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철 작가의 따끈따끈한 신작 ‘아포리즘 장편소설’ “아우라” 완독. 책을 덮고 나서 우선 작품이 표방하는 ‘아포리즘’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가 크게 어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뜩이는 사유나 교훈을 주는 기존의 아포리즘이 지시하는 텍스트의 성격보다는, 오히려 설교적 알레고리와 상징으로 가득한 동시에 자기 패러디가 주를 이루는 전위적 텍스트로 독해했는데, 이것이 비루한 독자의 실패인가 아니면 조심스럽게 작가의 실패(일리가 없겠지만)일 수도 있을까 당혹스러웠다.


아우라 소비에 매몰된 현대인들을 풍자하는 자기 패러디에서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아우라 설파까지,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어디부터가 진심인지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600쪽에 가까운 두꺼운 소설을 읽어내려갔다. 소설은 분명 농담 혹은 익살처럼 시작한다. 서로 뺨을 때리며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사랑을 주고받는 남녀 이야기라든지, 너무 게을러서 밤새 아내 머리 밑에서 팔을 빼지 못해 죽어버리는 남자의 일화라든지, 도스토예프스키적 글쓰기를 선망해서 지은 이름 ‘도수토’ 같은 이름이 나오거나 삶은 달걀을 이용한 언어유희 같은 농담들로 시작한다. 몽유라, 몽수로, 도수토, 조물주, 하강처럼 언어유희로 지어낸 것이 분명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계속 등장한다. 특히 ‘하우’라는 인물의 이름은 아우라에서 따왔을 정도로 작품은 아우라라는 독특한 개념에 강박적일 정도로 집착하며, 익살과 진지한 상징 체계의 경계를 오가다가 결국 아우라에 대한 찬가로 마무리된다.


전위적인 작품을 평소 즐겨 읽는 편인데,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내게 전위적 카타르시스나 미학적·관념적 쾌감을 선사하지 않았다. 혼란스럽고 독특한 독서 경험을 안겨주는 작품으로, 거리를 두고 읽기에는 작가가 개개인의 아우라를 발견하는 일이라는 주제에 지나치게 진심인 것 같고, 퍽 진심이라고 하기에는 해당 개념을 구축해 나가기까지의 소설적 형상화와 긴장 형성이 대놓고 부재하며 오히려 자기 패러디를 일삼는다. 그 결과 작품이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독자는 비판과 공감의 어느 경계에 서서 읽어야 할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게 된다. 당혹스러운 작품이었다.


다행히 작품은 수미상관의 구조로 마무리된다. 모든 것이 환몽이었고, 사람마다 자신 속에 있는 아우라라는 빛을 발견한다는 내용으로 끝나기에 나름의 완결감은 있다. 작가는 600페이지에 가까운 만만찮은 분량 속에서 이를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것이다 읽고 결론 내렸다. 작가는 진심이다. 나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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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을유세계문학전집 10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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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에 읽었을 때는 묘사가 너무 많아 지루하게 완독을 끝냈던 기억이 있는데 굳이 이제 와서 다시 손댄 이유는 한유주 작가 덕분이다. “계속 읽기”라는 에세이집에서 한유주 작가는 (내 기억이 맞다면) 보바리 부인을 너무 좋아해서 20번도 넘게 읽었다고 했고 도대체 어떤 점이 그녀를 열성팬으로 만든 건지, 내 기억엔 그저 사실주의적 불륜 소설 정도로 어렴풋이 남았는데 내가 뭘 놓쳤을까, 궁금해서 오랜 세월이 지나 재독하게 되었다. 


일단은 플로베르의 장인정신에 가까운 집요한 디테일 묘사가 감탄스러워 디테일 변태라는 생각이 들 정도. 묘사를 끝도 없이 늘어놓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인물 심리나 상황 갈등 등을 정교하게 구축해서 인물 상황에 이입하게 되어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엄청나다는 것. 극사실주의적으로 인물과 거리를 두고 헛된 이상을 좇는 주인공을 묘사하는 방식이 오히려 신랄해보이는 효과도 보인다. 에마가 자신의 이상, 문학, 환상을 꿈꾸는 장면을 대놓고 비판하지는 않지만 그 심리를 적나라하게 해부해서 전시하기에 읽는 내가 오그라들 정도. 에마와 샤를이 파멸하고 그들의 어린 베르트는 가슴 아프게 방적 공장으로 보내지나 기회주의자 약사 오메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씁쓸한 결말은, 낭만주의에 휩싸여 문학이나 이상에 과몰입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살라는 충고이자 오메의 성공스토리 같기도 하여 너무 악랄한 냉소적 결말이라 충격적이다. 플로베르는 오메도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거라 그의 방식이 옳다고 한 것도 아니지만, 계급적으로 성공하여 상향하는 방식은 결론적으로 이런 자본주의 정신이자 용쓰는 방식이다라고 보여준 거잖아. 이걸 풍자적으로 그린 건 알겠는데 낭만주의 기질이 어느 정도 있는 내겐 큰 현타가 오게 했달까. (개인적으로 오메가 얄미운 점은 있지만 그 끈질긴 생존 의지랄까 하는 데 혀가 내둘러지고 인간적이라 정이 갔다. 오히려 에마에게 정이 안 갔고.) 


