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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평점 :
'우리 미술'이라는 개념이 형식화되고 고정되면 쉽사리 권력으로 변한다. 가령 어떤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자만이 '우리'이며 '우리'란 어떤 특정한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는 순환논리는 배타적인 자의식을 공고히 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와 미술 사이에 굳이 빗금을 넣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빗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 작품들의 이야기다.
'우리'속에 포함되어 있고, 그속에서만 사유할 때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서경식 선생님의 글을 만나기 이전의 나 역시도 그러했다.
무수히 많은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별로 떠나본적이 없었던 나의 주요 관심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 우리 민족의 미술, 우리 나라의 민중 등등 무수히 많은 우리였다.
이 '우리'는 타자를 전제하는 것이었음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아니 그 타자는 늘 억압자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우리'와 '타자'의 대립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맞겠다.
그런 나의 관념에 '우리'도 적대적 '타자'도 아닌 디아스포라의 존재, 즉 어디에서 속하지 못하고 '배제'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는 내게 나의 생각 전체를 되짚어보게 하는 충격이었다.
다르게 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고, 여전히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깨닫게 해준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내 독서와 사유의 스승이었다.
저자는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우리/미술이라 지칭하고 싶었다 한다.
우리와 미술사이의 저 빗금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영역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구분지어버리는 우리와 타자의 경계이기도 하며, 그럼으로써 또한 배제의 영역이기도 하다.
내가 우리속에 갇혀있는 한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인식의 벽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늘 희망은 존재한다.
이 빗금위를 춤추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그래서 '우리'의 틀에 갇힌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알려주는 친절한 저자도 있다.
우리도 같이 그렇게 책을 통해서라도 저 빗금위를 춤추고 놀아본다면 이 굳을대로 굳은 '나와 타자'의 철학의 한계를 조금은 벗어날지도 모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