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 '불발탄' 처리 놓고 주민-미군 이틀째 대치
  <속보> "환경오염 실태조사부터 해야…희귀 조류 서식 확인"
  2005-08-16 오후 5:41:50
  매향리 농섬의 불발탄 처리를 놓고 미군과 지역 주민들이 이틀째 대치 중이다. 미군은 농섬을 폭파시키는 식의 처리는 피할 뜻을 밝혔으나 지역 주민들은 공개적인 환경오염 실태조사부터 실시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매향리 '불발탄 처리', 주민-미군 이틀째 대치
  
  우리 정부로의 이양을 보름 앞둔 16일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농섬에서는 이틀째 지역주민, 환경운동가와 미군이 불발탄 처리 문제를 놓고 대치했다.
  
  환경운동연합 등에 따르면 15일 밤 농섬에서 일단 철수했다가 이날 오전 11시께 농섬에 재상륙한 지역주민과 환경운동가 20여 명은 이날 미리 농섬에 들어와 굴착기를 동원해 땅에 박힌 불발탄을 모으고 있던 미군의 작업을 막았다. 결국 미군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한 시간 만인 12시 정도에 장비를 두고 섬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는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지는 미군의 일방적인 불발탄 제거 작업을 용납할 수 없다"며 "미군이 폭탄 제거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농섬을 폭파하는 방식을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지역주민들과 미군 사이에 불발탄 제거 방식 및 장기적인 환경복원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대치 국면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오염 실태 조사부터 미군 부담으로 실시해야"
  
 
15일 불발탄 처리를 위해 농섬에 상륙하려던 미군과 주민들이 대치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한편 이런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대해 미군은 16일 "농섬을 폭파하는 방식 대신 불발탄을 수거한 뒤 인천 부평구 소재 기아고철수집소로 운반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지역 주민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매향리에서 지역주민들과 연대 활동을 벌이고 있는 환경연합 황호섭 국토생태팀장은 16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SOFA) 규정상 미군의 반환ㆍ공여지에 대해 3단계에 걸쳐 사전에 공동으로 환경오염 실태 조사를 해야 한다"며 "이번 갈등은 미군 측이 일방적으로 이런 정당한 절차를 거부한 채 불발탄 제거 작업을 독자적으로 강행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팀장은 "농섬을 폭파하지 않겠다는 미군 측의 입장이 언론에 보도된 지금까지도 주민들은 미군이나 국방부로부터 사격장을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며 "이런 태도가 54년간 사격장을 제공하면서 온갖 고통을 감내한 주민들을 더욱더 분노로 몰아넣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팀장은 "미군은 단 보름 만에 불발탄 제거, 오염된 토양 등 생태계 복원 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공개적인 환경오염 실태조사를 공동으로 실시한 후 그 결과에 따라 복원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연히 여기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 역시 미군이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농섬 인근 갯벌에서 저어새 발견돼…철새들 중간 기착지로 이용
  
 
  매향리 사격장의 폭격은 54년 만에 멈췄지만 곳곳에는 그 상흔이 가득하다. ⓒ프레시안

  현재 농섬은 공군 사격 훈련으로 3분의 2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희귀 조류 등이 인근에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돼 생태계 복원의 중요성이 더욱더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농섬 인근에 조성된 화성호에서는 2003년부터 멸종위기종인 저어새가 서식하고 있는 것이 발견됐으며 15일에도 농섬 인근 갯벌에서 저어새가 포착됐다. 농섬 주변 매향갯벌은 봄ㆍ가을 이동하는 도요새, 물떼새와 같은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도 이용돼 왔다.
   

 

 

 

어질러 놨으면 '제대로' 정리해 놓고 가는게 '상식' 일텐데.
웃기는 짬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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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임형욱 출판 컬럼] 죽어가는 출판문화, 어떻게 살릴 것인가?

[임형욱 출판 컬럼] 죽어가는 출판문화, 어떻게 살릴 것인가?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06-14 11:56]    
아래의 글은 2005년 6월 14일 2시, 문화연대와 참여연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출판·독서문화 진흥을 위한 정책토론회 ’의 발제문 전문이다.

데일리서프라이즈의 칼럼연재를 계기로 본의 아니게 도서정가제 관련 논의에 참여하게 된 까닭에 도서정가제와 출판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되었다. 이로써 도서정가제에 관련한 이야기는 마무리 짓고 다음 연재부터는 다른 주제를 다룰 예정이다.

공식 발제문인 까닭에, 앞서의 칼럼과는 달리 이번 칼럼이 경어체로 씌어진 점과 일부 내용이 앞의 칼럼과 중복되는 점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의 넓은 이해를 구하는 바이다. <필자 주>

들어가는 말

데일리서프라이즈의 칼럼연재 제안을 받고 그 동안 도서정가제 개정안을 둘러싼 일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단상들을 정리하여 두 차례에 걸쳐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전혀 뜻하지 않게 문화연대와 참여연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정책토론회에 발제자로 제안을 받게 되자 솔직히 많이 당혹스러웠습니다.

‘과연 내가 도서정가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출판유통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고, 저희 출판사 직원들의 반대도 있었으며, 제가 가진 지극히 주관적인 ‘소수의견’에 대한 우려와 함께 여러 가지 참고할 만한 정보들을 들려주시는 동료 출판사 사장님들도 있었습니다.

주변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가 발제자 요청을 수락하게 된 것은 제가 가진 생각들이 지금 논의되고 있는 도서정가제 개정 방향이나, 극심한 불황 속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출판계에 혹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들어가기에 앞서 몇 가지 입장을 먼저 밝히고자 합니다.

우선, 저는 도서정가제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도서정가제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 과정과, 또 도서정가제의 시행기간과 할인율 규제 등에 대한 부분적인 문제에 대한 것들이지 도서정가제 시행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란 점을 밝혀둡니다.

또한, 제가 가진 생각들은 출판계의 한 귀퉁이에 겨우 이름을 걸쳐두고 있는 한 출판인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제 생각들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고민의 소산일 뿐이며 출판계 내부의 다수의견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와, 앞으로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여러 입장들이 반영되고, 가능하다면 하나의 합의안이 만들어져서 출판계와 온/오프라인 서점계, 그리고 독자들 모두가 납득하고 환영할 만한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 개정안 논의의 문제점

현재 발의되어 있는 출판 및 인쇄진흥법 개정안은 기존의 출판 및 인쇄진행법이 담고 있는 ‘합의 정신’을 깨뜨리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법(출판 및 인쇄진흥법)은 40~50%에 이르던 살인적인 할인판매율로 인해 공멸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던 온라인서점과 오프라인서점, 그리고 출판사들이 진통 끝에 합의를 통해 도출해낸 법안 입니다.

이 법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도서정가제를 실시한다는 것, 그리고 온라인 서점에는 10%의 할인을 허용한다는 것, 그리고 이 법안을 2007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한다는 것 등입니다.

그런데 지금 논의되고 있는 도서정가제법 개정안은 이 중에서 ‘온라인서점 10% 할인 허용’과 ‘2007년까지 한시적 시행’이라는 기존의 합의사항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시행과정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견되었다면 그 부분을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 합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방식의 개정은 곤란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현재 발의된 도서정가제 개정안은 충분한 의견수렴과정 없이 출판사와 오프라인서점 주도로 진행되었다

지난 3월말에 발의되고 4월초에 공청회를 거친 출판 및 인쇄진흥법 개정안은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많은 논쟁의 여지를 안고 있는 법안입니다.

