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에 대해 상당히 매력을 느껴 소개한다.

동국대학원에서 노장 철학을 전공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철학, 종교를 연구 근무하던 중 우연히 자연주의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을 읽고 감명, 두 세 시간의 깊은 명상 끝에 새로운 삶을 결정한다. 즉시 이적이 드문 주둔산에 들어가 자연과의 생활을 시작하나 시행착오로 실패. 일본, 뉴질랜드에서 5년간의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옛 산집으로 들어가 정착한다.

 

그는 재배방식이 아닌 채취방식을 고집한다. 그러므로 씨뿌리는 작업이 필요 없고 풀, 잡초도 뽑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농장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있다. ‘이곳은 땅을 갈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풀과 나무도 그대로 두고 씨앗이 뿌려지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곳입니다. 언 듯 보기에는 그냥 내버려둔 땅 같지만, 곳곳에 여러 가지 씨앗을 뿌리고 자라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연에 손을 적게 대는 게 이 농장의 방식입니다. 재배를 최소로 줄이고 절로 나는 것으로 먹을거리를 해결해 가려고 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 농장의 이러한 시도가 지켜지도록 여기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손대지 말아주세요.- 바보 이반 농장

 

농장 이름인 바보 이반은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나오는 그가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한다.

 

농사를 짓는다기보다 그저 숲을 그대로 보존하는 산사람이라고 칭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이 책은 나형이네 집에서 한 달을 묵으면서 그동안의 꿈을 현실화시킬 것을 결심하고 대도시 대전 오피스텔에서 묵으며 접하게 되었다.

내 미래(10년 후로 예측하고 있다)를 구상하며 읽느라 시간이 걸렸다.

산에 사는 목숨붙이들, , 나무, , 벌레, 야생동물, 물고기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실려있어 꿈을 실현시키는 데 구체적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고마웠다. 내 계획을 앞당기고픈 충동도 자주 일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사고를 빗겨갈지도 모르겠다. 작가와는 달리 삶 자체에 어느 정도의 수입을 의존해야 할 형편이므로 우리 집을 찾는 고객의 흥미를 유발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산으로 향한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내기 위해 베어질 풀들이 있을테고, 인공적인 화단을 조성하기 위해 그 땅 위에 살아있던 모든 것의 위치가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과 산행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땅을 보러 다닐 계획이다. 현재 생각으로 자본은 순덕이에게 꾸어준 돈 3, 천안 아파트에 투자한 것 천 정도로 충당할 예정이다.

 

남향을 향한 데크에서 저 멀리 산등성이 부드러이 누워있고, 재잘거리는 냇가를 곁에 두고 있으면 좋겠다. 물론 바보 이반의 취지와는 동떨어져 있으나 투자가치가 우선 순위임을 염두에 둘 것이다.

친지와 자식이 와주지 못한다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 거니는 격일 테니까 도시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야겠다. 순덕이가 농사를 지어봤으니까 師傅는 확보되어 있고, 땅만 사놓으면 콘테이너를 아담하게 꾸며 집 지을 자본이 생길 때까지 틈틈이 주변을 정리할 적정이다.

늘 마음에 새길 것은 집에 땅에 노예가 되지 말고 내 삶이 만족을 느끼는 게 최우선이다. 땅에 가까울수록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서로의 조화를 맞추어나감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책을 마무리하면서 옮겨놓은 아메리칸 인디언 블랙 엘크의 아침기도를 다시 한 번 읊어본다.

 

서쪽의 조용한 어둠의 정령이여, 우리에게 그 고요함과 온화함과 깊은 통찰력을 주십시오.

북쪽에 사는 눈 쌓인 산과 빙하의 정령이여, 우리에게 그 청결함과 시원함, 그리고 겨울을 나는 동식물 같은 튼튼함을 주십시오.

동쪽의 아침 해가 떠오르는 붉은 빛의 정력이여, 우리에게 오늘도 새로운 힘과 지혜를 주십시오.

남쪽의 생명을 기르는 황금색 정령이여, 우리에게 생명을 기르고, 지키고, 열매를 맺게하는 힘을 주십시오.

