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고는 쉽다. 연체동물처럼 추기는 쉽다. 그러나 제대로 추려면 끝이 안 보인다. 이걸 오늘 처음으로 진지하게 느꼈다. 끝이 안 보이는 길에 발을 딛었구나, 알게 되었을 때의 어떤 아득함. 막막함. 탱고는 결코 여가선용이나 취미일 수가 없을 거 같다. 이 춤은 all or not을 요구하고, 그래서 결국엔 자신이 추고 있는 춤에 인생의 한 시절을, 아니 어쩌면 인생의 전부를 걸어버린 사람들만 춤판에 남는 거 같다. 존경스러울 뿐. 나는 글쎄.
작년과 비슷하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쪽으로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고 그 안을 헤매이며 끊임없는 지복을 얻고 하여튼 책의 세계는 내가 만나본 그 어떤 세계보다도 질리지 않는 세계 같다. 신체적 능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정처없이 무언가를 읽어나가고 싶다.
아폴론적인 것보다 디오니소스적인 아름다움에, 합리성보다 비합리성에 더 매력을 느껴서일까, 테크닉의 능란함보다는 참을 수 없는 어떤 무언가가 느껴지는 춤이 더 좋아 보인다. 참을 수 없는 격정. 참을 수 없는 관능. 참을 수 없는 광기. 그런게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분출되고야 마는 춤. 말끔하니 빚어낸 기예 같은 춤 말고.
아브라소 세라도로 추고 있으면 문득 상대의 심장박동 소리가 쿵쿵 전해져 오는데 그게 참 좋다. 시간을 거슬러 자궁 속으로 돌아간다면 이런 기분일까. 다시 태초의 시절 속에 놓여있는 듯한 깊은 충만감. 따스한 아브라소 안에서 상대와 내가 탯줄로 이어져있는 것만 같은 경이로움.
심장을 맞대고 둘이 하나 된 듯 추지만 나의 무게 중심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는 것. 상대에게 의존하지 않고, 결국엔 반드시 나 스스로 내 몸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 가슴을 다 내어주지만 끝내 홀로 서 있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탱고가 내게 전해준 훌륭한 지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