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인간아 > 돼지 숭배자와 돼지 혐오자 - 마빈 해리스

 

               돼지 숭배자와 돼지 혐오자

 

 


                                                               - 마빈 해리스

 


돼지에 관한 수수께끼


비합리적인 식생활 습관에 대한 사례를 누구나 대개는 한두 개 알고 있다. 중국인들은 우유를 싫어하는 대신 개고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서양인)들은 우유는 좋아하지만 개고기는 먹지 않는다. 브라질의 어떤 원시 부족은 사슴 고기는 질색으로 여기는데 개미는 맛있게 먹는다. 이처럼 기이한 식생활 풍속은 세계 곳곳에 깔려 있다.

돼지에 관한 수수께끼는 '거룩한 어머니 암소'다음으로 거론하기에 좋은 주제가 될 것이다. 이 수수께끼는 같은 동물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왜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왜 싫어하는가 하는 데 대한 해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돼지 혐오 자들이 지니고 있는 이 수수께끼의 이면은 유태교도와 회교도와 기독교도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고대 히브리의 신은 "돼지는 불결한 동물이기 때문에 먹거나 손을 대면 부정을 탄다."고 선포했다(창세기와 레위기에서 각각 한 번씩). 그로부터 1,500년 후, 알라신은 그의 예언자 마호메트를 통하여 돼지는 이슬람교도에게도 역시 불결하고 부정한 동물이라고 선언했다. 돼지는 알곡이나 쭉정이들을 다른 동물보다 효과적으로 고농도 지방과 단백질로 바꾸는 동물이지만, 수백만의 유태인들과 수 억의 회교도들은 아직도 돼지를 불결한 동물로 친다.

여기에 견주어 광신적인 돼지 숭배자들의 전통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돼지 숭배의 세계적 중심지는 뉴기니아와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군도다. 이 지역의 '마을에 사는 신림 부족들'은 돼지를 신성한 동물로 여겨 조상들에게 바치고 혼인이나 축제와 같은 모든 중요한 행사 때마다 잡아먹는다. 많은 부족들은 선전 포고를 하거나 전쟁을 그만두자고 할 때 돼지를 제물로 바친다. 이 부족들은 이 세상을 떠난 조상들이 돼지고기를 갈망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돼지고기를 먹고자 하는 욕망이 대단하여 때때로 큰 축제를 열어 부족이 키우던 거의 모든 돼지를 깡그리 잡아먹는다. 몇 날 며칠을 두고 부락민들과 축제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돼지고기를 꾸역꾸역 배속에 쑤셔 넣는다. 그 중에는 더 많이 먹기 위해 소화 안된 것을 토해내고 다시 쑤셔 넣는 사람도 있다.

이런 소란이 끝나면, 돼지떼는 아주 적은 수로 줄어들어 축제 첫날의 돼지 수로 회복시키려면 몇 년에 걸치는 고통스러운 절제의 기간이 필요하다. 돼지 수가 원상 회복되면 게걸스러운 난장판이 또다시 벌어진다. 이런 식으로 매우 부조리한 것같이 보이는 돼지 축제가 기이하게 반복된다.


구구한 해석

나는 먼저 유태교와 회교의 돼지 혐오자들 문제를 거론하겠다. 야훼나 알라와 같은 '수준 높은'신들이 인류 대다수가 즐겨 먹는, 해롭지 않고 오히려 익살스러운 이 동물을 저주하는 마뜩찮은 일을 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성서와 코란에 언급된 돼지 금기에 공감을 표하는 학자들은 여기에다 여러 가지 설명을 가져다 붙이고 있다. 가장 설득력 있었던 설명은 돼지가 문자 그대로 '더러운 동물(자기의 배설물 위에서 뒹굴고 사람의 배설물을 먹으므로)'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겉보기에 불결한 것에 종교적 혐오감을 관련시키려는 시도에는 모순이 있다. 좁은 우리 속에서 키울 경우, 소도 자기의 오물과 배설물 속에서 뒹군다. 그리고 굶주리게 되면 소도 사람의 배설물을 맛있게 먹는다. 개나 닭도 그러하지만, 여기에 호들갑 떠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고대인들은 깨끗한 우리에서 기를 경우 돼지도 까다로운 애완용 동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순수하게 미학적인 '청결'의 기준에 따라서 판단한다면, 메뚜기나 방아깨비가 '청결'하다고 분류한 성서에는 엄청난 모순이 있다. 곤충이 돼지보다 심미적으로 더 위생적이라는 주장은 신앙의 명분이 되지 못할 것이기에.

이런 모순을 발견한 사람은 르네상스 초기 유태교 '랍비'였다. 12세기 이집트 카이로에서 살라딘의 전의였단 모세 마이모니데스는 유태교와 회교가 돼지를 거부한 이유를 자연 과학적으로 설명해 낸 최초의 사람이었다. 마이모니데스는 하나님이 공공위생 수단으로 돼지고기 금기를 선포했다고 설명했다. 돼지고기는 '몸에 해롭고 나쁜 영향을 끼친다'라고 그 랍비는 기록하고 있다. 마이모니데스가 말한 것은 의학적으로 따지자면 타당하지 않았지만, 황제의 시의였기 때문에 그의 판단은 널리 존중받았다.

19세기 중엽 돼지고기를 날로 먹었을 경우, 선모충병이 생긴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마이모니데스의 혜안이 정확했음이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혁신적인 유태인들은 성서의 율법이 지니는 합리적 토대를 발견했다고 기뻐하며 즉각 돼지고기 금기를 재해석했다. 돼지고기는 잘 익히면 몸에 해롭지 않다. 그러므로 잘 익혀 먹는다면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되자 전통적인 랍비들은 보다 근본적인 주장을 내세워 자연 과학적인 해석을 전면적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야훼가 오로지 자기 백성의 건강만 보호하고자 하셨다면, 돼지고기를 잘 익혀 먹으라고 가르치셨을 것이지, 아예 먹지 말라고 가르치셨을 리가 없다. 야훼의 심중에는 분명히 육체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어떤 다른 중요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시됐다.

