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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이스마엘
다니엘 퀸 지음, 배미자 옮김 / 평사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늘 존재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비존재성은 인간을 지상 위의 유일한 존재로 격상시키는 착각을 유도한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배경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인류는 마치 신처럼 무한한 팽창을 위한 정복과 파괴를 일삼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중심에 서서 ‘인간 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장엄하게도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으니……. 고릴라 이스마엘은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에 짱돌을 과감하게 던지면서 세상을 구할 ‘인간 제자’를 구하는 광고를 낸다. 인간이 고릴라의 제자가 되는 ‘하극상’. 이 책은 이러한 구조를 통하여 인간의 자존심부터 밟아주고 시작한다.
사실 결론은 너무나 뻔하다. 자기 기만과 오만에서 벗어나라. 너희가 사는 세상은 너희의 것이 아니니 함부로 하지 마라. 다른 생명체에 대한 경멸은 스스로의 존엄을 훼손한다. 그러니 농업혁명 이전의 공존과 환경 친화적인 삶을 모색하라. 인간 중심 문화의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의식의 전파를 통해서 틀을 깨라.
환경주의자들이 보면 식상해서 그냥 덮어버릴 수도 있을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전개하는 산파법. 독백이 아닌 대화를 통하여 논리적으로 설득해 나가는 과정에 적극 동참한다면 쉽게 덮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읽고, 생각하고, 정리해야 다음 장을 넘길 수 있다. 논리성과 진정성으로 가득한 이들의 대화에 관객은 있을 수 없다. 읽는 이들 또한 치열한 사상 검증과 자기 성찰, 논리적 변증을 펼쳐야만 하는 게 이 책의 매력이자 힘이기 때문이다.
고릴라 이스마엘은 문제의 본질을 분명히 건드린다. 그러나 수 천년 전에서만 맴돌 뿐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다. 다만 질문 할 뿐이다. 그렇지만, 대답은 포괄적이고, 둥글둥글 하다. 인구조절, 식량, 인간을 지배하는 문화 같은 일부 소재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니 결국엔 원론적이고 막연한 결론으로 마무리를 지어버린다. 결과적으로 대중의 의식 전환만이라도 이룰 수는 있을지 몰라도, 머리에서 발까지의 거리는 아주 멀게 느껴진다.
책과 다른 생각을 좀 이야기를 한다면, 농업혁명은 먹이에 대한 만족을 준 정착문명의 시작일 뿐이다. 시작이 그러하더라도 중간에 많은 변화를 거쳤다. 따지자면 산업혁명이 인간을 자연에서 떼어낸 가장 큰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 이전 시대에 대한 미련이 미래의 대안으로 삼기에는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면이 있다.
이스마엘은 도처에 먹이가 있는데 왜 정착을 하여 재배를 하느냐고 묻지만, 정착은 먹이에 대한 욕구뿐만 아니라, 불안 요소(외부의 위협, 공급과 분배)를 감소시켜 안정을 유지하는 것과 삶의 질 향상에 의미가 있다. 개인보다는 집단, 유목보다는 정착이 불안 요소를 감소시켜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약자’도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는 것도 같은 이유 아니던가.
‘역할을 맡지 않은 이들’의 대표적인 예로 유목민을 들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환경에 커다란 영향(목초지의 상태)을 받기에 정착을 할 수 없을 뿐더러 수많은 외부의 위협과 끊임없는 투쟁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다시 말하면, 생존력이 강한 자들만 살아 남았다. 이 둘의 차이는 자연을 지배할 것이냐, 자연에 순응할 것이냐가 아닌 삶의 방식의 차이(어떻게 적응하였는가)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불안 요소(미래를 위한)의 제거는 나약한 인간이 자연에 적응하는 방식이고, 지극히 본성적인 욕구이다. 보험과 저축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교육으로 인생을 설계하며, 전쟁으로 테러리스트를 제거하여 국가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까지 이르는 우리의 본능은 우리 사회의 기반이다. 신(자연)을 거부하고, 지배자로 나서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운명과 한계를 잘 알기 때문에 그 안에서 적응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선사시대의 인류가 3시간 수렵, 채취의 노력으로 살았다고, 주당 60시간 이상 일하는 현재의 사람보다 행복했다고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땅을 파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다고 안정적인 삶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인류는 1차원적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살아가는 단계를 이미 훌쩍 뛰어넘었다.
