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그리움이 핀 언덕’…태백 구와우마을


육체파 영화배우 소피아 로렌의 ‘해바라기’란 영화가 있었다. 1970년에 나왔지만 공산국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아름답게 그렸다는 이유로 상영금지작으로 묶였다가 82년 개봉됐던…. ‘해바라기’는 전쟁터에 끌려나간 남편의 흔적을 좇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떠도는 지오바나(소피아 로렌)란 여자의 기구한 인생이야기다. 그녀가 찾아간 곳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 밭. ‘돌비 스테레오 사운드’로 헨리 맨시니의 슬픈 배경음악이 묵직하게 깔리고 70㎜ 대형 스크린에 광활한 해바라기 밭이 펼쳐질 때 옆자리의 앳된 여대생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까지 훔쳐댔다. 어쨌든 그 아득한 해바라기 들판은 한동안 화제가 됐고, 그런 해바라기 밭을 한 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얼마전 우리 땅에도 넓은 해바라기 밭이 생겼다. 해발 850m의 태백 구와우 마을 고원식물원. 비록 영화처럼 광활하진 않지만 해바라기 밭은 모두 합해 5만평이나 된다. 늦장마처럼 며칠째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산허리 하나를 가득 메웠다는 해바라기 생각에 달뜬 가슴을 주저앉히지 못하고 태백까지 찾아갔다.

해바라기 밭은 크게 2곳. 1만5천평짜리 산아래 해바라기는 안타깝게 지고 있었고, 3만5천평짜리 구릉밭의 해바라기는 막 절정을 넘고 있다. 식물원에선 다행히 이번 주말까지는 해바라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고원을 휩쓸고 가는 모진 바람. 흔들리는 노란 해바라기는 고흐의 그림처럼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렬하다. 소피아 로렌의 눈망울처럼 크고 둥글둥글한 꽃술, 땡볕에 샛노랗게 달아오른 꽃잎…. 그리스 신화에선 태양신 아폴로를 사랑한 요정 크리티에가 9일 동안 자신이 흘린 눈물만 마시며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해바라기가 됐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은 ‘열정과 그리움’. 곰곰 뜯어보면 해바라기는 사람을 닮았다. 비가 올 때는 고개를 푹 떨구고 있다가 해가 뜨면 다시 고개를 들어 빤히 쳐다보는…. 고흐가 해바라기에 혼을 쏟은 것도 이런 매력 때문일 것이다. 해바라기 밭 옆은 메밀밭. 새하얀 메밀도 해바라기에 견주니 그리 눈길이 가지 않는다.

“그냥 배추농사보다 낫겠다 싶어서 해바라기를 심었어요. 밀려오는 중국산 때문에 농사도 힘들잖아요….”

고흐처럼 해바라기에 맘을 홀딱 뺏긴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식물원 주인 김남표씨(40)의 대답은 다소 엉뚱하다. 원래 인테리어 사업가. 대관령과 비슷한 이 일대의 풍광이 맘에 들어 땅을 사들였다고 했다. 처음엔 고랭지 배추농사를 짓다가 수지가 맞지 않아 친구와 함께 식물원을 차렸단다. 그동안 25억원을 쏟아부었다니 혹시 어리보기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 해바라기는 9월초 씨를 수확, 기름을 짜고, 국수 같은 건강식품도 만드는 회사에 납품할 계획이란다. 식물원에는 해바라기뿐 아니라 다른 꽃도 많다. 벌개미취, 나리꽃, 자주꽃방망이, 부처꽃, 범부처, 원추리, 배초향, 용머리, 구절초, 강활, 작약, 도라지, 개망초, 동자꽃…. 40~50여종의 여름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었지만 해바라기만큼 여운을 남기진 못했다. 혹시 여름 햇살이 꽃으로 영근 게 해바라기 아닐까? 그토록 뜨거웠던 이 여름도 저 해바라기들과 함께 저물어가고 있다.

▶여행길잡이

▲교통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제천IC에서 빠진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오른쪽 영월 방면으로 향한다. 38번 국도는 영월까지 4차선으로 확장돼 있다. 나머지 태백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현재 확장공사 중. 38번 국도를 타고 계속 달리다 사북과 고한을 지나 두문동재 터널을 넘으면 태백시. 시내로 접어들다가 왼쪽 검룡소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하면 다리를 건너 삼척·하장 가는 길. 국도지만 초입은 마치 동네길처럼 좁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지만 마을 어귀를 지나면 길이 왕복 2차선으로 넓어진다. 길섶에 키작은 해바라기가 보이고 오른쪽에 고원자생식물원이란 자그마한 임시 이정표가 붙어있다. 입장료는 어른 5,000원. 어린이 4,000원. (033)552-7245

▲먹거리

해발 650m 이상 고지대에서 키운 태백 한우가 유명하다. 태백 중앙로에 있는 한우마을 실비식당(033-552-5349)이 잘한다. 1인분에 2만1천원. 실비식당 바로 옆에 있는 신바람순대(033-553-4539)는 양념돼지곱창구이가 독특하다. 7,000원 순대국은 5,000원.

▲볼거리

창죽동 검룡소를 들를만하다. 검룡소는 한강발원지. 정선과 영월 단양을 거쳐 17개 지류가 합류, 서해바다까지 514.4㎞를 흘러간다.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검룡소에 들어서면 구불구불 파인 암반 사이로 청정수가 콸콸 쏟아져 나온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태백산 당골광장 옆에 있는 석탄박물관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7개 전시실에 연건평은 2,600여평. 초기 투자비만 1백40억원을 들여 만들었으며 동양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1층에는 가공하지 않은 다이아몬드부터 수백여가지의 각종 광물이 전시돼 있으며 탄광의 역사와 광부들의 생활사 등을 볼 수 있다.

〈태백|글 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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