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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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와서는 역사에 대한 콘텐츠는 어쩌면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넘쳐난다.

그런 콘텐츠들 속에서 역사e가 가지는 강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디테일이 가지는 힘을 한껏 밀어붙인다는데 있다.

 

역사학계의 주류적인 흐름은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역사를 거대한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그 속에서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끼친, 또는 당대의 주도적인 정치, 사상, 경제, 문화분야들을 연구하여 그것의 법칙성을 찾아냄으로써 역사가 오늘날과 미래를 살아가는 교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연구는 당연히 수많은 인간들이 살아가고 만들어나간 그 세밀하고도 풍부한 경험들을 놓칠 수 밖에 없다.

그것들을 가지치기하지 않고 살려두다보면 역사는 도대체 뭘 얘기하자고 하는지 알 수없는 난해한 덩어리자체가 되버릴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버려진 것들, 작은 것들이 모여서 인간의 삶의 풍부함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또한 분명한 진리이다.

역사는 거대담론만으로 절대 완성될 수 없다.

역사는 인간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수많은 인간군상들은 집단성만큼이나 하나하나의 개별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역사학계의 오랜 논쟁과 고민의 지점이기도 했다.

역사e가 위치하는 지점이 바로 고민의 지점, 이곳이다.

 

역사e 1권에 이어 2권에서도 역사e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실들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기존의 역사적 흐름과 접목해내고 그것의 의미를 되살려낸다.

 

1부에서는 주류역사에서 버려졌던 많은 사람들을 복원해내고 있다.

조선시대 주류담론을 생산해내는 것은 사대부 지식층들이었지만 그들 역시 그것을 유통시키는 존재가 없었다면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자로서의 책쾌를 다시 이곳에 불러낸다.

노비 출신의 시인 정초부(초부는 나뭇꾼이란 뜻이니 제대로 된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한 존재다)는 그의 시를 짓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평생 양반들이 '노비가 시를 짓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라는 결국 구경거리의 신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런 그의 속내는 한 편의 시로 전해지는데, 평생을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시짓는 노비로 대접받아야 했던 시인의 씁쓸함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강가에 있는 나무꾼 집일 뿐

과객 맞는 여관이 아니라요

내 성명을 알고 싶다면

광릉에 가서 꽃에게나 물으시오

 

조선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의 삶과 그 당시로는 참 드물게도 그런 부인을 내조했던 남편 박유산의 삶도 흥미로웠다.

자신이 기르던 아이가 왕이 되었을 경우 판서보다 높은 품계를 받았던 유모의 존재

역사속에 묻혀 조명되지 못한, 그러나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운동의 사이를 메웠던 활빈당

조선의 장애인 인식의 일면을 보여주는 세종실록의 기록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에게

현송(거문고를 타며 시를 엂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이는 세상에 버릴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에 버릴 사람이 아무도 없듯이, 세상에 버릴 역사와 삶이 아무것도 없다하겠다.

 

2부에서는 사라진 것들을 되살리는 노력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역사시간에 시험용으로 이름만 외웠던, 그래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진 책인지 알려지지 않았던 그 책을 복원해낸 사람들. 그리고 실학자 서유구를 오롯이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다른 실학자들이 제도의 개혁을 주장할 때 서유구는 밥먹고, 씨 뿌리고 거두고, 땀흘리는 일상에서 개혁은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바지를 걷고 밭을 갈고, 꽃을 가꾸고 옷을 지어입으며 이 책을 완성하였다.

온갖 농사와 의식주와 건강법, 일상생활의 모든 면을 망라한 이 백과사전은 내용의 방대함에 국가기관에서도 번역을 포기했는데 40여명의 소장학자에 의해서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번역해낸 학자들이 어쩌면 서유구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은 이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일본의 군용모피를 만들기 위해 거의 멸종되어진 우리 시골마을의 삽살개를 다시 살려낸 사람들,

일본의 공업용 원료로 사용될 소금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밀려난 우리 전통 소금 자염. 너무도 쉽게 다들 천일염이 전통소금이라고 생각하지만 노인들을 찾아 묻고 물어 원래 끓여서 만들던 자염의 제조법을 되살린 사람들

되살려낸 것 그 자체도 소중하지만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을 되살려내는 사람들의 마음과 노력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2부 마지막은 야스쿠니신사와 도쿄전범재판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2부의 소제목에는 어울리지 않는듯 보이지만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것들, 하지만 아직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전쟁의 신으로 또는 일본을 위해 희생한 일본인으로 둔갑해버린 조선인 강제징병자 2만 1000여명.

