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봄날, 조르주브라상 Georges-Brassens 공원 고서적 시장에 갔다가 호수 벤치에 앉아 있던 시부모님을 많다. 구부린 등 뒤로 날아온 라일락 꽃잎, 외투 호주머니에서 꺼낸 책장을 넘기는 모습, 그리고 책 속에서 조용히자신과 함께 늙은 외로움조차 잃어버리는 정적의 시간을 우연히 훔쳐본 적이 있다. - P23
살면서 이런 순간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미치도록 슬플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들에게서조차 멀리 떨어져 있다. 병실넓은 창으로 보이는 하늘, 어쩌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병, 그리고 오롯이 나뿐이다. 완벽한 개별자로서의 나. 그것을 또렷하게 대면한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 마음이 잠잠하다. 비극적일이유는 없다.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지금 방금나에게 일어난 것뿐이다. - P51
그녀가 퇴직하고 처음 심부전증을 발견했을 때, 국가원수를 치료해주는 발드 그라스 Val-de Grace 병원으로 들어갔다는 말에 내가 깜짝 놀라 묻는다. "그런 병원에 우리 같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요?" 48년 동안 꼬박꼬박 세금을 냈는데, 나도 그럴만한자격이 있는 거 아닌가요?" - P55
정말이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결국 당신이다." - P59
저녁 식탁에서 구역질 때문에 식사를 멈추는 걸 보고올비가 말한다. "6개월 뒤에 출산하는 거야. 이번에는 아이가 아니라, 새로운 자신을." 우린 매일 조금씩 새로워진다. 단지 그걸 눈치채지 못할 뿐이지. - P116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고 무성한 잎사귀를 만들어도그건 이미 내 영광이 아니다. 아이가 성인이 된다는 건, 이제 숙제를 마치고 부모가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의미다. 어쩌면 숙제를 잘 마친 기분 정도는 누릴 수 있겠다. 부모 사전에서 없애야 할 단어는 ‘희생‘이다. 그냥 ‘책임‘이라는 단어로 바꿔도 무방하다. - P130
언어가 메마른 건 삶이 척박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황한 슬픔보다 메마른 슬픔이 더 아프다. - P137
난 책을 슬렁슬렁 읽지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는다. 그렇게읽고 났을 때 내게 남는 건 그 책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그책을 통해서 내가 판단한 것, 감동받은 것, 상상한 것뿐이다. 작가, 배경, 어휘들, 이런저런 상황들, 그런 것들은 당장에잊어버리고 만다.
_ 몽테뉴 - P144
암이라는 병도 비슷하다. 피레네의 종소리처럼 내 인생에 눈금을 긋는다. 병이 생기기 전과 그 이후로 자르고, 그 이전에 나는 무엇을 했는지, 지금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사색하게 만들며 사는일에 집중하게 만든다. - P155
우린 배를 타고 노르망디의 긴 운하를 따라 나가기도하고, 항구에 나가 불꽃놀이도 본다.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이고 산책한다. 관계의 편안함은 일종의 공기 같다. 나이들수록 친구는 자유만큼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관계는 생물 같아서 결코 노력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서로에게 편안한 존재로 늙어가는 건 일종의 선물이다. 오랜 세월 한 사람이겪는 변화는 누구도 점칠 수 없기 때문이다. - P158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밥상에 그 비밀이 있는 것 같다. 우린 누가 욕망을 미리 분배해주는 것이 아니라 접시를 가운데 놓고 자연스럽게 나누어 먹는 것으로 배웠다. 밥상에서 다른 사람의 욕망을 이해하고 자신의 욕망을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행복, 즐거움, 풍성함은 균등하게 자를 수 있는 케이크가 아니다. 우리의 미소도 아이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웃음은 밥주걱처럼 보태는 것이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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