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나니 유방이 터질 듯이 부풀고 거기서 따스하고 말간 젖이 흘러나오고 그것을 내 아기가 쪽쪽 빨아먹으며 하루가 다르게 토실토실 커간다. 그러니까 서른여섯 해 만에 내 유방의 진짜 용도를 발견한 것이다. 유방은, 혹은 가슴은 외설인가? 부끄러운 것인가? 금기인가? 희롱의 대상인가? 희롱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대상인가? 그전에, 찧고 빻는 말들의 세계 속으로 호출되기 전에, 가슴에 관한 각종 사회문화적이고 타자적인 언설들을 걷어내면- 유방은 그저 생명을 살찌우는 지극히 실제적인 쓸모를 지닌 하나의 무구한 신체기관에 다름 아니었더라. 말간 젖이 흘러나오는 내 부푼 유방을 보면서, 이것을 아들에게 빨리면서, 이 신체 부위를 둘러싼 그 모든 시끄러운 말들을 읍소하는 유방의 육중한 실제성을 실감한다. 가슴과 유방과 젖꼭지를 생각하면 살기 위해 치열하게 젖 빠는 세상 모든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것들이 떠오르고 그러면 문득 목울대가 저리다. 젖 줘본 사람은 안다. 유방은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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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기가 귀엽다느니 사랑스럽다느니 하는 찬사는 아기한테 퍽이나 무례한 표현 같다. 실제로 보니까 아기는 충격적일 정도로 용맹스럽다. 젖꼭지를 매서운 기세로 낚아챌 때 아기는 마치 설치류를 사냥하는 어린 맹수 같다. 침 묻은 젖꼭지가 미끄러워 생각대로 잘 안 물리면 성난 짐승이 따로 없다. 그때의 울음은 거의 포효에 가깝다. 그리고 젖빠는 아기 눈빛은... 아, 이 눈빛은 정녕코 사랑스러운 게 아니다. 이 눈빛! <여명의 눈동자>에서 목숨걸고 다급하게 도주하던 최대치가 습지에서 꿈틀대는 뱀을 산채로 건져올려 껍질을 벗겨먹을 때, 그 이글대던 눈빛과 똑같다. 줄거리도 가물가물한 수십 년 전 드라마의 한 장면이 난데없이 떠오를 정도로 꼭 닮았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열심히 빨다가 배가 불러오면 속도가 점차 느려지면서 눈에 힘이 풀리는데 이건 또 <동물의 왕국>에서 저멀리 지평선 노을을 응시하며 얼룩말 넓적다리를 잘근잘근 씹어먹는 아프리카 숫사자의 그 담담하고도 신산한 표정과 다를 게 뭔지? 최대치와 아프리카 숫사자를 감히 어찌 귀엽다고 할 수 있을까. 생에 대한 비장하고도 숭고한 열정 앞에서 그런 말은 차라리 모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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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낳은 아기를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인류를, 온생명을, 세계를 그와 똑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다정한 마음이 어떻게 그토록 놀라운 규모로 확장될 수 있을까. 역사에 남은 성인들은 그렇게 했다. 그들을 떠올리면 가없는 존경과 경외심으로 눈물이 날 것 같다.

오래 전에 딱 한 번 친구 따라 성당에 가본 일이 있다. 미사가 거의 끝날 즈음이었던가, 신부님의 제안으로 지구 저편에서 오늘도 기아로 고통받는 난민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었다. 남을 위해 기도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때가 처음이었다. 기도란 절박한 일을 앞두고 나 잘되게 해달라고나 비는 건 줄 알았는데. 그때 받은 뜨거운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 자신도 그다지 썩 사랑하지 않는 내가 이제 곧 아기를 낳게 생겼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자문해보면 머리만 가렵다. 자신을 비하하고 조소하고 경멸한 적이 얼마나 많았나. 하지만 내 몸에서 나온 아기에 대해서 만큼은 절대적 긍정을, 무조건적 사랑을 퍼붓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마음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까.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출산이 하나의 작은 씨앗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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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9-0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가 출산예정일이신지 모르지만 건강한 아기 잘 출산하시기 바랍니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은 축복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요 그만한 댓가를 치르고 받는 축복이기는 하지만요 ^^