그런데 출판사-온/오프라인서점-독자(생산자-판매자-소비자)로 이어지는 3자가 서로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예민한 사안에 대하여 온라인 서점과 독자의 입장은 무시하고 출판사와 오프라인 서점만의 입장을 반영한 법안을 일방적으로 발의했다는 것은 절차상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심지어 지난 4월초에 국회 헌정회관에서 있었던 도서정가제법 개정안 관련 공청회조차도 애초에는 온라인 서점 관계자를 토론자로 초청하지도 않았다가 온라인 서점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행사 전날 부랴부랴 온라인 서점연합회 회장인 예스24 대표를 초청자로 끼워 넣었다는 사실은 이 법안의 개정 과정이 최소한의 형식적 협의과정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일체의 도서할인을 금지하겠다는 법안의 핵심적인 내용과 함께, 이런 절차상의 문제가 독자들과 네티즌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고, 이로 인해 개정안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표류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다행히 6월 23일에 국회 문광위 소속 국회의원 전체가 참석하고 출판사, 온/오프라인서점, 독자들과 시민단체를 대표할 수 있는 분들이 다시 모여 전문가 공청회를 연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런 자리‘들’을 통해 각자의 입장들이 개진되어 충분한 토의 끝에 합의안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진행중인 도서정가제 개정안은 반독자적, 반시장적 정책이다

출판은 ‘문화상품’입니다. 그런데 방점을 ‘문화’에 두느냐, ‘상품’에 두느냐에 따라 도서정가제 개정안에 대한 평가는 확연하게 달라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명색이 현직 출판사 대표라는 제가 책은 ‘상품’만이 아닌 ‘문화’이기도 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 발의된 개정안이 친문화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출판사나 오프라인 서점 입장에서는 대환영할 만한 일이지요.

그러나 과연 ‘책’이라는 것이 출판사와 서점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 문화(또는 상품)일까요? “완전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결국은 독자에게도 득이 된다”는 주장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까요? “전자제품도 할인되고, 세상 모든 제품들이 다 할인되는데 왜 유독 책만 할인이 안된다는 말이냐”는 독자들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 없는 주장일까요? 출판계는 이러한 불만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서 얼마나 설득력 있는 설득작업을 해왔던가요?

독자들로부터 거의 신뢰받지 못하고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완전도서정가제 시행을 밀어붙이고 있는 출판계를 보면서, 별로 서비스 개선되는 일도 없이 매번 인상될 때마다 서비스 개선을 들먹이며 (승객들과 택시 운전사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오로지 택시 회사 사주의 주머니만 불리는 택시요금 인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저만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최종 소비자인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여러 가지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충분히 많이 가지기를 부탁드립니다. 독자들을 충분히 납득시킬 자신이 있다면 ‘100분 토론’ 같은 TV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적인 토론을 벌여보는 것을 권합니다.

최근 출판시장 붕괴의 근본적인 원인을 먼저 찾아야 한다

저도 도서정가제 도입의 기본취지에 대해 찬성하고, 출판시장이 하루 속히 회복되어 예전의 생기 있는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저는 최근의 출판 불황이 오로지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지 않아서라는 식의 분석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도서정가제가 영화계의 스크린쿼터제처럼 일정 부분 출판시장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고,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출판시장 생존의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 노력 없이 도서정가제만을 출판계 생존의 유일한 방패막이나 회생의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도서정가제도 미비한 문제들을 보완하여 (반드시 합의의 토대 위에) 개정될 필요가 있습니다만, 동시에 출판계가 유래 없는 극심한 불황에 빠져들게 된 구조적인 문제들을 찾아내어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출판시장 붕괴의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불완전한) 도서정가제

많은 분들이 현재 출판계 불황의 원인 중 하나로 불완전한 현행 도서정가제를 꼽고 있습니다.

애초의 10% 할인판매 허용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30%를 전후하는 마일리지를 제공하고 여기에 무료 배송료까지 합치면 실질적으로 40~50%까지 할인이 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오는 온라인 서점의 공격적인 영업방식이 경쟁력을 갖지 못한 중소형서점들에게는 직격탄이 되고 있다는 것에는 별로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도심 요지에 자리 잡은 입지요건을 갖추고, 다양한 도서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잘 교육받은 북마스터들이 질 좋은 독자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서점들은 나름대로 온라인 서점의 할인공세에 대항할 여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동네서점들이 책값이 싼 온라인서점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출판시장 붕괴의 모든 책임을 온라인 서점에게만 돌리고, 또 완전도서정가제만 시행되면 동네에 있는 중소형서점들이 다시 되살아날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완전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지금 줄을 잇고 있는 중소형서점들의 부도와 폐업사태를 어느 정도까지는 늦추어주거나 막아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왜 독자들이 동네서점을 외면하고 있는지 그 원인을 먼저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오로지 온라인 서점의 할인판매 외에는 다른 구조적인, 또는 내부적인 문제는 전혀 없는 것일까요?

문화관광부를 비롯한 관계 당국들도 출판의 실핏줄이라고 할 수 있는 동네서점들을 살릴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제도를 찾아보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뜩이나 힘든 불황의 시기에 그간의 할인을 금지하고 이제부터는 정가대로만 책을 사라고 하는 출판계와 오프라인서점의 주장은 과연 얼마나 독자들에게 설득력이 있을까요?

일체의 할인판매가 금지되는 완전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온라인서점에 빼앗겼던 일부 독자들이 오프라인서점으로 돌아오는 결과는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도서정가제가 이미 출판계에 등을 돌린 독자들을 얼마나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요? 혹시라도 더 많은 독자들이 떠나게 하는 부메랑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요?

영상세대로 변해가는 독자들

최근의 독자들이 책 앞에 앉는 시간보다는 핸드폰과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은 이미 상식적인 이야기일 것입니다.

예전처럼 대부분의 정보와 지식을 책에서 찾던 문자세대에서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그것을 대신하는 영상세대로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세대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한 텔레비전과 영화 등은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해가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세대는 오프라인세대에서 온라인세대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출판도 여기에 대응해서 온라인이나 영상매체가 대신할 수 없는 책만이 갖는 고유한 부분들을 발전시키고, 또 영상세대에 맞추는 새로운 기획들을 선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도 ‘마법천자문’이나 ‘한국생활사박물관’ 같은 기획들은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출판도 독자의 변화에 발맞추고 때로는 독자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독자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도서정가제 개정안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의들은 거의 전적으로 독자들을 무시하고 있으며, 독자들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독자들을 충분히 설득할 자신이 없다면 완전도서정가제는 미루어져야 합니다. 소비자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밀어붙이기식으로 개정되는 완전 도서정가제는 독자들을 출판시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불신당한 채 출판시장에서 독자들을 내쫒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책이라는 문화 또는 상품의 최종소비자인 독자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도서정가제가 과연 얼마나 독자들을 출판문화 또는 출판시장 앞으로 불러 모을수 있을까요?

대형서점들의 체인화, 대형 할인매장의 서점시장 잠식, 그리고 홈쇼핑의 등장

대형서점의 지점이 지역에 들어온다고 해서 지역서점들이 거리 곳곳에 플래카드를 내걸고 머리띠 매고 항의시위를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독자들이야 대형서점 들어오니 환영할 일이겠지만 지역서점들로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이런 풍경들을 쉽게 볼 수는 없습니다. 항의시위를 해서 막기에는 이미 대세가 되어버린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대형서점들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차별화전략으로 꿋꿋하게 살아남은 부산의 지역서점들 같은 사례도 있습니다.

대형 할인매장들의 서점 운영도 지역의 서점들에게는 치명타가 되었습니다. 도서정가제가 도입된 뒤부터는 그나마 조금 영향력이 줄어들긴 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대형매장에서 운영되는 서점들이 지역서점에 미치는 영향력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동양 최대를 자랑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도매상이 대형할인점에 책을 공급한다는 이유로 해당 할인점이 있는 지역의 서점들이 그 도매상에서 주문한 책들을 전량 반품해버리는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겠습니까?

그리고 최근에는 TV 홈쇼핑에 도서할인 판매도 등장했습니다. 작년 한해 이름난 베스트셀러나 아동서적, 시리즈물을 중심으로 홈쇼핑에서 책을 팔아 짭짤한 매출을 올린 출판사들이 꽤 된다지요?

