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절 푹 삶은 콩을 지푸락 펴고 시루에 담아 따뜻한 아랫목에 한 삼 일 띄우면 쿰쿰한 냄새와 함께 끈적끈적한 실이 느른하게 빠지는데 여기에 알맞은 소금간과 고추 갈아 놓은것, 마늘 까놓은 것을 함께 넣고 찧는다. 이 때 덜 찧어서 반토막난 콩이 좀 섞여 있어야 그놈 깨물어 먹는 맛이 좋지, 얌전 낸다고 박박 찧어대면 힘은 힘대로 들고 맛은 맛대로 없다. 마늘 고추 소금간이 되어 있으니 끓일 때 두어 수저 떠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데 아무리 적게 해도 이웃집에 한 대접 돌리지 않는 법이 없었다.
이 때쯤이면 바다의 어장도 끝나는 때여서 기장하라고 보리새우, 시원하게 술국 하라고 물메기 같은 찬물고기가 조금씩 나오고 쏙이 나온다. 바로 이 쏙을 한 주먹 골라 넣고 무 삐져 넣고 청국장을 끓이면 맛이 그럴 수 없이 좋았다.
끓이는 것도 물론 딴 솥에 점잖게 끓이기도 하지만, 보통은 시커멓게 그을린 쪼그라진 냄비에 밥 하는 아궁이의 불을 끄집어 내서 거기에 올려놓고 끓이던 것이다. 불 땐 아궁이 속에서 끓이니 꼭 불단도가니 속에서처럼 빨리 끓는다. 쏙 씻어 넣고 청국장 떠다 넣고 이개면 무 삐져 넣기도 전에 벌써 가장자리는 끐기 시작한다. 채전밥 가차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고샅에 노는 아이들 불러 김장무 몇개 뽑아 오라고 미리감치 시켜야 할 것이다.
좀 덜 탄 나뭇가지 잉걸불 연기에 눈물을 훔치면서도 무는 썰지 않고 바쁘게 삐져 넣었으니 그렇게 끓인 청국장 냄새라야 고샅에 얼굴 내놓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해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아이들도 이 냄새가 풍기면 부르지 않아도 밥 먹으러 자기 집으로 뛰어간다.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131p-
보글보글 끓인 청국장에 뜨신 밥 한그릇...
그냥 떠먹어도 맛있고, 밥에 비벼도 맛있고,
올망졸망한 굵은 메주콩 씹는 맛...
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