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어록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8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 한길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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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결코 독재자들의 교본일 수 없는 까닭은,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 그리고 지도자 개인에게 유해한 것은 끊임없는 탄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공포와 의혹에 몰아넣는 일이다. 그것은 유해를 넘어 위험하다. 인간은 절망적인 공포에 사로잡히면, 자기 몸을 지키겠다는 생각만으로 광포하고 무모한 반격을 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시민을 함부로 형벌이나 탄압으로 억누르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그들의 마음이 자기 일에만 쏠리도록 해주어야 한다."(정략론 중에서) 그가 독재정치를 위험하게 보는 것은 권력의 남용에서 발생하는 도덕성의 결여라든가 반인도주의적 성격이라든가 등등의 이유 때문은 전혀 아니며, 다만 오로지 그것이 민심의 반발을 야기하여 결과적으로는 광포한 사회적 혼란을 유발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진짜 마키아벨리즘 아닐까.

한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썼음에도 정체의 문제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공화주의자였단 사실은 다음의 언급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 개인의 역량에만 의지하는 국가의 생명은 짧다.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그 사람이 죽으면 만사가 끝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임 지도자의 재능이 승계되는 예는 참으로 드물다. 건전한 국가란 우수한 지도자가 죽은 뒤에도 누가 뒤를 잇든지 그 노선이 계승되어나갈 수 있는 체제가 구축된 국가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정략론 중에서)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역량에 무게를 두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공화국조차도 원래 개개의 위대한 군주적 기량의 소유자나 조직자의 힘 없이는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나의 공화주의적 이상은 처음부터 군주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서신 중에서) 마키아벨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정체는 어떤 것이었을까? 현대의 대통령제가 이에 근접하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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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의 서양예술사 시리즈
조중걸 지음 / 지혜정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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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 해명 시리즈의 축약본이라 해도 좋을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한권의책, 2013)에서 중세 건축의 고딕 양식을 유명론에 연결시키는 대목이 선뜻 납득이 잘 안 가고 다소 무리한 주장 아닌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지나치게 압축된 내용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이 책 중세예술편에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면밀하게 그 해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간략히 적어보면

고딕 양식은 그동안 중세 스콜라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왔지만 스콜라 철학은 철학의 한 방법론일 뿐 그 자체가 이념은 아니다. 고딕은 실재론에 기반한 로마네스크 양식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신앙적 신비주의와 (유명론으로 대두되는) 지적 회의주의를 그 이념으로 갖는다. 실재론적 전통 신학에 대한 문제제기, 즉 이성으로 포착되지 않는 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유명론과 신비주의는 한 동전의 양면으로써 전자가 경험과 관찰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개별자들에게만 의미를 부여한다면 후자는 영감에 의한 주관적 체험에 집중한다.

고딕 양식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유명론에 대한 것 만큼이나 새롭고 놀랍다. 고딕이 고대, 중세 로마네스크, 르네상스에 걸쳐 플라토니즘 이념 하에 있던 라틴 문명에 대한 서부 유럽 최초의 독립 선언이라는 것. 로마네스크와 고딕이 보여주는 양식상의 단절은 기독교와 개신교, 고대와 근대, 합리주의와 경험론이 보여주는 인식론적 격차 만큼이나 극적이라는 것.