이렇게 중소형서점, 동네서점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많이 있습니다. 온라인서점의 할인판매만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지역서점들의 과당경쟁, 지역 토착화와 전문화 실패

최근 중소형 지역서점들이 연이어 부도와 폐업의 위기로 내몰리는 것은 지역서점 자체적인 문제들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부평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부평이라는 한정된 지역을 놓고 너덧 개나 되는, 너무 많은 중대형 서점들이 몰려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인근의 부천이나 인천과도 경쟁을 해야 했지요. 결국 이 중 하나인 한겨레문고가 지난 5월말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비싼 임대료를 물고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이나 부도심에 매장을 낼 수 없는 지역서점들의 경우에는 결국 그 지역의 특색에 맞추어 토착화하거나 그 지역 독자의 취향에 맞는 전문화 서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청소년전문서점으로 자리를 굳힌 부산의 인디고서원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하겠지요.

온라인 서점, 대형 서점의 지역 체인, 대형할인매장 직영서점 등 수 많은 라이벌들과 경쟁해야 하는 동네서점들을 살릴 생각이 있다면 이런 지역서점들에게 직접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형 출판사들의 횡포: 한도액 설정과 담보물 요구

지금 중소형 지역서점들이 문을 닫고 중소형 출판사들의 폐업 사태가 이어지는 데는 대형 출판사들의 책임이 아주 크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1997년 IMF 위기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형 도매상들의 부도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피해를 입은 출판사들이 자구책 차원에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토지나 건물 또는 예금계좌 등을 담보로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일정액수를 넘어가는 도서대금에 대해서는 꼬박꼬박 현금으로 챙겨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부러움을 느낀 적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출판 불황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도매상이나 서점들에 한도액을 설정하고 담보물을 요구하는 대형 출판사들의 횡포 때문이라는 것은 제 생각만은 아닐 것입니다. 출판계 내부에서 여러 번 문제 제기가 되었지만, 그때마다 ‘출판사와 서점간의 사적 계약’이라거나 ‘출판계 내부에서 협의해서 해결해야 할 관행’이라는 이유로 슬그머니 덮여버리곤 했지요.

대개 몇 백만 원을 한도로 정해놓고 그 이상을 넘어가는 도서대금에 대해서는 현금으로 받아가는 대형 출판사들 때문에 도매상들과 지역 서점들은 허리가 휠 지경이고, 그 출판사들 현금 맞추어 주느라 그렇지 못한 중소형 출판사들에는 ‘문방구어음’이라고 부르는 자가어음을 끊어주거나 고작 몇 만원씩 지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지 않습니까?

저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무기로 이렇게 한도액을 설정하고 담보를 요구하는 대형 출판사들의 (법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이나 도덕적으로는 지극히) 부당한 횡포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 해 매출이 200억이니 300억이니 하는 자랑스러운(!) 출판사들이 수십 개가 있으면서 동시에 수십 수백 개의 서점들과 중소형 출판사들이 부도와 폐업을 하는 부끄러운(?) 현실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유통의 구조적 문제

문제는 유통입니다. 출판유통이 바뀌지 않고는 출판이 살 길은 없습니다.

완전 도서정가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중소형서점들이 문을 닫는 시간만 좀더 늦춰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으며, 수백 수천억 원 매출을 올리는 초대형 출판사들이 앞으로 줄줄이 생겨나더라도 수백 수천만 원 때문에 문을 닫게 되는 중소형 출판사들이 뒤로는 줄줄이 죽어나갈 것입니다.

대형서점은 계속해서 체인점들을 늘려 가는데 지역서점들은 점점 동네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유통입니다. 도서정가제가 이런 불합리한 출판유통 질서에 일정 정도 방패막이 역할을 하긴 했지만, 완전도서정가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출판유통의 구조적인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출판계 불황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출판유통에 있다고 봅니다만, 자세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부실한 도서관 시스템

도서관이 살아야 서점이 살고 출판사가 삽니다.

도서관 문제는 수많은 사람이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정말 지긋지긋하게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입니다. 미국의 어떤 대학 도서관 예산이 우리나라 전체 도서관 예산보다도 많다느니, 외국의 어떤 대학 도서관은 장서가 몇 천만권인데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 장서는 몇 십만 권이라느니….

이런 소리, 이제 지겹습니다. 이런 소리 지겹도록 들어도 도서관 늘릴 생각도, 사서를 늘릴 생각도, 도서관 장서를 늘릴 생각도 의지도 계획도 없는 정부나 지자체들을 보는 것은 더더욱 지겹습니다.

공립이든 사립이든, 대학도서관이든 동네도서관이든, 어린이도서관이든 어른도서관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전국에 제대로 된 도서관 500개가 있어서 제대로 된 양서 4권씩만 구입해서 장서로 비치해주면, 좋은 양서의 초판 정도는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전국 도서관에 제대로 된 사서가 한 사람이라도 박혀 있어서 제대로 된 양서들만 골라낼 줄 알고, 사서가 없으면 학생들이나 주민들이 신청한 도서들이 꼬박꼬박 구입되는 시스템만 갖춰져 있어도 출판사가 살고 서점이 삽니다.

정부 당국자들이 정말 출판을 살리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도서관 수를 늘리십시오. 새로 짓기가 힘들면 기존에 있는 도서관이라도 제대로 지원하십시오. 공연히 컴퓨터 들이고 건물 짓고… 눈에 보이는 데 돈 쓰지 마시고 사람에 투자하시고 책에 돈 쓰십시오, 제발.

불황…, 구조적이고도 장기적인 불황…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에 불황이 닥치면 영화관이 넘쳐나고, 일본에 불황이 닥치면 서점이 붐비고, 한국에 불황이 닥치면 삽겹살집이 바쁘다.’

미국은 불황에는 해변이나 해외로 가던 휴가를 영화관에서 대신 보내고, 일본은 어떻게 하면 불황을 극복할까 책을 사보면서 연구하는데, 한국은 ‘불황을 만든 놈이 누구냐’며 삽겹살을 대신 씹는다는 거지요.

삽겹살집과 출판사나 서점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한국이 불황기로 막 접어들고 있던 2003년 2월에 전격적으로 도입된 도서정가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든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든, 서점으로 향하던 독자들의 지갑을 얼어붙게 만든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금이라도 싼 것을 찾는 것이 소비자들의 심리인데, 그것을 막아버렸으니 (일부) 독자들이 책에서 등을 돌려버린 것은 당연하지요.

어려운 때일수록 독자들이 등을 돌리는 정책이 아니라, 떠나간 독자들이 다시 찾아오게 하는 정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도서정가제 개정의 방향과 원칙

지금 논의되고 있는 도서정가제가 출판계와 오프라인 서점계가 바라는 대로 항구적 완전도서정가제로 결론날 수도 있고, 또는 일정 정도 논의와 타협을 통해 지금의 개정안과는 다른 모습의 합의안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무성한 논의만 진행되다가 흐지부지 예전 안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될 수도 있겠지요.

어떤 모습이 되었든 간에 충분한 토의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합의안이 나오기를 바라는 바람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도서정가제 개정 방향의 원칙을 말씀드려 봅니다.

도서정가제 개정은 출판사, 온 오프라인 서점, 독자 등 이해 당사자의 충분한 입장이 토의되고 수렴되어야 하고 가능하면 합의에 의해서 개정되어야 한다

어쩌면 출판사와 오프라인 서점, 그리고 독자와 온라인 서점으로 서로의 이익과 입장이 양극화되어 쉽사리 합의안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가 그렇게 나온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이 있어야 합니다.