우리가 잊는 순간 그들은 그 억울함의 공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 그들의 고향 땅임을 잊지 말고 지속적인 반환운동을 추진해야 한다.

 

3부는 시대의 맥박, 살아있다는 표현으로 민족의 위기를 극복해냈던 순간들을 되살린다.

임진왜란 당시 초기의 열세를 뒤집어낼 수 있었던 조선의 화약기술의 발전과 비격진천뢰

의성김씨 명문가 종손으로 태어나 한평생을 파락호로 살면서 집안의 전 재산을 거덜낸 줄 알았으나, 그가 죽은뒤에야 밝혀진 진실은 그 많은 돈을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낸 애국지사였다는 것. 독립운동의 역사에 김용환 그 이름 석자를 조용히 올려본다.

시집에 가져갈 장농값마저 빼앗아가버려 평생 시댁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했던 딸의 시는평생 원망스러웠던 아버지에게 시를 쓴다.

 

................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리

내 생각한 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대.....

 

 

어쩌면 그 따님마저 이토록 의연한지...

평생의 원망을 저 하나로 날려보낼 수 있는 의연함이 명문 집안의 가풍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와 함께 너무 평범하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사소해서 잊혀진 6264인의 독립운동가들을 오늘의 역사에 불러내본다.

집을 나간 장부는 뜻을 이룰때까지 살아돌아오지 않는다면 2개의 폭탄을 쥐고 상하이 홍커우공원으로 향했던 윤봉길의사의 마음과 6264인의 잊혀진 독립운동가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오늘 다시 깨닫는다.

 

역사e가 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6264인의 독립운동가를 살려내는 것.

너무 사소해서 작아서 평범해서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것들. 하지만 그것들을 전체로서 오롯이 살려낼때만이 기존의 역사의 뼈대에 살이 붙고 근육이 붙고 피가 흘러 제대로 온전히 바라봐줄 수 있는 것들. 이런것들을 살려내는 그 첫걸음.

이것이 역사e가 하고자 하는 것, 역할이 될 것이다.

 

때때로 방송을 의식한 과장이나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도 보인다.

예를 들면 17, 18세기의 조선은 폐쇄된 나라라는 인상을 주지만 실상은 이미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외국어를 가르치고 외교관을 배출하는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었으므로 폐쇄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는 서술의 경우이다.

물론 조선은 역관을 국가에서 주도하여 길러내고 있었고 이들이 외교에서 일정 역할을 담보한 것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조선의 지배구조나 개별정책이 아닌 조선의 외교정책의 기본틀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 시대 조선의 결정권을 가진 것은 사대부이지 역관이 아닌 것이다.

 

또한 조선의 장애인정책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 정조때의 재상이었던 체제공을 시각 장애인으로 표현하고있는데 이는 얼핏보면 두 눈이 모두 안보였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런데 체제공의 장애는 사시이다. 체제공의 초상화를 보면 그가 사시였던걸 알 수 있는데, 이 정도의 장애로 아무 부연설명없이 시각 장애인이란 표현을 쓰는건 지나친 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송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 말자.

실수라거나 잘못알았다면 고치면 그만이지만 방송효과를 노린 의도된 과장이라면 이 자체로 역사왜곡이 될 수 있다.

어떤 목표를 향한 과장, 왜곡은 항상 그 부작용이 더 컸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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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괴물 - 다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권재원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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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새 나는 좀 많이 지쳐있었나보다.

교육에 대한 온갖 담론들과 책들과 학교의 문제들과....

하 많은 책들이 쏟아져나왔지만 예전처럼 새로운 열정으로 그 책들을 보고싶은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았다.

온 국민이 교육전문가인것 같은 나라에서 정작 가장 앞서 교육을 고민해야할 의무가 있는 나는 오히려 무기력증에 빠져있었던듯하다.

 

교육서적들은 이것 저것 잡설들을 빼고나면 결국 2가지다.

대한민국이 처한 심각한 교육의 문제를 어디서 풀어갈 것인가 해법을 구하는 거대담론이 그 하나고,

온갖 새로운 방법론 내지는 기술들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선언하는 만병통치약같은 책들이 나머지 하나다.

 

전자는 사실상 답이 뻔한 문제를 내놓고 그 답을 피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에둘러 가는 듯했다.

