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31일 남편 회사가 부도가 났다.

30일 채권자들을 피해 집을 떠나 2005. 1. 21. 분당집으로 돌아왔다.

 

콘도, 엄마집, 양평 나형이네집 2개월, 대전 둔산동 3개월 등 거처를 옮겨 다니던 6개월 동안에 50년 동안 살아오던 그 세월이 문득 낯설고, 두려웠다.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동안은 남편이나 자식, 부모에게 표정관리를 따로이 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그 중 13편의 메모가 남겨져 있다. (42~53)

 

그 후 아르바이트를 했고, 딸 시집 보냈고, 남편이 있는 중국으로 옮겨가 사는 동안, 또 남편과 돌아와 2개월 동안 마음은 근심으로 팍팍했지만 아무것도 도모할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책읽기였던 모양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내 삶은 그래서 느리고, 나는 그 삶을 순하게 받아들였고 더딘 흐름 속에 읽고, 쪽지에 건성건성 흔적만 남겨 두었다.

 

53권부터 107권까지는 3년 동안 방치해두었던 낙서들을 정리해 기록한 셈이다. 계속 읽고 남기면서 고달픈 시간에 제대로 마음 정리를 했을 리 없고 내 기억력조차 도무지 믿을 게 못 되어 난감하지만 먼 훗날 그나마 내 세월의 흔적이 이 노트뿐일 듯싶어 이 작업을 계속하기로 한다.

 

그래도 계속 읽고 써대고 했던 것을 보니 내가 이 짓을 퍽이나 좋아하는 모양이다.

지나간 좋았던 시절, 운 나쁜 이들이나 가는 길인 줄 알았던 그 까칠한 길을 가던 이즈음의 시간들마저 하느님께 감사하고, 남은 내 세월 하느님께 봉헌한다.

 

귀차니즘에 빠지지 않는 날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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