결과가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는) 정당하고 적법하다고 할지라도 절차적 정당성 없이 서둘러 진행된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인정받기 힘들다고 봅니다. 물론, 가능하다면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상생점을 찾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도서정가제 개정은 경쟁력 있는 대형 출판사나 대형 서점들보다는 경쟁력이 약한 중소형 출판사와 중소형 서점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2004년, 사상 유래 없다는 그 불황 속에서도 300억, 200억 매출을 달성한 출판사 관계자분들께는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점 폐업과 부도의 소문 속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내고 꾸준히 지점들을 늘려온 대형서점 관계자 여러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아직 한국의 출판계가 이만큼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논의되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이나 출판유통 구조의 개선안 이야기 속에서는 충분히 (자생할) 힘이 있는 대형 출판사나 대형 서점들보다는 생존의 위기 속에 허덕이고 있는 작은 출판사들, 동네서점들에게 보다 힘이 되고 이익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완전도서정가제가 도입되는 것이 진짜 소형 출판사와 동네서점들을 살리는 길이다, 이런 입에 발린 원론적인 이야기 말고 좀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고 좀더 구체적인 실천될 수 있는 방안들이 논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정가제 개정은 서점과 독자들에게만 의무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와 서점, 도매상, 독자 모두가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정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온라인 서점들에게만 유리하고 오프라인 서점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제도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고쳐야겠지요.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온라인 서점의 (살인적인) 할인 판매가 온라인 서점 독자적인 노력만으로 가능했을까요? 여기에는 혹시라도 출판사(들)의 적극적인 협력, 또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요?

저는 어떤 형태로든 출판사의 협조 없이 무제한적인 할인판매가 가능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도서정가제라는 틀 안에서는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온라인서점의 할인 판매가 문제라면 원인을 제공한 출판사에도 그 책임을 물어야 옳습니다.

모든 의무와 규제는 독자와 서점, 그리고 출판사가 골고루 나누어 져야 옳다고 봅니다.

도서정가제 외에 출판 산업 전반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현실적인, 구체적인 대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제가 도서정가제 도입을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완전도서정가제 도입을 서두르는 출판계나 오프라인 서점들의 움직임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하고 짐짓 딴지 거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완전도서정가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 않습니까?

현행 도서정가제가 놓치고 있는 마일리지 문제 같은 것이 있으면 그 부분을 다시 논의하고 합의해서 반영하면 될 일인데, 독자들이 등 돌릴 것이 너무나도 확실한 완전도서정가제로 가자는 주장은 적어도 제게는 ‘완전도서정가제=만병통치약’의 공식처럼 읽힙니다. 이것이 만병통치약이 될지, 위약(僞藥)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은 시장의 몫이고 독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도서정가제 외에도 정부 당국이나 출판계가 힘을 쏟아야 할 것은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최근에 로또기금으로 문예진흥원에서 실시하는 ‘힘내라 한국문학’ 프로그램 같은 경우도 약간의 부작용은 없을 수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창작문학을 살리는 데는 실제적인 힘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대표도서 100권 선정’ 같은 경우도 선정과정과 번역과정 등에서의 잡음이 있긴 했습니다만 어쨌거나 한국의 출판을 세계에 알리는 데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의 출판계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간행물윤리위원회 등에서 각종 추천도서나 권장도서를 선정하고 있고 일부에는 일정부분 해당도서를 구입해서 도서관에 배포하고도 있습니다만, 이런 각종 추천도서나 권장도서로 선정된 책들은 꼬박꼬박 도서관에 납품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일 중 하나는 도서관을 살리는 일입니다.

도서정가제 개정과 함께 한국의 출판유통 구조를 구조적으로 개선하는 일이 필요하다

도서정가제 개정 움직임을 지켜보는 저의 개인적인 불만 중 하나가 뭐냐 하면 실제로 돈이 들어가고 인력이 투입되는 일을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으면서 정부나 국회가 (법안통과를 위한) 방망이 두드리는 일에 더 신경 쓰는 듯한 인상이 든다는 것입니다.

도서정가제 법안을 살펴봐도 어디 출판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돈을 얼마 쓰겠다, 인력을 어떻게 투입하겠다는 이야기는 없고, 죄다 이건 안 되고 저건 안 된다는 규제 밖에 없습니다. 규제는 출판시장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은 하겠지만, 출판시장을 살려주거나 세워주는 역할은 하지 못합니다.

출판사, 서점, 독자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은 이번 도서정가제 개정안으로 부디 끝내시고, 다음부터는 출판사와 서점과 독자들을 위해 “이것을 하겠다”는 법안을 만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가장 먼저 “하셔야 할” 일은 출판유통 구조를 개선하는 일, 도서관을 살리는 일입니다.

도서정가제 개정을 위한 현실적인 제안들
-도서정가제 개정안에 반영되었으면 하는 몇 가지 것들


[1안] 기존의 도서개정안 제정의 합의정신으로 되돌아가 온라인 서점 10% 할인(마일리지 포함)을 허용한다

기존의 도서정가제법의 핵심적인 내용은 ‘온라인 서점 10% 할인’과 ‘2007년까지 한시적인 시행’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발의된 개정안이 이 두 가지 핵심적인 합의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이라도 저는 애초의 합의정신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번 발제를 위해 나름대로 조사를 하고 조언을 구해본 결과로는 완전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측에서도 온라인 서점에서 ‘마일리지 포함 10% 할인’하는 것에 대해서는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하고, 온라인 서점 측에서도 대체로 ‘10% 할인 안’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로의 입장이 이 정도 선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면 더 이상의 감정적 대립을 벗어나서 타협하는 것이 옳지 않나 생각합니다.

‘2007년까지의 한시적 시행’ 문제도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한시적으로 둘지, 항구적으로 가져갈지 합의가 가능한 문제라고 봅니다.

[2안] 온라인 서점의 10% 할인 판매를 허용하는 대신 오프라인 서점의 10% 마일리지를 허용한다

“온라인 서점만 할인하고 오프라인 서점은 할인을 할 수 없는 것은 불공평하다, 위헌이다”라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도서정가제에서 가장 문제가 되어왔던 것이 마일리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제안해보면 어떨까요?

‘온라인 서점은 10% 할인 판매를 허용하는 대신 더 이상의 마일리지를 허용하지 않고, 오프라인 서점에는 10% 할인 판매를 허용하지 않는 대신 10%의 마일리지를 허용한다.’

지금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온라인 서점의 무제한적인 마일리지를 비판하지만 오프라인 서점도 마일리지 문제에서는 별로 자유로울 것이 없습니다. 제가 이용하는 대형서점과 지역서점만 해도 각각 3%와 5%의 마일리지를 적용해주고 있더군요.

현재로서는 마일리지 문제에 대해서는 온 오프 모두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인데, 온라인에는 10%의 현금 할인을, 오프라인에는 10%의 마일리지 적립을 허용하는 선에서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안] 온라인 서점과 함께 중소형 서점들도 10% 할인판매를 허용한다

기존의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난 후에 온라인서점들의 경우 매출은 줄었지만 수익성은 좋아졌다고 합니다. 체인형 대형서점들도 매출은 거의 그대로거나 약간 줄었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체인점들을 늘리고 있는 것을 보니 수익까지 나빠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 와중에서 죽어나는 것은 중소형 지역서점들입니다.

이러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동네에 있는 작은 서점들에도 독자들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동네서점들에도 온라인 서점처럼 10% 할인판매를 허용한다면?

그렇다면 유동인구나 규모, 서비스 등에서 장점을 가진 대형 서점 그리고 할인과 다양한 정보, 편리성 등에서 장점을 가진 온라인 서점에 대항해서 ‘가까운 곳에 있다’ 장점과 함께 할인 판매라는 장점이 하나 더 생겨서 조금은 더 경쟁력이 생기지 않을까요? 공정거래위원회나 헌법재판소만 누가 말려주신다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4안] 출판사에서 도매상과 서점 등에 공급하는 공급률을 법률로 제한한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온라인 서점의 할인판매나 대형 서점에서는 할인판매는 출판사의 적극적/소극적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출판사에서 도매상이나 온 오프라인 서점에 공급하는 공급률 문제를 해결하면 과도한 할인판매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오프라인 소매 서점의 경우는 정가의 70%에(출판사, 서점, 책에 따라 ±5%는 허용), 도매상과 온라인 서점의 경우는 정가의 60%에(출판사, 서점, 책에 따라 ±5%는 허용) 책을 공급하도록 법률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위탁 판매가 아니라 현금 매절 판매일 경우에는 5~10% 추가 할인 공급을 허용할 수도 있겠지요. 구체적인 공급률의 문제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협의하여 결정하면 된다고 봅니다.