이런 신학상의 모순 외에도 마이모니데스의 설명은 의학과 전염병학 쪽의 반대 견해에 부딪히게 되었다. 돼지는 인간 질병의 보균 동물이다. 그러나 유태교나 회교에서 자유롭게 먹도록 허용한 다른 가축들도 역시 균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쇠고기를 익혀 먹지 않으면 촌충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된다. 촌충은 사람의 장 속에서 자라는 16∼20피트의 기생충으로 악성 빈혈을 일으키고 전염병의 저항력을 약화시킨다. 소․염소․양 들도 또한 브르셀라균을 보유하고 있다. 브르셀라병은 후진국에 공통적으로 많은 박테리아에 의한 전염병인데, 열이 나고 오한이 들며 땀을 흘리고 몸이 허해져 고통과 통증을 수반하는 병이다. 가장 위험한 형태는 브르셀로시스 멜리텐시스인데 이 병은 양과 염소가 옮긴다. 이 병의 증상으로 혼수 상태, 피로, 신경 과민 그리고 때때로 정신 신경증이라고 오진되기도 하는 정신적 압박감 등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탄저열은 돼지뿐만 아니라 소, 양, 말, 염소, 당나귀도 옮기는 병인데, 치명적인 경과도 없고 대다수 전염자에게는 증상도 나타나지 않는 선모충병과는 달리, 급속히 악화되는 병이다. 처음에는 몸이 펄펄 끓도록 열이 나다가 혈액이 중독되어 결국 죽기에 이른다. 이전에 유럽과 아시아를 휩쓸었던 탄저열병의 무서운 전염성은 1881년 루이 파스퇴르가 탄저열병 왁친을 발견하기 전가지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야훼가 탄저열병의 보균자인 가축들을 접촉하지 말라는 금기를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 특히 치명적으로 마이모니데스의 자연 과학적 설명을 설득력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왜냐 하면, 탄저열병을 가진 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성서가 기록되던 시기에도 이미 밝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것처럼 애굽인들에게 내린 역병 가운데 하나는 동물의 탄저열병 증상과 인간의 질병이 관계가 있음을 밝혀 주고 있다.


⋯⋯사람과 가축은 종기가 나서 곪아 터지게 되었다. 이집트의 마술사들은 종기 때문에 모세 앞에 나서지도 못하게 되었다. 마술사들까지도 온 이집트에 번진 종기에 걸렸던 것이다.(「출애굽기」 9:10∼11).


이런 반대 견해들에 부딪혀 대부분의 유태교와 회교도 신학자들은 돼지 혐오의 자연과학적 근거를 찾는 노력을 포기했다. 솔직하게 신비적인 입장에서 그 금기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 요즘에 와서는 더 공감을 얻게 되었다. 이 신비적 입장은 어떤 것인가 하면, 신의 금기들을 충실히 지키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야훼가 심중에 지닌 의도를 정확히 알려 하거나 밝히려고 하지 않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견해이다.

현대 인류학자들도 이와 비슷한 곤경에 부딪혔다. 예를 들면 모세 마이모니데스는 비록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황금 가지』의 저자로 이름난 제임스 프레이져 경보다 이 금기에 관한 설명에서는 더 정확한 설명에 접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레이져 경은 "돼지가 소위 불결하다고 열거된 모든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신성한 동물이었다. 돼지를 먹지 말라는 이유는 대부분의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신성한 동물들이기 때문이었다."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돼지 혐오의 이유를 밝히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 하면, 양, 소, 염소도 역시 중동 지방에서 숭배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지만 그런 동물의 고기는 그 지역의 모든 민족들과 종교 집단들이 즐겨 먹고 있다. 특히 시나이산 기슭에서는 황금 송아지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는 까닭에 프레이져의 논리에 따르면 히브리인들에게는 돼지보다 소가 훨씬 더 불결한 동물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학자들은 성서와 코란 속에서 금기시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돼지도 여러 다양한 부족들의 토템 상징이 된 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례는 역사상 먼 옛날에나 있음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이 있다면 소㊥양㊥염소와 같은 '정결한'동물들도 토템으로 숭배받을 수 있었으리라는 가능성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토테미즘을 주제로 한 많은 문헌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토템은 늘 식용 가치가 없는 동물이었다. 호주와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들 가운데 가장 널리 숭앙 받는 토템들은 큰 까마귀, 핀치와 같은 별로 식용 가치가 없는 조류나 각다귀, 개미, 모기 등과 같은 곤충들이나 구름이나 옥석과 같은 무생물들에게까지 걸쳐 있다. 더군다나 식용 가치가 있는 동물이 토템이 될 경우에도, 그 동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어디에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처럼 여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돼지가 토템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돼지 식용 금기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누구는 쉽게 "돼지는 터부시되었기 때문에 터부시되었다."라고 단언할지 모르지만.

