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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ㅣ 하다 앤솔러지 3
김남숙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평점 :
보다: 열린책들 하다 앤솔러지 3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의 친구 나가사와는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문학작품은 손도 대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그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성향을 지녔다. 인생은 짧고, 읽어야 할 책은 너무 많고, 내 독서 속도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은 거의 읽지 않는 편이었다는 것이다. 경험상 실망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문학과지성사’의 「소설보다」 시리즈를 접하면서 조금은 달라졌다. 시행착오도 하나의 삶의 과정이 아닌가. 매번 독서를 성공과 실패로 재단하던 내 습관을 인정하면서, 나와 다른 목소리에도 한 번쯤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열린책들’의 「하다 앤솔러지」 가운데 『보다』라는 제목의 작품집은, 순전히 한유주의 신작이 수록되어 있다는 이유로 구매했다. 한유주는 내게 가장 사랑하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양선형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발견했다는 것 또한 큰 수확이었다. 다른 작품들도 충분히 읽을 만했다.
1. 김남숙, 모토부에서
고밀도로 응축된 행간을 애써 읽어야 했던, 친절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언니의 삶을 마주할 때마다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은 무엇일까. 과거는 없었다는 듯 묻어두고, 가해자를 ‘원래 그런 애는 아니었’다고 오히려 자기탓을 하며 혼자 순응하며 살아가는 언니와, 잊어버리지 못하고 ‘마주하’느라 ‘지치’고 ‘죽고 싶다’는 소설가인 동생. 자매와 각각의 연인까지 4인이 어울렸던 모토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언급지지 않으나, 동생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가는 가해자를 온라인에서 추적하면서 ‘모토부에서의 일’—아마도 언니의 비극일 것이다—을 소재로 소설로 옮긴다. 이를 소재로 삼은 것에 대해 연인인 우형의 비난을 받지만, 그럼에도 진실을 직면해야 하는 작가로서의 숙명과 괴로움을 행간에 묻어난다. 읽는 내내 ‘말하지 않음’이 어떤 방식으로 진실을 압도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2. 김채원, 별 세 개가 떨어지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자살을 목도해야 했던 할아버지는 종묘원에서 목을 맨 정체불명의 사내를 묻는다. 그 불완전한 매장을 손녀이자 사촌인 주인공과 혜임이 함께 수습한다. “어차피 영원하지 않을 몸을 어째서 그렇게 하루아침에 훼손하여 매듭지을 수 있는지”라는 할아버지의 의문과, “(모든 드라마의 줄거리는) 처음부터 보지 않아도 보다보면 알게 된다”는 혜임의 말에서, 인생의 덧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짊어지고 살아가는 자들과 이를 놓아버리는 자와의 대비를 이룬다. 떠난 자들에 대한 작가의 애틋하고 따뜻한 시선이 종묘원을 나서며 떨어지는 ‘별 세 개’의 이미지에 고요히 수렴된다.
3. 민병훈, 왓카나이
“자기 삶에 우연이 개입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에 휘둘리는 것을 바란다”는 주인공은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 왓카나이로 향한다. “애초에 그런 이유따윈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다만 떠나고 돌아오는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가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삶의 어떤 버튼이 작동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측면이 힌트일듯 싶다. 불의의 사고로 동력을 잃은 요트를 타고 망망대해를 표류했던 선장의 이야기는, 여행이란 결국 삶의 축소판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목적이 아니라 ‘흔들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4. 양선형, 하얀 손님
이인칭 시점으로 의식의 흐름과 같은 내면 묘사가 특징적이다. 의식의 흐름속 엿보이는 사유의 조각조각마다 비치는 풍부한 관찰력이 인상적이다. 곳곳에 세밀한 문장 감각이 빛난다. 다만 조금만 힘을 덜 주었더라면 더 매끄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가의 개성 있는 시선을 발견한 것은 소득이다. 한편 관세음보살상을 대상으로 한 관념적 능욕 장면은 불쾌함을 남긴다. 여전히 남성 작가의 상상력이 특정 지점에서 멈추는 듯한 피로감이 있다.
5. 한유주, 이사하는 사이
전작들보다 날이 좀 덜 서있다는 인상을 준다. 평범한 전통적 리얼리즘 서사로 진행되어 당황했으나 역시나 한유주다. 일란성 쌍둥이처럼 동일한 외관과 생활양식을 지닌 인물들이 ‘공간’을 매개로 마주치는 구조는 흥미롭다. 서사를 파괴한 글쓰기로 실험적이었던 기존 작품들을 생각해 볼때, 이는 서사로서의 소설쓰기 자체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메타적 장치로 보인다. 결국 “자기복제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작가의 운명”을 은유한 듯하다. 영어와 한국어의 벽을 초월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장면은, 복제와 반복이 언어권을 넘어 지속됨을 상징한다. 덜 날카롭지만 여전히 한유주적이다.
