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르히니아 판돌피에게서 농염한 관능미가, 노엘리아에게서 천진함과 순수함이, 제랄딘에게서 활기와 생명력이, 나탈리아 힐스에게서 절도와 카리스마가 느껴진다면, 마리아나가 보여주는 것은 자유다- 완벽한 정복에서 오는 자유. 아르쎄와 마리아나는 자유롭다. 이들한테는 탱고를 춘다는 표현보다 부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려 보인다. 마부가 말을 부리고 신선이 도술을 부리듯이 얘네들은 탱고를 부린다. 이들의 춤 앞에서는 에세나리오와 살론의 구분조차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일주일 간의 노동을 마치고 내일 여기 간다! 그 옛날 아르헨티나로 이민 간 어느 가난하고 춤을 사랑했던 부두노동자의 영혼이 내일 내게로 빙의되길 바라며. 속俗을 향한 열정과 생의 남루함의 정도로만 견주자면 빙의가 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지.

 

2 모든 과도한 장식은 본의아니게 배면의 곤궁과 쇠락을 환기시키고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쓸쓸해 보인다. 밀롱가에서는 헤어스타일이 지나치게 단정하고 유난히 향수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땅게로가 항상 애잔하다. 크고 화려한 악세서리를 주렁주렁 걸친 땅게라가 그렇듯이. 그래서 그런 로는 한 딴다 내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꼭 안아주려고. 내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 누에보 탱고 수업을 처음 들었는데, 마치 그동안 향가나 고려가요 밖에 모르다가 느닷없이 현대시를 읽은 기분, 재밌었다. 내가 정말 추고 싶었던 춤은 바로 이런 춤이었다고 생각될 만큼. 음악은 박자나 흐름이 모호해서 몸을 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생기고, 파트너와 나 사이에는 좀더 야릇한 연극적 긴장감이 감돌고, 밀롱게로나 살롱보다 어떤 면에선 훨씬 예술적인 것 같다. 누에보라는 말 그대로 이 춤은 정말 새롭고, 추상적인 현대무용 같고, 서정성이 강조되는 리리컬 재즈 댄스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여자를 봐도, 화려한 장신구에 치렁대는 치마 말고 이렇게 핫팬츠 입고 누에보 추는 여자가 더 근사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La Bruja. 밀롱가에서 이 곡 나오면 절대로 앉아있을 수 없다. 이 얼마나 씩씩하고 격정적이고 호전적이고 즐거운 곡이냐! 감성이 풍부하고 정열적이고 음악을 잘 살리는 땅게로하고 추면,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듯이, 생각지도 못한 아도르노가 즉흥적으로 막 튀어나온다. Bruja는 스페인어로 마녀라는 뜻이라는데 가사를 찾아보니 그 내용이 자신을 파멸시킨 마녀 같은 여자에 대한 애증으로 가득차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이들어 머무를 곳은 아니고 오래 머무를 곳은 더더욱 아니다, 여기는. 이곳에서 추구하는 지고의 가치는 젊음과 에로티시즘이고, 육신은 해마다 노화하여 점점 더 그 가치로부터 멀어져가므로 오래 있으면 있을 수록 남녀 할 것 없이 처량하고 서글퍼질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춤을 놓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떤 절박감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절박해지고 싶지 않다. 그런 심리적 패러다임 속에 갇히기가 싫다. 유혹하고 유혹당하는 행위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관계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패러다임, 타인이 내게 보내는 관심과 흥미와 애정의 양을 척도로 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데 있어서 타자가 반드시 필요한 타자의존적 심리구조- 춤판에서 우리가 느끼는 절박감은 이런데서 기인하는 면이 있고, 나는 때로 그런 게 지겹다.   


탱고가 주는 기분은 마치 신기루 같다. 추면 출수록 '탱고'도 '나'도 아련해진다. 잡힐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자꾸만 잡으려 허우적대고 있는 그런 모습이 아편 중독자의 삶과 다를 게 무엇인가. 적당한 때 떠나는 게 좋겠다. 나의 생물학적 리즈 시절의 끝물을 탱고판에서 보낸 것으로 족한다. 이곳의 한계는 젊음과 성 (아울러 자신을 향한 타자의 시선)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비참해지지 않으려면, 절박해지지 않으려면, 쓸쓸해지지 않으려면, 그런 매혹적인 것들을 달관하고 초월할 수 있어야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