나는 마이모니데스의 접근 방식이 프레이져의 설명 방식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 랍비는 세속적이고 실제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강과 질병 같은 자연적 조건 속에서 돼지의 금기를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난점이 있었다면 돼지 혐오에는 그에 상응한 그 나름의 환경적 조건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그의 견해가 오로지 인체 병리학에 몰두라는 외과 의사가 가진 전형적인 편협성으로 말미암아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


돼지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공공 보건의 개념을 넓힐 필요가 있다. 즉 그 개념 속에는 자연 공동체와 문화 공동체에서 동물, 식물, 인간이 서로 공존해 나가는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과정들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돼지 사육이 중동 지방의 기본적인 문화와 자연 생태계의 조화를 깨뜨릴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성서와 코란은 돼지를 죄가 있는 것으로 규정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는 기원전의 히브리인들(아브라함의 자손들, 기원전 2천 년경)이 메소포타미아 강가의 계곡과 이집트의 중간 지대에 있는, 땅이 척박하고 인구가 희박한 건조 지대에서 살아 나가는 데 문화적으로 잘 적응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야만 한다. 기원전 13세기, 팔레스타인 요르단 계곡을 정복하고 있던 시기에 히브리인들은 거의가 소, 양, 염소 등을 기르며 살아 나가는 유목민 생활을 했다. 모든 유목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오아시스와 큰 강을 소유하고 있던 정착 농경인들과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때때로 이 친분 관계가 밀접해져 한결 더 정착 문화에 적응하는 생활 양식을 갖기도 했다. 이런 사례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살았던 아브라함의 후손, 이집트에서 살았던 요셉의 추종자들, 서쪽 네겝 지방에서 살았던 이삭의 추종자들 등등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다윗왕과 솔로몬 치하에서 도시 취락 생활이 절정에 달했던 때에도, 소, 양, 염소 등을 치는 목축업은 아주 중요한 경제 활동이었다.

농업과 목축이 혼합된 전반적으로 복합체적인 경제 형태 안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신의 금지 명령은 완벽한 생태학적 전략이 되었다. 엉거주춤 정착하고 사는 농경인들에게도 돼지는 재산이기는 커녕 오히려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물며 척박한 거주 지역 내에서 돼지를 기를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유목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지구상에 목축을 위주로 하고 있는 지역들은 대개가 비를 이용한 농업을 하기에는 너무 척박하고 관개도 쉽지 않은, 헐벗은 들판과 언덕받이들로 이루어진 땅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땅에서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가축으로는 되새김 동물, 즉 소, 양, 염소 등이 있다. 되새김 동물은 다른 어떤 포유 동물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섬유소가 주성분인 풀, 나뭇잎 등을 소화시킬 수 있게 위의 아래쪽에 벌집위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돼지는 원래 숲지대와 그늘진 강둑에서 사는 동물이다. 잡식 동물이기는 하지만 주식물은 섬유질이 적은 나무 열매, 과일, 식물 뿌리, 특히 곡식을 주로 먹기 때문에 인간과 직접 경쟁하는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 돼지는 풀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따라서 유목, 유랑민들 치고 돼지를 많이 기르는 사람들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돼지가 지니고 있는 더 큰 약점은 마실 수 있는 젖이 없고 먼 곳으로 몰고 다니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이다.

돼지는 무엇보다도 네겝이나 요르단 계곡 등 성서와 코란에서 나오는 여러 지방의 덥고 건조한 기후에는 잘 견뎌 내지 못하는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다. 소, 양, 염소 등과 비교해 볼 때, 돼지는 체온 조절 능력을 몸속에 별로 잘 갖추지 못하고 있다. '돼지처럼 땀 흘린다'는 속담이 있지만, 돼지는 전혀 땀을 흘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최근에 와서 판명되었다. 포유 동물 중에서 가장 땀을 많이 흘리는 인간은 살갗 1평방미터당 한 시간에 1,000그램의 체액을 밖으로 배설하여 체온을 조절한다. 돼지는 기껏해야 30그램의 체액을 배설할까말까다. 양도 돼지의 두 배는 배설한다. 양에게는 또한 태양 광선을 반사시키고, 기온이 체온보다 높을 때 절연체 역할을 하는 두껍고 흰 털을 지니고 있다는 이점이 있다. 영국 캠브리지의 동물 생리학 농업 조사국의 마운트 씨에 의하면 다 자란 돼지는 섭씨 37도가 넘는 기온과 직사 광선 아래서는 죽고 만다. 요르단 계곡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섭씨 43도가 넘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다. 또한 이 지역은 일년 내내 햇볕이 쨍쨍 내리쬔다.

보호막 역할을 하는 털도 없고,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할 수도 없는 까닭에, 돼지는 외부의 습기를 이용하여 피부를 습하게 하여야 한다. 그래서 돼지는 깨끗한 진흙 속에 뒹굴어 체온을 조절한다. 그러나 깨끗한 진흙이 없을 경우 자기의 배설물로라도 피부를 습하게 만들어야 한다. 섭씨 29도 이하일 경우, 돼지는 우리 안의 잠자리와 식사 자리에는 배설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온이 섭씨 29도를 넘어가면 어디나 가리지 않고 배설을 한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돼지는 더욱 '더러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돼지가 종교적으로 불결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실제 몸이 더럽기 때문이라는 이론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돼지의 본성이 자리를 가리지 않고 더러운 것을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돼지가 자기가 배설한 오물을 뒤집어쓰고 더러운 꼴로 있는 것은 중동지방의 덥고 척박한 서식지의 특성 때문인 것이다.

양과 염소는 중동 지방에서 최초로 가축이 된 동물들이다. 이것들이 가축으로 사육된 시기는 아마 기원전 9천 년경부터였을 것이다. 돼지는 이보다 2천 년이 늦게 가축으로 사육되었다. 아주 옛날 선사 시대의 농경 부락이 있었던 곳에서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낸 짐승의 뼈를 보면, 돼지는 거의 언제나 부락내 가축 분포 상 상대적으로 적었음이 밝혀진다. 즉 식용 동물의 유골들 중 돼지의 뼈는 5%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돼지에게는 그늘이 필요하고 진흙 구덩이가 필요한 반면, 식용할 젖도 없고 사람이 먹는 만큼 식량을 먹어 치우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현상은 이해할 수 있다.