넘나 좌닌한 소설이었고 역시나 불후의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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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가 23-24세에 쓴 에세이 모음집 “결혼”과 26-40세에 쓴 에세이 모음집 “여름”을 묶은 책. 

“결혼”은 알제리의 티파사, 제밀라, 알제, 그리고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자연과 도시 풍경 및 인간 풍속도와 교감하며 펼쳐 나가는 사유를 철학적이면서도 감각적이며 시적인 미문으로 표현하였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며 생을 향한 긍정과 예찬으로 나아가는 젊은 카뮈의 저돌적 에너지와 섬세한 감수성이 느껴져 가슴 설레는 작품들이다. 17세 폐결핵을 겪은 개인사는 이 작품들 밑바탕에 흐르는 삶과 죽음의 긴장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그에 비해 “여름”은 후시대에 쓰여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주제로부터 시대정신으로 사유가 확장되어 나가는 변모가 인상적이다. “이방인”의 무대이기도 한 오랑의 풍속도를 풍자적으로 묘사하면서 시작하지만, 점차 시대정신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저승의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전체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하는 것으로 독해되는데 “히스조차 자라나지 않는 불모의 땅”과 같은 은유적 표현이 등장하며 이는 “프로메테우스”가 해방시키려 했던 인간 정신을 오히려 마비시키는 전쟁의 시대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헬레네의 추방’에서 카뮈는 동시대를 의지의 충동이 지배하여 광기와 오만이 세계를 황폐화시키는 시대라 보며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었음을 한탄하고, 자신의 한계에 충실하며 광신을 거부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상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 ‘수수께끼’에서는 작가관에 대해 피력하는데 작가 개인적 체험을 작품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는 T. S. 엘리엇이 말한 ‘비인격성의 미학’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작가가 촉매에 불과하다는 입장으로 이는 아니 에르노나 디디에 에리봉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이라 보는 입장과는 반대로 보인다. ‘티파사에 돌아오다’에서는 티파사를 재방문하여 20대에 그곳에서 했던 자연과 합일되는 강렬한 체험을 떠올리며 “겨울 한가운데서 마침내, 내 안에 보이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삶의 긍정을 되새기는데 이 장면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한편 DSM-5 진단 기준에 따르면 이인증/비현실감 장애라는 해리장애 하위 범주가 있는데, (*정신과 및 임상심리학 전공과 관련 없는 무지랭이 의견임에 주의) 이인증, 비현실감, 현실 검증력 유지 같은 특성들이 있다. 카뮈의 “결혼 여름”을 읽으면서 그가 묘사한 자기 인식의 경계가 흔들리는 체험을 읽다 보니, 이인증과 자기초월이라는 서로 다른 현상을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그는 자아 경계가 느슨해지는 자기초월의 체험을 자주 경험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경험이 실존주의적(카뮈가 실존주의자로 불리길 싫어했다는 것은 알지만…) 사유를 밀어붙여 “시지프 신화”에까지 이르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한편 그의 문장을 읽다 보면, 자기초월과는 다른 방향의 자아 경계의 흐려짐, 이를테면 현대 임상심리학에서 말하는 해리 현상의 묘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도 종종 눈에 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작품을 읽으며 떠올린 개인적인 연상일 뿐이다.)


“바람에 내 몸도 돛대처럼 우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몸 한가운데가 패이고, 두 눈이 불타고, 입술이 덜덜거리고, 피부가 바싹 말라붙어 더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전에는 바로 이 피부로 세계의 문자를 해독했더랬다. 세계는 피부를 여름의 숨결로 덥히거나 얼음장 같은 이빨로 깨물어, 자신의 다정함이나 분노의 흔적을 새겼다. 하지만 바람을 그토록 오래 맞으며 한 시간 이상을 시달리고 버틴 끝에 얼떨떨해진 나는 몸에 새겨진 흔적을 의식하지 못했다.”


결혼 여름 실린 에세이제밀라의 바람 나오는 대목인데 DSM-5에서 말하는 이인증의 현상학을 떠올리게 했던 구절. 물론 카뮈가 실제 해리장애나 이인증을 겪었다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피부가 더는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묘사는 인상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카뮈가 감각을 자연과의 자기초월과 일체감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와는 달리 “결혼 여름”은 의식의 흐름과 감각의 흐름이 종잡을 수 없이 크게 도약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읽기 난해한 부분이 곧잘 등장한다. 읽는 내내, 임상심리학에서 말하는 사고의 도약을 연상시킬 정도로 의식과 감각의 흐름 및 이에 이어지는 논증의 도약이 빠르게 전환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미지, 체험, 추상적 개념이 언뜻 논리적 연결 없이 크게 건너뛰며 서술되어 어렵게 느껴질 수 있고 그래서 진도가 잘 안 나간다고 호소하시는 분들을 종종 보았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이를 일일이 이해하려 멈추는 것보다는 큰 맥락에서 카뮈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와 해당 주제에 대한 태도를 신경쓰며 독해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압생트 풀향기 대체 어떤 향인지 넘나 궁금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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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 LLM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글과 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마크 코켈버그 외 지음, 신동숙 옮김, 손화철 감수 / 생각이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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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M의 윤리적 쟁점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은 꼭 읽으세요! 명작임! 그렇게 두껍지도 않은데 LLM의 기본 작동 원리부터 시작해서 윤리적 쟁점과 철학적 논의까지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잘 다루고 있고 번역도 깔끔함! 나만 알기 너무 아까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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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없이는 이제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LLM은 우리 삶에 깊게 파고들었다. LLM은 업무, 유희, reference, 상담, image 생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용되고 있다. 좀 더 진보적으로 전략적 이용을 강조하는 쪽과, 약간은 보수적으로 윤리적 여파를 우려하는 목소리 양쪽 다 들려온다. 한글판 제목이 더 멋진 “기계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원제 Communicative AI)의 번역은 그래서 시의적절하다.


