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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아이 ㅣ 그림이 있는 책방 1
카타지나 코토프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보림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20년 가까이 된 유럽 배낭여행을 떠올릴 때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풍경.
파리의 한 지하철 역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또래의 동양인을 만났는데... 아무리 봐도 딱! 나 한국인임 하고 얼굴에 쓰여 있었다. 배낭여행 한달만에 한국과 일본, 중국 아이들을 딱딱 구분해내는 데 도사가 되어서 그 친구에게 당연히 한국인인 줄 알고 말을 걸었는데... 그 친구는 자신이 한국인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했다. 세살때 입양되어 프랑스인이 되었다고. 몹시 당황해서 서둘러 자리를 떴었다.
그때는 그랬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만났던 한 교포는 그 아이들의 영어교과서에 아이를 파는 나라라며 코리아가 언급되어서 아이들 보기 참 민망하더라는 얘기를 했다. 입양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늘, 마음 한구석에 무슨 빚처럼 남아있었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이 책 이야기를 보고 덥석 집었다.
2.
부부가 아름다운 집을 지어 살고 있지만, 아이는 오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는 오지 않는다. 그러자 집이 빛을 잃어간다.
아이를 일년 내내 찾아다니다 마침내 부부는 아이를 만난다. 그런데 아이는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다.
고슴도치... 나는 이 말에 참 공감했다. 요즘 아이들에게 느끼고 있었던 생각이다. 고슴도치같은 아이. 이건 친부모냐 양부모냐의 문제가 아니다. 늘 가시를 곧추세우고 있어서 누군가 접근하면 곧 찔러댈 것만 같은 아이들. 그래서 누군가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고 싶어도 거부하는 아이들. 여리디 여린 속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세울 수밖에 없게 만든, 나를 포함한 어른들, 그리고 그런 어른들이 만들어 둔 사회... 그리고 역시 가시를 세우고 사는 나... 책 속 엄마는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 아이를 그저 안아준다. 오히려 내 속에서 나온 내 자식을 나는 안아주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가시를 잔뜩 세우고 아이를 내몰고 있다.
3.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엄마는 아이를 안아준다. 아이에게는 조금씩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이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가 나를 낳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 나도 그러고 싶었단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너를 낳을 수 없었어. 그런데 정말 고맙게도 엄마 대신 다른 엄마가 너를 낳아주셨단다. 덕분에 네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우리가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거야. 아가야, 엄마는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정말... 훌륭하다. 배아파서 낳은 아이, 가슴 아파서 낳은 아이...이런 말은 참 많이 들었지만, 고맙게도 다른 엄마가 너를 낳아주신 덕분에 우리가 함꼐할 수 있다는 말... 참 좋다.
4.
감동 속에서 읽고 나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작가소개를 보았다. 아, 이 책... 작가의 실제 이야기였다. 피요트르는 카타지나 코토프스카라는 이 폴란드 작가의 진짜 아들(진짜 아들이다. 배로 낳았든 가슴으로 낳았든)이었고, 이 아들이 네 살 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세 사람과 네 동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바르샤바 교외에 살고 있다는데, 한번 가보고 싶다. 가서... 이 책에 사인받고 싶다.
5.
그러나...띠지랑 책의 맨 앞에 나온 윤석화 씨의 얼굴... 좀 생뚱맞다. 나는 그녀의 예술을 좋아하고, 그녀가 입양아를 둔 사실을 참 존경하지만, 굳이 이 책에 윤석화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좋은 책이다.
6.
작년 말에 읽은 책이었는데 리뷰가 좀 늦었다. 사실은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들놈의 느낌을 듣고 싶었다. 아이에게 책이 주는 감동은 책의 길고 짧음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림책 형식으로 나온 책을 좀처럼 손에 들려고 하지 않는다. . 아, 아이에게 그림책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알려줄까. 그냥... 읽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