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or Feelings: An Asian American Reckoning (Paperback) - 『마이너 필링스』원서
Cathy Park Hong / One World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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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헬조선이니 해도 이불 속이 따뜻한 것을 알기는 어렵다,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이불 밖에 놓인 이민 후세대들, 나아가서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소수자들, 촘촘한 차별의 구조 속에서 굴절된 자아를 가지고 모순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고충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미국 이민 2세가 쓴 이 책은 차별에 관한 에세이다. 미묘하고 일상적인, 그래서 더욱 자기검열적이고 자기환각적인(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희미한 연무처럼 때로는 나직이 지속되는 소음처럼 존재하는 차별. 몰이해와 편견의 시선, 단순화 정형화된 잣대 속에서 만성적인 피로가 조용히 누적되어 가는 차별. 평생의 형벌과도 같은 차별.

저자가 써내려간 '이 감정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한국판 부제). 일상에서 겪는 차별의 경험은 인종주의에 대한 고찰에서 탈식민주의적 사유로 이어지고,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말은 이 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매운 책이(불 붙은 표지를 보라) 미국에서 굵직한 상을 거머쥐며 평단의 찬사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도 하고. 우리나라라면 어떨까? 모범 시민 이자스민 말고, 모범을 거부하는 캐시박홍 같은 여자가 나타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면, 우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을까? 얼마나 가능할까?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비록 이민 인구 유입의 역사가 짧은 사회적 특수성도 감안해야겠지만, 우리의 갈 길이 얼마나 먼지 새삼 가늠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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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wegian Wood (Paperback)
Haruki Murakami / Vintage Publishing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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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십여 년 전에 문학사상사 유유정 역으로 읽었는데, 시간이 흘러 기억이 또렷하지 않아 정확한 비교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읽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문체가 훨씬 담백하다. 남주인공은 뭔가 좀 더 터프해 보이고. 번역의 문제라기보다 영어라는 언어 특유의 간결명료한 성격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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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weet Orange Tree (Hardcover)
Jose Mauro De Vasconcelos / Candlewick Pr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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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라는 게, 미시적으로는 언뜻 내밀하고 사적이고 독자적인 종류 같아 보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흡사 벡터를 지닌 운동체 마냥 확산되고 전파되고 전염되고 전이되고, 뭐 그렇게 생명체 간을 오가며 흐르거나 세월을 타고 흐르는, 점성과 유동성을 지닌, 타르나 연기(smoke) 같은 거 아닐까. 그렇다면 먹구름 같은 것이, 그러니까 이리저리 던져지고 넘겨받아지고 하면서 온갖 짜증 불만 시기 원망 증오 등등의 악감정이 누적되고 응축된 그런 먹구름 같은 것이, 검은 에너지처럼 숙주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가장 취약한 생명체한테로 들러붙는 거 아닐까. 가난은 모두를 지치고 고단하고 피폐하게 만들지만 그로 인한 가장 큰 희생은 결국 아이들의 몫인 것 같단 생각. 가진 거라곤 오로지 보드라운 살갗 뿐인 아이들이야말로 이 '검은 에너지'에 대해 누구보다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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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nd in the Willows (Paperback) Puffin Classics 2009 New Edition 30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 Puffin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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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짜임새 또한 탄탄하다. 영미권이라면 우정과 모험을 사랑하는 초저학년에게 적합한 성장소설이겠지만 서정적인 묘사와 시적인 표현들이 웬만한 인문서보다 더 어려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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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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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이제는 박완서 선생님 글도 뭔가 예스럽게 느껴진다. 어투도 그렇고 등장하는 물건들과 생활상이 까마득하다. 물론 나에게는 여전히 한국어 글쓰기에 있어서의 부동의 전범이자 교본이며 그 사실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테지만.

대학 시절 이 분이 한 번 우리 학교에 오셨었다. 실제 모습을 뵌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무슨 강연이었던가는 기억 안 난다. 지나치게 수줍어하며 시종 몸 둘 바를 몰라 하시던 모습만 선명하다. 서늘하리만치 날카롭고 깐깐하던 글 속의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그날 대중 앞에 서게 된 상황이 못내 부담스럽고 불편하셨던 것이다. 미처 거기까진 헤아리지 못하고 그때는 그저 어쩌다 우연히 마스크 벗은 이웃의 낯선 모습을 봤을 때처럼 뜨악하기만 했었다. 글 속의 인물이 글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얼마나 생경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최초의 아연한 체험이었달까.

그 후로도 운 좋게 몇 번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역시 글 속의 인물은 글 속에서만 만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다. 글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형태다. 독자의 관념 속에서 일방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된 후 제멋대로 확고하게 완결이 되어버리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서, 글 속의 위인을 글 밖에서 재차 만난다고 해서 딱히 무슨 생산적인 효과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자칫하면 그저 대상에 대한 인식을 재조정해야 하는 구차스런 일만 생긴다.

다른 차원으로 옮기지 말아야 되는 게 있다. 함부로 손 뻗지 말고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둔 채로 바라보는 편이 더 나은 그런 경우. 글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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