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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Chatterley's Lover (Hardcover)
D. H. Lawrence / Penguin Classics / 2009년 10월
평점 :
1920년대 씌어진 소설임을 생각하면 작가가 시대를 반세기는 앞서 살았던 것 아닌지. 작중 인물의 몸을 빌려 반지성주의 내지는 히피즘에 가까운 사상을 웅변할 뿐 아니라, 어떤 대목에선 맑시즘의 한계와 말로, ‘거대서사의 붕괴’까지도 예감하고 있다. 선정적인 소설이 영어 공부하기에 좋다길래 골랐더니만 실망스럽게도 전혀 외설적이지 않고 오히려 기계문명의 반생명성, 산업사회 인류의 몰개성과 몰인간성, 황금만능주의와 물신주의 풍토, 계급 격차와 부의 편중 등 현대 물질 문명의 그늘을 짚어내는 작가 특유의 깊이 있는 사유와 암시가 곳곳에 녹아 있어 예상과는 다른 쪽으로 곱씹어 보게 된다.
잭 오코넬, 엠마 코린 주연의 넷플릭스 영화를 먼저 봤는데, 원작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관계가 영화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그려진다. 사회적 신분의 차이는 곧 견고한 마음의 벽이기도 해서 육체 관계를 맺으면서도 한동안은 서로간에 체념과 불신, 경계심과 반감이 적잖이 뒤섞여 있는 것. 특히 멜러스를 향한 코니의 (거의 인지부조화에 가까운) 이중성, 자기분열적인 혼란과 망설임은 함의하는 바가 깊어 보인다. 사회적 통념과 질서에 갇혀 자신이 느끼는 생명체 본연의 감정조차 투명하게 자각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더 근본적으로는 비대한 정신세계에 함몰되어 날것의 생명이 갖는 자연 그대로의 야성과 육체성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는, 문명인의 불구성을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클리포드 역시 영화에서와는 달리 나름의 상징성을 지닌 비중 있는 조연으로, 결코 코니의 단순대립항이 아니었다. 차라리 이 둘은 내외적 불구 상태의 부부로서 완벽한 한 쌍이라고 해야 하겠다. 사실상 클리포드, 코니, 그리고 멜러스까지 이들 모두는 작가의 더없는 분신이며, 소설이 진행되어 감에 따라 셋 다 반생명성의 각피, 처지에 따라 그 형태는 다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각각의 삶을 저해해왔던 저마다의 각피들을 떨구어내고 각자의 방향으로 변모, 성장해 나간다. 장소와 인물이 내포하는 상징은 정교하고, 계급 격차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심리적 풍경을 묘파하는 대목은 날카롭다. 이 책이 마님과 돌쇠 클리셰의 원조를 넘어 고전의 반열에 오른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알라딘에선 검색이 안되는데, 먼저 본 영화도 사실 좋았다. 러닝타임의 제약으로 서사를 워낙 압축해 놓긴 했지만 그래도 원작의 내용에 충실하다. 소설 속 장면과 대사의 단어 하나까지도 그대로 살리려 애쓴 게 느껴지고. 생명이 약동하는 랙비숲의 울창한 정경, 그 안에서 남녀주인공이 만들어내는 포즈와 움직임, 섬세하고 예민하게 감정선을 건드리는 음악, 영화 전반의 고전적 기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미가 돋보이는 현대적 의상, 장면 장면의 색감과 분위기, 미장센 등등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시청각적 아름다움이 각별하여 소설과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준다.
책으로 돌아가서 판본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이 펭귄클래식 패브릭 양장본 시리즈는 희한하게도 저마다 글자와 행간 크기가 제각각인데, 그 중 이 책이 유독 빽빽한 듯. 0.38mm볼펜으로 모르는 단어 적어넣을 자리조차 부족하다. 읽다보면 책표지 문양 페인팅이 벗겨져 손가락에 묻기도 한다. 책을 처음부터 관상용으로 제작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