이렇게 하면 베스트셀러가 나왔다고 또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정가의 37~45%에 공급하는 겁 없는 출판사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있다고 현금 매절도 62%~65%에 가져가라는 힘 있는 출판사도 없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5안] 도서정가제 위반에 대한 과태료 규정을 바꾼다

현행 도서정가제법에는 위반시 과태료 규정이 건당 100만원(도서정가 미부착시 출판사에서 내는 과태료)~300만원(정가판매 위반시 서점에서 내는 과태료) 등으로 획일화되어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런 과태료 규정은 소형 출판사나 소형 서점에게나 부담스러운 액수일 뿐, 연 매출이 수십 수백 억원에 이르는 대형 출판사나 대형 서점들에게는 전혀 부담 없는 액수입니다. 사실 수백억 매출인 회사에서 300만원 과태료라고 해봐야 새발의 피 정도에 지나지 않지요. 이래서야 부담을 느끼겠습니까?

과태료 규정을 일정액수로 제한하지 말고 ‘적발된 액수 총액의 최대 몇 배’ 이런 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온 오프라인 서점에서 도서정가제를 위반한 액수가 총액 5만원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만약 30배 과태료 규정이 있다면) ‘5만원 × 30만원 = 150만원’ 이런 식으로 과태료를 물리는 겁니다. 많이 위반할수록 과태료 액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겠지요.

여기에 삼진아웃제를 도입해서 처음 한두 번은 과태료 부과로 끝나지만, 3번째는 사업자 등록취소 등 강력한 처벌규정을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냥 과태료 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 등록 다시하고, 상호 바꾸는 등등 여러 가지로 고생스러운 일들이 뒤따르게 하는 등 위반시 처벌 규정도 좀더 실제적인 부담이 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6안] 도서정가제 위반 신고시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한다

예전에는 “사재기도 마케팅기법 ”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몰지각한 출판사도 있었습니다만, 최근에는 드러내놓고 사재기하는 출판사가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출판사들도 여전히 있어서 아직도 암암리에 사재기를 하는 출판사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출판계에서는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최근에 이런 사재기가 한번도 적발된 적이 없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얼마 전 제가 자주 보는 인터넷 신문 기사를 보니 요즘 동네서점들의 쓸쓸한 풍경을 기사를 다룬 와중에 그 서점 주인 이야기가 “옆 동네에 도서정가제 어기고 할인 판매하는 서점이 있기는 하지만, 늘 지키고 서 있을 수도 없고 해서 포기하고 말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도서정가제라는 룰이 정해졌는데도, 게임의 룰을 어기고 혼자서만 이익을 보겠다는 이런 얌체같은 출판사나 서점들을 위해서 신고포상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요?

한 건 신고하는 데 신고포상금은 10만원 정도, ‘책파라치’의 양산을 막기 위해서 일인당 연간 10회를 넘기지 못하는 정도의 상한선을 두고. 물론, 신고자의 익명성은 보장되어야 ‘내부고발’도 가능하겠지요.

출판유통 구조개선을 위한 조금은 비현실적인 제안들
-좀더 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할 몇 가지 것들


위에서 제안한 몇 가지 제안들은 일부 위헌적인 요소들이 포함된 것도 있고, 또 법률로 규정하기보다는 출판계 내부에서 내부규약으로(헌법보다 더 힘이 센 ‘관습법’으로) 정하는 것이 더 나을 법한 제안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제안들은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금방 법률로 규정하여 시행 가능한(“하지 말라”는) 제안들인데 반하여, 아래에서 이야기할 제안들은 시행 과정에 많은 준비와 돈과 인력이 뒤따르는(“하겠다”는) 제안들입니다. 따라서 조금은 비현실적일 수도 있는 제안들입니다.

중소형서점을 살릴 수 있는 진짜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자본이 많은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는 부익부빈익빈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출판계도 예외는 아니지요. 큰 출판사는 합병을 하고, 자회사를 늘리고, 성과급제를 동원하고…, 늘리고 키우고 더 커집니다. 대형서점들도 종로에, 강남에, 인천에, 부산에, 대구에 지점들을 늘리고 늘리고 또 늘립니다.

그 사이에 중소형 출판사들은 우리도 대형이 되어보자고 기를 쓰고 애를 쓰고 편법도 쓰고, 그러다가 때로는 소리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중소형 서점들은 온라인 서점의 약진과 대형 서점 체인점의 돌진 앞에 속수무책 변변한 저항도 제대로 못해보고 줄줄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중소형서점들을 살려야 합니다.

출판계는 그래도 나름대로의 적응력이 있어서 출판협동조합처럼 공동의 유통구조도 실험해보고, (제제는 그림의 떡 같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출판금고 같은 것이 있어서 자금 지원의 가능성이라도 열려 있고,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행사에는 출판계는 거의 단돈 한 푼 내놓는 게 없어도 정부 지원금 받아내는 능력이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소형서점들을 위해서 정부가 한 일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출판금고처럼 서점금고 같은 것이라도 있는지요? 출판사 또는 출판단체에 지원하는 것처럼 서점 또는 서점단체에 자금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출판이 ‘문화’라면 서점도 ‘문화’의 일부인데 서점 ‘문화’를 위해서는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중소형 서점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일종의 인센티브(위에 제안한 3안)를 주든지, 여러 악재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소형 서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자금지원, 시설지원, 제도지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역 서점을 통해 그 지역에 있는 학교도서관이나 학교에서 도서를 구입할 때 해당학교에 도서구입비의 10% 정도를 지원해준다든가 학교 평가점수를 높여준다든가 하는 지원을 해줄 수도 있겠고, 전국의 초·중·고등학교를 그 지역에 있는 지역 서점과 자매결연을 맺고 서점에서 학교를 방문하여 도서지도를 하거나 도서관 관리를 자문한다든가, 학생들에게 자매결연 서점을 자주 이용하도록 홍보한다든가 하는 운동을 벌일 수도 있겠지요.

맨날 문화 문화 떠들지 말고 제대로 서점 ‘문화’ 한번 살려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입으로만 살리지 말고 돈으로 살리고 발로 살리는 것을 한번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다못해 중소형 지역 서점 주인들을 모아놓고 공청회라도 한번 갖는다면 보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것입니다. 부디 담당 공무원 여러분께서는 동네에 있는 서점주인을 만나 한 1시간만이라도 이야기를 들어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공동구매제, 중소형 서점 연합 온라인 서점 운영 등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출판사 하시는 분들이라면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나 중소형 서점들이 도서대금 지불이 늦고 지불액수가 적은 것에 대해 약간의 불만스러움이 있을 것입니다. 서점 규모가 작으니 어쩔 수 없지 하며 넘어가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고민해본 것인데, 중소형 서점 연합으로 공동구매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모든 책을 대상으로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참고서나 잡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등을 대상으로 해서 전국 또는 광역단위별로 중소형서점들이 연합을 해서 소매가가 아닌 도매가, 또는 위탁가가 아닌 현금 매절가로 주문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약 10% 정도의 마진이 중소형 서점들에게 더 돌아가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중소형 서점들이 도매상을 하나 더 만드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고 말씀하시겠지만, 도매상들이 기본적으로 도매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과는 달리 이 공동구매 대행회사는 중소형 서점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다르겠지요.

