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와 생맥주 - 최민석의 여행지 창간호
최민석 지음 / 북스톤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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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고 기차를 좋아하고 그리고 맥주를 사랑한다면 이 책을 놓칠 수 없다.

사실은 살짝 속았다.

책의 부제가 <최민석의 여행지 창간호>다.

진짜 여행지인줄 알았고, 앞으로 계속 나올 줄 알았다. 

여행 잡지에 연재한 글들을 모았고, 여행지의 기획으로 나온 글이기에 이런 부제를 붙였단다.

아놔~~ 나 낚였구나....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낚여서 다행이다 싶어진다. 

작가의 예민한 감성으로 캐치하는 여행지의 모습들, 특유의 자학개그와 유머감각, 그러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반듯한 시선 이런 것들이 그의 책을 읽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나의 경우 책을 읽는 목적 중 가장 큰 것 하나가 즐겁기위해서인데 그런 소망을 온전히 충족시켜 주는 시간이다.


해외여행을 위해 기차나 미술관같은걸 예매하기 위해서는 보통 현지 사이트를 이용하게 되는데 한국의 편리한 인터넷 웹환경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는 처절한 인내와 분노를 삭혀야 하는 시간이다. 

작가 역시 미국 철도청에 불을 지를 뻔했다는데 그 씩씩거리는 한페이지에서 충분히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작가답게 괴로운 항공교통을 피하기 위해 SF소설에 나올법한 순간 이동을 상상하면서 달라지는 풍경을 그려보기도 한다.

싱가포르에서 무시무시한 실내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고소공포증이 생기고 난 이후에는 트럼프와 만난 김정은이 같이 기념 실내 스카이다이빙을 했다면 얼마나 역사적이었을까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이탈리아인들은 겨우 한나절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었을 뿐인데 왜 기차가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치는지 너무 궁금해하며 여기저기 알아보고 상상하고 파고드는 과정도 너무 재밌다.

결론은? 그건 책에..... 물론 작가의 추측일뿐이지만....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가 작가의 여행경험과 단상들을 결합한 전형적인 여행에세이라면 2부는 일종의 아주 짧은 소설같은 느낌이다.

<피치 바이 매거진>이라는 여행잡지에서 '픽션과 에세이를 결합'해서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자신의 경험에 소설가의 상상력을 약간 가미해서 썻다는데 내가 보기엔 뻥이다.

아주 약간의 경험에 소설가의 상상력을 많이 가미해서 쓴듯하다. ^^


첫번째 소설인 <사건명 '보고타 아침 이슬'>에서 작가는 생활고에 찌들린 한국을 피하기도 할겸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들여 중남미로 떠난다. 

돈도 벌고 책도 쓰고 한국의 힘든 집안사정도 잊고 여러모로 훌륭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콜롬비아에서 작가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려고 하다가 여권의 얼굴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다.(콜롬비아에서는 신용카드 결제를 하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고.... 진짜???? 이 술을 사는 과정, 얼굴이 다르다고 실랑이 하는 과정,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도 진짜 코믹하고 재밌다. 정말 콜롬비아에서 이러는걸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도대체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솔직히 구분이 잘 안간다)

그동안 사는게 힘들었던 작가의 살이 많이 빠져버린 것이다.

하룻밤 유치장 신세를 지는 것까지 참을 수 있는데 아뿔싸! 

유치장에서 만난 다른 콜롬비아인에 의하면 여기서 한국인들이 북한으로 많이 끌려간다고.....

맥주 한병 사려다 북한으로 납북되게 생긴 우리 작가님. 아 진짜 어떡하냐???? 


신혼여행에서 우연히 묵었던 트럼프 호텔에서 찍었던 인스타 사진 한 장 때문에 멕시코에서 개망신 당하게 된 이야기

나폴리에서 빌린 렌터카 속의 마약때문에 똥꼬 찢어진 명품바지를 입고 다니게 된 사연

미국 공유숙박업자에게 거창하게 사기당하는 이야기 등등

그럴듯한 이야기들이 픽션과 사실의 경계를 분간하지 못하게 하지만 또 한편으로 구분이 안되면 어때?

이 책 들고 여행갈 것도 아닌데...

낄낄거리면서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몇시간 아주 즐거웠구나. 

걱정되던 것도 다 잊고 책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된다.

그리고 생맥주가 먹고 싶어진다. 아 기차도 타고 싶어지는구나..... 그런데 나는 비행기를 더 타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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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8-27 07: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름이 낯익어 찾아보니 아르테 출판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피츠제럴드 편 쓰신 분이네요.

맥주 사려다 북한행! ㅋㅋ
여행과 맥주 좋아하시는 분들 낚일 수밖에 없는 책이네요. 제목도 표지도 마음은 설레게 하네요.