힌두교인들이 쇠고기를 먹지 않는 금기의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산업화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고기만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은 일종의 사치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반화된 설명은 산업화되기 이전의 목축인들에게 당연히 적용되며 그들은 고기만을 목적으로 가축을 사육하지는 않는다.

목축, 농경 혼합 경제 체제를 이루고 있던 중동 지역의 고대 사회에서 가축들은 젖, 치즈, 피혁, 분뇨, 단백질 등을 공급하는 주 원천으로, 그리고 쟁기 끄는 가축으로 근본 가치가 인정되었다. 염소, 양, 소 등은 이런 용도를 충족시켰고, 더불어 때때로 살코기를 공급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고대 중동 지방에서는 처음부터 돼지고기가 사치스러운 식품이었다. 돼지고기는 즙이 많고 부드러우며, 기름기가 많은 귀한 식품이었다.

기원전 7천 년에서 기원전 2천 년에 이르는 동안, 돼지고기는 더욱 사치스러운 식품으로 변했다. 이 기간 동안 중동의 인구는 거의 60배로 증가했다. 산에 있는 나무는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이 벌채되었고, 특히 수많은 양, 염소떼들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손실을 입고 말았다. 그늘과 물 등 돼지 사육에 필요한 자연 조건은 점점 사라지고, 이로 말미암아 돼지고기는 생태학적, 경제적으로 더욱 사치품으로 변했다.

쇠고기를 못 먹게 한 금기와 마찬가지로, 돼지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유혹이 크면 클수록 종교적 금기 조치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유혹과 금기의 이런 관계는 여러 신들이 근친상간이나 간통과 같은 성적인 유혹을 물리치는 데 늘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는 적절한 해답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유혹과 금지의 관계를 단지 사람의 식욕을 유혹하는 음식물에만 적용하겠다. 중동은 돼지 사육에 적합한 지역이 아니다. 그러나 돼지고기는 아주 맛이 있는 고기로 귀하게 여겨지고 있다.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따라서 야훼는 돼지가 불결하니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명령했다. 알라신도 똑같은 이유에서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중동 지방은 먹기에 충분할 만큼의 돼지를 기르기에는 생태학적으로 적절하지 못한 지역이었다. 소규모의 사육은 유혹만 크게 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차라리 돼지고기의 식용을 전면 금지하고 양, 염소, 소 등을 치는 데 모든 정성을 다 바치는 것이 더 나았다. 돼지는, 고기맛은 좋지만 사료와 시원한 우리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비쌌던 것이다.


금기의 사회적인 기능

물론 의문점은 남아 있다. 특히 성서에 금지된 다른 동물들 - 독수리, 매, 뱀, 달팽이류, 조개류, 비늘 없는 물고기 등 - 은 왜 금기하고 있는가? 이제는 더 이상 중동에서 살지 않는 유태인들과 회교도들까지(물론 엄수하는 정도와 열성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아직도 고대의 식사 율법을 지키고 있는 까닭은 또 무엇인가? 성서에 금기로 열거된 새와 동물들은 대체로 두 범주로 선명하게 나눌 수 있다. 첫째, 물수리, 독수리, 매 등의 조류는 식량 자원으로 가치가 없다. 둘째, 조개류 등은 목축, 농경 혼합 경제 속의 주민들에게는 손에 접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두 범주에 속하는 금기된 동물들은 그 어느 것도 우리가 관심을 갖는 그런 문제(분명히 이 기이하고 비경제적인 금기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비경제적 문제)는 야기하지 않는다. 먹이로 쓰려고 독수리를 찾아 나선다든지, 식용 조개를 찾아 사막 위의 50마일을 헤맨다든지 하면서 시간을 낭비한다고 해서 남을 욕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종교상 식용으로 인정된 모든 음식물에 관한 관행이 생태학적 근거가 분명히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금기는 사회적인 기능도 지니고 있다. 예컨대 금기를 준수하면 그로 인해 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동질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기능 같은 것이 있다. 이러한 기능은 중동에 있는 고행을 떠나 이국에서 사는 현대 회교도들이나 유태인들이 돼지 금기의 식사 율법을 잘 지키도록 해주고 있다. 이런 관행이 지닌 난점은, 그 관행이 회교도와 유태인들에게 쉽사리 대체할 수 있을 별다른 음식물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양가가 높은 음식물을 금기로서 식용에서 제외시킴으로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복지를 상당히 손상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나는 이 의문에 대해 분명히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지만 그러나 또 다른 유혹도 이기고 싶다. 즉 모든 것을 다 설명해 보겠다는 유혹 말이다. 이 수수께끼의 이면에 있는 돼지 숭배자들을 생각해 본다면 돼지 혐오자들에 대한 의문들이 쉽게 풀릴 것이다.

돼지 애호자들은 신이 돼지고기를 역겨워한다고 믿고 있는 회교도나 유태인들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지닌 자들이다. 돼지 숭배의 조건은 단순히 돼지고기 요리를 미각적인 면에서 미친 듯 좋아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유럽, 아메리카인들이나 중국인들의 요리 전통 등 많은 요리법에서 돼지 비계와 살코기는 아주 고급 음식물로 쳐진다. 돼지 숭배에는 이런 전통과는 상관없는 어떤 이유들이 있다. 그것은 인간과 돼지 사이에 존재하는 전체 공동체와 연결되는 여러 가지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 회교도나 유태인들에게는 자기들이 인간으로 살아남는 데 돼지가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돼지 숭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돼지와 사귐이 없이는 진정한 인간적 삶이 영위될 수 없다.