이 공동구매 대행회사는 한국출판협동조합의 경우처럼 서점들의 공동출자(+정부 지원)를 통해 도매상 형태로 만들어질 수도 있겠고, 아니면 한꺼번에 여러 곳에서 주문한 책들에 대한 주문과 출판사에 대한 지불보증의 역할을 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오더피아(
물론 이런 업무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앞장서거나 정부 자금이 출자된 공공기관에서 담당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중소형서점 연합으로 온라인 서점을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현재의 도서정가제 하에서는 오프라인 서점이 온라인 서점을 겸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도서배송은 온라인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오프라인 서점을 통해 도서를 구입할 때는 할인을 금지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북새통’(
“주문은 온라인으로, 수령은 동네서점에서!”

지금 현재의 도서정가제 규정에서 딱 한 줄만 바꾸면 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위에서 제안한 중소형 서점에 10% 할인을 허용하자는 제안도 이런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해결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중소형 서점을 살릴 수 있는 실질적인 곳에 정부가 돈과 사람을 지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의 제휴, 공존은 불가능한 일인가?

위에서 제가 ‘북새통’ 같은 중소형 서점 연합 온라인 서점 이야기를 하면서 “주문은 온라인으로, 수령은 동네 서점에서!”라는 슬로건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슬로건을 전체 서점으로 확대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요?

지금 온라인 서점이 운영하는 다양한 형태의 배송시스템 중에서 모닝365에서 운영하는 해피몰이란 것이 있습니다. 서울지역 지하철 역 안에 배송처를 마련해놓고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한 책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자금난과 인수합병이 무산된 후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만, 주문은 인터넷에서 하고 배송은 지하철에서 한다는 모닝365의 발상은 대단히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지하철’이 아니라 ‘동네 서점’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지금도 주요 온라인 서점들은 24시간 편의점에서 독자가 직접 책을 수령할 경우 배송비의 일부를 현금이나 마일리지 등으로 독자에게 돌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책과 그다지 관계없는 24시간 편의점에서도 책을 배송 받는데 동네 서점에서는 왜 불가능한 일일까요?

지금처럼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이 편을 갈라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주문은 온라인에서 배송은 동네 서점에서” 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요?

적절한 수익 구조 배분에 대한 논의와 배송 시스템에 대한 문제만 해결된다면 (물론 도서정가제법 개정안에 이 문제에 대한 구제장치도 포함되어야겠지요)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온라인 서점에서야 없던 배송처(해피샵)도 만들어본 경험이 있고, 현재도 편의점을 이용하고 있는데, 동네 서점을 배송처로 이용한다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고, 남은 문제는 과연 이런 방식의 공존이 오프라인 서점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만 남았겠지요.

중소형 서점의 전문화와 집중화를 지원해야 한다

부산의 인디고 서원처럼 청소년전문 서점으로 성공한 지역 서점의 사례가 생존의 위기에 서있는 지역 서점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서점이 이렇게 전문 서점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학교 부근, 사무실 부근, 근린체육시설 부근, 아파트 앞 등등의 지역적 특성을 살려 전문화의 길을 모색해야 하고, 정부에서는 이것이 실현 가능하도록 실제적인 지원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여기서 실제적인 지원이라 함은 실제로 전문화에 성공한 서점주를 초빙하여 세미나나 강좌를 열거나, 전문 서점으로 전환할 때 필요한 자금지원을 한다든가 하는 방법 등을 말합니다.

또, 지역 서점들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화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의 두산타워나 명동의 밀레오레 등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심지나 부심에 서점 전문 쇼핑센터를 짓거나 임대를 하여 지역 서점들에게 분양하거나 임대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대형 서점들처럼 소유주가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럿이므로 그곳에 입주하는 서점들은 어린이전문 서점, 실용서적전문 서점, 건강서적전문 서점, 문학전문 서점, 사회인문과학전문 서점, 잡지전문 서점, 학습참고서전문 서점, 수입도서전문 서적, 헌책방, 고서점 등등 각각의 상권은 보장해주어야겠지요. 물론 기존에 힘겹게 지역서점을 꾸려가던 분들에게 우선권을 주어야겠고, 정부가 자금이나 시스템을 지원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출판유통 시스템에 대한 제안: 대금지불시기에 따른 도서공급률 조정방식

기존의 출판유통 시스템은 소매냐 도매냐,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 위탁(외상)판매냐 매절판매냐에 따라 도서 공급률이 달라집니다.

‘행복한책읽기’의 경우는 도매 60%, 소매 70%, 온라인 60%로 공급하는 것이 기본이고 여기에 매절일 경우에는 5%(도매나 온라인의 경우)~10%(소매의 경우)의 추가 할인을 해주기도 합니다.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앞서 올린 칼럼들에 다소 장황하게 써놓기도 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현재 출판시장 문제의 85%쯤은 위탁판매라는 출판유통 구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선불로 들어가거나(선인세 등) 책이 출간된 지 1~2개월 안에 목돈으로 들어가는데 반해 책이 팔려서 출판사로 돌아오는 데는 빨라야 1개월(매절의 경우), 늦으면 6개월 이상이 걸리기도 합니다(위탁의 경우). 그것도 전부 푼돈으로 찢어져서 들어오게 됩니다.

위탁 판매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서 서점에는 아직 안 팔린 (출판사 소유의) 책들이 잔뜩 깔려 있는데 정작 출판사 창고에는 팔 책이 없어서 2쇄나 재판을 찍게 되고 2쇄나 재판을 찍은 이후에 그 앞의 책들이 반품되어 출판사 창고에 책이 잔뜩 쌓이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심지어는 출간한 지 3~4년 지난 책이 뒤늦게 반품으로 돌아오는 일들도 가끔 있습니다.

제가 출판사를 하면서 가장 속상한 경우가 책의 상품가치를 완전히 망가뜨려놓은 상태에서 버젓이 반품을 하는 경우와, (대개 대금 지불일을 앞두고) 대량으로 책을 반품했다가 (지불일이 지나고) 다시 버젓이 그 책을 주문하는 경우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몇 개월씩 해당 도매상에 도서공급을 중단하며 실력행사를 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별로 고쳐지지 않은 악습입니다.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이 모든 것이 위탁 판매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 책’이 아니니 책을 함부로 다루고, ‘안 팔리면 반품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있으니 어떤 책이 얼마나 팔릴지 예측할 생각도 시스템도 갖추지 않는 것이지요.

제가 대안으로 생각하는 출판유통구조는 도/소매, 온/오프, 위탁/매절을 떠나서 도서대금이 지불되는 시기에 따라 도서공급률이 달라지는 유통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1개월 안에 현금(또는 은행권 어음)으로 도서대금이 지불되면 정가의 55%, 2개월 60%, 3개월 65%, 4개월 70%…. 이런 방식으로 도서공급률이 달라지는 것입니다(4개월이 넘으면 도서공급 중단). 대량으로 공급하거나 선불금을 지불한다면 최대 50%까지 할인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겠지요.

이런 경우의 장점은 출판사에서 만든 책이 금방 금방 현금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또 서점 입장에서는 빨리 팔리고 많이 팔릴 책들은 싸게 주문해서 좋고, 안 팔릴 책들은 아예 처음부터 높은 공급가에 소량으로만 주문하고, 그래도 안 팔리는 책들은 나중에 할인 판매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도서유통 구조하에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유통구조이겠습니다만, 나중에 능력이 된다면 꼭 한번 실천해보고 싶은(또는 누군가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유통구조입니다.

한도액을 정해놓은 대형출판사가 먼저 지나가고 나면 미안하지만 우리 책값 줄 돈이 없다는 힘없는 일부 중소형 서점들을 볼 때마다, 몇 백만 원이나 되는 책값도 당당하게 문방구어음(자가어음)으로 끊어주면서 그 옆에서 버젓이 4개월치 이자 떼고 현금으로 교환해주는 일부 도매상을 볼 때마다 자주 생각하곤 하는 유통구조이지요.

도서관이 살아야 서점이 살고 출판사가 산다

출판유통이 바뀌어야 출판이 삽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현재의 출판 불황에는 유통의 문제가 가장 크고, 그리고 서점 자체의 문제나 출판사 쪽의 문제도 있다고 봅니다.