수양 2017-09-09 19:34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육아야말로 헬게이트라고들 하는데... 아직 겪어보질 못해서... 치러야 할 댓가가 얼만큼인지 상상조차 안 되고 있어요 (겪어봐야지만 비로소 알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ㅠ_ㅠ) 지금은 다만 폭풍 전야의 이 호사스런 고요와 평화를 열심히 누리고 있을 뿐이네요ㅋ

빵가게재습격 2017-09-0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블로그에 낙서 저장하러 잠시 들렀다가 놀라운 소식을 보았네요. 건강한 아기 순산하세요.~~~~~

수양 2017-09-09 19:33   좋아요 1 | URL
재습격님 안녕하신가요^^ 감사해요~ 순산!! 해야죠^^
 

불과 몇 년 전부터다. 흰머리가 늘어나기 시작한 게. 내 나이에 흰머리라니 용납할 수 없다! 아니, 용납은 커녕 용서할 수조차 없다! 처음엔 악의에 불타올라 눈자위가 뻐근해질 때까지 두 눈 치켜뜨고 보이는 족족 뽑았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많아져 뽑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안 그래도 머리칼이 가늘어지고 숱도 없어져 가는 마당에 머리가 더 휑해질까봐 더 이상 뽑지도 못하겠다. 흰머리가 삐죽삐죽 보이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여자는 어떻게 늙어가야 할까. 왜 굳이 앞에 여자를 붙이느냐면,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늙어가도 밀롱가에서는 보여지는 게 다르더라니까.

 

똑같이 늙었어도 밀롱가에 앉아있으면 늙은 아저씨는 나름 멋있어 보이는 구석이 있다. 그런데 늙은 아줌마는? 아무리 후하게 봐줘도 늙은 아저씨만큼은 아닌 것 같다. 왜 그럴까. 남성에게만 춤 신청권이 있고 여성은 거의 수동적으로밖에 처신할 수 없는 탱고라는 춤 자체의 속성에도 그 원인이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밀롱가에서 늙은 아줌마는 어찌할 수 없이 쓸쓸해 보여. 화장을 안 하고 있으면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있으면 화장을 진하게 했다는 이유로 더 더욱 처량해 보여. 나만의 생각은 아닐 거다. 실제로도 밀롱가에 늙은 아저씨가 늙은 아줌마보다 더 많은 걸 보면.

 

젊었을 때 너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게 화근일까, 늙으면 반대로 너무나 애처로워지는 생물이 여자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아가씨는 꽃 같다. 아가씨가 걸어가면, 아기들도 어린이도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 심지어 아가씨도 아가씨만 본다. 모두가 아가씨만 본다고! 아가씨는 존재 그 자체로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그러나 늙으면? 쳐다도 안 본다. 밀롱가에서 남녀 막론하고 사람들이 쏘아대는 강렬한 시선들, 인기도, 춤 신청의 빈도를 추적해보면 여자의 일생의 이러한 생물학적 비극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 비정한 현실이여.

 

조지 클루니를 보라. 남자는 확실히 '외모' 이상의 어떤 것이 중요하다. 내뿜는 에너지, 카리스마, 매너, 제스처, 자신감. 총체적으로 말하면 외모가 아니라 풍모랄까. 매력을 결정짓는 데 있어서 남자는 풍모 그러니까 간지가 중요하다. 밀롱가에서 관찰해보면 못 생긴 남자는 없다. 풍모가 찌질한 남자만 있을 뿐. 그리고 남자는 대체로 사회적 성취도가 높을 경우에 늙으면 늙을수록 간지난다. 개기름 잘잘 흐르는 사기꾼 춤선생 같은 간지 말고 정말로 중후함이 넘쳐흐르는 간지, 카이사르 같은 간지 말이다. 왜 밀롱가에서 늙은 남자는 도태되지 않는가. 나름의 경쟁력을 확보하는가. 춤 실력도 실력이지만 늙은 남자들이 내뿜는 바로 이런 간지 때문이지. 아는 사람은 알지.

