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김태완 엮음 / 소나무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 사회에 대한 갈망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오래된 요구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다양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욕망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충족시켜 줄 사회이길 바라는 많은 이들의 희망은 ‘이상(理想)’에서 이상(異常)으로 바뀌었다. 어떤 사람들은 인물론을 내세워 인물의 리더쉽과 능력이 된다면 이상 사회로 이끌 수 있다고도 했고, 어떤 이들은 시스템을 잘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분쟁과 폐단, 사회적 갈등은 이들의 주장을 허무하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일까? 역사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고민을 어떻게 풀어가려고 했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이 ‘책문’이란 이 책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책만 보던 선비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던 과거시험은 전통사극을 통해서 자주 접했으면서도 책문은 왠지 낯설다. 붙고 나면 땡인가? 인물의 됨됨이를 알기 위해서는 글재주와 학식만을 따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500년 왕조를 유지했던 조선의 임금들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임금이 과거시험의 합격자들에게 정치 민생 현안에 대해 질문하고 이에 대한 답을 듣는 시스템은 입사 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면접하고 비슷하다. 다만 차이점은 책문은 글로써 면접은 말로써, 책문은 직언을 면접은 감언을, 책문은 자신의 이상을 면접은 자신의 상품성을 늘어놓는다는 것이겠다.

이것은 결국 소통의 방식과 코드의 차이이다. 고용주와 사원 같은 계약적 관계에 있어서는 코드를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맞출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인륜적 가치와 실천을 중시한 성리학을 사회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의 임금과 신하는 각자의 예를 다하고 진실되게 고민하고 교류하여 ‘내 안의 왕’이 되는 것을 서로가 경계를 했다. 이것은 백성과 나라의 안정을 유지하려는 가장 근본적인 코드가 맞아 떨어지면서 현명한 군주와 충직한 신하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원론적인 대책(어찌보면 너무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만 400페이지 이상 내놓은 선비들의 깊은 학문적 소양과 덕망에 감복하려고 읽는 책은 아니다. 임금의 겸허한 자세와 고민을 들어보려는 것도 아니다. 그 속에서 발견한 것은 영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은 희망적인 삶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 보면 정치의 부패는 적당량의 정치적 도덕성을 주입하여 그 뒤에 숨는다는 내용이 있다. 결국은 모든 힘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숨음으로써 모든 힘을 갖는다. 가끔가다 대중의 도덕성에 대한 요구를 고발 또는 법에 의해 처벌하지만 그것은 그들에 대한 자발적 봉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물며 수기치인을 실천하기 위해 학문을 닦은 조선의 선비들도 붕당정치로 온갖 패악질을 해댔는데, 무릇 권력과 부를 위하여 살아오면서 국회에 자주 출몰하는 '무법자'들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망측한 바람일 뿐이다.

시작은 언제나 아름답다. 시작하는 사랑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진리와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을 장식하기 때문이다. 때가 덜 묻은 ‘정치 초년생’들이 윤리책을 또박또박 적은 듯한 구절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비애는 우리 시대의 물음일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이것이 시대의 물음에 답하는 정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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