쉽게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이런 문제들은 치열한 자기반성을 통해, 내부적인 합의를 통해, 또는 법률 제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출판계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자체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도서관 문제입니다.

도서관을 살려주십시오. 도서관을 많이 지어주십시오. 새로 짓는 것이 힘들다면 기왕에 있는 도서관이라도 활성화시켜 주십시오. 민간에서 운영하는 도서관들을 지원해 주십시오. 도서관에 정식 사서를 1명 이상 두십시오. 도서관에 사서를 두기 힘든 상황이라면 도서를 추천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도서선정위원회를 만들어주십시오. 도서관에 책을 구입할 수 있는 도서구입 예산을 대폭 늘려주십시오. 도서관에 책이 없으면 그게 독서실이지 어디 도서관입니까?

전국에 제대로 된 도서관 1000개가 있어서 양서를 2권씩만 구입해줘도 그 양서를 펴내는 출판사는 망하지 않습니다. 전국에 제대로 된 도서관 500개가 양서 4권씩만 구입해줘도 그 책을 구입하는 서점은 망하지 않습니다.

도서관만 제대로 살아나면 출판사가 삽니다. 도서관만 제대로 작동되어 출판사→서점→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유통구조를 통해 책을 구입한다면 서점이 살아납니다. 출판사를 위해 서점을 위해 도서관을 살려주십시오.

나오는 말

저는 출판 전문가가 아니라 출판계의 한 귀퉁이에서, 망하지 않고 살아남아보려고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작은 출판사의 대표에 불과합니다.

10여 년 출판에 몸담긴 했지만 아직 제가 잘 모르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도 많아서 어떤 이야기는 조금 지나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직원들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이 말리고 우려했던 자리에 나선 터라 괜한 오해를 살까 걱정도 많습니다. 더더욱 평소에 존경하던 한기호 소장님 같은 분들과 제가 같은 자리에 섬으로 인해서 저의 부족함이 더더욱 확연하게 드러나게 될까봐 많이 두렵습니다.

모쪼록 제가 말씀드린 부분들 중에서 혹시라도 도서정가제 개정과 관련해서, 또는 출판유통 구조의 개선과 관련해서, 생존의 위기 앞에 고통스럽게 서있는 출판사와 서점 관계자 여러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전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외부 필자의 컬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 사이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임형욱 (행복한 책읽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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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그리움이 핀 언덕’…태백 구와우마을


육체파 영화배우 소피아 로렌의 ‘해바라기’란 영화가 있었다. 1970년에 나왔지만 공산국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아름답게 그렸다는 이유로 상영금지작으로 묶였다가 82년 개봉됐던…. ‘해바라기’는 전쟁터에 끌려나간 남편의 흔적을 좇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떠도는 지오바나(소피아 로렌)란 여자의 기구한 인생이야기다. 그녀가 찾아간 곳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 밭. ‘돌비 스테레오 사운드’로 헨리 맨시니의 슬픈 배경음악이 묵직하게 깔리고 70㎜ 대형 스크린에 광활한 해바라기 밭이 펼쳐질 때 옆자리의 앳된 여대생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까지 훔쳐댔다. 어쨌든 그 아득한 해바라기 들판은 한동안 화제가 됐고, 그런 해바라기 밭을 한 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얼마전 우리 땅에도 넓은 해바라기 밭이 생겼다. 해발 850m의 태백 구와우 마을 고원식물원. 비록 영화처럼 광활하진 않지만 해바라기 밭은 모두 합해 5만평이나 된다. 늦장마처럼 며칠째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산허리 하나를 가득 메웠다는 해바라기 생각에 달뜬 가슴을 주저앉히지 못하고 태백까지 찾아갔다.

해바라기 밭은 크게 2곳. 1만5천평짜리 산아래 해바라기는 안타깝게 지고 있었고, 3만5천평짜리 구릉밭의 해바라기는 막 절정을 넘고 있다. 식물원에선 다행히 이번 주말까지는 해바라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고원을 휩쓸고 가는 모진 바람. 흔들리는 노란 해바라기는 고흐의 그림처럼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렬하다. 소피아 로렌의 눈망울처럼 크고 둥글둥글한 꽃술, 땡볕에 샛노랗게 달아오른 꽃잎…. 그리스 신화에선 태양신 아폴로를 사랑한 요정 크리티에가 9일 동안 자신이 흘린 눈물만 마시며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해바라기가 됐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은 ‘열정과 그리움’. 곰곰 뜯어보면 해바라기는 사람을 닮았다. 비가 올 때는 고개를 푹 떨구고 있다가 해가 뜨면 다시 고개를 들어 빤히 쳐다보는…. 고흐가 해바라기에 혼을 쏟은 것도 이런 매력 때문일 것이다. 해바라기 밭 옆은 메밀밭. 새하얀 메밀도 해바라기에 견주니 그리 눈길이 가지 않는다.

“그냥 배추농사보다 낫겠다 싶어서 해바라기를 심었어요. 밀려오는 중국산 때문에 농사도 힘들잖아요….”

고흐처럼 해바라기에 맘을 홀딱 뺏긴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식물원 주인 김남표씨(40)의 대답은 다소 엉뚱하다. 원래 인테리어 사업가. 대관령과 비슷한 이 일대의 풍광이 맘에 들어 땅을 사들였다고 했다. 처음엔 고랭지 배추농사를 짓다가 수지가 맞지 않아 친구와 함께 식물원을 차렸단다. 그동안 25억원을 쏟아부었다니 혹시 어리보기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 해바라기는 9월초 씨를 수확, 기름을 짜고, 국수 같은 건강식품도 만드는 회사에 납품할 계획이란다. 식물원에는 해바라기뿐 아니라 다른 꽃도 많다. 벌개미취, 나리꽃, 자주꽃방망이, 부처꽃, 범부처, 원추리, 배초향, 용머리, 구절초, 강활, 작약, 도라지, 개망초, 동자꽃…. 40~50여종의 여름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었지만 해바라기만큼 여운을 남기진 못했다. 혹시 여름 햇살이 꽃으로 영근 게 해바라기 아닐까? 그토록 뜨거웠던 이 여름도 저 해바라기들과 함께 저물어가고 있다.

▶여행길잡이

▲교통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제천IC에서 빠진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오른쪽 영월 방면으로 향한다. 38번 국도는 영월까지 4차선으로 확장돼 있다. 나머지 태백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현재 확장공사 중. 38번 국도를 타고 계속 달리다 사북과 고한을 지나 두문동재 터널을 넘으면 태백시. 시내로 접어들다가 왼쪽 검룡소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하면 다리를 건너 삼척·하장 가는 길. 국도지만 초입은 마치 동네길처럼 좁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지만 마을 어귀를 지나면 길이 왕복 2차선으로 넓어진다. 길섶에 키작은 해바라기가 보이고 오른쪽에 고원자생식물원이란 자그마한 임시 이정표가 붙어있다. 입장료는 어른 5,000원. 어린이 4,000원. (033)552-7245

▲먹거리

해발 650m 이상 고지대에서 키운 태백 한우가 유명하다. 태백 중앙로에 있는 한우마을 실비식당(033-552-5349)이 잘한다. 1인분에 2만1천원. 실비식당 바로 옆에 있는 신바람순대(033-553-4539)는 양념돼지곱창구이가 독특하다. 7,000원 순대국은 5,000원.

▲볼거리

창죽동 검룡소를 들를만하다. 검룡소는 한강발원지. 정선과 영월 단양을 거쳐 17개 지류가 합류, 서해바다까지 514.4㎞를 흘러간다.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검룡소에 들어서면 구불구불 파인 암반 사이로 청정수가 콸콸 쏟아져 나온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태백산 당골광장 옆에 있는 석탄박물관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7개 전시실에 연건평은 2,600여평. 초기 투자비만 1백40억원을 들여 만들었으며 동양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1층에는 가공하지 않은 다이아몬드부터 수백여가지의 각종 광물이 전시돼 있으며 탄광의 역사와 광부들의 생활사 등을 볼 수 있다.