고딕 건축의 이념을 규명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예술 장르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바흐 이전의 중세 음악이나 문학 분야도 골고루 다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책에는 중세 고딕성당의 골조 모형 구석구석을 다각도에서 포착한 사진들이 대거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직접 금속공예가에게 부탁해서 주문 제작한 것이라고 하는 이 모형 자체가 귀한 장관이다.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
90쪽 밑에서 9번째 줄: 도시 성당의 승리 선언 --> 도시와 성당의 승리 선언
119쪽 10번째 줄: 구원은 신에 대한 지식에 입각한 그들의 삶이 구성이었으며 --> 신에 대한 지식에 입각한 그들의 삶이 구원의 대상이었으며
140쪽 마지막 줄: 전락된다 --> 전달된다
167쪽 8번째 줄: 처리해야하는 --> 처리해야 하는
265쪽 밑에서 5번째 줄: 지상에 대한 존중과 감각에 대한 경멸 --> 개별자에 대한 무관심, 감각에 대한 경멸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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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의 서양예술사 시리즈
조중걸 지음 / 지혜정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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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예술편 읽고 나니 무려 석기시대가 친근하다. 신기한 체험이다. 밑줄 친 곳이 많다. 자연주의(=사유와 관념을 배제한 채로 이루어지는 감각적 응시)와 환각주의(=지성의 종합적 구성력)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양식을 고전주의로 규정하면서 구석기 벽화를 고전주의 양식의 예술로 평가하고 구석기에서 신석기로의 이행과 근대에서 현대로의 이행에는 세계관의 변화에 있어서 유비관계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 예술양식에 있어서 신석기시대와 이집트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이집트의 그늘에서 벗어난 그리스 예술 고유의 자연주의적 성취에 주목하면서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적 세계관을 읽어내고 나아가서는 그리스 고전주의가 '침잠하고, 사유하고, 구성하고, 지성적이 되길 요구'하는 파르메니데스적인 세계관(규준과 절도를 갖추게 되고 초연함과 장중함을 드러냄)과 '참여하고, 느끼고, 해체하고, 감성적이 되길 요구'하는 헤라클레이토스적 세계관(자연주의적 활기와 경쾌 그리고 유연성을 지니게 됨)의 이상적인 균형과 조화를 보여준다고 평가하는 대목, 아울러 이렇게 조화를 이루는 형국은 일시적이며, 부의 유입에 힘입어 점차 자연주의가 득세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하나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일단의 양식은 결국 '해체'에 이르게 된다는 것,

헬레니즘 미술에서 근대의 바로크, 로코코, 낭만주의 사조에 대응하는 경향성을 포착하며 고전주의 몰락 이후의 공통된 풍경을 짚어내는 대목, 로마예술의 사실주의적 경향에서 철학적 이념으로서의 실증주의를 읽어내고 로마인의 스토아주의를 현대의 실존주의에 대응시키는 대목, 정면성의 원리에 입각해 제작된 콘스탄티누스 황제 개선문 부조에서 로마의 군주 개념 변화와 함께 새로운 중세적 세계관의 등장을 읽어내는 것 등등.

다음의 전망은 의미심장하다. "억압된 지성은 결국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지성에 대한 실망은 새로운 독단을 불러들인다. (...) 현대는 자신의 이념에 관한 한 무정부 상태이며 절망과 자유의 시대이다. 현대는 언제고 그 피로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이다. 무의미에 지친 로마인들이 기독교라는 독단을 불러들이듯이 고달픈 현대는 새로운 독단을 불러들일 것이다."(193쪽) 어쩌면 수세기 후의 인류는 바야흐로 선불교적 영성사회로 침잠하게 될 것인가? 이 또한 하나의 독단으로서? 모를 일이다. 확실한 것은 들숨과 날숨이 반복다는 사실 뿐이리라. 오탈자가 많다. 개정판 낼 때는 다듬었으면.


*
118쪽 밑에서 7번째 줄: 예술이 --> 예술의
199쪽 밑에서 3번째 줄: 티의 묘사에서는 --> 티의 묘지에서는
241쪽 밑에서 6번째 줄: 허장성제적인 --> 허장성세적인
452쪽 밑에서 6번째 줄: 재국말기 --> 제국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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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2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조중걸의 서양예술사 시리즈
조중걸 지음 / 지혜정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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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코 특유의 애써 꾸민 듯한 가식성을 유물론적 회의주의의 산물로 보는 견해가 신선하다. 그것은 실체에 닿지 못하는 인간, 이상의 존재 자체에 회의를 느끼는 인간이 스스로 인공적 세계를 꾸며낸 데서 기인하는 가식성이며, 그런 점에서 이 양식은 매너리즘 예술이나 현대예술의 "예술을 위한 예술"의 이념과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것. 로코코 역시 신념이 결여되어가는 '붕괴의 시대'의 예술이며 여기서 오는 회의와 좌절에 대해 매너리즘이 불안으로 반응했다면 로코코는 자기인식적 현실도피로 향한 셈이라고. 로코코에 대해 은연중 갖고 있던 부정적 편견을 재고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낭만주의에 관한 분석도 심도 있다. 이 사조는 즉자적 자연관을 가지며, 보편에 반하는 개별성과 고유성에 가치를 부여하고, 상상과 직관과 감성에 의해 세계의 유기적인 종합을 지향한다는 것, 아울러 낭만주의는 견고하게 닫힌 체계인 고전주의에 비해 미확정과 변화와 확장 그리고 미지의 대상에 대한 신비감의 요소(숭고미로 일컬어지는)를 갖는 유연한 체계로서 근대국가의 실질적 정치경제 활동의 중추인 중산층의 이념을 반영하는 예술적 표현이라는 것.

