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주미힌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따우(는 아실 것 같아서)방에 서식하던 산사춘이라고 합니다. 우선 ‘엽기’라는 단어에 동해 일케 뜬금없이 상판을 디민 저를, 어여삐 아니 불쌍히 여겨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서재질도 뜬금스럽게 하는 주제에 처음으로 이벤트에 참가하려니 무지 민망하고 떨립니다. 라주미힌님의 넓으신 아량을 기대하며, 저의 부끄러운 어린 시절 이야기들(양으로 어필해 보고자 하는 수작)을 되새기면서 뼛속 깊이 반성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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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수렁에서 건진 내 딸” (부제: 어무이 수난사)


어릴 때부터 설레발을 떠느라고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울 어무이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읊으시는 TOP 3가 있습니다. 십센치 너비의 옥상난간에서 평균대 운동하다가 어무이가 비명지르는 바람에 떨어질 뻔 했다거나, 트럭이 코앞에 올 때까지 숨어서 기다렸다가 휙 지나가던 일, 유치원 담벼락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갔다고 껄껄 웃다가 떨어져 놀라는 바람에 한동안 실명했던 사건 등은 순위권 밖입니다.


먼저 제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던 춘천에서의 사건입니다. 어무이는 이웃들과 함께 강에서 열심히 빨래를 하고 계셨다 합니다. 아장아장 걷던 막내가 사라진 것도 모를 정도로요. 얼마 뒤에 아래쪽에서 빨래를 하고 계시던 한 아주머니가 물에 흥건히 젖어 빽빽 울어대는 저를 안고 달려오셨다는군요. 빨래가 떠내려 오는 것 같아서 건졌더니 그 집 딸내미더라고 증언하셨다 전해집니다.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자빠져 있게 해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서울로 이사 온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었어요. 제가 세살 정도였다는데, 언제나 그러했듯이 어무이는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진 딸을 찾아 골목을 누비는 일과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아무리 찾아 헤매도 없는지라 마침 남편분의 출근 때문에 나오신 옆집 아주머니께 저의 행적을 탐문하게 되었답니다. 그동안 택시를 모시던 옆집 아저씨는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셨지요. 그런데 차 밑에 엎드려 있던 작은 형체가 갑자기 우왕~하고 사이렌을 불어댔어요. 네, 차가 떠나는 게 못내 서운했던 산사춘이었습니다. 그 후 옆집 아저씨는 출발 전 차 밑 점검을 절대 빠뜨리지 않으셨다는군요.


다음 사건은 저도 기억이 납니다. 네다섯살 쯤인데 오빠랑 친척언니가 저만 빼놓고 놀러가서 잔뜩 화가 나 있었걸랑요. 어무이도 냉장고 청소를 하신다고 바빴구요. 냉장고 선반을 모두 꺼내 화장실에서 박박 닦고 계셨습니다. 냉장고....... 참으로 위험한 물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하얗고 텅 빈 공간이 순진한 아이를 유혹하죠.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저는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경험을 하고자 냉장고에 들어가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주의산만뇨인 산사춘은 금방 싫증을 느꼈고,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밀었습니다. 그런데 안열려요. 성질이 나서 발로 차고 머리로 박았습니다. 그래도 안열려요. 겁이 나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담부터는 기억이 안나요. 어무이의 증언에 의하면 개미만한 소리가 왱왱 거렸다는군요. 그 소리를 찾아헤매다 냉장고 문을 열었으면 약간은 흐뭇했을텐데, 선반을 끼우려고 문을 여셨다는군요. 그리고 수박이 아니라 공기부족으로 기절한 딸이 바닥으로 쿵! 떨어집니다.

 

아, 걱정마세요. 그런 사고가 많아서 그런건지 요새 냉장고는 안에서도 열립니다. 초딩 때 오빠랑 열린다 안열린다 우기다가 직접 실험해 보았지요. 역시 익숙한 제가 냉장고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자격지심발언: 사춘기 전까지는 저도 아주 작았어요!) 암튼 울 어무이 말씀에 의하면 저는 명이 아주 길 거랍니다. 근데................. 대신 어무이 수명은 줄어서 가슴이 아파요. 흑흑



두번째 “범죄의 재구성” (부제: 이웃 수난사)


