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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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와서는 역사에 대한 콘텐츠는 어쩌면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넘쳐난다.

그런 콘텐츠들 속에서 역사e가 가지는 강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디테일이 가지는 힘을 한껏 밀어붙인다는데 있다.

 

역사학계의 주류적인 흐름은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역사를 거대한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그 속에서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끼친, 또는 당대의 주도적인 정치, 사상, 경제, 문화분야들을 연구하여 그것의 법칙성을 찾아냄으로써 역사가 오늘날과 미래를 살아가는 교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연구는 당연히 수많은 인간들이 살아가고 만들어나간 그 세밀하고도 풍부한 경험들을 놓칠 수 밖에 없다.

그것들을 가지치기하지 않고 살려두다보면 역사는 도대체 뭘 얘기하자고 하는지 알 수없는 난해한 덩어리자체가 되버릴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버려진 것들, 작은 것들이 모여서 인간의 삶의 풍부함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또한 분명한 진리이다.

역사는 거대담론만으로 절대 완성될 수 없다.

역사는 인간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수많은 인간군상들은 집단성만큼이나 하나하나의 개별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역사학계의 오랜 논쟁과 고민의 지점이기도 했다.

역사e가 위치하는 지점이 바로 고민의 지점, 이곳이다.

 

역사e 1권에 이어 2권에서도 역사e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실들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기존의 역사적 흐름과 접목해내고 그것의 의미를 되살려낸다.

 

1부에서는 주류역사에서 버려졌던 많은 사람들을 복원해내고 있다.

조선시대 주류담론을 생산해내는 것은 사대부 지식층들이었지만 그들 역시 그것을 유통시키는 존재가 없었다면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자로서의 책쾌를 다시 이곳에 불러낸다.

노비 출신의 시인 정초부(초부는 나뭇꾼이란 뜻이니 제대로 된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한 존재다)는 그의 시를 짓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평생 양반들이 '노비가 시를 짓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라는 결국 구경거리의 신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런 그의 속내는 한 편의 시로 전해지는데, 평생을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시짓는 노비로 대접받아야 했던 시인의 씁쓸함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강가에 있는 나무꾼 집일 뿐

과객 맞는 여관이 아니라요

내 성명을 알고 싶다면

광릉에 가서 꽃에게나 물으시오

 

조선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의 삶과 그 당시로는 참 드물게도 그런 부인을 내조했던 남편 박유산의 삶도 흥미로웠다.

자신이 기르던 아이가 왕이 되었을 경우 판서보다 높은 품계를 받았던 유모의 존재

역사속에 묻혀 조명되지 못한, 그러나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운동의 사이를 메웠던 활빈당

조선의 장애인 인식의 일면을 보여주는 세종실록의 기록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에게

현송(거문고를 타며 시를 엂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이는 세상에 버릴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에 버릴 사람이 아무도 없듯이, 세상에 버릴 역사와 삶이 아무것도 없다하겠다.

 

2부에서는 사라진 것들을 되살리는 노력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역사시간에 시험용으로 이름만 외웠던, 그래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진 책인지 알려지지 않았던 그 책을 복원해낸 사람들. 그리고 실학자 서유구를 오롯이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다른 실학자들이 제도의 개혁을 주장할 때 서유구는 밥먹고, 씨 뿌리고 거두고, 땀흘리는 일상에서 개혁은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바지를 걷고 밭을 갈고, 꽃을 가꾸고 옷을 지어입으며 이 책을 완성하였다.