미술양식에 대한 대응으로서 로코코에 흄을, 신고전주의에 볼테르와 로크를(경험론과 관념론의 이중기준을 갖는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에 루소를, 인상주의에 베르그송의 생철학을 놓고 비교하는 점, 신고전주의를 위장된 고전주의로 기실은 프로파간다 예술로 치부하면서 이 양식을 거시적으로는 낭만주의 이념의 전개 과정의 일부로 보는 것, 낭만주의-인상주의-표현주의를 일군의 흐름으로 묶어서 감성과 직관을 중시하는 반지성주의 계열로, 사실주의-후기인상주의-형식주의(문학적 양식으로는 사실주의-자연주의-상징주의-모더니즘)를 경험론 계열로 분류하는 점,

신고전주의 시대 이후로 예술이 인식론에서 독립하여 이념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며 보편을 닮기보다 주장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는 곧 예술의 경험론적 세계관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는 얘기, 사실주의가 경험비판론의 예술적 대응물로서 주제나 줄거리와 같은 '의미'보다 심리적 거리두기에 의한 '표현'에서 완벽성을 구한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사실주의는 현대예술의 시초라는 평가, 또한 이 사조가 경주하는 시지각의 공정성이 사회의 계급적 위계를 해체함에 의해 의도치 않게 사회주의에 공헌하는 사조가 되었다는 통찰,

'해체'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사조가 등장하는 근세 말에 이미 벌어진 일이고(전자는 논리•지성적 종합을 도모하는 신고전주의를 해체하고 후자는 감성•직관적 종합을 도모하는 낭만주의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현대는 '요청'의 시대이며 이 요청이야말로 현대의 이념이라는 것, 지성의 붕괴에 봉착하여 후기인상주의가 제시하는 두 가지 삶의 가능성으로서 표현주의와 형식주의를 언급하는 대목(전자는 반지성적이고 무의식적인 모종의 내적 심연에서 새로운 착륙의 토대를 찾고자 하는 것, 후자는 자기인식적 지성을 불러들여 가언적이고 인위적인 질서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그 갈림길에 세잔을 세우는 것 등등 곱씹어 봐야 할 지점들이 많다.

다만 이 책에서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대목이 한 군데 있어 배암발을 달아야 할 듯- 저자는 들뢰즈, 가타리, 데리다, 바타이유 등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들도 큰 틀에서는 미술양식에 있어서의 표현주의와 같은 계열로 보면서 어찌되었든 지성은 문명 성립의 전제조건이기에 지성을 제거해버린 무정부주의적이고 반질서적인 혼수상태(!) 속에서는 애당초 문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표현주의자들의 이념은 무책임하고 유치하다고 일갈하는데, 자기 논리와 내적 일관성을 지니고 나름의 자기완결적 체계를 갖춘 모든 현대 철학 이론은 본질적으로는 형식주의로 봐야지 않을까.

어떤 철학 이론이 아무리 표현주의 성향을 보이고 자유분방하더라도 (심지어 논리철학자의 눈에는 끔찍한 혼수상태처럼 보일지라도) 그 또한 '가언적이고 인위적인 질서를 구축'하는 하나의 체계적인 사유라는 점에서는 (그것이 아무리 그 내용에 있어서 해체를 표방한들 존재론적으로는) 형식주의에 가깝지 않을까. 히피 철학이 펄럭이는 유령의 환영 같다면 영국 신사들의 철학은 도무지 유도리라곤 없는 고루하고 뻣뻣한 샌님 같고 결정적으로는 둘다 덤앤더머의 삽질이란 점에서 진배없어 보인다. 괴테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빌려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오로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라고.