이 나라의 심각한 입시교육과 아이들의 살인적인 학습과잉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결국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세상에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충분히 하고도 남을 일이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 나가는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어떤 직업이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최소한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다면 왜 대학입시에 이토록 목을 매달겠는가?

이상적인 사회란 이 나라의 모든 노동을 하는 이들이 그 노동의 성실한 댓가로 먹고 살고, 뭐든지 한가지 정도는 하고싶은 취미든 뭐든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사회란 생각이 든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연구를 하고, 손재주가 좋은 아이는 뭔가 기술을 배우고,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는 자동차를 만들든 디자인하든 버스운전을 하든 하여튼 무엇을 하든 먹고살수 있어야 한다.

직업의 종류가 다를 뿐 삶의 질은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분명한 해답을 빼고 대안을 찾으려니 어떤 대안이든 구름잡는 소리일 수 밖에 없다.

 

후자의 온갖 방법론과 기술들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이 책에서도 비판하고 있는 바 EBS의 최고의 교사류의 책은 당사자인 교사에게 무한노동을 은근히 요구한다.

나는 지난 4년간 소위 행정교사로 살았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얘기하자면 학교에 행정교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온갖 행정잡무에 치여 서류더미에 파묻혀살게 되는걸 말하는 것이다.

학교에도 3D는 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왠만하면 모두가 피하려고 하는 자리가....

그 자리를 4년동안 하다보니 학교에서의 생활은 딱 2가지다.

수업과 그외의 모든 시간은 행정잡무 처리.

우리 반의 아이들과 상담할 시간 하나 내기 힘들고, 학교에서 수업자료 준비는 꿈도 못꾸고....

결국 일이며 수업준비며 모두 집으로 싸들고 와서 우리집 아이들 뒷치닥꺼리와 저녁식사와 집안일이 끝나는 밤 11시쯤 돼야 비로소 일거리를 마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집안일을 포기하든 학교 업무를 완전히 내팽개치든 뭔가 하나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수업준비니 뭐니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다.

언론같은 매체들에서 뭔가 새로운 교육담론을 얘기하면 감이 딱 온다.

저거 또 일거리로 떨어지겠구나...

 

그런 내가 오랫만에 이런 교육서적을 다시 든건 순전히 한 때 알라딘 서재를 풍미했던 바람구두님 때문이다.

시사인인가 한겨레21인가 헷갈리는데(둘다 정기구독을 하고 있으니 기사들은 항상 헷갈린다. ㅠ.ㅠ) 하여튼 거기에 바람구두님이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쓴걸 발견했다.

원래 바람구두님에 대한 신뢰와 또 그 글이 맘에 들었기 때문에 한 번 다시 읽을볼까 하게 된거다.

 

조금은 속이 시원해졌다.

이 책은 저자가 몇년간 각종 매체에 썼던 교육에 대한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덕분에 어렵지 않으면서 학교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동시에 현장교사로서의 풍부한 경험이 그러한 논의를 더욱 더 풍성하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 온갖 교육문제의 책임이 마치 학교에 있는 것처럼 마녀사냥을 하는 풍조에 반대하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다시 한번 제기한다.

이런 거다. 학교폭력 문제로 온나라가 떠들석하면서 그것이 학교의 문제인듯 얘기하지만 교사들은 안다. 그건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의 문제이고, 가정의 문제는 사회노동의 문제임을.....

학교가 왜 괴물이 되어가는가? 결국 무한경쟁과 무한노동의 사회가 그대로 그 체제를 학교에 삼투압시키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보면 해법도 보이는 법이다.

학교 교육의 기본 이념이 바뀌어야 한다.

사회가 학교를 괴물로 만든다면 학교는 교육은 그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대부분이 노동자가 될 아이들이 자신의 노동의 권리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있도록 올바른 판단력과 비판정신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개천에서 용나도록 열심히 공부하면 너도 출세할 수 있어가 아니라 아이들이 처할 현실을 인식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가르쳐야 한다.

이 책은 출발점을 제시할 뿐이다.

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 변화의 진정한 시작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프레임을 다시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를 위한 용기를 내기 위해서 변화의 가능성들을 제시하고, 전교조의 기존 정책을 비판하고, 방법론들을 다시 살펴본다.

 

새해의 출발과 함께 하기에 좋은 책이다.

신발끈을 다시 묶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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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01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사에게 은근히 강요하는 무한노동.
그와 비슷한 것이 또하나 있어요.
일하는 엄마에게 은근히 강요하는 슈퍼맘이요.