온갖 농사와 의식주와 건강법, 일상생활의 모든 면을 망라한 이 백과사전은 내용의 방대함에 국가기관에서도 번역을 포기했는데 40여명의 소장학자에 의해서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번역해낸 학자들이 어쩌면 서유구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은 이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일본의 군용모피를 만들기 위해 거의 멸종되어진 우리 시골마을의 삽살개를 다시 살려낸 사람들,

일본의 공업용 원료로 사용될 소금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밀려난 우리 전통 소금 자염. 너무도 쉽게 다들 천일염이 전통소금이라고 생각하지만 노인들을 찾아 묻고 물어 원래 끓여서 만들던 자염의 제조법을 되살린 사람들

되살려낸 것 그 자체도 소중하지만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을 되살려내는 사람들의 마음과 노력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2부 마지막은 야스쿠니신사와 도쿄전범재판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2부의 소제목에는 어울리지 않는듯 보이지만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것들, 하지만 아직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전쟁의 신으로 또는 일본을 위해 희생한 일본인으로 둔갑해버린 조선인 강제징병자 2만 1000여명.

우리가 잊는 순간 그들은 그 억울함의 공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 그들의 고향 땅임을 잊지 말고 지속적인 반환운동을 추진해야 한다.

 

3부는 시대의 맥박, 살아있다는 표현으로 민족의 위기를 극복해냈던 순간들을 되살린다.

임진왜란 당시 초기의 열세를 뒤집어낼 수 있었던 조선의 화약기술의 발전과 비격진천뢰

의성김씨 명문가 종손으로 태어나 한평생을 파락호로 살면서 집안의 전 재산을 거덜낸 줄 알았으나, 그가 죽은뒤에야 밝혀진 진실은 그 많은 돈을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낸 애국지사였다는 것. 독립운동의 역사에 김용환 그 이름 석자를 조용히 올려본다.

시집에 가져갈 장농값마저 빼앗아가버려 평생 시댁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했던 딸의 시는평생 원망스러웠던 아버지에게 시를 쓴다.

 

................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리

내 생각한 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대.....

 

 

어쩌면 그 따님마저 이토록 의연한지...

평생의 원망을 저 하나로 날려보낼 수 있는 의연함이 명문 집안의 가풍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와 함께 너무 평범하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사소해서 잊혀진 6264인의 독립운동가들을 오늘의 역사에 불러내본다.

집을 나간 장부는 뜻을 이룰때까지 살아돌아오지 않는다면 2개의 폭탄을 쥐고 상하이 홍커우공원으로 향했던 윤봉길의사의 마음과 6264인의 잊혀진 독립운동가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오늘 다시 깨닫는다.

 

역사e가 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6264인의 독립운동가를 살려내는 것.

너무 사소해서 작아서 평범해서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것들. 하지만 그것들을 전체로서 오롯이 살려낼때만이 기존의 역사의 뼈대에 살이 붙고 근육이 붙고 피가 흘러 제대로 온전히 바라봐줄 수 있는 것들. 이런것들을 살려내는 그 첫걸음.

이것이 역사e가 하고자 하는 것, 역할이 될 것이다.

 

때때로 방송을 의식한 과장이나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도 보인다.

예를 들면 17, 18세기의 조선은 폐쇄된 나라라는 인상을 주지만 실상은 이미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외국어를 가르치고 외교관을 배출하는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었으므로 폐쇄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는 서술의 경우이다.

물론 조선은 역관을 국가에서 주도하여 길러내고 있었고 이들이 외교에서 일정 역할을 담보한 것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조선의 지배구조나 개별정책이 아닌 조선의 외교정책의 기본틀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 시대 조선의 결정권을 가진 것은 사대부이지 역관이 아닌 것이다.

 

또한 조선의 장애인정책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 정조때의 재상이었던 체제공을 시각 장애인으로 표현하고있는데 이는 얼핏보면 두 눈이 모두 안보였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런데 체제공의 장애는 사시이다. 체제공의 초상화를 보면 그가 사시였던걸 알 수 있는데, 이 정도의 장애로 아무 부연설명없이 시각 장애인이란 표현을 쓰는건 지나친 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송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 말자.

실수라거나 잘못알았다면 고치면 그만이지만 방송효과를 노린 의도된 과장이라면 이 자체로 역사왜곡이 될 수 있다.

어떤 목표를 향한 과장, 왜곡은 항상 그 부작용이 더 컸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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