첩 맛이라.

저녁달에 못 꿴 바늘귀 새벽달에 꿰라 싶어

죄진 듯이 빌고 빚진 듯이 달래도 소용없다.

가랑비에 우산을 써도 발목은 젖고, 뙤약볕에 양산을 써도 손목은 그슬리기 마련.

이삭 주어다가 씨하는 집 봤남.

음식을 만들 때는 생전 선 씻는 법 모르다가도 돈만 보면 앞치마에 손부터 훔치고 나서는 주인 마누라가 밉살스러워서

가던 길에 달 뜨면 이태백 생각나고, 오던 길에 처녀 보면 국수 생각나는 게 田家野情인데

선을 어디 한두 번 봤나요. 점심시간에 우동을 먹을까 하며 중국집에 들어가는 정돈걸요.

무슨 흥정이던 맨입보다 축인 입이요, 차 마신 입보다 밥 먹은 입이 뒷맛이 있으며 처음에 먹고 들어가야 나중에 먹고 떨어진다는 평소의 지론에 따른 것.

돼지고기가 풍기를 돕는다는 건 항설이 낭설이라는 게 정설인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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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글을 읽노라면 어렸을 때의 경애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아랫목에 깔린 조각 이불에 두 손 두 발을 붇고 어른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을 때의 편안하고, 느긋하고 느릿느릿 이어지는 진진한 옛이야기들.

그래설라무네(그래서)”의 토를 다는 순간은 한 박자 휴식 시간이다. 재빠르게 입에 고인 침도 삼키고 쥐나는 다리도 고쳐앉고, 엄마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눈짓을 한다. ‘들어가 공부하라는 경고다. 한 주먹만 하게 삐져나온 두 입술 사이에서 힘들이지 않고 풀어내는 겪은 전쟁 이야기는.....

 

70년대가 배경이었던 감칠맛 나는 꽁트집인 셈이다. 우리 올케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고, 그가 내 이웃에 살았다면 나조차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았을는지.

 

그때 그 사람의 주인공 상철은 마치 대학 동창 경희의 오빠 같다. 김자옥의 화사한 미소, 남정임의 깜찍함을 겸비한 신부감을 찾더니 놀러가서 본 올케언니는 맨발에 오빠의 런닝셔츠를 걸쳐 입고 마루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마른 꽃잎의 추억네 편은 그녀가 처녀 때 받아 두었던 책갈피의 주인공들을 우연히 접하면서 번번히 깨어지는 낭만이 속살 드러내듯 그려지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앟은 음모역시 4편으로 쓰여 있다. 자식의 합방을 원치않는 분희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집착(여기서는 가슴앓이의 증상으로 표현된다.), 직장 여성에 대한 사회의 냉대에 맞서는 분희의 딸 후남이 여성의 서러움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일식(日蝕): 아들 에 대한 부모의 엇나간 애정과 기대, 빗나간 자식조차 잠시동안의 태양의 일식 증상으로 간주,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부모의 칼같은 아픔이 욱에게 비로소 자각을 갖게 한다.

 

죽순같이 뻗어 올라간 아파트 구멍 구멍마다의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땅집에서 살아요, 아파트 부부, 열쇠 가장, 이민 가는 맷돌, 할머니는 우리 편, 꿈은 사라지고,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삼박 사일간의 외출등에서 허탈한 웃음 가슴을 따뜻이 해주는 미소, ‘그럼 그렇지의 감탄사를 불러내는 기막힌 사연들을 재치있게 끄집어내 백지 위에 그려내는 그녀의 재주에 다시금 존경심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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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허삼관이 피를 팔아 살아가는 인생 역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어리석음이 안타까움이나 연민이 아닌 사랑과 이해로, 또 지혜로움으로까지 받아들여짐은 나이탓일까.

소설의 매력일게다.

 

1960년생. 전직 치과의사, 장이모 감독의 영화 인생의 작가였던 위화가 시대착오적(?)인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풍부한 상상력인가. 신선한 휴머니즘의 완벽함인가.

 

19살 근룡이는 허삼관에게 진지한, 자신이 터득한 삶의 방법을 일깨워준다. “여자를 얻고, 집을 짓고 하는 돈은 전부 피를 팔아서 번 돈으로 하는 거라구요. 땅파서 버는 돈이야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니까요.”

