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어령씨가 이미 40년 전에 발간하여 다시 수정 보완했다는 이 책은 내가 대학 시절 읽어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내 정체성을 인식하고 정립해나가는 문제에 있어서조차 갈등과 혼란이 거듭되는 30대의 어린(?) 나이에 작가는 이웃과 민족에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놓은 문화에 애정과 비판의 눈으로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존경심을 느낀다.
우리의 추악하고, 어둡고,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는 것이 처음에는 불쾌하게 여겨졌으나 절망은 애정에서 오는 것이며 자기 환멸조차 자존심을 가진 자만이 느낄 수 있는지라 수긍하고 이해하며,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리의 모습으로 그저 우리 민족의 것으로 지나쳐왔던 모습들을 그는 풍경너머로 보여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뒷모습과 상처를 그려내고 있었다.
흙과 바람과 구름과 같이 쏠리며 밀리며 살아온 조상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몇가지 남기고 싶다.
새도 울고, 촛불도 울고, 쇠북소리, 여울목소리, 심지어 일목일초도 우는, 잘 울어야 효자요, 충신이며, 열녀였던, 억울해서 울고 배고파서 울었던 슬프디 슬픈 민족은 모든 산천초목도 운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2. 황새야, 황새야 뭘 먹고 사니~
떡 해먹자 부엉. 양식 없다 부엉.
겨울이 오면은 무얼 먹고 사느냐.
아침 잡수셨습니까?
가는 손님 뒤꼭지가 예쁘다.
더위도 먹고 공금도 먹고 욕도 먹고.
배고픈 설움이 가장 컸던 장구배의 우리 선조들의 먹는 타령은 끝도 없다.
3. 홀로의 운명에 맡겨지는 주사위와는 달리 서로 얽히고 연관 지어 전체의 운명을 연결 짓는는 윷놀이는 우리의 파당, 삼족을 멸했던 벌, 현대의 지역주의로까지 이어진 한국사회의 풍토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는지.
4. 며느리밑씻개, 여우오줌, 쥐오줌풀, 꼬딱지나물, 개불알꽃, 기생풀, 개똥벌레, 피나무, 가시나무, 구기자나무, 사시나무...... 가냘프고 힘없는 초목에 어찌 그리도 살벌하고 경계에 찬 이름들을 붙이게 되었을까. 서양인들이 애틋한 로맨스를 담아 이름 붙인 달맞이꽃도 우리는 도둑놈꽃이라 부르니, 상상력의 억눌림이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그려낼 수 없었을까.
5. 눈치만 빠르면 절간에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
일본을 정탐하러 갔던 사신들의 눈치보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광채 나는 눈빛을 보니 침략이 예상된다고 한 황윤길. 그들의 눈빛이 쥐새끼 같이 생겨 감히 쳐들어오지 못하리라 고했던 김성일.
기본 원칙이나 논리가 통하지 않았던 부조리 사회에서는 과학적 분석보다는 눈치가 필수적 지혜렷다.
6. 위급을 당한 경우 주체성을 지닌 내게 힘을 보태달라고 외치는 “HELP ME!”가 아닌, 완전한 절망, 포기, 무력, 자신의 죽음을 선언해버린 “사람 살려!”.
원병을 청할 때도 도와 달라가 아닌 살려달라고 매달렸으니 그들의 횡포에 아무런 불평조차 못했던 우리 조상님들.
7. 격투가 치열한 서양인들은 악수를 하고 손을 맞잡아야 총을 쓰지 않는 평화의 상태를 의미했다. 일본인은 피를 봐야 싸움이 끝나는 닭싸움이라면 우리네 싸움은 장죽을 물로 침을 튀기는, 고작 삿대질에 불과한 고양이 싸움이었다. 이웃에게 원조와 동정을 구하는 의존된 싸움. ᄊᆞ움도 아닌 평화도 아닌 우리의 휴전 상태도 민족의 유산인가.
8. 서구의 버튼과 우리의 끈
옷고름, 갓끈, 땋아내린 머리, 댕기, 대님. 고립되는 경우를 ‘끈 떨어진 연’이라 표현할 만큼 끈의 지배를 받아왔다.
아버지와 아들, 부부간, 임금과 신하, 할아버지와 손자. 칡넝쿨같이 엉킨 사회구조에서 너와 나를 구별할 수 없고 ‘내’가 없이 ‘우리’만 존재하는 의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학연, 지연, ‘줄을 잘 서야 된다’는 끈나풀 사회.
9. 우리의 화투에는 송죽, 매화, 공산명월, 국화, 단풍 등 자연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서양인들의 트럼프는 퀸, 킹, 다이아몬드(재물 상징), 하트(증식), 스페이드(칼), 클로버(농업)의 그림이 가득하다. 그들의 인간의식과 우리의 자연 의식.
우리가 사군자가 그려져 있는 병풍 안에 갇혀있을 때 그들은 계급 의식, 상업의식을 가진 진취적 사고를 키우고 있었다.
9. 이젠 멍석을 말고 팽이채를 꺾어라.
우리 민족을 다스릴 때 ‘때려야 된다’는 비유로 팽이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던 짓도 멍석을 깔아놓으면 안한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억압과 폭력보다 신나게 해 주어야 잘한다. 자유롭게, 흥을 돋우어 주어야 하는 민족이다. 우리가 아직도 이 낙후한 벌판에서 방황하는 것은 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따스한 칭찬이 그리워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