결국은 돌고돌아 그 어느 누구라도 함께 짐을 나누어야하는게 정답이죠. 사회도, 학교도, 가정도!

새해 아침에 저 또한 마음에 담을 만한 이야기인 것같아 좋아요. 하고 갑니다. ^^

바람돌이 2015-01-02 00:13   좋아요 1 | URL
아 슈퍼맘... ㅎㅎ 무한노동 맞죠.
고통을 나누자고 앞에서 소리치는 사람치고 진짜 고통을 분담하는거 못봤어요. 진짜 분담하는 사람은 말없이 조용히 하죠.
새해는 제발 아픈 사람들이 좀이라도 고통을 나누고 덜수있는 사회를 기원합니다.

라파엘 2015-01-0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감사합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ㅎ

바람돌이 2015-01-02 00:14   좋아요 0 | URL
안단테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닉네임을 소리내보니 왜인지 한발짝씩 리듬에 맞춰 타다탁 걸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

반딧불,, 2015-01-01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교사만이 아니라 이 사회는 조금이라도 잘 해보려고 하는 사람에겐 무한노동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당연한 듯이 네가 선택했으니 더 해라고 합니다. 그거 아시죠? 지쳐 나가떨어지면 잘난 척 하더니 잘됐다고 합니다.
같이 노력하지 않지요. 왜 그런 것인지 늘 궁금했는데 그 무한노동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더군요.
시작하면 결국 그만두지 못하는 일부가 늘 다치게 되는 시스템이라니.
아하,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 정말 잔인하죠? 그것이 제가 겪어본 현실이라는 것이.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 바꾸는 것이 가능할지 요사이는 자신이 없습니다.
분개만 하는 스스로가 참 많이도 싫구요.

바람돌이 2015-01-02 00:20   좋아요 0 | URL
정말로 세상이 바뀌어질지 어떨지 사실 저도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거지요. 오히려 악화되어가지요.
어떤 권리도 그냥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더이다. 칭얼거리기라도 해야 고물이라도 하나 얻어먹는거죠.

새해 우리 같이 힘내요. 같이 나누면 좋은게 또 이런 위로잖아요. ^^

순오기 2015-01-02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면 좋겠네요~~일단 찜해둡니다!

바람돌이 2015-01-03 00:06   좋아요 0 | URL
^^ 뭐 솔직히 학부모보다는 교사들이 읽으면 더 좋은 책이지 싶긴해요. ^^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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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술'이라는 개념이 형식화되고 고정되면 쉽사리 권력으로 변한다. 가령 어떤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자만이 '우리'이며 '우리'란 어떤 특정한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는 순환논리는 배타적인 자의식을 공고히 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와 미술 사이에 굳이 빗금을 넣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빗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 작품들의 이야기다.

 

'우리'속에 포함되어 있고, 그속에서만 사유할 때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서경식 선생님의 글을 만나기 이전의 나 역시도 그러했다.

무수히 많은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별로 떠나본적이 없었던 나의 주요 관심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 우리 민족의 미술, 우리 나라의 민중 등등 무수히 많은 우리였다.

이 '우리'는 타자를 전제하는 것이었음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아니 그 타자는 늘 억압자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우리'와 '타자'의 대립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맞겠다.

그런 나의 관념에 '우리'도 적대적 '타자'도 아닌 디아스포라의 존재, 즉 어디에서 속하지 못하고 '배제'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는 내게 나의 생각 전체를 되짚어보게 하는 충격이었다.

다르게 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고, 여전히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깨닫게 해준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내 독서와 사유의 스승이었다.

 

저자는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우리/미술이라 지칭하고 싶었다 한다.

우리와 미술사이의 저 빗금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영역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구분지어버리는 우리와 타자의 경계이기도 하며, 그럼으로써 또한 배제의 영역이기도 하다.

내가 우리속에 갇혀있는 한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인식의 벽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늘 희망은 존재한다.

이 빗금위를 춤추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그래서 '우리'의 틀에 갇힌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알려주는 친절한 저자도 있다.

