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는 않고 읽기만 해서 쌓인 책들
올해부터는 정말 읽는 족족 리뷰를 쓰든 페이퍼를 쓰든 독서기록을 남기리라 다짐했건만
예상치 않은 엄마의 병간호는 읽은 책만 쌓이게 만들었다.
뭐 이럴 때는 살짝 페이퍼로 퉁치고 넘어가도 될거야!!
사람이 어떻게 결심한대로 계획한대로 살수 있겠어라고 마음편히 눙치고있다.
그래도 <파씨의 입문>은 리뷰를 꼭 써야지 하면서 살짝 빼놓고 남은 책들을 간단하게 정리한다.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한 때 알라딘마을에서 선풍적인 화제와 인기를 뿌렸던 책인데 이제야 읽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5만개가 넘는 유전자 중에 단 한개가 삐끗해도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무너질 수 있는지, 또 그 변화의 방향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기괴해 보일 수 있는지 상상도 못해봤던 사례들을 보면서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의 몸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한다.
이 책의 미덕은 그 삐끗한 삶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그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여전히 유지하고자 하며, 유지할 수 있음을 또한 같이 얘기함으써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는데 있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영화가 더 유명한데 난 영화를 안봐서 그저 평범한 우편배달부와 네루다의 우정정도로 예상하고 봤다.
사실 책이 얇아서 병원에 들고가기 딱 좋았던 것도 있고.....
대단히 웃기고, 겁나게 섹시하고, 그리고 너무 암담하고 슬픈 결말까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책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감정의 파고가 너무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바람에 홀린듯 읽었다.
이슬라 네그라라는 시골구석으로 이사온 위대한 시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된 마리오(왜냐하면 이 마을에는 아무도 글을 못읽기 때문에 편지가 오는 사람이라고는 네루다 한 명 뿐이다.)
이 위대한 시인에게 어떻게든 인정받아 보려는 그래서 시인이 되고싶은 마리오의 모습이 어찌나 실감나던지...
또한 네루다를 뚜쟁이로 만들어 아름다운 소녀와의 결혼 과정에서 표현되는 시골마을의 사람들의 모습은 어찌나 생생하던지 내가 바로 이 마을 이슬라 네그라에 가 있는듯하다.
아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인물 중 하나가 아름다운 소녀 베아트리스의 엄마인데 마리오같은 허황되고 게으르고 미래가 암담해보이는 사내와 딸의 결혼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그녀의 욕들은 그대로 시가 된다.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P67
욕이 시가 되는 경지라니, 어쩌면 네루다를 뛰어넘는 시인은 그녀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며 웃는다.
하지만 알다시피 칠레의 현대사는 이 소설을 이렇게 유쾌한 시골의 일상으로 가만두지 않는다.
일상의 평화가 거대한 폭력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순간을 읽는 것은 참담하다.
아옌데가 대통령궁에서 피노체트에 의해 살해당한 순간 이 시골마을에도 참담한 침묵과 죽음의 순간이 닥친다.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어"라고 절규했다는 네루다, 그리고 결국 어느날 찾아온 자동차에 탄 이후 사라져버린 마리오, 그리고 남은 사람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싶지 않은, 이게 아니라고 이 마을의 그 평화로움과 사람들의 웃음을 찾아달라고 뒷이야기가 더 없냐고 작가에게 애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5권 유윤중 <푸치니 - 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음... 음악을 글로 배우려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다.
그 어리석은 방법을 내가 하고 있구나....
일단 오페라에 큰 관심이 없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유튜브로 나오는 음악들을 틀어놓고 들어가면서 읽었으나 역시 별 감흥이 없다.
많이 들어본 몇 개의 곡만 음.....
푸치니라는 인물 자체도 딱히 이야기가 될만한 면을 못가진 것 같고....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에서 음악가들을 빼야 할까? 고민중.
박노자 <미아로 산다는 것>
한 때 박노자씨의 책들은 무조건 구매해서 읽었었다.
그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한국사회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신선했고, 그 시점에서 날카롭게 드러내는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가 좋았다.
다른 눈을 통해 나를 더 잘 인식하게 되는것, 이것이 박노자씨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이었다.
그런데 오랫만에 읽은 이 책에서는 그런 날카로움을 보기는 어려웠다.
저자가 한국사회를 떠나 있는 상황이라서인지 일반론적인 문제제기 외에 특별히 예리한 비평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수정, 이다혜, 최세희, 조영주의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범죄 심리학자인 이수정씨가 이 방송을 시작하면서 했다는 말
"범죄 영화 장르를 엔터데인먼트로 소비하는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겠다. 그러나 범죄 영화에 숱하게 등장하지만 대부분 피해자로 소비되다 마는 여성이나 아이의 입장에서 분석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의향이 있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말이 책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올렸고,
중간에 나오는 "우리는 결국 연대하기 위해 이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이 책과 방송의 가장 중요한 결론이다.
생각과 다르게 영화는 정말 소재일 뿐이고,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범죄의 피해자들 - 많은 경우 여성 또는 아이들인-에 대한 보호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심한가를 얘기하고, 현실과 대책을 얘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주장 중에 하나인 의제강간연령(성관계 동의 가능연령, 이 연령 이하의 아동과의 성관계는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범죄이다)은 지난 해 n번방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의해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나름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실제 사건과 현장의 모습에서는 아직까지도 충격적인 모습들이 많이 남아있어 우리 사회가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들이 모두 마음에 맞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옥타비아 버틀러 <블러드 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의 책으로 세번째.