 

그러나 여자는, 내가 볼 때 여자는 정말로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한다. 간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자는 꽃 같아서, 젊을 땐 안 예쁜 여자가 없지. 젊으면 웬만하면 다 예쁘지. 화장 안 해도 예뻐. 움직이고 재잘대는 거 자체가 귀여워. 정확히 그 반대급부로, 늙으면 바로 그 늙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웬만한 동년배 남자보다 더 처량해지고 만다. 속절없이 시들기는 쉽고 곱게 늙기는 어려운 것 같다. 젊은 시절이 너무나 화려해서일까. 그에 대한 응보일까. 여자의 경우 드라마틱한 생물학적 시듦 앞에서 간지의 항거는 무력하기 쉽다. 남자보다 더 그래.

 

좋음=예쁨=아름다움=싱싱함=생기발랄=생명력. 특히나 여자한테는 이게 다 같은 말 같다. 이 무슨 반페미니즘적인 무식한 발언이냐고 힐난해도 어쩔 수 없다. 여자는, 아, 이런 직관적 등식을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로 냉철하게 재고해볼 만한 정신머리도 채 차리기 힘들 만큼 순간적으로 강렬하게 엄습하듯이 훅 예뻐버린다고. 정신이 아찔해지도록 예쁘기 때문에 이런 괴상한 등식이 너무나도 쉽게 본능에 호소력을 발휘하고 마는 것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젊은 여자를 보라. 그녀가 내뿜는 아름다움, 향기, 그 눈부심, 찬란함.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여자를 생각만 해도 여자에 홀린다. 여자는 왜 이토록 예쁜가. 너무나 예뻐서 그 예쁜 것에 갇히고 마는 것이 여자인가.

 

어떻게 하면 더 이상 스스로 여자임에 연연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늙어서도 정성들여 분칠하고 꽃무늬 스카프로 멋을 내는 할머니들도 물론 예쁘다. 티비에 나오는 프랑스 할머니들은 얼마나 고우신지. 김선우 시인의 <봄날 오후>라는 시에서는 탑골공원 공중변소에서 "새악시처럼 연지바르는" 할머니들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그려놓았던가. 그렇지만 늙어서도 애써 여자임을 주장하는 여자 말고, 어떻게든 여자임을 잃지 않으려 안달하는 그런 여자 말고, 여자임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없을까. 성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런 여자는 없을까.

 

도인 같은 할머니는 어떨까. 그러려면 일단은 장신구를 멀리하고 화장을 안 해야 한다. 화려한 꽃무늬 옷도 안 어울린다. 몸매는 마른 듯이 날씬하면서도 자세는 바르고 곧아야 한다. 눈빛이 형형해야 하고 피부는 깨끗해야 하며 몸에선 갓 말린 빨래 냄새나 솔향 같은 게 나야 한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는 너무 무섭지 않을까. 너무 금욕적이어 보이고 B사감 같아 보이지 않을까. 진주목걸이에 챙이 깊은 모자를 쓰고 홍차 마시는 프랑스 할머니는 고와보이지만 한편으론 늙어서도 끝내 여자임에 매몰되어 있는 그 모습이 안쓰럽다. 하지만 도인 같은 할머니는 니체가 말한 금욕적 이상주의자, 니체가 그렇게 비난한 '사제' 같잖아. 역시,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군. 머리가 온통 백발로 뒤덮일 때까지 계속해서 연구해봐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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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연히 죽어있는 서재에 들르면 누군가의 무덤에라도 방문한 것마냥 사뭇 경건해진다. 나혼자 절도 하고 술도 뿌리고 오래도록 무덤가에 누워있다 보면 어디선가 귀신 울음이라도 들려오는 것 같다. 아름다운 폐허로구나! 누군가는 이토록 찬란한 정신의 문명을 건설하고 떠났구나.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제 몫으로 주어진 전쟁 같은 삶을 바쁘게 치르고 있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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