 

결국 허삼관의 피는 부인과 세 아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요, 돈이라는 삶의 등식을 이루게 된다. 피를 팔아 얻은 아내 허옥란이 낳은 첫아들 일락이가 자신의 핏줄이 아님을 알았을 때 부자간의 단절을 선언하면서도 드러내는 끈끈한 부정애.

둘째 아들 이락이의 귀가를 위해 피판 돈으로 책임자에게 극진한 대접과 술상대를 해주어야하는 비굴함과 허약함, 단순한 슬픔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비애가 소설 전체에 깔려있으나 너무나 인간적인 살아가는 방식에 내가 오히려 빈곤함을 느끼게 된다.

 

부부간의 대화를 다시 들추어 본다.

허옥란은 5년 동안 아들 셋을 낳았는데 각각 허일락, 허이락, 허삼락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루는 삼락이가 13개월이 되었을 때 허옥란이 허삼관의 귀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내가 아이를 낳을 때 당신은 바깥에서 희희낙락 했겠다?”

난 웃은 적 없어. 좀 희죽댔을 뿐이지. 소리를 내서 웃은 적은 없다구.”

아이야.” 허옥란이 탄성을 질렀다.

그러니까 아들을 일락, 이락, 삼락이지. 내가 분만실에서 고통을 세 번 당할 때 당신은 밖에서 세 번 즐거웠다는 거 아냐?”

 

희비극의 삶을 거치며 자식들은 아버지보다 조금 더 나은 생의 길을 가고 있다. 노부부가 된 그들이 젊어서 피를 팔고 먹었던 돼지간볶음과 따뜻이 데운 황주를 먹으러 가는 모습이 왜 그리도 윤택하게 느껴지는지.

 

허삼간이 근엄하게 내뱉는 자신의 평등관 한 마디.

좆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라는거라구.”

 

한편의 철 지난 중국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가슴 언저리를 떠나지 않는 인물들-일락이의 생부인 하소용과 아내, 임분방 부부, 방철장, 피 팔러 갔다가 물을 많이 마셔 오줌보가 터져 죽은 방씨, 과로와 영양 실조로 죽은 근룡-에게 느꼈던 뭉클하게 번지는 아리함을 단순히 연민이라고만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가 50을 넘겨 살면서 무의 속에서 가리워졌던 내 인생의 그림자를, 내 생애 중 가장 깊은 나락의 늪을 고독하게 넘기고있는 이 때 허삼관을 보면서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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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져 내려오고 있고, 또 그 진실이라는 것은 언젠가 옳고 그름이 누군가에 의해 수없이 파헤쳐지고 있다. 그 또한 역사이다. 그 근거 또한 누군가 의혹을 품게 된다. 내가 알고 있었던 사도세자의 세자빈 혜경궁 홍씨는 남편을 일찍이 참혹하게 잃고, 그 한을 달래기 위해 <한중록>을 기록했으며 우리는 그 여인의 설움이 그 시대의 전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에서 새로운 또 다른 사살을 알게 되었다. 풍산 홍씨 가문이 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병신처분이 없었다면, 이 몰락이 아니었다면 <한중록>이 쓰여질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의 눈물은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해자를 위한 눈물이었다.

 

영조가 8년 만에 얻은 세자에 대한 애착은 책의 여러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다.

문무가 뛰어나고 지방 행차시 따르는 백성의 행렬은 출생의 콤플렉스를 안고 태어나,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혐의(게장과 감, 인삼차와 상극인 약을 강제로 왕에게 올렸다는)를 받는 영조에게는 위협이 되고도 충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세자의 정신병은 아버지 영조에게 더없는 아픔이기에 가혹한 죽음을 결코 내릴 수 없었을 것이며, 비행이라면 폐세자로 충분치 않았을까. 아마도 영조의 부정으로 본다면 비행조차도 어여삐 보아넘길 정도로 넘쳤다.

 

탕평책에 주력했던 영조. 그러나 자신의 콤플렉스로 인해 노론의 강세를 극복하지 못했던 영조. 노론의 횡포에 반발한 사도세자는 장인 홍봉한을 위주로 했던 노론 세력을 인원왕후 김씨, 숙의 문씨(영조 후궁), 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 친정을 택해 세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친정에게 고한 세자빈 홍씨 등 이들에 둘러싸여 고된 세자의 길을 걷ㄷ가 죽음을 맞는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이 외침으로 일단의 그 시대의 노론 세력은 주춤했으나 계속 잔류하고 있는 그 파벌 속에서 아버지의 궁중 생활을 보아온 정조는 아주 조심스럽게 왕권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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