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4쪽 사이 본문 일부가 누락되었고 97쪽은 전체가 중복되어 있으나 이 황당한 광경을 발견하기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번역이 엉망진창인 덕분에 아무리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판의 양과 질이 우수하므로 얼핏 보면 꽤 잘 만든 책처럼 보인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질 좋은 도판으로 이탈리아에 산재한 여러 성당 건축물을 구경하느라 모처럼 두 눈이 호사를 누렸다. 종교 건축이야말로 당대의 과학과 예술이 도달한 첨단의 경지의 집적이 아니고서야 무엇일까.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한 염원을 품고서 절대자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전념했을 테지만 그토록 고결한 신심의 결과물이 오히려 그것을 만든 인간에 대한 경외를 갖게 만든다. 각 성당에서 섬기는 수호성인들의 업적 및 그에 얽힌 종교사 등 비신앙인으로서는 잘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건축물의 종교적 의미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슈퍼노멀의 가치에 수긍한다면 필히 질문이 따를 수밖에 없겠다. 지금 우리 모습은 슈퍼노멀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가? 혹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디자인 너머의 영역을 자문해보게 만드는 디자인 서적.
키치 혹은 키치적인 것이란 무엇이며 그 악덕과 해악은 어떠한지, 키치가 출현하게 된 철학사적 배경, 키치에 대한 도전과 투쟁으로서의 현대 예술의 면면, 아울러 현대예술이 철학과 어떻게 교호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까지 폭넓게 살피고 있다. 그 어떤 현대인이 키치의 혐의로부터 감히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독자의 정수리에 죽비를 내려친다. 가차없고 통렬하다. 팝아트가 키치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어볼 일이다.
무인양품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평이 재밌다. 흡사 진정제를 복용한 이케아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