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화입문서가 논술참고서로 “변증법은 요즘도 나의 좋은 길잡이”
 
‘철학 에세이’ 개정4판 낸 조성오 변호사

“세상 모든 것은 변화한다, 또 모든 것은 연관돼 있다, 이 두 가지가 변증법의 요체이지요. 변증법 철학서가 20년 넘게 애독된다는 것도 놀랍고, 80년대엔 사회변화를 갈망하던 대학생들이 주로 읽었는데 요즘엔 고등학생들이 일부 논술 참고서로 애독한다는 출판사쪽 얘기를 듣고는 묘한 느낌도 들더군요.”

변증법적 유물론을 친근한 사례와 일화로 조근조근 풀어 쓴 책 <철학 에세이>(동녘 펴냄)의 저자 조성오(46) 변호사는 1983년의 초판 이후 최근 개정4판을 내며 “세상의 변화를 실감한다”며 “한편으론 변증법이 여전히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좋은 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4판은 이전 것보다 활자 크기를 더 키우고 만화가 이우일씨의 그림을 여러 컷 넣어 시원시원하게 편집됐다. “80년대엔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의식화’ 필독서였으나 몇 년 전부터 논술시험과 수능에 대비하려는 고등학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는 출판사 쪽 설명을 들으면 이런 편집의 진화가 이해될만하다.


책의 나이 22살 만큼이나 <철학 에세이>의 출판·인쇄 기록도 길어졌다.

출판 검열과 금서 탄압이 심했던 80년대에 동녘출판사는 지은이를 보호하려고 ‘편집부 지음’으로 초판을 냈고 89년 개정1판을 냈다. 93년엔 지은이의 실명을 밝힌 개정2판이 나왔으며, 94년 개정3판을 거쳐 이번에 개정4판이 나왔으니까 판수로 치면 5판째다. 그때그때마다 지은이와 출판사는 애독자들이 부적절하다며 지적해준 일화와 사례들을 조금씩 손질했다.

책이 “화장을 고치는” 개정판 때마다 그는 다른 곳에 있었다.

초판은 80년 신군부 시절에 두번째로 학교(서울대 법대)에서 제적된 그가 81년부터 서울 난곡동 빈민촌의 ‘낙골야학’에서 야학교사 생활을 할 적에 원고를 완성해, 83년 인천 노동현장에 들어가려고 준비하던 중에 출간됐다. 이어 첫 개정판 때에 그는 인천 노동현장의 한복판에 있었고, 2판은 그가 노동현장을 정리하고 나올 무렵에, 3판은 그가 대학에 복학하기 직전에 출간됐으며 이번 개정판은 2000년부터 시작한 변호사 생활 중에 나오게 됐다. 이렇게 보면 책의 기록엔 지은이 개인사의 기억도 아로새겨져 법하다.

그런데 이런 기록엔 약간의 ‘오류’가 있다. “<철학 에세이>라는 제목에다 이야기 식의 목차 덕분인지 당시 문공부 검열을 무사히 통과했는데, 나중에 운동권 학생들 집에서 이 책이 자주 발견되자 문공부가 뒤늦게 난처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공부 쪽이 ‘검열은 통과했으니 금서로 할 수는 없고 초판만 내고 말라’고 했고, 출판사 쪽은 개정·중쇄 기록 없이 89년까지 줄곧 ‘초판 1쇄’란 딱지를 달아 계속 책을 냈죠. 그래서 무려 6년 넘게 ‘초판 1쇄’가 유지됐습니다.” 그러니 이 책에 기록된 ‘통산 46쇄’만으로는 실제 발행 규모를 다 헤아릴 수 없다.

<철학 에세이>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그 배경에는 낙골야학의 교사 집단이 있었다.

“낙골야학 교사들 대여섯명이 함께 철학 강독 공부를 했는데 그렇게 정리된 내용을 책으로 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서 원고를 썼죠. 야학교사 생활을 하다보니 어려운 철학 개념도 실감나는 얘기로 풀어 말하는 경험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철학 에세이>는 야학공동체 속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죠.” 조 변호사는 “당시 낙골야학엔 나 말고도 여럿이 활동비 마련을 위해 사회과학 책들을 번역했고 더러는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간의 역사>(조성오 지음),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황광우 지음) 등이 이 무렵 이곳에서 태어났다. 80년대에 낙골야학은 야학공동체이자 아마추어 집필그룹이기도 했던 셈이다.

변증법 철학서의 지은이인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은 ‘이렇게 살라’고 어떤 법칙을 주는 게 아니라 너무도 다양한 이 세상을 바로 보는 현실적이고도 낙관적인 태도를 가르치는 것 같다”며 “변증법은 요즘도 나의 좋은 길잡이”라고 말한다. 글·사진 오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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