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는 정부에게 우리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 아니라 동료 시민들에게, 그중 가장 약한 이들에게 우리가 국가 정책에 반대할 수 있고 반대해야만 함을 보여준다.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성급한 가정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집 밖에 나선다. 칩을 던진다. 걷는다.
- P286

상드는 여자들 편에 섰어야 했다. 여자들의 대의에 자신의이름을 빌려주었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오늘날 상드의 행적에 대한 논란도 더 적을 것이다. 그러나 상드는 어떤 전선에도서지 않으려 했다. 상드는 모든 관점을 가로질렀다.
- P296

클레오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관점에서만 생각하기를 그만두자 카메라도 클레오를 바깥쪽에서만관찰하기를 그만두고 클레오의 관점에서 세상을 재현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특히 여자는 스펙터클, 구경거리이기 때문에남자처럼 익명으로, 주위를 구경하면서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도전한다. 보이기만 하지 않고 스스로 본다는 것은 도시에서 여성의 자유가 시작된다는 신호다.
- P326

 파리에서 나는 뉴욕에서 내가 비운 자리와 비슷한 자리에깃들고 싶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자리, 집, 배우자, 아이들을 원했다. 뉴욕에서 다들 나한테 기대하던 것과 같은 삶을 프랑스에서 살고 싶었다. 그런 자리가 생기기를 바랐고 내가 들어갈 만한 자리가 생기면 기쁘게 들어가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반항아가 아니었다. 그냥 나라만 바꾼 사람이었다. 나라를 집을떠나왔으나 나는 다시 자리를 잡고 정착하고 싶었다.
- P345

바르다는 페미니스트의 첫 번째 행위는 바라보고, 이렇게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시선의 대상이지만 또 나는 볼 수있다. 바르다의 영화가 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세상과 세상 안의 우리 자리를 비스듬한 눈으로 보는 것. 우리는 이삭 줍는 사람, 플라뇌즈, 방랑자, 이웃이다. 객관성 따위는 없다. 프랑스어로 ‘객관적‘ 이라는 뜻의 오브젝티프(objectif)는 ‘렌즈‘를 뜻하기도 하는데, 렌즈를 통해서는 한 방향밖에는 볼 수가 없다.
렌즈를 우리 쪽으로 향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도, 병조차도 객관적으로 나쁜 것일 수는 없다는 게 사실이라면 위안이된다.
- P357

"나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외국에서 임시 거주지에 정착하고 타자기와 공생에 들어간다." 그럴 수 있는 권리를 얻기가쉽지는 않았다.
- P390

내 도시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다른 어느 곳보다 더 나의 것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도시를발로 알아가지만, 우리가 도시를 떠나면 지형이 바뀐다. 그렇게되면 자신 있게 발걸음을 떼놓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게 좋은일일지도 모른다. 그냥 보는 것, 보면서 다른 것을 보기를 기대하지 않는 게 핵심이다.  - P413

여성의 플라네리, 즉 플라뇌세리(flâneuserie)는 우리가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방식을 바꾸고 공간의 조직에도 개입한다.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공간의 평화를 흩뜨리고 공간을 관찰하고(혹은 관찰하지 않고) 차지하고(혹은 차지하지 않고) 조직할(혹은 조직을 와해할) 권리를 주장한다.
- P4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