바람돌이 2022-08-27 16:42   좋아요 1 | URL
책이 굉장히 코믹해서 우울할 때 읽으면 최고입니다. ㅎㅎ
이분 피처제럴드도 읽어보려구요. 소설도 많이 써셨던데 천천히 하나씩 찾아보려고요. ^^

mini74 2022-08-27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한행 넘 웃겨요. 전 왜 점 찍고 나온 민소희? 생각나죠 ㅎㅎㅎ

바람돌이 2022-08-27 16:43   좋아요 1 | URL
사소한 걸로 엄청난 변화를 하고 생각하면 연결이 되기는 하는데 그래도 민소희랑은???? ^^
뒷부분의 짧은 소설들도 전 약간 여행갔다와서 자기 경험을 막 부풀려서 구라치는 그런 느낌이랄까? 재밌게 읽었어요. ^^

mini74 2022-08-27 17:04   좋아요 1 | URL
아 ㅎㅎㅎ 점 빼거나 점 찍으면 여권 사진이랑 다르다고 잡힐까 안 잡힐까 뭐 이런 망상을 바람돌이님 글 보며 떠올렸어요 ㅠㅠ작가님이 재미있는 분 같아요 ㅎㅎ 뻥 잘 치고 오버 잘 하는 전생의 원수, 울 친오빠 느낌이 물씬납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2-08-27 17:09   좋아요 1 | URL
아 여권사진에서 점. 이해했습니다. ㅎㅎ 오라버님께서 이렇게 재밌는 분이시라구요? 복받으신거 아닌가요? 저는 오빠가 없어서 약간 오빠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습니다. ㅎㅎ

mini74 2022-08-27 17:13   좋아요 1 | URL
구라 왕! 이에요. 오빠 말 믿었다가 중고딩때 개망신 당한 거 많아요. 제가 그래서 인간을 못 믿어요 그 인간떼문에 ㅎㅎ 로망따윈 ㅎㅎ 맨날 제가 산 잡지위에 라면 냄비 올려놓고 먹고. 사각팬티 으악!!! 내 눈 ㅎㅎㅎ 저랑 7살 차이라서 저 초딩때 오빠가 대학생. 친구들이랑 우루루 와서 개떼같이 계란 한 판 다 삶아 먹는거 보면 ㅎㅎㅎ

바람돌이 2022-08-27 17:40   좋아요 1 | URL
저는 학교에서 중딩남자애들 많이 보잖아요. 그 때마다 참 신기한게 저것들이 그래도 다 커서는 사람이 된단말이지? 이렇게 생각할때가 참 많거든요. ㅎㅎ

프레이야 2022-08-27 1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차 좋지요.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야하는데 ㅎㅎ
좀더 기다리라는 말인가 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만 일단 왕복했어요.
이 책 유쾌하겠네요. 찜!!

바람돌이 2022-08-27 21:11   좋아요 1 | URL
오 시베리아 횡단열차. 저의 로망입니다. 그래도 프레이야님은 타보셨군요. 부러워요. 이 책 우울할때 읽기 딱 좋습니다.

희선 2022-08-28 0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제 경험도 재미있게 쓰고, 소설은 실제 있었던 일 조금에 상상을 많이 넣었나 봅니다 상상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북한에 끌려간다고 하면 무서울 것 같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8-28 07:48   좋아요 1 | URL
ㅎㅎ 그 황당함과 공포를 얼마나 실감나게 썼는지 키득거리면서 읽었지만, 아 진짜 이런 일이 있으면 끝내주게 무섭겠다하기도 했어요. 재미있는 책이라서 저는 참 좋았습니다. ^^

단발머리 2022-08-28 0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맥주 사다 납북행 ㅋㅋㅋㅋ 이거 엄청 무서운 일인데 슬프게도 웃기네요 ㅋㅋㅋㅋ 에피소드도 재밌지만 작가가 재미있게 잘 풀어내고 있는 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2-08-31 12:32   좋아요 0 | URL
맞아요. 특히 2부의 짧은 소설들은 그럴듯한데 또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이러면서 막 봤네요. 작가의 입담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

페넬로페 2022-08-28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차와 생맥주!
제목부터 완전 당깁니다.
최민석 작가는 책보다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에서 처음 만났는데 와, 책의 내용을 그렇게나 구수하고도 재밌게 얘기하다니요~~
완전 반했습니다.
이 책에도 작가의 유머가 뿜뿜할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2-08-31 12:33   좋아요 1 | URL
저도 북클럽 가끔 보는데 최민석 작가가 나왔었군요. 한번 찾아볼게요.
유머감각 있는 사람이 점점 더 좋아져요. ^^

하양물감 2022-08-28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는데 읽고 웃어보고 싶네요^^

바람돌이 2022-08-31 12:33   좋아요 0 | URL
앗 즐거운 일이 없다니.... 그럴때 읽으면 좀 우울함이 가실거 같아요. 힘내세요. 물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