117쪽 밑에서 2번째 줄: 지기 --> 자기
165쪽 밑에서 2번째 줄: 신고주의 --> 신고전주의
378쪽 밑에서 6번째 줄: 그러나 --> 그러니
415쪽 3번째 줄: 나누는 보는 것 --> 나누어 보는 것
480쪽 밑에서 6번째 줄: 대상 일반을 찾아야 하면 --> 대상 일반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483쪽 밑에서 1번째 줄: 가공적 세계와 실재를 대체 --> 가공적 세계가 실재를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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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1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 조중걸의 서양예술사 시리즈
조중걸 지음 / 지혜정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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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주억이며 읽긴 했지만 몇 가지 의구심도 남는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동안 세계관의 변천이 철학적 통합 경향(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 실재론, 합리론 등의 관념론적 신념)과 해체 경향(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론, 유명론, 경험론 등의 유물론적 회의주의)의 진자 운동에 의한다는 전제 하에 각 시대정신의 반영으로서의 예술사를 조망하고 있는데, 이렇게 선제적으로 설정하는 프레임이 확고할수록 거기서 벗어나는 사례들은 쉽게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폄하되거나 아류 내지 부수물 정도로 간과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통시적인 고찰을 위해서는 어떤 기준으로든 선별과 배제가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이론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부득이 확증편향이나 무리한 꿰맞추기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것은 아닌지.

흡사 밤하늘에 별자리를 그리듯 환하고 또렷한 맥락을 짚어낸다는 것이 이 책의 독보적인 안목과 장기임에는 틀림없겠으나 한편으로 이런 식의 환원주의적 접근은 분명 어떤 맹점과 한계를 노정하고 있을 것만 같다. 저자의 표현을 이 책에 다시 돌려주자면 이 또한 '횡포에 의해 얻어지는 기하학적 형상'(451)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상은 관점에 따라 전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가령 16세기를 르네상스로 17~18세기를 고전주의 시대로 19세기 칸트 등장 이후를 근대로 구분하고 각각을 서로 완전히 단절된 인식론적 지층으로 파악하는 푸코의 시대 구분을 따르게 되면 푸코가 포착하는 각 시대의 독자적 인식 구조에 의해 예술사의 별자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을까.

중세와 르네상스가 실재론이라는 인식틀을 공유했다면 이후 등장하는 매너리즘은 단지 반동적 변이나 일탈의 수준을 넘어서 (지동설, 마키아벨리즘, 종교개혁을 추인하는 유명론-예정설 신앙과 함께) 이전의 르네상스와는 인식론적 측면에 있어서 단절과 전환이라 할 만한 질적 차이를 갖는다는 것, 그런 점에서 르네상스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중세와 근대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적 시기로 봐야 하고 매너리즘은 내용분열 혹은 내용부재의(허울에 불과한 내용의) 형식주의라는 측면에서 이행기에 해당하며 기계론적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근대의 본격적인 시작은 사실상 사물에 외재하는 동적 메커니즘을 포착하게 되는 케플러와 데카르트 그리고 바로크의 등장부터라는 얘기,

북유럽 르네상스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각각 중세말의 경험론적 세계관과 근세초의 인본주의적 관념론의 반영으로 보면서 북유럽에서는 한층 진보한 중세는 있었으되 인간의 지성이 여전히 신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하자면 르네상스 같은 건 없었고(!)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근세의 포문을 연 르네상스라는 것은 사실상 피렌체 고유의 업적이라는, 그중에서도 (후기고딕양식 계열이 아니라) 공간성의 구현에 성공한 조토-마사초-만테냐-페루지노로 이어지는 환각주의 계열의 작가들에 국한된 성취라는 주장,

그리스적 가치를 옹호했으나 정작 그들 자신의 정신적 업적은 고전적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에라스무스,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심지어 몽테뉴까지도 르네상스 예술가가 아닌 매너리스트로 분류하고 있는 점, 데카르트 이후 근대의 관심사가 존재에서 운동으로 옮겨감에 따라 탐구의 주제 역시 사물 내재적인 보편 개념에서 사물 외재적인 필연 법칙에 관한 것으로 대체되며 그러한 가운데 존재의 고유성은 사라지고 존재는 그저 필연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추상적 기술 대상으로 전락하는 바, 역동성 속에서 존재를 희석시키는 바로크 회화가 근대의 이러한 경향성과 정확한 일치를 보인다는 것 등등 솔깃하고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한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매너리즘 부분은 이 책의 압권이다.



322쪽 밑에서 4번째 줄: '자연을 담는 예술'과 '예술을 담는 자연' --> '자연을 닮는 예술'과 '예술을 닮는 자연'
325쪽 9번째 줄: 엄격함이 있다 --> 엄격함이 없다
345쪽 1번째 줄: 내재화된 델리커시에 대한 슬픔 --> 내재화된 델리커시에 의한 슬픔
414쪽 7번째 줄: 근대인들이 이해하는 근대란 존재는 --> 근대인들이 이해하는 존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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