돼지 숭배자들은 기르고 있는 돼지를 자기 식구로 생각하고, 돼지들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돼지들과 말을 주고받고, 돼지들을 애무하고 쓰다듬어 주며, 끈으로 매어 들로 데리고 다니고, 이름을 붙여 부르고, 돼지들이 아프거나 다치면 마음 아파하고, 가족의 식탁에서 음식을 추려서 먹인다. 그러나 힌두교인들의 암소 숭배와는 다르게 돼지를 의무적인 희생 제물이 되게도 하고, 특별한 명절에는 돼지들을 잡아먹기도 한다. 제사용이나 성스러운 축제용으로 돼지를 잡아죽이기 때문에 돼지 숭배는 힌두교 농부들과 그들이 숭배하는 암소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 관계보다 더 폭넓은 인간과 동물 간의 유대 관계를 이해하게 해준다고 하겠다. 돼지 숭배의 절정은 돼지의 살과 그 주인인 사람의 살을 결합시키고 돼지의 혼과 조상들의 혼을 결합시키는 때이다.

돼지 숭배에는 고인이 된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사랑하는 돼지를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잡아 질그릇에 넣어 튀기는 의식이 있다. 돼지 숭배의 또 다른 의식 중에는 소금에 절이고 냉동한 돼지 뱃가죽 비계를 처남의 입에 꽉 처넣는 의식도 있다. 그러면 그 처남이 성실하고 행복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돼지 숭배에는 한 세대마다 한두 번씩 열리는 돼지 축제 한마당이 있다. 이 축제는, 대개가 돼지고기를 열망하는 조상들을 기쁘게 하려 할 때, 또 공동의 건강을 축원할 때, 또는 미래에 있을 여러 전쟁에 이길 수 있도록 기원하려 할 때 열리게 되는데 이런 축제가 열리면 사람들은 자기 부족들이 기르고 있는 대부분의 다 큰 돼지를 한꺼번에 잡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가 보니 유시춘씨가 아주 재미있는 글을 써 놓았는데, 뤼시앙 골드만이 나오고 김우창이 나오고 만해가 나오는데 글을 읽어보고 우습기도 하고 눈쌀이 지푸려지기도 하였다. 이 글을 읽어보고 노빠 계관시인 역할을 하였던 노혜경씨가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동안에 그 역할을 때로는 김정란, 때로는 유시춘이 하고 있구나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학자가 '학설을 굽혀서 이 세상에 아부하는 것'을 '곡학아세'라 그런다.  노혜경, 김정란, 유시춘씨 등은 왜 김대중 정권 때 여당의 모 의원이 이문열을 향해 '곡학아세'한다고 해서 한참 옥신각신했었던 사실을 망각하고 노무현이란 한 인물을 위해 자신이 배운 문학공부를 비틀어 사용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파병하였고 김선일의 죽음이 있었을 때 김정란 시인은 탈을 (persona)를 쓰고 김선일의 죽음을 '인류의 원죄'에 귀속시켜버리며 노무현 대통령의 죄를 '형이상학'의 뒤로 숨겨버렸다. 엄연히 파병이란 산문적 사실이 존재하고 이것을 결정한 것은 대통령이고 이 부당한 결정에 손을 들어준 것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국회의원들이었다. 결국 시인 김정란이 보르레르가 저리 나자빠질 정도로 써재긴 글은 오로지 노무현을 '형이상학'이란 추상의 울타리로 숨기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인물에 대한 종교적 맹신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연정 문제를 두고 이번에는 유시춘씨가 나섰다. 이번에는 뤼시앙 골드만이 <숨은 신>이란 글에서 분석한 '비극적 세계관'을 만들어 노무현을 파스칼과 같은 인물, 만해와 같은 인물로 기꺼이 만들어버렸다. 과연 유시춘씨가 무엇 때문에 '파스칼 - 만해 - 노무현'의 동일적 세계관의 담지자로 만드는가?

골드만은 <숨은 신>이란 글에서 17세기 프랑스 사회를 분석하였다. 17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절대왕정과 타협하여 봉건 세력들에 대립하던 '법복귀족'이 강화된 왕권의 관료기구로 인해 왕권에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기 때문에 왕권에 저항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부터 법복귀족들의 '비극적 세계관'이 드러난다.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유시춘씨의 '형이상학적 상상력'은 여기에서부터 작동한다. 생각해보라. 17세기 파스칼과 같은 장세니스트들이 대다수 법복귀족 출신이거나 이들과 가까웠던 사람이고  '법벅귀족'들이 지방의 세수원이나 법정의 변호사로 활약하였듯이 노통 역시 회계와 관련한 변호사 출신이다. 이 얼마나 유사한 그림이던가? 거기다가 허위적이고 타락한 현실에 저항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위치에 있어야만 하는 인물이 현 대통령이라고 생각해보면 그럴싸한 색깔 입히기가 얼마나 좋은가?

유시춘씨가 주장하듯이 골드만에 의하면 허위적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은 이 세상에 굽히고 들어가는 방법 외에 1) 이 세상을 등지는 방법, 2) 세상을 진실된 것으로 뜯어 고치도록 현실 속에 행동하는 방법, 3) 진실의 관점에서는 세상을 거부하나 현실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는 방법 등이 있다. 이 중에 비극적 세계관은 3)에 해당한다. 17세기 프랑스 사회의 파스칼이 그랬고 만해 한용운이 그랬다. 해서 파스칼에 의하면 신은 현재 부재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는 역설이 나온다. 만해가 현실적으로 '님'의 부재를 인정하지만 '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역설이 나오는 것이다.