몇년전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한 아이가 아파트 창문에서 던진 음료수병에 사람이 맞아 숨지는 사건이요. 정말 심장이 벌렁벌렁했습니다. 어렸을 때 제가 했던 일이었거든요. 사층 아파트에 살 때였는데 다 먹은 음료수병을 어무이가 베란다에 놓아두셨습니다. 처음엔 오빠가 알려준 방법으로 물풍선을 만들어 아래로 던졌더랬죠. 그러다 만들어놓은 물풍선이 떨어지면 욕구불만에 마구 떨다가 옆에 있던 음료수병에 물을 담아 던졌습니다. 던지고 나서는 누가 볼 새라 얼른 숨었다가 난간에 매달려 깨진 병을 내려다보는 짓을 여러번 했습니다. 다행히 동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쳐서 어무이께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제 인생엔 고마운 이웃 여럿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웃들에게 또 못할 짓을 했어요. 방어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절대 다른 아이에게 먼저 폭력을 쓰는 일은 없었는데, 그 날은 정말 왜 그랬는지 저 자신도 이해가 안갑니다. 앞집 남자애가 아파트 계단을 마구 뛰어내려오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전 왜 난데없이 발을 걸었을까요. 그 아이는 발이 걸려 시멘트벽에 머리를 쾅 부딪쳤고, 저는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 채 총알같이 내뺐습니다. 그리고 사고를 친 날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집에 차마 못들어가고 집주변을 기웃거리다 어무이께 붙잡혔습니다. 질질 끌려가 들어가보니 병원에 갔다온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어무이께 맞아가면서 엉엉 울며 빌었지요. 다행히 하늘이 도우사 작은 상처만 났고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들었습니다. 정말 미치도록 미안한 일이어요. 경택아, 미안하다!  

 

그럼에도 함 붙어보자는 애들도 많았지만, 카드와 선물로 가늠해보면 초딩시절 만만치 않던 인기를 자랑했습니다(확인되지 않는 과거는 뻥을 쳐도 됩니다). 그럼에도 가끔은 기피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지요. 그 시절 등교길에서는 종종 죽은 쥐를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그럼 어김없이 실내화 주머니에 죽은 쥐를 다소곳이 담았습니다. 그리고 하교길에 평소에 저를 괴롭혔던 남자애들에게 던져줬습니다. 던지기 전에 쥐꼬리를 잡고 마구 돌린 뒤 던져주면 효과가 더 컸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도 틈만 나면 손을 씻는 모양입니다. 제 손, 잡아주실 거죠?      



세번째 “그 많던 미꾸라지는 어디로 갔을까” (부제: 미꾸라지 수난사)


제 페이퍼에 곤충학대기를 쓴 적이 있는데, 사실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 학대기는 쓰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나마 근근히 유지하고 있는 이미지(뭐?)마저 망치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하지만 돌팔매를 맞더라도 어린 시절 제 안에 있던 폭력성을 까발리는 과정을 통해, 저도 멀쩡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은 바람입니다(닥쳐!). 부추겨 주신 그 분께 감사드려요. 그래도 아직은 ‘어류’까지밖에 말 못하겠어요. 나름 진화과정을 보이는군요.


제 성격을 알면서도 우리집은 참 여러 동물을 키웠더랬습니다. 언젠가는 아부지가 어항을 거실에 설치하셨어요. 반짝이는 비단잉어들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좁은 어항에서 유턴하기도 힘든 잉어들이 불쌍해 보여서...................... 어른들만 안계시면 어항 벽을 마구 쳐댔지요. 놀라서 턴 하다가 벽에 부딪치라고. 어른들만 안계시면 어항 속에 손을 넣어 휘저어댔어요. 그 고운 피부 한 번 만져보려고. 걸리면 어무이한테 디지게 맞는데도 그 짓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금붕어를 해부한다는 겁니다. 심히 업되어 그간 탐독한 과학책과 시골에 놀러갈 때마다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여 아이들의 탄성 및 구토를 자아냈던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을 구워삶아 남은 금붕어를 산 채로 몇 마리 챙겨왔습니다. 사육하면서 두고두고 실습하려고 어항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 한참 놀고 왔더니 한 마리가 사라진 거예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자 그 때 감이 왔습니다. 마침 잉어들이 다른 금붕어들을 마구 쫓아댕기고 있는 겁니다.


저 악마같은 잉어들!...................하면서 계속 구경하고 자빠져 있었습니다. 꼬리부터 아작을 내는구나야 하면서... 어무이가 아시면 따로 금붕어를 꺼낼까봐 말없이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저녁 먹으라고 어무이가 소리지를 때까지요.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들은 금붕어가 거기 왔다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만 압니다. 이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압니다만 공소시효 만료입니다. 지금은 생각할수록 금붕어들이 참 불쌍하군요(가증!).


하지만 더 불쌍한 아이들이 있었으니 미꾸라지들입니다. 누가 거북이 사촌 남생이를 선물로 사주었거든요. 어무이는 남생이 먹이로 시장에서 팔던 미꾸라지들을 사오셨습니다. 안그래도 남생이가 신기해서 하루종일 붙어있던 차에 미꾸라지들까지 바가지로 밀려오니 자고 일어날 때마다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마구마구 생겨났습니다. 처음엔 아무리 괴롭혀도 입을 열지 않던 남생이가 꿈틀거리는 미꾸라지를 물고 있는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 주요 일과였지요. 그 상태로 번쩍 들고 오빠에게 디밀면 오빠가 기겁을 하고 도망쳤거든요. 마구 화를 내시길래 부모님께는 한 번 밖에 못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역시...... 꼬리부터 아작을 냅니다. 


