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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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을때가 있다.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인, 또는 어떤 말을 해야 타인의 상처를 쓰다듬어줄 수 있는지 알 수없는 그렇게 감당이 안되는 감정들이 있다.

올해 세월호가 그렇고, 그리고 광주가 그렇다.

 

광주의 영상들을 수십번도 넘게 봤음에도 그럼에도 늘 머릿속에 말은 넘쳐나는데 그것을 뱉어낼수가 없다.

아픈 역사를 하나씩 하나씩 짚으며 수업을 진행하면서 늘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광주에 이르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식민지시대의 아픔도, 한국전쟁도, 4.19도, 유신시절도 역사적 상황으로 대치가 되지만, 광주는 여전히 역사속에 묻히지가 않는다.

울컥하는 순간 깨닫는다.

아직 광주는 현재진행형이구나!

우리는 아직도 광주의 목소리를 다 듣지 못했구나!

아직 들어야 할 이야기가 그래서 내가 한덩어리가 되어 보듬어 안아야 할 이야기가 많고도 많구나....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아직 미처 다 듣지 못했던 그 목소리들을 듣는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57~58쪽)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 년 동안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85쪽)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더너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114쪽)

 

 

동호,정대, 정미,  진수, 은숙, 선주, 영재.....

흔하디 흔한 이름들속에 숨죽이고 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을 아직은 더 들어야 하나보다.

아직 내가, 우리가 더 듣지 못해서 세상의 변화가 이리도 더딘가보다.

듣고 듣고 잊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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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진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작가 자신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고통스러움이 마음에 잡힐듯하지만 그럼에도 덕분에 광주를 형상화한 문학이 한 고비를 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후일담으로서의 광주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서의 광주를 여기 이자리에 다시 돌려놓아준 한강 작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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