과연 노통은 이 세 가지 유형 중에 어떠한 것에 해당할까? 유시춘씨에 의하면 3)에 해당하지만 내가 볼 때 노무현 대통령은 이 세 가지 유형 중에 어느 유형도 아니다. 이 세상을 등지고 초월적 진리 속에 빠지기에는 그가 가진 세속적 욕망이 너무나 크다. 노통이 욕망이 크다는 것은 '올인 정치'의 도박정치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판돈을 크게 걸면 얻는 것도 많은 법이니 노통은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정치인이 아니다.  세상을 진실된 것으로 뜯어 고치도록 행동하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세속적 욕망이 너무나 큰 까닭에 이 세속적 욕망과 세상을 뜯어고치는 것을  맞바꿀만한 의지와 능력도 없는 인물이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렇다고 '비극적 세계관'을 가진 인물도 아니다. 그가 처한 위치가 그렇다. 정치인으로서의 최고 지위에 올랐는데 17세기 프랑스 사회의 '법복귀족'의 위치에 비견될 수 있겠는가?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만해에 비교될 수 있겠는가? 명백히 말하자면 그는 세상의 허위 속에 고뇌하는 이 세 가지 유형 중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굽히고 들어가는 인물에 속하는 것이다.

아마 유시춘씨는 조선과 한나라당 민주당이라는 기득권과 지역주의 세력과 타협을 거부하지만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통하지 않고서는 궁극적 진실에 이르지 못하는 역설이 나온다는 점에서 이 글의 착안점을 찾았으리라 생각된다. 유시춘씨에 의하면 이러한 대통령의 뜻도 모르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조선에 제발로 인터뷰하고 그걸 자랑스럽게 지들 홈피에 올려놓는 촌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노무현의 사랑법이 비극적라고 이야기를 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건 인간의 글이 아니라 기도문이다. 17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파스칼이 맞닦드렸던 현실과 21세기 한국 정치질서 구조를 이렇게 링크시켜 이용한다는 것 자체도 어처구니 없다. 만해가 살았던 식민지 구조와 21세기 지역주의 정당이 어떠한 구조적 유사성이 있던가? 유시춘씨기 애써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여러가지 사실들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야 말로 대권 후보되자마자 곧바로 '안티조선'의 기본적 정신을 폐기하지 않았던가? 이것이 바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조선과 자랑스럽게 인터뷰 할 수 있는 힘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노통이 중앙의 사주인 홍석현씨를 청와대로 불러 국빈대접하고 그도 모자라 주미대사로 기용하여 재벌 세력과 굳건한 연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기본적 사실을 애써 감추며 '비극적 세계관'의 담지자로 노무현을 만들어버리는 것은 유시춘씨의 노통에 대한 태도를 보면 너무나 '희극적 사랑법'을 구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명문이 탄생하는 순간이군요.", "참으로 절절하군요.", "시나브로 눈시울이 적셔옵니다.", 저의 눈을 씻어냅니다." .....

유시춘씨의 기도문 뒤에 붙은 노빠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참으로 절절들 하군요. 노빠 문인들은 문학을 가장한 이런 속물스런 글질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출처: 진보누리 - 평검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의식화입문서가 논술참고서로 “변증법은 요즘도 나의 좋은 길잡이”
 
‘철학 에세이’ 개정4판 낸 조성오 변호사

“세상 모든 것은 변화한다, 또 모든 것은 연관돼 있다, 이 두 가지가 변증법의 요체이지요. 변증법 철학서가 20년 넘게 애독된다는 것도 놀랍고, 80년대엔 사회변화를 갈망하던 대학생들이 주로 읽었는데 요즘엔 고등학생들이 일부 논술 참고서로 애독한다는 출판사쪽 얘기를 듣고는 묘한 느낌도 들더군요.”

변증법적 유물론을 친근한 사례와 일화로 조근조근 풀어 쓴 책 <철학 에세이>(동녘 펴냄)의 저자 조성오(46) 변호사는 1983년의 초판 이후 최근 개정4판을 내며 “세상의 변화를 실감한다”며 “한편으론 변증법이 여전히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좋은 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4판은 이전 것보다 활자 크기를 더 키우고 만화가 이우일씨의 그림을 여러 컷 넣어 시원시원하게 편집됐다. “80년대엔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의식화’ 필독서였으나 몇 년 전부터 논술시험과 수능에 대비하려는 고등학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는 출판사 쪽 설명을 들으면 이런 편집의 진화가 이해될만하다.


책의 나이 22살 만큼이나 <철학 에세이>의 출판·인쇄 기록도 길어졌다.

출판 검열과 금서 탄압이 심했던 80년대에 동녘출판사는 지은이를 보호하려고 ‘편집부 지음’으로 초판을 냈고 89년 개정1판을 냈다. 93년엔 지은이의 실명을 밝힌 개정2판이 나왔으며, 94년 개정3판을 거쳐 이번에 개정4판이 나왔으니까 판수로 치면 5판째다. 그때그때마다 지은이와 출판사는 애독자들이 부적절하다며 지적해준 일화와 사례들을 조금씩 손질했다.

책이 “화장을 고치는” 개정판 때마다 그는 다른 곳에 있었다.

초판은 80년 신군부 시절에 두번째로 학교(서울대 법대)에서 제적된 그가 81년부터 서울 난곡동 빈민촌의 ‘낙골야학’에서 야학교사 생활을 할 적에 원고를 완성해, 83년 인천 노동현장에 들어가려고 준비하던 중에 출간됐다. 이어 첫 개정판 때에 그는 인천 노동현장의 한복판에 있었고, 2판은 그가 노동현장을 정리하고 나올 무렵에, 3판은 그가 대학에 복학하기 직전에 출간됐으며 이번 개정판은 2000년부터 시작한 변호사 생활 중에 나오게 됐다. 이렇게 보면 책의 기록엔 지은이 개인사의 기억도 아로새겨져 법하다.