우리도 같이 그렇게 책을 통해서라도 저 빗금위를 춤추고 놀아본다면 이 굳을대로 굳은 '나와 타자'의 철학의 한계를 조금은 벗어날지도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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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30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하게도 같은 책을 읽고 있었네요. 서경식 선생의 어느 책에선가 조선민족공동체의 틀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했던 생각이 납니다.. 제 나름으로는 그걸 읽고 정리하기를 같은 땅에 살거나, 역사가 같거나, 언어가 같거나 이런 식으로 끝도 없는 OR로 연결된 공동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닫힌 우리로는 문제를 정확히 보고 나아갈 수 없다, 끊없는 더 작은 우리들이 타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람돌이 2014-12-30 22:43   좋아요 0 | URL
소년의 눈물과 이 책을 우리 비슷하게 읽고 있는 것 같아요. ㅎㅎ서경식선생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내 존재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도 있다는걸 느꼈습니다. 근데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이런 식의 우리라는 틀덕분에 끊임없이 타자화되고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면에서 서경식선생의 책은 어떤 책이든 한 번은 꼭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팬이구요. ^^
 

 

 

 

 

 

 

 

 

 

 

 

 

 

 

 

 

 

 

 

 

저자인 하명희님(돌바람님)으로부터 예쁜 손글씨의 사인글과 타이프 편지와 함께 책을 받았다.

오랫동안 서재를 비운 게으름뱅이를 잊지 않아주셔서 너무 고맙다.

하지만 책은 더 큰 고마움을 담고있다.

오래 전 내 마음속 빚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이야기였다.

내가 전하지 못한 사과를 하명희님의 글로 대신한 듯한 느낌이다.

 

그건 대학교 2학년때였다.

그 날 집회는 좀 특별했었다.

강의실에 들어가는 시간보다 집회장과 시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던 시절인데 뭐가 특별했을까?

그 날 집회는 전교조의 전신인 '민주교육 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주최의 집회였고, 거기에 부산지역 고등학생협의회를 추진하던 고등학생들이 대거 참여하는 집회였다.

우리들의 고민은 수배중이던 해직교사들과 고등학생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였다.

당시는 학교 안까지 경찰이 진입하는건 아주 가끔 있는 일이었지만 이 날은 달랐다.

교사와 고등학생에 대한 탄압은 대학에 대한 탄압과는 격이 달랐고, 그들은 체포될 경우 학교에서의 퇴학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어쨌든 그 날 내가 맡았던 일은 집회에 참가한 고등학생들의 퇴로를 안내하는거였다.

실제로 경찰이 진입했고, 나는 내가 맡았던 대로 고등학생들을 학교안 후미진 건물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었다.

그 이후의 세세한 과정은 기억이 안나지만 어쨌든 그날 내가 안내했던 아이들은 어쨌든 무사했었다.

그리고 거기서 이름도 이제는 기억이 안나는 그 아이를 만났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 아이는 시위 도중 약간 다쳤었고, 경찰이 철수 한 이후 그 아이를 병원에 데려간 것이 나였다.

그게 인연이 돼서 몇 번 더 만났었다.

그 아이는 많은 것을 알고싶어했고, 대학생이었던 나라면 그에 대해 답을 해줄 수 있을거라 여겼던 듯하다.

하지만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 기껏해야 책 몇권 더 읽은게 다였던 대학 2학년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 아이가 말하던 학교와 사회에 대한 날선 비판들과 설익은 과격함들,

똑같이 설익은 과격함 외에는 가진 게 없었던 내가 줄 수 있는건 그저 몇 끼의 밥과 술이었던듯....

학교를 곧 그만둘거라던 그 아이의 말에 내 안을 맴돌던 말들은

그래도 학교는 졸업해야지, 대학은 가야지....

아마도 영악한 나는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이미 알고 있었고, 심지어 운동판에서조차도 대학을 나온자의 기득권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아이에게 차마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건 기성세대들이 내게 끊임없이 해대던 말이었고, 그 기성세대들의 말을 그대로 돌려줄 용기가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숨돌릴틈도 없이 바빴던 나는 결국 띄엄띄엄 만나다 어느 순간 소식이 끊겨버렸다.

아주 오랫동안 그 아이는 내게 체한 것 처럼 마음에 얹혀있는 미안함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렇다.

이후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여전히 모르는 내게는.....

 

<나무에게서 온 편지>는 바로 그 시절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다.

어렸기에 작은 탄압에도 여지없이 꺾여버릴 수 밖에 없었던...

무책임한 어른들이 그 아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으면서도 아무것도 책임져주지 않았던....

 

아 참 다행이다.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써주길 바랬는데 이렇게 나와주어서...