우주의 별들, 태양, , 아버지인 하늘이여, 늘 우리를 지켜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우주의 모든 것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어머니인 대지여, 늘 우리를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당신의 아이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당신을 상처입히지 않고, 더럽히지 않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당신을 통해 하나로 이루어진 모든 생명에게 오늘이 보람 있는 하루이도록, 그리고 제 안의 크나큰 신비가 좋은 만남과 결실로 이어지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생물에게도 우리가 기쁨이자 선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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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 야사는 스릴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역사에 관심을 갖도록 해주는 매력이 있다. 조정과 관직의 양반들이 대화에 인용하는 중국의 시경, 서경, 주역 등이 거론되어 고대 중국과 조선시대 그리고 현대를 넘나드는 소설로도 읽혀진다.

 

우선 이 소설의 배경을 본다.

1762. 5. 21. 엿새동안 뒤주에 갇혀 울부짖던 사도세자 숨을 거두다.

1764. 9. 12. 영조 채제공을 불러 사도세자를 애도하는 시를 감추게하다.

1793. 8. 11. 채제공이 영조의 시를 공개하고 정조에게 사도세자의 원한을 갚을 것을 청하다.

1806. 6. 28. 갑작스런 병을 정조 승하하시다.(48)

 

영조의 시를 발견해 노론을 거세하려는, 그 시대의 영조를 부추겨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남인과의 쫓고 쫓기는 하루 간의 이야기이다.

 

1800년 정조 24년 수십만의 희귀한 서책들이 보관된 규장각 서고에서 영조대왕의 글을 정리하던 검사관의 변사체를 이인몽이 발견함으로써 소설이 시작된다.

이 사건의 미로를 파고 들어가며 정조가 남긴 글 금등지사(안의 시경 빈붕 편의 시 올빼미가 빌미가 된다.)를 추적하는 도중 정조가 갑자기 죽고 당파의 조정은 미궁으로 빠진 채 이인몽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이 세상 먼지와 티글로 사라져가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이백 여년에 걸친 노론(율곡파)와 남인(퇴계학파)의 기득권에 저항하며 왕도정치의 개혁을 꿈구는 정조는 금등지사로 하여금 피로써 피를 씻게 하기 위한 계책이라는 묘한 분위기를 남기고 있다.

 

시경, 서경, 주역이 만든 환상의 제국 주나라. 모든 제왕들의 꿈이었으나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존재치 않았다고 역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것 같다.

 

영조의 생애를 닮았다는 시 올빼미를 남긴다.

 

올빼미야 올빼미야

내 자식을 잡아먹었거든

내 둥우리 헐지마라

알뜰 살뜰 길러낸

어린 자식 불쌍하다.

 

하늘 흐려 비오기 전

뽕뿌리를 벗겨다가

창과 문을 엮었더니

이제 너의 낮은 백성이

감히 나를 모욕하느냐

 

이 두 손을 바삐 놀려

갈대 이삭 뽑아다가

하루 모으고 이틀 모으고

입부리도 병들었네

내가 쉴곳 없었기에

 

내 날개는 늘어지고

내 꼬리는 맥빠졌네

내 둥우리 위태롭게

비바람이 흔드나니

슬픈 울음 절로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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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책자가 100여 권에 이른다고 한다. 그동안 후손들이 너무 단편적으로 인식한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면모를 알고자 함이나 충무공이 갖춘 문무의 매력을 그냥 간과할 수가 없었음이 아닐까 한다.

 

난중일기를 근거로 한 장군 이순신을 문학적으로 접근한 서정적인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며 일기식으로 담담히 써 내려간 1년간의 기록으로 칼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 듯하다.

(※ 「이순신의 두 얼굴이라는 책이 작가 아닌 회사원에 의해 쓰여 졌다. 나약하고 인간적인 장군의 모습이나 주위의 인물, 특히 원균, 그 시대의 조정의 사정 등이 정확한 사료에 의해 재조명되었다고 한다.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

 

삶과 죽음의 중심에 있던 무사 이순신에 적의 칼과 화살 뒤에 숨겨진 또 하나의 적 허무함, 무의미함과 싸워내는 고뇌와 갈등의 전쟁터가 마치 한 폭의 서사시를 읽는 듯 하다.

칼을 찬 이순신보다 붓을 든 훈훈하고 따뜻한 시인의 모습으로 강하게 다가왔다.

주인공 이순신이 자신의 입을 통해 들려준 조선 시대의 조정, 백성들의 고된 삶, 명나라의 횡포, 고독하고 암담했던 이순신의 내면적 아픔을 그대로 적어두어 외로이 감당해내는 전쟁터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자 한다.

 

명나라 군사들이 술취해 먹은 것을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 먹었다. 힘이 없는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뒷전에서 울었다.

