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식이 불편하다 - 어느 국어선생의 쓸모 없는 책읽기
김보일 지음 / 소나무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친구한테 한 권 선물하고 읽어보니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좋다고 한다. 뭐가 좋은데? 하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읽긴 읽었는데, 잔상만 남고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서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고 한다. 황당하지만, 나도 그렇다. 기억과 이해의 틈은 아주 가늘면서도 길게 이어진 느낌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많은 생각이 담긴 책. 수 많은 책의 융합과 변이가 만들어낸 사고작용의 흔적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성과 음율, 목소리가 공명의 떨림으로 문장이 되었다. 사실 난 그 소리에 집중이 잘 안되었다. 내가 읽은 책이 아닌 것을 남의 시선으로 잘 포장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낯선 집에서 주인 행세하는 것 마냥 불편하다. 바다를 보지 않고, 바다를 느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뛰어난 상상력과 자기 기만이 만들어낸 조화이다. 감성과 이해의 틀은 결코 주입되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글에 공감은 할 수 있어도 내 몸은 불감증으로 얼어버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적지 않게 교집합을 이루고 있음에도…

이 책의 의도는 단순한 책 소개도 아니오, 독서 편력에 대한 저자의 독백도 아닐 것이다. 내가 느낀 바로는 전혀 에로틱하지 않으면서도 적나라한 책과의 애정 행각에 대한 진솔한 고백성사 같다. 바람둥이답게 이 책 저 책과의 불륜으로 낳은 자식들의 모습은 하나하나 제 각각이다. 생태를 닮은 아이, 인권을 닮은 소녀, 평화를 닮은 녀석, 철학, 행복, 동심,낭만의 네 자매 등. 족보를 따질 수 없는 그의 모종행위는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정체를 좀처럼 드러내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의 글쓰기는 섬세하고 풍부한 표현력으로 자기를 은근히 노출한다. 노출증까지 있는 듯 하다. 따지자면 그 표현력의 정체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하늘만 보고 있어도, 삼라만상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은 눈매, 책 앞 표지 안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은 끊임없는 관심과 대화의 연속이다. 무관심과 침묵의 언어는 파경의 지름길. 그러나 집착은 권태로 가는 막차. 권태와 파경의 경계에 있는 그는, 그래서 그의 사랑은 잡을 수 없고, 잡으려 하지 않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역마살 사랑이어라. 그리하여 목마름은 끝이 없나보다. 노래로도 있지 않은가.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남의 과거를 들었으면, 자신의 과거도 들추는 것이 진실게임의 룰이렸다. 나는 책에 어떤 존재였는가, 나는 책에 사랑을 얼마나 주었는가를 적다 보면 이만큼 성장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책은 서서히 스며들어 어느새 나의 영혼을 잠식해 버렸다. 기억은 나지 않아도 잔상은 남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잔상이 나의 피 속에 계속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고백하듯 책에 다가서는 사람의 모습에서 난 아름다움을 느낀다.
특히 지하철에서 긴 생머리를 넘기며 책장을 넘기는 숙녀를 볼 때는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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