이스마엘이 인류와 다른 지구상의 생명체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안정을 취함이 아니던가. 안정과 질서를 회복하여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함이 아니던가. 만약 고릴라의 말이 맞다면(인간 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 이 책 또한 신(자연)을 거역하고 개체 수(인간)의 급격한 감소를 방해하는 ‘지배자의 논리’가 되어 버리는 모순이 발생한다.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먹이가 충족한 안정적인 삶은 여유를 주고, 다른 것에도 눈을 돌리게 한다. 그리고 문화와 문명을 발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문명은 기술을 낳고, 기술은 문명화, 도시화된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격리 시킨다. 자연과 멀어진 인간은 당연하게도 ‘자연 속의 인간’이 아닌 ‘조직 속의 인간’으로 탈바꿈한다. 의지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망각해버린 것이다. 지난 수백만년은 ‘생물적 진화’의 시기 였다면, 이젠 ‘사회적 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기술이 주는 자신감, 그리고 맹신은 자연을 도구화, 대상화 시키게 된 가장 큰 원인이다. 이것이 인간 중심 사상의 핵심이다. 원인을 알았으니 희망적인가?
그러나 비극적이다. 관성이 붙어버렸다. 65억의 입으로 들어가야 할 먹이는 멈추지 않아야 하며, 사회를 움직이는 에너지, 문화와 생활을 유지시키는 물질들의 불균형과 불안정한 공급과 수요로 인해 한 쪽에선 전쟁과 가난, 다른 한 쪽에서는 복지와 비만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이것을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법칙으로 해석한다면 점점 더 무질서해지는 세상을 질서있게 유지하기 위하여 인간은 환경을 더욱 더 개발이라는 야만적 문명화를 통하여 생명체들을 정복, 파괴해 나가야만 한다. 게다가 걷잡을 수 없는 인구를 눈 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출산율 하락과 수명 연장으로 인한 고령화를 걱정해야 된다. 인구가 더 필요하다니…
나는 사회적 진화에 이어 다시 ‘생물적 진화’가 더 크고, 위험하게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줄기 세포와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생명 연장의 꿈’이 전 세계 국가의 투자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투자는 이익을 목표로 한다. 인류의 고통을 덜기 위한 것이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혜택은 자본가들이 독점할 것이며, 생물학적, 사회적 지위를 바탕으로 인간 사회는 더욱 더 계급적이고, 갈등이 증폭 될 것 같다. 물론 이것이 지구상의 전 생명체의 고통이 증가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 정보는 인간을 위한 정보로 활용 될 테고, 모르모트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생명체들만 실험실에서 번성할 것이다. 벼와 밀이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하고 있는 식물이듯이……. 지금은 옛날 얘기로 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인권보다 경제가 우선이고, 짐승보다 인간이 우선이고,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인 세상이다. 누가 만든 질서인지는 몰라도 이 질서에 위협을 가하는 자들은 국가적, 조직적 폭압에 짓눌려야 한다. 이걸 보면 생태계 뿐만 아니라, 인간 또한 인간 사회의 희생양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간이 사라지면 고릴라에게 희망이 있을까’라는 문장을 해석해 보자. 처음 봤을 때부터 ‘고릴라가 사라지면 인간에게 희망이 있을까’라는 물음을 가졌었다. 나도 No라고 대답한다. 이웃의 평화 없이 나만의 평화는 오지 않듯이 다른 종의 종말은 우리의 종말을 예고할 것이다. 그리고 Yes라고도 대답한다. 인간은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뭔 짓을 해서라도……. 이라크에 몰려든 하이에나들을 보라. 인간이 인간을 뜯어먹으면서도 뻔뻔하게 인권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역할을 맡은 자들’ 아니던가. 하물며 지구상의 ‘미물’들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는 없다’ 무기 만들 돈은 있어도, 가난한 자에게 줄 돈은 없는 자들 아니던가. 이 책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인간을 되돌아 보게 하고,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
너무 염세적인가. 환경을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1회용 컵에 인스턴트 커피를 무장하고, 밥벌이 전선에 임해야 한다. 이게 인간이고, 인간 사회다. 그래 여기가 감옥인 건 맞다. 하지만 감옥에 익숙해진 이상 나는 기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