그리고 그 시절을 산 당사자가 쓴 글이라 더 고맙다.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에서 저자의 수상 소감이 결국 모든 얘기의 시작과 끝일듯 하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했으며, 지금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왜 우리는 거리로 나가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고, 지금의 우리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왜 우리는 사회로부터, 국가로부터, 언론으로부터 '패륜아'로 낙인찍혀야 했으며, 왜 우리들은 길고 오랜 침묵을 지켜야만 했는지를. 당시 해직되었던 전교조 선생님들도 복권이 되었는데, 그때 학교에서 쫓겨났던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왜 아무도 그들이 삶을 물어주지 않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때 그곳에 함께 있었던 우리들을 호명해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냐고 위로하는 것이 제 소설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그 아이와 나눴던 대화들이 책속에 오롯이 도은과 상훈과 지상이들의 대화에서 살아났다.

그 아이가 이 책을 만난다면 좋겠다.

누군가가 자신을 잊지 않아주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저자가 대신 전해준 이야기로 내 마음속 짐을 조금 덜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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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12-22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이가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큰일을 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네요.
참 안타까운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왜 되풀이되야만 하는지....

바람돌이 2014-12-22 10:21   좋아요 0 | URL
어쨌든 잘 지내기를.... 그 삶이 너무 고단하지는 않았기를 늘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집 아이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때로는 정말 미안할때가 많습니다. 이정도밖에 못되는 세상이라니....

돌바람 2014-12-23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과 약속 지킨 것 같아서요
몇 년 전에 헤어지기 전,
책이 나오면 꼭 사인해서 보내드리겠노라
허언, 공언을 했었잖아요.
그게 지켜져서 많이 좋습니다.
다들 91년을 기억하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바람돌이님의 이야기 또한 제겐 감동입니다.
아시죠, 책을 통해 마음이 흐르니, 저도 좋으네요.
바람돌이님의 이야기 풀어놔주어서 고맙습니다.
책은 쌍방의 교감이라는 제 오랜 고집을 확인받는 듯하여
잉큼잉큼 뜨겁습니다. 고마워요.

바람돌이 2014-12-23 16:01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인 경험때문인지 좀 많이 아팠습니다.
돌바람님이 그 아픔을 대신 만져주신건데 그래도 아프더군요.
이렇게 좋은 책으로 본격적인 등단을 하신거지요. 앞으로 돌바람님의 다른 책들도 기다리는 새로운 설레임이 생겨서 너무 좋습니다. 주인공 도은이의 시들이 참 좋았습니다. 돌바람님은 시를 쓰셔도 될듯하다는 생각도 했네요.
근데 왜 돌바람님 서재로는 안들어가지죠??????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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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을때가 있다.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인, 또는 어떤 말을 해야 타인의 상처를 쓰다듬어줄 수 있는지 알 수없는 그렇게 감당이 안되는 감정들이 있다.

올해 세월호가 그렇고, 그리고 광주가 그렇다.

 

광주의 영상들을 수십번도 넘게 봤음에도 그럼에도 늘 머릿속에 말은 넘쳐나는데 그것을 뱉어낼수가 없다.

아픈 역사를 하나씩 하나씩 짚으며 수업을 진행하면서 늘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광주에 이르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식민지시대의 아픔도, 한국전쟁도, 4.19도, 유신시절도 역사적 상황으로 대치가 되지만, 광주는 여전히 역사속에 묻히지가 않는다.

울컥하는 순간 깨닫는다.

아직 광주는 현재진행형이구나!

우리는 아직도 광주의 목소리를 다 듣지 못했구나!

아직 들어야 할 이야기가 그래서 내가 한덩어리가 되어 보듬어 안아야 할 이야기가 많고도 많구나....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아직 미처 다 듣지 못했던 그 목소리들을 듣는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57~58쪽)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 년 동안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85쪽)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더너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114쪽)

 

 

동호,정대, 정미,  진수, 은숙, 선주, 영재.....

흔하디 흔한 이름들속에 숨죽이고 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을 아직은 더 들어야 하나보다.

아직 내가, 우리가 더 듣지 못해서 세상의 변화가 이리도 더딘가보다.

듣고 듣고 잊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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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진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작가 자신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고통스러움이 마음에 잡힐듯하지만 그럼에도 덕분에 광주를 형상화한 문학이 한 고비를 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후일담으로서의 광주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서의 광주를 여기 이자리에 다시 돌려놓아준 한강 작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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