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은정이와 동갑내기 작가의 단편 소설집.

늘 읽어오던 기성작가의 글과는 판이한 젊은이들의 발랄한 상상력이 엿보인다.

 

모든 것을 사소하게 보아 넘기지 않고, 내면의 실체를 파헤치고, 본질을 이해해 황당함을 유머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젊은 작가의 우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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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권 두 권 중 첫 권만 읽었다.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죽음의 역사를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해석해 놓은 책.

 

죽음이 인간들에게 미친 심리적, 육체적 영향은 유행처럼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어왔음을 전한다.

죽음이 삶의 일부로, 체념의 상태로, 죽음이 죄의 결과가 아닌 누구나 겪어야 하는 합리성을 밝히기 위해 아담의 원죄까지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 죽음을 죽인 예수의 부활.

에로스적인 모습으로 표현되는 죽음에서는 정욕이 중음으로 이끈 것이 아니라 죽음이 사랑으로 통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진 고통을 행하는 자와 축복받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성자의 얼굴에서 사디즘과 매저키즘이 결합 된 죽음의 해석도 있었다.

 

금속판-모세, -노아, 열쇠-베드로, 저울-미카엘 등 가톨릭의 교리가 인간에게 죽음을 무기로 삼아왔던 시절부터 죽음의 표현이 있었으므로 성서에 근거해 그려져 왔음도 알 수 있었다.

 

그림을 한낱 색채의 표현 정도로 느꼈던 내게 색다른 방향의 감상법을 일깨워준 책.

 

특히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유심히 볼 기회가 되었다.

예수를 둘러싼 구원 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가 함께 어우러져 있고, 죽은 자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모습, 예수의 머리 위로 처형받던 도구와 왼편 발밑엔 자신의 벗겨진 살껍질을 들고 있는 성인 바르톨로메오도 담겨져 있었다. 심판의 날을 진노의 날로 표현된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음이 이 책을 읽은 또 하나의 수확.

 

죽음을 낫을 들고 있는 추수자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인생의 끝을 농사로 비유했던 구약성서에서 비롯, 눈을 가진 유태인의 모습에서 예수를 바라본 유태인을 상징,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 크로노스의 모습, 죽음이 해골로 표현됨은 죽음의 의인화이며 십자가의 모습으로 서 있음은 삶의 허무함을 의미한다고 작가는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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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생일날 큰 올케가 선물로 주었다.

우연히, 혹은 늘 곁에 있었으나 어떤 계기가 되어 다시금 가슴에 와 닿아 떠나지 않고 날 지탱케 해주는 글이나 문장, 말들이 있다.

 

잠시나마 이들의 가슴앓이를 보듬어준 말들에 동참해본 경험이다.

 

여러 좋은 글귀중 장영희 시인이 소개한 에밀리 디킨슨의 시 한 편을 남겨둔다.

(제목도 없었으므로 장영희 씨가 붙였단다)

 

만약 내가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랠 수 있다면

기진맥진 지친 울새 한 마리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좋아하는 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걸어보지 못한 길)도 여러 차례 거론되어 반가웠다.

 

단풍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욱도 없고

두 길을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 다른 길은 다른 날 걸어보리라 했지요.

인생길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오기는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에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건 아주 중대한 일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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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수상작. 영화화된 작품.

기성세대인 나로서는 그 어느 것도 이해되지 않았던 글.

 

예전의 아내도, 약혼자도 결코 아닌, 현재의 아내가 결혼한 발칙한 발상이 신선하게 느껴져야 하는 것인지.

일부일처제의 통념을 깼다거니 새로운 문화의 도전이라는 둥, 호평이다.

 

알뜰하고 영악하고, 별난 여자. 그 남자의 아내는 서울과 대전의 양집을 넘나들며 두 집 살림을 잘 이끌어 나간다. 양 시집을 적당히 무마하고 두 남편도 토닥거리고, 태어난 아기는 누구의 핏줄임이 불분명하며 두 남편이 공유한다.

 

정작 작가가 여자였어도 이런 생활이 가능하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결국 아내가 새 연인과 미국행을 결심하고 주인공이 마음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두 남자와 한 여자는 전혀 악의 없이 그려져 있다. 평범하고 지극히 소시민으로 보여지는 게 작가의 기술인 듯싶다.

경쾌하고 가벼운 웃음을 날릴 수 있었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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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청준이 소록도의 원장 조창원(소설 속의 조백관 원장)을 만나 오마도 간척공사를 진행하던 내막, 소록도의 내력, 나 환자들의 숨겨진 한을 취재한 후 소설화한 책.

 

정상인 서미연과 원생 윤해연의 결혼을 실패의 얼룩으로 남겨진 오마도와 외부세계의 진정한 교류로 비유하고 있다.

 

사랑이 잠재되어 있음에도 공동의 운명이 아니고서는 믿음과 신뢰가 자유로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참다운 사랑은 한쪽이 한쪽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익을 나눔에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바란 것은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그들과 우리의 우리들의 천국이었다는 것.

 

황희백 장로, 조백관 원장, 이정욱 보건과장, 이정태 기자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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