그런데 이런 기록엔 약간의 ‘오류’가 있다. “<철학 에세이>라는 제목에다 이야기 식의 목차 덕분인지 당시 문공부 검열을 무사히 통과했는데, 나중에 운동권 학생들 집에서 이 책이 자주 발견되자 문공부가 뒤늦게 난처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공부 쪽이 ‘검열은 통과했으니 금서로 할 수는 없고 초판만 내고 말라’고 했고, 출판사 쪽은 개정·중쇄 기록 없이 89년까지 줄곧 ‘초판 1쇄’란 딱지를 달아 계속 책을 냈죠. 그래서 무려 6년 넘게 ‘초판 1쇄’가 유지됐습니다.” 그러니 이 책에 기록된 ‘통산 46쇄’만으로는 실제 발행 규모를 다 헤아릴 수 없다.

<철학 에세이>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그 배경에는 낙골야학의 교사 집단이 있었다.

“낙골야학 교사들 대여섯명이 함께 철학 강독 공부를 했는데 그렇게 정리된 내용을 책으로 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서 원고를 썼죠. 야학교사 생활을 하다보니 어려운 철학 개념도 실감나는 얘기로 풀어 말하는 경험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철학 에세이>는 야학공동체 속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죠.” 조 변호사는 “당시 낙골야학엔 나 말고도 여럿이 활동비 마련을 위해 사회과학 책들을 번역했고 더러는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간의 역사>(조성오 지음),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황광우 지음) 등이 이 무렵 이곳에서 태어났다. 80년대에 낙골야학은 야학공동체이자 아마추어 집필그룹이기도 했던 셈이다.

변증법 철학서의 지은이인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은 ‘이렇게 살라’고 어떤 법칙을 주는 게 아니라 너무도 다양한 이 세상을 바로 보는 현실적이고도 낙관적인 태도를 가르치는 것 같다”며 “변증법은 요즘도 나의 좋은 길잡이”라고 말한다. 글·사진 오철우 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시는 비난할 자격 없다 테러리스트 딱지 그만 붙여라”
79년 이란 주제 미국대사관 점거 사태는
미국의 팔레비 독재정권 감싸기가 근본원인
CIA는 이란을 신정국가라 단정하지만
미국 대통령은 성경에 손얹고 취임선서한다
▲ 지난 6월24일 결선투표에서 압도적 표차로 이란 대통령에 당선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마흐무드 아흐마디 네저드)가 25일 테헤란의 자기 사무실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예상을 뒤엎고 압승한 그는 선거를 통해 확인된 보수-개혁, 부자-빈자간의 깊은 골을 의식한 듯 화합을 호소했다.  테헤란/로이터 연합
얼마 전에 끝난 이란 대통령 선거의 결선 투표에서 마흐무드 아흐마디 네저드가 당선되었다. 처음에 나는 일간지와 텔레비전 보도에만 의존해서 이란 선거에 접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그 상당 부분이 부실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다수 언론에서는 영어 표기 Mahmoud Ahmadinejad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이란정보네트워크>란 사이트에서는 세 단어의 페르시아어로 된 이름을 한국어로 마흐무드 아흐마디 네저드라고 표기하고 있다. 페르시아어를 모르니까 함부로 주장할 수는 없지만, 사람 이름은 그 사람의 모국어에 가깝게 불러야 하는 법이고, 또 이란의 지역 사정에 관해서는 전문 사이트가 더 나을 듯해, 나는 아흐마디 네저드라고 줄여 부르겠다.

대다수 언론 매체는 아흐마디 네저드를 강경 보수파로 분류하며 종교적으로 극단적이어서 위험한 인물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 만약 그런 식으로 그를 단정짓는다면 아흐마디 네저드의 미국 쪽 맞짝은 당연히 조지 부시다. 다만 아흐마디 네저드는 이란이슬람공화국의 대통령 당선자로서 반미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고 부시는 아랍지역에서의 미국의 패권적 이익을 우익적 관점에서 광신적으로 대변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런 식의 분류나 딱지 붙이기는 본디 매우 정치적인 일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공식 사이트 내의 ‘월드 팩트북’에서는 이란의 정부 형태를 신정공화국(theocratic republic)으로 단정하고 있다. 참으로 웃기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취임식에서 헌법 책이 아닌 성경에다가 손을 얹고 선서를 해야만 당선자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가 바로 미국 아닌가. 신정이란 말을 통해 하려는 주장은 이란이 근대사회도 아니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된 나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국 정부의 속셈은 자기네가 신정국가라는 딱지를 붙인 나라에 대해서 제멋대로 침략전쟁을 벌이고 싶으니까 이것을 용인해달라는 것이다.


CIA의 ‘월드 팩트북’에서는 자기네 정부 형태를 ‘헌법에 바탕을 둔 연방 공화국; 강한 민주적 전통’이라고 하고 있다. 자화자찬이 매우 지나치다. 이란의 최종 결선투표에서 아흐마디 네저드는 과반수를 훨씬 넘게 득표했다. 반면에 지지난번 미 대통령 선거에서 고어가 한국이나 이란의 선거제도에서 싸웠더라면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일반의 한갓 변종에 불과하다. 그것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결코 아니다. 미국의 상원의원 제도나 대통령 선거인단 제도는 아주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불합리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미국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특수성을 고려해서 그것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공작으로 정권 무너뜨려

영어로 Velayate Faqih라고 표기되는 이란의 현 정치-사회적 지배체제는 1979년에 미국의 지원을 받던 부패한 팔레비 왕조를 타도한 이란혁명을 통해 만들어졌다. 1951년에 이란 총리인 모하메드 모사데그(Mohammed Mossadegh)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자 1953년에 미국 CIA는 공작에 의해 모하메드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리고는 명목상의 국가 원수였던 팔레비를 사실상의 절대적 지배자로 만들었다. 팔레비는 그 이후 25년 간 이란에서의 미국의 이익을 지켜내는 꼭두각시 노릇을 해왔는데, 급기야 이란 민중은 혁명을 통해 부패하고 무능한 팔레비 체제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 정부는 한국전쟁을 잠시 멈춤과 동시에 베트남의 부패한 프랑스 추종세력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흐마디 네저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은 그가 1979년의 미 대사관 점거 사태의 참가자일지 모른다는 의문을 전세계 언론에 흘렸다. 맞다, 아니다 하는 공방이 며칠 간 계속되었는데 이는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설령 아흐마디 네저드가 그 당시 미 대사관에 쳐들어간 대학생 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김구 선생이 이승만대신 대통령에 되었다고 가정하고 그리고 또 여기에 대해 일본의 자민당 정권이 김구는 테러 조직의 두목이라서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비난한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주권을 가진 나라의 국민들 다수가 결정할 문제다.