<킨>은 너무 좋았고, <쇼리>는 이게 뭔가 싶게 실망하고
이후 더 읽을까 말까를 고민하다 알라디너분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에 읽은 책인데, 조금 더 이 작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표제작인 <블러드 차일드>에서는 지구에 생긴 다른 생명체 트가토이들에 의해서 남자 아이들이 번식용 수컷으로 선택되고, 끔찍한 고통을 통과하며 새로운 트가토이들을 출산한다는 설정. 기존의 남녀 관계를 비틀어보는 것과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관계도 비틀어봄으로써 우리가 일반적이다 또는 정상이다라고 하는 개념을 뒤집어 보게 하는 것이 신선하다.
이런 비틀어보기 또는 다른 각도에서 보기가 이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단편들마다 그 재능이 넘쳐난다.
표제작과 함께 인상적인 작품은 <특사>인데 지구에 침입한 우주인들, 그들을 증오하는 지구인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공존을 도모하는 통역을 담당한 인간들의 긴장감 넘치는 갈등의 장면이 인상적이다.
언뜻 테드 창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의 모티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테드창이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언뜻했다.
박건호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세상에는 참 이상하고 훌륭한 사람이 많다.
이분도 그렇다. 대학 1학년 때 답사를 가서 우연히 빗살무늬토기 파편을 주운 것을 계기로 역사자료 수집을 시작했단다.
빗살무늬 토기 파편 하나 주웠다고 누구나 역사자료 수집을 하는건 아닐텐데 참 신기하다고나 할까?
30여년간 자료를 수집했다고 하니 아마 그 자료들이 한 더미를 이루었을 것이고, 그것들을 이리저리 얽으면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이 모은 자료이니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것들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별거 아니게 넘길 작은 자료들에서 역사 속 개인들을 부활시키고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솜씨가 유려하다.
구한말 실종자 조용익을 찾는 훈련 한장에서 당대의 의병운동을 얘기하고, 한 청년이 고향 집에 보낸 엽서에서 새로운 문물인 자동차가 등장하는 과정과 자동차 운전기사가 되기 위한 당시 젊은이들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 베를린 올림픽 당시 손기정씨의 사인 한장에서 그가 느꼈을 참담한 심정을 유추하는 것 등 역사의 작은 조각에서 찾아낸 개인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역사라는게 개개의 인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짐에도 어느새 만들어진 역사에는 개인들이 사라지고 인간의 삶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거대 서사와 이론만 남게 된다.
그 틈을 파고들어 역사속 사람의 냄새를 되살려 내는 이런 책들은 늘 언제나 반갑다.
대프니 듀 모리에 <나의 사촌 레이첼>
로맨스 스릴러라는 장르 자체에 별다른 애정이 없어 알라디너들이 대프니를 그렇게 외칠 때에도 쿨하게 지났건만....
이 책은 마지막 몇 페이지에 이를 때까지는 솔직히 말해서 지루했다.
솔직히 세상 물정 모르고 지 잘난줄만 아는 젊은 귀족 필립이 생전 처음 느껴보는 사랑의 열병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꼴을 보는게 뭐 딱히 예쁘지도 않았고, 미스테리한 여주인공 레이첼은 그 인물이 필립의 시선속에서만 묘사되기에 인물의 구체성 자체가 실감이 안나고.....
그런데 이 책의 진가는 정말 마지막 3장에 있다.
따라서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겐 경고가 필요하다. <절대 마지막을 미리 읽지 마시오>
이러면 뭔가 엄청난 반전이 있을 것 같은데 바로 그 반전이 없다는게 이 책의 최고의 반전이랄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책의 서장을 다시 읽고 내용들을 다시 찬찬히 되짚게 된다.
그리고 책 전체에 펼쳐진 필립의 시선이 아니라 레베카의 시선으로 그녀와 여러 사건들을 전부 재구성해보게 된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필립의 생각들은 얼마나 어이없고, 자의식 과잉인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아니 필립의 생각이 아니라 18세기쯤 되어 보이는 당시의 남자들의 시선이라는게 얼마나 폭력적이고 부당한가라는 반추를 저절로 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이라고 특별히 달라지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쓰는 것 보다 읽는게 훨씬 좋다.
왜냐하면 읽는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왜 좋은지 왜 별로인지를 쓰다보면 나의 생각이 자란다는 느낌을 좀 더 많이 받게 된다.
그래서 쓰기 싫다가도 컴퓨터 자판 앞에 앉게 된다.
나는 여전히 세상을 다 알지 못하고, 여전히 더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내 생활의 지침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래도 혼자 쓰고 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내가 쓴것을 공감해주고 읽어주고, 반론도 제기해주고 하는 이런 공간이 있어서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계속 이렇게 잡문이나 간단한 감상문이라도 계속 쓰고 있다.
그래서 알라디너 여러분들에게 늘 감사하다.
이 공간이 아니라면 난 단 한줄의 글도 쓰지 않을 것이 자명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