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꼭 진흙뻘 같다고 했다. 나보다 먼저 탱고 춰온 친구가. 그러나 돌이켜보면 스윙판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춤의 깊이에 있어서나 강습 비용에 있어서나 탱고 쪽이 스케일이 더 크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모양새는 뭐. 진흙뻘의 스케일도 더 크려나. 하여튼 스윙 출 때도 그랬다 나는. 스윙은 좋았지만 춤판 사회는 지긋지긋했다. 학문은 사랑하지만 학술계는 경멸하는 학자처럼. 예수는 존경하지만 기독교 사회에는 냉소적인 종교인처럼.

 

이렇게 말하면 나 혼자만 퍽이나 고고하고 순수한 거 같지만 나도 안다, 나 역시 그 진흙뻘을 구성하는 일부라는 걸. 그런데 차라리 애당초 그 어떤 기대도 품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경멸할 것도 말 것도 없지 않을까. 기대도 환상도 없이 다만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것만을, 불변하는 것만을 응시하고 추구하는 것- 그게 제일 지혜롭고 또 덜 피곤한 일 아닐까. 그리고 되도록 좋은 점을 더 크게 보려고 노력해야겠지. 진실이란 언제나 입체적이고 중층적이며 또한 모순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그 무엇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 무슨 이런 춤이 다 있을까. 실로 영혼을 뒤흔드는 춤이구나 탱고는. 밀롱가 끝나고 자정 넘어 택시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격정이 도저히 가라앉질 않아서 눈물이 다 났다. 탱고를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춤한테 너무 많은 걸 빚졌다. 사랑과 자비와 위로를 과분할 정도로 많이 받았다. 언제까지 출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이 춤을 평생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손도손 모여서 탱고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참 즐겁다. 이런 얘기라면 두 눈 빛내가며 밤새도록 이어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동경하는 아르헨틴 마에스트로, 그들의 춤 스타일, 좋아하는 악단, 좋아하는 곡, 춤 출 때의 자세, 아브라소의 느낌, 요즘 밀롱가의 동향, 연습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 것인지 등등 끊임없이 샘솟는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후각을 압도하는 종이 냄새. 아름다운 규칙에 따라 광활하게 진열된 다양한 장르의 책들. 좀비처럼 살다가도 서점에 가면 내 눈은 별안간 용맹한 육식동물의 눈이 된다. 이 모든 걸 다 안아보고 싶고 펼쳐보고 싶은 욕심. 연인의 귓불을 매만지듯 한 장 한 장 귀퉁이를 쓸어넘기며 활자로 압축된 온갖 방면의 세계를 탐사해보고픈 호기심. 밀롱가에 가도 그렇다. 저마다 고유의 춤 스타일과 몸선과 에너지를 가진 땅게로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서점에 갔을 때랑 똑같이 내 눈은 육식동물의 그것이 된다. 심장이 뛴다 춤추고 싶어서. 저마다 고유의 온도와 색깔과 파장을 지닌 이 눈부시게 다채로운 영혼들을, 뛰는 심장으로 샅샅이 느껴보고 싶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춤은 말을 안 해서 좋다. 도서관도 절도 산도 밀롱가도, 말을 안 하거나 적게 하니까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