1945년에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원폭 투하와 9·11 사태를 비교해 보자. 단선적이고 평면적인 비교라서 무리가 따르기는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느 것이 더 야만적일까. 원폭 투하는 아주 야만적인 처사였다. 아랍세계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와 간섭을 타파하고 그 지배와 간섭의 부당성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벌인 테러사건보다는 원폭 투하가 훨씬 더 잔혹하고 끔직한 일이다. 오늘날의 평화와 환경에 대한 일반적 관점에서 본다면, 또 그 피해 및 상처의 범위, 깊이, 강도, 지속성 등에서 본다면 당연히 그러하다.

일본 사람들 상당수는 피폭과 관련해서 자기네가 희생자라고 여기고 있다. 일본의 우익세력이 정치적 선동 과정에서 그 피폭의 체험과 정서를 교묘히 활용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198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지미 카터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에게 지게 된 결정적 이유가 이란 대학생들의 미 대사관 점거사태 이후에 허물어진 미국 유권자들의 국가적, 정치적 자존심 때문이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79년 가을에 이란 대학생들이 미국 대사관에 쳐들어 간 것은 미국 정부가 미국 내 이란혁명 관련 자산을 동결한 반면에 망명한 독재자 팔레비한테 안락한 거처를 제공한 것이 이유의 하나였다. 이 사건은 1985년 서울의 미 문화원 점거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한국 대학생들은 “광주 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사과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부당한 간섭과 흑색선전 그만

이란의 정치-사회적 지배체제 아래에서 대통령이 하는 일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 이란의 정치세력 일부가 보이콧 전술을 행사한 것도 이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네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미국이 CIA 홈페이지를 통해 이란의 지배체제를 신정체제라고 못박은 것은 애당초 아랍 이슬람 세계 및 이란의 역사적, 문화적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이란 국민 다수는 부패로 얼룩진 어설픈 서구식 개혁보다는 이슬람 원리주의 체제를 더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장장이 아들 출신으로 가난하게 살아왔다던 아흐마디 네저드의 당선에는 서민들의 지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란의 선거 결과에 대해서 부시 정권은 부당한 간섭과 흑색 선전을 그쳐야 한다. 중국 주장대로 부시 정권은 자국의 극히 낙후된 인권문제를 개선하는 일에나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란의 대통령 선거 이후 휘발유 값이 오르고 있다. 1ℓ당 소비자가격이 한국은 1415원이고 미국은 612원이다. 국민소득 기준으로 환산해서 한국이 100이라고 하면 미국은 12.6이고 일본은 30.3이라고 한다. 한국의 휘발유 값에서 세금의 비중이 무려 65%나 되는 것이다. 반면에 미국 정부가 아랍지역에서 전쟁을 벌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값싼 휘발유를 맘대로 펑펑 소비함으로써 지구 오존층의 구멍을 더 크게 넓히기 위해서라고 나는 이해한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36.1%를 차지하는 미국은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교토의정서를 승인하지 않았다.

상당 부분을 아랍지역에서 수입하는 석유에다가 터무니없이 높은 세금을 매기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는 아랍 이슬람 세계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납세자들에게 제공해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이란 주재 한국대사관의 홈페이지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전혀 얻을 수 없었다. 더 나아가,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 전에 한국 정부는 자이툰부대를 빨리 철수시키기 바란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이라크 국민들은 물론이고 아랍지역의 무슬림들을 모조리 반한적 투사로 만들어버리는 효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지금 주한 미군 기지 문제가 평택 시민 대다수의 대미 자세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듯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050714.jpg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보로 살지 않으려면 적어도 ‘소비의 속성’은 들여다볼 줄 아는 센스(!)가 필요하다. 자본은 무한정 증식하려는 본능을 가지며 그런 자본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구입하지 않거나 구입한 물건을 수명이 다하도록 사용하려는 ‘전통적인’ 태도는 매우 곤란한 것이다. 그런 태도를 무너트리기 위해 자본은 소비를 촉진하는 두 가지 공작을 한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필요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광고). 계속 새로운 물건으로 바꾸게 만드는 것(유행). 공작은 물론 갈수록 발전한다. 당대의 가장 감각적인 머리들(이른바 프로들)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지는 오늘의 광고는 옛 ‘약 선전’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요컨대 오늘의 광고의 목표는 어떤 상품의 쓰임새를 부풀려서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 상품을 문화로 만드는 데 있다. 알다시피 문화란 쓰임새를 뛰어넘는 것이다. 공작의 효과는 어릴 적부터 광고에 길들어 자란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진다. 그들에게 상품을 구입하는 일은 문화를 향유하는 행위이며 브랜드는 ‘장사꾼의 표찰’이 아니라 작가의 사인이다. 그들은 소비를 통해 문화적 감동에 빠지며 소비하지 못할 때 문화적 결핍에 시달린다. 물론 이건 젊은 세대만의 모습은 아니며, 심지어 우파만의 모습도 아니다. 우디 알랜은 <애니홀> 도입부에서 카메라(우리)를 보며 뇌까린다. “쇼핑백을 들고 카페를 전전하면서 사회주의를 외치는 인간만 아니면 됐죠 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