〈태백|글 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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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터 잉크 비싼 이유 있었다!!
[YTN TV 2005-08-16 01:50]
[앵커멘트]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있는데, 컴퓨터용 프린터와 비싼 잉크가 딱 이런 경우입니다.

그런데 잉크 가격이 이처럼 비싼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김진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국내 잉크젯 프린터 분야 1위인 휴렛패커드는 지난 98년부터 '클럽 제도'를 시행해 왔습니다.

'클럽'이란 HP 제품을 팔 수 있는 지정 판매점.

클럽이 되면 제품을 싸게 공급받거나, 판매장려금 등 명목의 리베이트를 받습니다.

대신 잉크나 토너 값은, HP가 정해준 그대로 팔아야 합니다.

싸게 팔다 적발되면 리베이트가 깎이거나 아예 제품 공급이 중단됩니다.

사정은 2위 업체인 엡손도 마찬가지.

엡손 역시 2000년부터 PIC라는, 이름만 다른 똑같은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두 회사에 대해 이런 행위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인터뷰:이동규, 공정거래위원회 정책국장]

"...경쟁 막아온 불법 행위...앞으로 경쟁 촉진되고 가격 인하될 것으로 기대..."

그러나 과징금은 없었고, 특히 업계 3위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HP나 엡손 만큼 압력이 과중하지는 않았다며, 경고 조치하는 데 그쳤습니다.

현재 국내 잉크젯 프린터 10대중 무려 9대가 이 세개 회사의 제품.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소비자들에게 바가지 요금을 강요해 왔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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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8-16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잉크비 물어내. HP꺼 쓰는데...

라주미힌 2005-08-16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를 가느니 프린터를 하나 사는게 낫죠? ㅋㅋㅋㅋ
사면 들어있잖아요.. 기본으로..
 

디지털 출판, 종이와의「공존공생」모색


John Borland (CNET News.com) 11/08/2005
프린스턴, 유타 등 미국내 10개 대학 서점의 교재 진열대에 큰 변화가 생긴다. 오는 가을학기부터 두꺼운 하드커버 교재와 새로운 카드가 나란히 놓여 주인을 기다리게 되기 때문이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과 '심리학의 정수'와 같은 두꺼운 책 옆에는 33% 할인 혜택을 주는 카드가 나란히 놓인다. 이 카드의 정체는 디지털 텍스트 다운로드를 이용할 수 있는 카드다.

이러한 서비스는 매 학기마다 교재비로 수백 달러를 지출해야 하는 학생들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새로 도입된 디지털 교재를 이용하려면 사용 방식에 대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다운로드받은 교재는 하나의 컴퓨터에 잠금 상태로 저장해야 하고, 유효기간도 5개월로 제한된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10개 대학의 서점 관리자들은 사용에 대한 몇 가지 제약 때문에 꺼리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컴퓨터 이용이 많은 학생들에게 디지털 옵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한 비용 절감이 가능해지므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 서점 마케팅 이사 버지니아 프랑스는 "현재 학생들의 반응을 수집중"이라며 "이번 시도는 그동안 대학 서점들이 시도했던 다른 시도와 같은 맥락에 있다. 하지만 서점을 변화시킬수 있는 최초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꽤 괜찮은 아이디어"이라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대학들이 디지털 출판으로 옮겨가려는 장기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디지털 교재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전망이다.

사실 지금까지 e북은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비평가들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서적 분량의 장문을 온라인상에서 읽기를 꺼려하고, 또한 시중의 e북용 기기들도 대중성을 얻기에는 너무 고가라고 지적했다.

인터내셔널 디지털출판포럼에 따르면 전체 출판 시장에서 e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가장 최근 발표된 통계를 보면 2004년 3분기 유통업체들의 e북 매출은 320만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e북 시장의 주요 이슈는 음악, 영화와 마찬가지로 복제방지 문제다. 물론 서적이 음악이나 헐리우드 영화처럼 온라인을 통해 활발히 교환되고 있지는 않지만 파일교환 네트워크, 인터넷 릴레이 챗, ICrC, 채널 등을 검색하면 다운로드 가능한 수 만개의 서적을 찾을 수 있다.

출판사들은 그동안 무제한 복사 가능성 때문에 아예 e북을 시도하지 않거나 어도비 아크로뱃, MS 리더 포맷 등 복사 제한 조치가 내장된 형태로 e북을 출판했다.

넘어야할 산, 불법 복사
최근 몇 년 사이 교재 출판 시장도 디지털 화라는 대세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 출판사들이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판매량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올 가을학기부터 시작될 시범 프로젝트는 다양한 출판사와 미국 최대 교재 도매업체 중 하나인 MBS텍스트북 익스체인지가 참여하는 최초의 대형 프로젝트다. 출판사로는 맥그로우힐 하이어 에듀케이션, 휴톤 미플린, 존 윌리&선즈, 톰슨 러닝, 세이지 퍼블리케이션 등이 참여하고 있다.

MBS 텍스트북 익스체인지는 출판사 및 일부 서점이 코드입력을 마친 카드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출판 시장을 성장시키면서도 기존 유통 시장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서적관련 뿐만 아니라 재고와 회계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MBS 텍스트북 인스체인지 광고 및 프로모션 관리자 제프 코헨은 "지난 2~3년간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디지털 교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학생들은 기존에 서점에서 책을 구매했다. 우리는 새로운 것과 기존의 방식을 모두를 운용함으로써 학생과 서점, 모두에게 중요한 기회를 만들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선택의 폭은 더 넓어진다. 새 책, 중고 책, 혹은 카드를 이용해 33%저렴한 디지털 서적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초기의 카드시스템은 확인 작업이 완료된 특정 서적으로 제한되며, 학생들은 어도비 아크로뱃 포맷으로 한 대의 컴퓨터에서만 교재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초기 단계에 디지털 포맷으로 서비스될 교재는 이용 빈도가 높고, 출판사들이 텍스트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서적으로 서점당 평균 30권 정도다. 코헨에 따르면 이용 가능한 서적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예정이다.

디지털 형식을 이용하면 몇 가지 장점이 있다. 다운로드 가능한 서적은 키워드 검색이 가능하고, 어도비 소프트웨어를 통해 음성으로 읽을 수도 있으며, 북마크도 할 수 있다.

디지털 서적의 유효기간은 150일이지만 몇 학기에 걸쳐 사용되는 교재일 경우 출판사에 요청해 유효기간 변경할 수 있다. 또한 인쇄에도 제약조건이 있어, 교재 전체를 한 번에 인쇄하는 것은 금지된다.

코헨은 이런 규제들이 대형 출판사들과의 협상을 통해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이용자의 범위가 확대되면 변경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제약은 현재로서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기존에는 학기말이 되면 구입한 교재를 서점에 되팔아 교재비를 절약했지만 더 이상 이런 방법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코헨은 "e북은 기존 책의 라이프 사이클과는 차이가 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앞으로 e북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유타와 프린스턴 대학 서점 관리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교직원들이나 학생들과의 사전 컨설팅 단계를 거치지 않고 시작됐다고 밝혔다. 다음주 16일부터 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유타 대학의 경우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디지털 자유 활동가들은 이 프로그램은 결국 출판사들이 중고 교재 시장에 침체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자프론티어 재단 변호사 프레드 본 로흐만은 "기존의 종이책에 대한 선택권도 남겨 두었기 때문에 그리 위험한 시도는 아니라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출판사들이 언제부터 종이 서적 출판을 중단했느냐 하는 점이다. 중고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분야로 출판사들이 이동하려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덧붙였다.

초기 디지털 서적 서비스는 오레곤대학, 유타대학, 포틀란드 커뮤니티 대학, 볼링 그린 스테이트 대학, 프린스턴 대학, 조지타운대학, 캘리포니아 주립대, 풀러튼 모어헤드 주립대,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 루이지애나 주립대 등 10개 대학에서 제공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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