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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는 나도 참 다독가였다. 세살 네살 연년생 남매를 키우면서도, 아이들을 놀이터에 풀어놓고 난 그 옆 벤치에서 시오노나나미를 읽었고,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면서도 간호사 몰래 나가서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사들고 왔다.
한때 나의 다이어리는 곧 독서록이었고, 모 주부사이트에서는 내가 권하는 책은 다 재미있더라는 찬사까지 받았던 터였다.
그런데...
인터넷을 하고, 알라딘을 드나들면서 난 변했다. 하필 그때 난 대형서점이 없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었고, 책을 대량구매하기 시작했다. 그 전엔, 한 권 사서 한 권 읽고, 1편 다 읽은 후에 2편을 사는 방식이었는데.
책을 대량구매하다 보니 안 읽은 책이 쌓여갔고, 난 책을 대충 읽기 시작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다른 책이 궁금해서 지금 잡고 있는 책은 대충 책장만 넘겼다. 그리고 그 넘긴 책장수만큼 내 머리도 텅~ 비어갔다.
책을 읽지 않아도 남들 앞에서 잘난 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덕분이었다. 웹서핑을 조금만 하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잘 아는 척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산 지가 벌써 5년이 되었다.
올 여름.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다시 독서를 즐거워하는 나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루에 몇 시간은 반드시 나를 위해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고른 책이 요즘 잘 나간다는 소설들.
살인자의 건강법은 그렇게 나의 손에 오게 되었다.
아멜리 노통. 언젠가 한 신문의 인터뷰를 보니 '아멜리 노통브'가 맞다는데, 어쨌든 몇 년 전부터 유럽의 신드롬이 되어가고 있다는 이 여류소설가의 작품이 제일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새벽 네시에 일어나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써댄단다(아마 키보드 눌리는 대로 누른다고 표현해야 옳을까?). <살인자의 건강법>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온다.
글을 쓰면서 얼마나 자주 느꼈는지 아시오? 손이 손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한 야릇한 느낌, 손이 두뇌에 자문을 구하는 일 없이 혼자서 술술 미끄러져 가는 듯한 그 야릇한 느낌을?
그리고 이 소설은 120시간만에 탈고한 후엔 퇴고도 안 했다고 한다. 그래. 천재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읽히는 건 한 호흡에 읽힌다. 처음엔 이마저도 힘들었지만, 그건 소설탓이 아니라 최근 나의 독서습관 탓이었다. 현란한 대화, 가끔씩 밑줄 긋고 싶어지는 멋있는 말들... 예를 들면
누군가를 잊어버린다는 것, 그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소? 망각은 대양이라오. 그 위엔 배가 한 척 떠다니는데, 그게 바로 기억이란 거지.
글을 쓰면서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작가는 당장 절필해야 하오. 쾌감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글을 쓴다는 건 패륜이오.
독서 혹은 비독서와 결부된 대화가 얼마나 거만함으로 가득할지.
등등... 괜찮았다.
나이 많다는 걸 무슨 권위나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혐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소설이 스물 다섯에 쓴 첫 소설이라는 것도 나를 충분히 놀라게 했다.
그런데 덮고 나서 그냥 멍~해진다. 프랑스 영화처럼...(역시 프랑스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에서는 이런 기분이 들진 않았는데.)
내가 바로잡고 싶어하는 독서습관과 상관 없이, 내 취향은 아닌 작가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런.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다른 소설들이 또 보고 싶어지는 건 도무지 무슨 심리인지 모르겠다. 이게 아멜리 노통브의 마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