결국 이 작품집의 제목 ‘보다’는 단순히 ‘바라보다’의 동사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것이 ‘마주하다’, ‘직면하다’의 의미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문학이란 결국,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마주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괜찮다는 말만 하는 진호에게 우형과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 우형은 웃었고 나도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웃고 있던 그 모습들은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도 나를 아프게 했다. - P14
할아버지는 나와 다르게 그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차피 영원하지 않을 몸을 어째서 그렇게 하루아침에 훼손하여 매듭지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그 자신이라고 해서 그걸 알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듣게 된 매듭이라는 단어에 대해, 누군가 매듭을 짓는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 P74
매듭지은 것이든 아니든, 수습이 잘 안된 것으로 보여도,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자살하도록 몰아갔을 의지, 그런 의지를 가졌던 그가 땅에 묻혀 있다는 사실만이 사실이었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일 테고 자기 몸에 돌고 있는 붉은 피에 대해 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가 걸을 때 와 멈춰설 때, 행복하거나 슬플 때, 낙담할 때와 사랑할 때, 말할 때와 말하지 않을 때의 얼굴을 나는 모른다. 그가 나를 비웃을 때의 얼굴도 나는 모른다. - P75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삶의 어떤 버튼이 작동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딘가로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사람들의 들뜬 얼굴과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안내 방송, 넓고 쾌적한 면세 구역의 공간감,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는 활주로의 광경, 이런 순간들은 그의 삶에서 전혀 경험할 수 없었던 세계의 단면이었다. - P90
「요트를 조종하는 법은 알려 주지 않아서 발만 동동 굴렀어요. 방향타를 잡기엔 아직 멀었다고 말했거든요. 오도 가도 못하고 바다에 떠 있었습니다. 뇌출혈로 생명이 점점 꺼져 가는 선장과 함께요. 해경에 무전을 보내고 기다렸어요. 그때 바람이 불어서인지, 해류를 탄 건지 갑자기 요트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떠밀리듯 어딘가로 계속 흘러갔습니다. 그런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굉장히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요. 자연의 힘으로 표류하던 그 시간을 잊지 못합니다. 지금도 가끔 바다 위에서 요트 모터의 전원을 끄고 가만히 있는 시간을 즐깁니다. 그러다 요트는 어느 항구에 도착했어요. 왓카나이라는 작은도시예요.」 - P95
너는 기억과 기억 사이에 끊임없이 희미한 선분을 긋는다. 기억은 연결되었다가 재차 끊어지며, 네 꿈이 망각 위에 적었던 큰누나의 시는 방금 지워졌지만, 네 현재가 헝클어지는 선분의 낙서를 끊임없이 계속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오직 그러한 일만이 반복될 것이다. (계속) - P119
(이어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탕진했을 때도 그런 일만은 네 의지와 무관하게 반복될 것이고, 네가 어떤 침대에서 의식 없이 죽어 가는 동안에도 너의 꿈이 네 존재의 낙서를 대신 수행할 것이다. 그 어지러운 선분들만이 너를 구성할 것이며 오직 그 비틀거리는 선분들만이 너를 구원하여, 그때 네 쇠미한 존재는 네 은닉된 사적 역사를 가로질러 숨겨진 화음을 찾아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에 불과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 너는 네 귀에만 들리는 시간의 합창 속에서 상실한 너의 기억을 너의 신으로 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선분들만이 네 존재의 은 밀한 악보일 것이며, 너는 네가 망친 난삽한 오선지 위에 매 달려 가늘게 진동하는 검은 물 - P120
오래전의 이른 아침, 너는 놀이터의 정자에 누워 세계가 속삭이는 소리를 경청했던 적이 있었다. 너는 아무것도 꿈꾸지 않은 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늦잠을 잤던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미끄럼틀과 그네가 비어 있었다. 청명한 새들의 울음소리가 네 마음을 쪼갰다. 눈을 감으면 그 지저귐이 절대적으로 진솔한 음표가 되었고, 잔잔한 물 거울처럼 일렁이는 네 마음의 심연으로 누군가 던진 돌멩이가 천천히 낙하했다. 그때를 회상할 때면 아직도 그 느린 낙하가, 보이지 않는 심연의 떨림이 계속되는 듯했다. 그 심연의 떨림은 관음보살을 빨고 있던 너를 꾸짖는 큰누나의 목소리와도 닮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진되며, 항상 사라지고는 있지만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영원함, 혹은 무한함에 대한 감각이란 불멸하는 관념이나 현세 바깥에 있는 드넓은 우주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 P125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눈앞으로 수많은 길이 번성하는 덩굴처럼 자라난다. 사방으로 갈라지는, 이글거리는 길의 과잉이 그에게는 똑같이 집으로 향하는 길처럼 느껴진다. 그는 집에서 멀어지지만 자신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낙천적이며 그가 헤매는 길의 마지막에 집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 P128
산희가 보고 있는 사람은 산희와 똑 닮아 있었다. 휴대폰 잠금을 풀 수 있을 정도 로, 혹은 산희대신 산회의 직장에 출근할 수 있을 정도로, 산희의 엄마도 자신의 딸이라고 믿고 그 믿음을 백 퍼센트 강고하게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산희의 상대방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들어오세요.」 그가 말했다. 산희는 부지불식간에 어제까지 자신의 집이었던 그의 집으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 P173
필터 안을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사용한 필터 속 내용물보다 이 청소기가 산희 것이라는 사실을 훌륭하게 증명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산희는 곧장 주저앉아 커버를 열고 속이 꽉 찬 필터를 꺼냈다. 그것을 싱크대로 가져가 가위로 가장자리를 오려 내자 먼지가 피어올랐다. 산희는 주저하지 않고 손을 안으로 넣어 내용물을 꺼냈다. 까만 먼짓덩어리가 나왔다. 그다음에는 머리카락들이. 그다음에는 모르는 동물의 털 뭉치가. 머리핀이. 영수증 조각이. 이빨 하나가. 사탕 포장지가. 양말 한 짝이. 파란색 큐빅이 달린 은색 귀걸이 한 쪽이. 철명의 증명사진이 구겨진 채로. 보딩 패스가. (중략) 산희는 싱크대 안에 흐트리진 쓰레기들을 내려다보며 그중 자신의 물건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건 철명의 구겨진 증명사진뿐이라고 생각했다. - P179
산희는 짐을 꾸리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지우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산희들이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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