 

혼절과 혼절 사이에서 나는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대답할 수 있는 건 임금뿐이었다. 조정은 무겁게 침묵하고 나를 죽이면 나라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준 것 같았다. 나를 살린 것은 적이었고, 나는 나를 살린 적 앞으로 나아갔다.

(정유년 내용 없이 가해진 고문 후 풀려나 전지로 향하는 1597년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 죄목은 일본군을 향해 출격하라는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

 

적은 죽음을 가벼이 여겼고, 삶을 가벼이 여겼다.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적을 죽일 수 없었고 삶을 가벼이 여기는 적도 죽일 수 없었다. 적은 한사코 달려들었다. 눈보라처럼 휘날렸고 나부꼈으며 작렬했다. 적이 죽기를 원하는지 살기를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는 물러섰고, 우회했고, 분산했다.

 

나는 적들의 칼에 새겨진 녹슨 글자들을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적의 장군 가토의 칼 )

말은 비에 젖고

청춘은 피에 젖는구나

 

청춘의 날들은 흩어져가고

널린 백골위에 사쿠라 꽃잎 날리네.

 

내 젊은 적들은 찌르고 베는 시심가들이었다. 적들의 문장은 칼을 닮아있었다.

 

적이 오지 않았고, 내가 적에게 가지 않았던 기간에 임금의 유지는 이러했다. “자꾸만 적의 군대가 늘어난다하니 남쪽 바다의 장수는 무얼하고 있느냐. 바다에서 잡아야 상륙치못할 것 아니냐. 가을이 깊어가니 시름 또한 깊다. 또 한 해를 이대로 넘기려느냐.” 임금은 멀리서 보채었고, 그 보챔으로써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군사들에게 조총 훈련을 시키고 있으나 모자라고 망가진 것이 많아 막대기를 들고 총 쏘는 시늉을 하고 있다. 너는 빼앗은 왜적의 조총을 많이 쌓아두고 있다 하니 그중 성한 것을 골라 서울로 보내라.(그 때 서울이라는 이 존재했을까?)

 

내륙 관아의 부패한 수령들과 아귀 다툼 해가며 군량을 모았고, 화약을 모았다. 갯벌을 막아 소금을 건져냈고, 대나무 파목으로 통발을 만들어 생선을 건져 올렸고 둔전에서 나오는 콩으로 된장 50독을 담아 양지쪽에 묻었다.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인 무, 배추를 소금에 절여 묻었다. 무청으로 시래기를 엮어서 수영 막사 담벽에 걸어 말렸다. 감 수천 개를 깎아 곶감을 만들어다 논 바닥에 내린 볏짚을 긁어모아 가마니를 짰고, 노란 가마니를 뒤집어쓴 수영 막사들은 초가집처럼 평화로왔다. 옥수수 술을 만들었다.

장졸들의 옷을 벗겨 끓는 물에 삶았고 머리를 잿물에 감게 했다. 훈련이 없고 작업이 없는 날 시래기 다발이 걸린 박사 담벽에 기대앉아 이를 잡았다. 군량 창고에 쥐 떼들이 들끓어 백성들의 고양이 10마리를 빌려왔다.

 

면의 부고를 받던 날 나는 군무를 폐하고 하루 종일 혼자 있었다. 쌀 냄새가 나고 보리 냄새가 나던 면의 작은 입과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아리를 생각했다. 나를 닮아 사물을 아래에서 위로 빨아올리듯 훑어내는 면의 눈동자를 생각했다. 인간이 혈육의 이마와 눈썹을 닮고 시선까지도 닮는다는 씨내림의 운명을 감당키 어려웠다. 송장으로 뒤덮힌 쓰러기의 바다 위에서 그 씨내림의 운명을 힘들어하는 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새벽 바다의 비린 안개 속에서 때때로 죽은 여진의 몸 냄새를 생각했다 그 냄새가 평화인지 싸움인지 분별할 수 없으나 ᄊᆞ움과 평화의 구분을 넘어서 살아있었다. “나으리, 밝는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 여진의 몸속은 평화롭고 뜨거웠다. 섬진강 물가의 벼려진 농가 토방에서 여진을 품었을 때 산 것이 산 것을 부르는 부름의 방식으로 이 기약 없는 전쟁이 끝나주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여진의 몸속에서만 유효한 바람이었다. 여진의 울음은 그 몸속의 세상이 몸 밖의 세상을 견디지 못해 우는 울음 같았다. 죽은 여진의 몸 냄새는 새벽 안개의 비린내에 실려 내 마음속을 흘러다녔다.

