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파크 빠져나와 부둣길 따라 걷다가 우연히 어느 아름다운 오솔길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웬디 와이틀리라는 할머니가 30여 년에 걸쳐 만든 정원이었다. 남편에 이어 딸까지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마음을 추스르려 집 근처 철도길 옆 황무지를 조금씩 가꿔나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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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현대미술관 신관(Naala Badu) 지하 4층 '더 탱크(The Tank)'. 7미터 높이의 층고 사이사이에 백 개도 넘는 콘크리트 기둥들이 늘어서 있다. 원래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시드니 항구로 들어오는 군함과 잠수함 등에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비밀리에 만든 유류 저장고였다고. 거대한 공간이 주는 압도적인 분위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미술관 측에서 매입해 대규모 예술작품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산업폐기물들을 모아다가 놀이공원으로 만들어 놓은 <The Key's Under the Mat>라는 제목의 참여형 설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는데, 놀러온 아이들이 다들 신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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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전하기를, 다음 주 월요일이 국왕 탄생일이어서 학교 안 나와도 된다는 선생님 말씀에 반 친구들이 다들 아쉬워 했다고. 학교 다니는 게 즐거워서 학교가 쉬면 실망하는 아이들이라니 실화냐... 학교도 즐거운데 학교 가는 길마저 이리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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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앤잭데이는 우리나라 현충일에 맞먹는 국경일이다. 우리는 이런 행사가 관주도로 지나치게 엄숙하게 이루어지고 시민 차원에선 다소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편이지만 호주에선 무슨 마을 축제처럼 흥겨운 분위기다. 이날 만큼은 동네 필부로 살아가던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이 옷장 깊은 곳에 모셔둔 군복을 꺼내 입고 교통이 통제된 시드니 대로를 당당하게 활보한다. 노병의 가슴팍에 매달린 수많은 훈장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복잡다단한 이념 갈등의 역사도, 군부독재의 트라우마도, 분단국가가 부득이 안고 있는 만성적 고충 같은 것도 없는 나라의 단순명랑 쾌활한 현충일의 모습이란 이런 것일까.


사실 주말마다 확성기 들고 광화문으로 모여드는 지긋지긋한 태극기 노인네들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만큼은 이 못지않을 텐데, 또 그중엔 분명히 나라를 위해 목숨 내걸고 산전수전 겪은 이들도 상당할 텐데...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헌신한 사회구성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예우를 갖추어 한마음으로 순수하게 축제를 즐기기에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저마다의 정치적 시각에 따라 날을 세우고 시위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복잡한 문제와 갈등이, 또 해결이 난망한 민족적 과제가 너무나 많은 듯... 광화문 거리에 펄럭이는 태극기조차도 이념적 색채를 띠고 있으니. 호주의 앤잭데이 행사를 한국인의 눈으로 구경하고 있으려니 별 생각이 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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