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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두 장은 호주 와서 처음 본 유황앵무(Sulphur-crested Cockatoo). 순백의 깃털은 윤기가 흐르고 머리의 노란 벼슬은 황금으로 만든 왕관 같다. 얼마나 힘세고 영리한지 부리로 아이들 도시락 뚜껑을 열어서 남은 음식을 꺼내 먹는가 하면 음수대 수도꼭지를 돌려서 물도 한 모금씩 받아먹는 모양이다. 뚜껑이며 수도꼭지며 온전히 남아나질 않는다고. 


호주는 금전이 오가는 계약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정교하고 체계적인 것 같다. 우리가 생각보다 주먹구구식이었구나 싶다.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술이 발달해서 다양한 일처리에 앱 사용이 보편화되어 있고 앱 디자인도 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우수하다. 그렇게나 세련되고 선진적으로 굴러가는 것 같으면서도 또 막상 겪어보면 의외로 안일하고 허술한 구석이 없질 않고.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려나. 

여기 정착하면서 다시금 통감했다. 나는 역시 생활이라는 것에는 도무지 재능도 능력도 적극성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복잡한 생활의 문제에 직면하면 타조처럼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어버리려고만 한다. 영어 못하는 게 제일 심란해서 한국 있을 때 영어책만 붙들고 있었더니만 정작 와보니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지장이 없다. 타조처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떠랴. 이참에 지긋지긋한 영어도 때려치워버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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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 보면 애잔한 덕수궁. 이미 많은 궁역과 전각들이 소실되고 훼철되었을 뿐더러 남아있는 부분마저 건축물들의 양식과 배치가 중구난방이다. 이 의도치 않게 포스트모던한 광경이란. 당대 서구에서 유행했거나 유명했던 온갖 위엄있고 화려해 보이는 건축 양식을 맥락도 조화도 없이 이것저것 끌어다가 흉내내 놓았다고밖에는. 통일성도, 일관성도, 철학과 가치를 보여주는 조화로운 배치에의 고려 같은 것도, 자기다움에 대한 성찰이라든가 확신 같은 것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건 뭐, 오백 년 조선 왕조 멸망 직전의 카오스적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격변하는 국제 사회에서 어떻게든 낙오되지 않으려는 그 불안 강박이 건축적 의지로 드러나니 차라리 애잔하다. 덕수궁은 경복궁과도 창덕궁과도 다르다. 자긍심과 위용이 당당하게 흘러넘치지도 않고, 안락하고도 건실한 여유와 안정감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아무리 그런 멋을 연출해 보려 한들 이곳에 어쩔 수 없이 감돌고 있는 것은 자기 의심과 불안 강박이다. 존재론적 분열과 혼돈 속에서 사면초가의 국면을 헤쳐나가야 했던 그 시절의 마음이 이곳에 올 때마다 아리게 전해져와 걷다 보면 궐 안 어느 차디찬 담벼락이라도 한 번씩 어루만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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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 아래 들끓는 날벌레 속에서 어찌나 당당하고 건장하게 피었던지. 화병에 담긴 그 어떤 꽃에서도 감지할 수 없던, 소리 없이 포효하는 기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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