 

임금은 자주 울었다. 압록강 물가에서 우는 울음은 관리들의 입으로 퍼져 남쪽 바다까지 들렸다. “성룡아, 두수야,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임금은 중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개성을 버릴 때도 울었고, 평양을 버릴 때도 울었다.

임금의 언어와 울음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다.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던 이순신은 이렇게 고요 속을 빠져들어갔다. 159811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죽음 뒤에 전쟁은 끝났고, 일본은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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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해박한 지식이 참으로 존경스러운 작품이다. 실제적 인물(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 장콕도, 프랑수아 미테랑)과 역사적 사실이 삽입되어 생생함과 현실감이 마치 논픽션을 대하는 착각이 든다.

논란의 대상이 될 법한 소지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에만 머물고 있음은 떠도는 소문의 실체가 허구였다는 소설의 허망한 결론 때문이었을까. 혹은 저자의 이런 결단을 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신앙인들이 묵인하고자 함일까.

 

문득 내 신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유혹의 순간도 맛보았다. “그럼 교황청에서 침묵하고 있다는 비밀이?”

요즘 같은 상황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내 기도는 어디로?

 

단지 초기 기독교에 대한 음모일까. 아니면 진위를 파헤쳐야만 할 그림자의 역사가 참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본 소설에서는 예수가 한 예언자로서 존재하므로 성모 마리아는 거론될 이유가 없는 듯하다.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싶은 저자의 의도였을까.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의 예수는 진리이며 사랑이며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길임에 틀림이 없었으리라는 것. 부활을 내포한 희망으로 우리에게 충분한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내가 그를 따르는 이유이다. 기적을 내리는 구세주가 아닌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순리와 진리의 대변자로서 내 믿음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저자가 결론으로 내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누구에게나 합당하게 짊어지고 가야할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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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나형이네 집에 묵으면서 읽은 여러 권의 책 중에 가장 진지하게 심취하며 읽은 책이다. 작가에게 나 자신을 투영시켜 보기도 하고, 나를 다시 점검해보는 계기로 삼아 보기도 했다. (내가 화초가 아닌 식생활 조달을 위한 노동을 할 수 있는가. 내 생활이 이 농사라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교수와 그의 비서였던 니어링 부부는 (72살과 51) 미국 공황이 시작되어 일자리를 잃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도시를 떠나 버몬트 시골에 정착을 하게 된다. 의식주를 위해 간소한 생활과 (집은 주변의 돌을 단계적으로 모아 지었고 농사는 최소한의 먹거리만을 위해 경작키로 했다.) 치밀한 계획으로 이에 따른 엄격한 실천을 이행했다.

 

아울러 만족한 삶을 누리는데 원칙을 두어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4시간 만의 일과 음악, 독서, 대화, 글씨 등으로 조화롭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32년에서 52년간 불모지에 농장, 밭을 이루고 살다가 버몬트에 스키장이 생기고 관광객이 늘자 그곳을 떠나기로 작정한다. (관광객에 의존해 살아가는 방법은 그들의 자본에의 탄력에 의해 독립성과 영구성을 보존할 수 없으므로)

52년 봄 사탕 단풍 나무에서 시럽 채취를 마지막으로 자신이 지은 돌집, 농장, 밭을 뒤로하고 도시와 더 떨어진 메인 주 시골로 들어간다. 놀랍게도 두 부부의 나이는 92, 71.

너무 이르다’, ‘너무 늦다의 기준은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귀농자들을 위해 집짓기, 농사짓기, 농기구 다루기.

방문객들에 의해 사생활을 침해 받지 않기 위한 그들의 지혜. 비싼 보험료 대신 자주 병원 방문하기 등 구체적 사항들이 적혀있다.

 

그러나 내가 이 노부부에게서 배운 것은 삶은 현실이며 절박한 것이요,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절박함마저 진지하게 받아들여 깊이 생각하고 행동과 일치시켜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 그리고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자신의 생이 바로 만족한 삶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마음이 시켜서 온 몸이 최선을 다해 이루어가는 은 기도요 도에 이룸이 아닐까. 부러웠던 것은 부부가 의논하고 합심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이 대화와 사진으로 엮어져 있다. 아름다운 (자연보다도 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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