그 후 미꾸라지는 여러 가지 실험재료로 사용됩니다. 물이 담긴 양동이를 돌리면 물이 쏟아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던 차에, 미꾸라지를 넣고 돌리면 미꾸라지만 떨어지지 않을까하여 실험해 보았습니다. 안떨어지더군요. 그 다음에는 어느 높이에서 떨어져야 미꾸라지가 죽을까 싶어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가 결국 옥상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옥상의 햇볕을 받으면 미꾸라지를 말려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가게에서 팔던 이십원짜리 노가리에 심취한 탓입니다.


어무이가 한번만 더 옥상에서 말린 미꾸라지가 발견되면 가만 안놔두겠다고 하시어 실험실을 부엌으로 옮깁니다. 곤충은 라이타로 구웠지만 미꾸라지는 가스불로 구워야 제격인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탄 냄새가 안빠져 어무이께 치도곤을 당한 뒤엔 냄새가 나지않는 방법을 고안하게 됩니다. 냉장고에 얼려서 텔레비전에서 본 냉동인간 프로젝트를 실행해보고 싶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 및 접근도상 들킬 위험이 크니까요. 그 때 마침 아부지의 양주가 눈에 띄더라구요.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엔 몇방울로 시작하다가 나중엔 원액으로 승부하게 됩니다. 마취되어서 죽은 듯이 뻗었던 미꾸라지가 물에 넣으면 다시 살아나는게 환장하게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농도가 진해질수록 미꾸라지 회생률이 떨어지더군요.  


이렇게 미꾸라지에 대한 가학성이 심해지면서 점점 걷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미꾸라지로 과녁맞추기와 토막살어로 가다가 결국엔.................................. 당시 유행하던 스카이 콩콩을 사용하고 말았던 거예요. 미꾸라지를 마당에 늘어놓고 미끌거리는 그들이 옆으로 뾱뾱 삐져나가면 끝까지 쫓아가서....................... 죄송합니다. 식사는 하셨나요? 추어탕을 즐기시는 분들께는 더욱 죄송합니다.


 

암튼 다시 한 번 반성합니다. 어무이가 제가 어렸을 때 패도 너무 팼다고 항상 원망했는데, 제가 한 짓을 써놓고 보니 그 당시 울 어무이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몇년전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그랬더니 어렸을 때의 감정상태가 떠오르더군요. 하고 싶어서 속에서 불이 막 올라오고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구요, 그 좋아라하는 밥시간도 잊게 되는 몰아의 경지로 진입하게 되더라구요. 잘했다는 게 아니라 저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강하게 끌어당겼다는... 제 갸날픈 서재인생이 파탄날지 모르겠지만, 이벤트를 위해 이 한몸 바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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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11-20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히 최고의 엽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존경합니다 춘님. 님의 글을 읽고나니 제가 엽기라고 써놓은 게 부끄럽습니다...

2005-11-20 0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ng 2005-11-20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흐흐흐흐 엽기 산사춘의 유년기
잘 읽었습니다 ^^

호랑녀 2005-11-2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제가 왜 우리 아이들을 야단칠까요. 산사춘님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엽기 어린시절을 보냈던 산사춘님도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는데(봤냐고 하신다면 드릴 말씀이 없사오나)...
이제 걱정 안할랍니다.

플레져 2005-11-2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닙, 지존이십니다.
잘 자라주셔서 감사합니다 :)

라주미힌 2005-11-2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슬래쉬, 하드고어 무비를 보는 듯
서걱서걱 갈고 써는 소리가 눈에 보이는 듯한
생생한 잔혹사... ^^ 잘 읽었습니다.

사실 원래는 주제를 저런 '개인의 역사'를 끄집어 내자였는데. '소수'의 역사일 것 같아서 안했드니
착오였네요. ^_^;

날개 2005-11-20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산사춘님...........!!!!^^ 지존이십니다.2

깍두기 2005-11-20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의 열혈팬이긴 하지만.....
님의 어머님이 더 존경스럽습니다^^
정말 잘 자라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반 애들을 야단치지 않겠습니다. 어려서 뭔짓을 해도 이렇게 예쁜 아가씨로 자랄 수 있으니.....ㅎㅎㅎ

로드무비 2005-11-2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마이 도러도 걱정할 것 없겠네요.
말썽 피울 때 님을 떠올리면 모든 근심이 사라질 듯.ㅎㅎ
이벤트 뽑히셨네요. 당연하지요. 축하드립니다.^^

산사춘 2005-11-2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하지 않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절 어떻게 보실까 싶어 쓸까말까 마이 주저했는데, 용기를 주시는군요. 어무이께 잘해야 되겄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