이 책의 서문은 ChatGPT 4.0이 작성하였다. 서문은 책의 의도와 방향성에 대해 유려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저자들은 단지 프롬프트만 넣었을 뿐이라고 한다. 챗지피티를 서문의 저자로 각인한 시도 자체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실험으로, 이 책에서 논할 철학적 성찰의 실천적 퍼포먼스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1장은 인문학적 사유를 개시하기에 앞서 LLM의 작동 방식에 대한 총론격 성격이지만, 여기부터 책의 신뢰도를 높인다. 너무 복잡하지도 않으면서 간단하게 LLM의 언어 생성 원리와 구조를 개괄한다. LLM이 단어에 수치적 벡터를 할당하는 워드 임베딩을 통해 의미적 연결망을 구현하고, 이것이 여러 층으로 정교하게 이루어진 트랜스포머 구조를 통해 대규모 학습을 거쳐 맥락에 맞는 텍스트를 생성해 낸다는 것을 쉽고 차근차근히 밝힌다.


2장에서는 1장에서 논증한 LLM의 작동 방식의 성격으로부터 초래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설정한다. 환각 생성에 따른 신뢰 문제, 사회적 맥락에 존재하는 편향성의 확대 재생산, 책무성에 대한 윤리 등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적·법적·사회적 당면 과제의 아젠다를 설정해 나간다.


3-6장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보며, 매혹적인 전개에 빠져들어 감탄하며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3장은 인간 외 존재에서 지능과 의식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어려움을 역사적 흐름으로 보여주고(인간의 인지 능력이 특별하다는 ‘인간 예외주의’), 그 유명한 앨런 튜링의 ‘모방 게임’과 ‘튜링 테스트’, 그리고 이에 대립하는 입장인 존 설의 중국어방 실험을 소개한다. 만약 인공지능의 지능과 의식을 인정한다면 도덕적 지위가 수여됨과 동시에 법적 보호를 받을 자격까지 논의되어야 하므로 첨예한 대립이 불가피한 것이다. 여기서 타자 마음의 증명 불가능성으로부터 비롯한 형이상학적 이분법의 한계 때문에 존재론의 대대적 재구성이 절실히 필요함을 보여준다.


4장은 언어를 다루는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 자체가 ‘지시적 실재론’과 ‘진리 대응설’(로고스 중심주의, 즉 기표로서의 언어가 기의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는 형이상학적 이분법)의 중요한 허점을 짚고 붕괴시킨 후기구조주의 철학의 실천적 작동 그 자체임을 논증하는데, 이 대목을 읽는 지적 쾌감이 상당하여 굉장히 재미있었다😭 푸코에 따르면 개인/저자성/권위 개념은 오래되지 않아 근대에 겨우 개발되었기에, 이것이 후기구조주의에서 해체되는 과정을 다루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고. 저자성과 권위에 대해 다루는 5장에 나오는 다음 문장은 한마디로 그간의 논의를 압축한다.


“LLM은 고전 기호학의 핵심인 개념적 대립항을 해체하는 구조주의적 기계들이다.” (170쪽)


“1873년 『도덕 외적인 의미에서의 진실과 거짓에 관하여』 에서 니체가 주장했듯이, 인간은 세계에 대한 ‘진리’를 창조하기도 하며, 그 자체로 존재하는 진리도, 객관적 진리도 없다. 다시 말해 수사학이 철학으로 귀환한 것이다.”


6장에서는 진실, 거짓, 그리고 환각에 대해 다루며, LLM이 기존의 편향을 재생산하기에 언어가 중립적이지 않음을 보여주고 진리는 특정한 언어적·사회적 환경 속에 위치하는 관계적 개념임을 논증한다. 편향성이나 거짓 선동의 문제를 규제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배포하는 다국적 기업의 윤리적 책임이 막대한 이유다.


7장은 다소 교과서적으로 결말을 짓긴 하지만, 책에는 5.0/5.0점을 주고 싶다. 많은 이들이 반드시 읽었으면 하는 시의적절한 텍스트이며, 여기서 파생된 윤리적 문제가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고 논의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간만에 책의 주요 개념과 논지들을 정리하고 필기까지 해 가며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초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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