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이지 않는 법 How not to kill yourself
책이나 저자에 대한 정보도 무엇도 없는 채로 대형 서점 신간 코너 매대에 쌓여 있는 제목을 보고 몇 페이지 후루룩 넘겨본 후 바로 집어왔다. 흡입력이 대단하여 이틀만에 다 읽었다. 강추 ⭐️⭐️⭐️⭐️⭐️
저자는 철학을 전공하였으며 니체 및 키에르케고르를 영어로 번역해 온 저명한 교수이나, 열 번이 넘는 자살 시도 생존자이자 오래된 우울증 환자라는 이면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용감하게도 자신의 투병과 과거의 자살 시도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울증과 자살 사고 및 시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풍부한 예시, 심리학적 및 철학적 성찰, 문헌적 고찰, 건설적인 해결책까지 성실하게 풀어놓는다.
느낀 점이 많으나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얻은 깨달음 몇 가지만 적는다.
#자살 사고도 일종의 알코올 중독처럼 중독이다.
#실존적 사고, 즉 인간은 언제라도 죽을 수 있으며 언젠가 죽는다, 이 사고가 뚜렷할 수록 자살 사고에 쉽게 이를 수 있다. (알베르 카뮈의 유명한 “시지프 신화” 참조) 그러나 제4장에 따르면 철학자들은 자살하지 않았다. "죽음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문제는 모든 중요한 윤리 철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속한다"고 독일의 실존주의자인 파울 루트비히 란츠베르크가 분석한 바 있으며, 이는 일차 욕구인 '자살을 원하는 것'과 이차 욕구인 '자살하고 싶은 상태를 원하는 것'간의 차이를 구분해서 이해하여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실존적으로 이차 욕구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긍정하는 과정에서 자유의 중요성을 도출하여 도리어 삶을 긍정하게 되는 역설을 강조하는 것 같다. 또한 동반 자살의 강압적 성격을 분석하며, 이에 대해 강요당하는 자살은 자유의 포기라는 점 또한 지적한다.
#자기 통제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일 수록 작은 실패에 낙담하고 자살 사고에 쉽게 이를 수 있다.
#자살 성공자(?)이냐 생존자냐는 한 끝 차이이다. 많은 이들이 죽기 직전 순간 후회하며 살아 남으려 애쓰다 실수로 죽기도 한다.
: 특히 이 성찰은 2장 "충동과 주저가 공존한다"에서 잘 풀어내고 있다. 자살 생존자들은 이따금 결단력이 부족했다는 몹쓸 조롱을 받기도 하는데, 통념과 달리 자살 시도자들 모두에게는 프로이트의 이론처럼 삶에 대한 욕구인 에로스와 죽음에 대한 욕구 타나토스의 충돌로 인한 긴장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삶이 이어지는 것이 그러한 긴장의 연속이며 죽음이 열반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입증하기 위함이 자살 시도인 것인데 이에 대한 주저 또한 공존한다는 것이다. <자살의 연구>의 저자이기도 한 알 앨버래즈는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 바 있으며, 본인이 자살을 시도한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뇌의 복잡하고 기묘한 성질과, 자기 자신의 신념/동기를 근본적으로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공자들만이 결단력을 가지고 자살한다는 통념은 매우 그릇된 것인지도 모른다.
#long-term goal 보다는 short-term goal을 세우고 조금씩 survive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