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100여명 11년에 걸쳐 공동작업
사건·기록·저술 등 9권에 담아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지평 넓혀
〈박헌영 전집〉(전 9권·역사비평사)이 나왔다.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연구의 새 이정표다. 이제 이 분야의 연구는 〈박헌영 전집〉 완간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각계 인사 100여명이 11년에 걸쳐 전집 편집위원회에 참가한 과정도 그렇거니와, 책이 나오기까지 50년의 ‘숙성’을 기다려야 했던 역사의 무게를 따져봐도 그렇다.
〈박헌영…〉은 ‘민족주의적 좌익’ 인물에 대한 조명을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운동사 연구로 대신했던 관성에 대한 결정적 일침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박헌영(1900~1956)을 전면적으로, 그리고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한국전쟁 정전 51주년(7월27일)을 즈음해,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남과 북으로부터 모두 버림받은 것은 물론, 반세기 동안이나 “은밀하고 공포스럽게 유지돼온 박헌영에 대한 기억을 역사로 부활시켜야 할 때”(편집위원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혁명을 선동한다거나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연구자들은 전집 9권 빼곡하게 무미건조한 날짜와 사건, 기록과 저술을 담았다. 1~3권은 박헌영의 저작, 4~7권은 신문기사 등 자료, 8권은 회고와 증언, 9권은 화보와 연보로 구성됐다. 전집 편집위원회 책임 대표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박헌영에 대한 학술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객관’을 유지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밴 자평이다.
거기에 논평과 감상이 서 있을 자리는 없다. 이를 읽으며 어떤 울림을 얻을지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전집의 ‘행간’에는 격동하는 역사의 현장이 곳곳에 숨어 있다. 자료와 문헌을 따라가다 보면, ‘민족 배반자’와 ‘미제 간첩’으로 그를 몰아세운 남과 북의 정치권력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실을 뒤틀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런 노력은 결국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제자리에 올려놓는 힘이다. 1918년 한인사회당 건설 이후 30여년 한국 근대사의 중심을 이뤘지만, 결국은 남과 북으로부터 철저히 폄하당한 공산주의 운동의 본류를 ‘역사적 사실’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풍토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역사를 ‘편제’한 북한을 논외로 하더라도, 남쪽 역시 이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척박하기 그지 없다. 김준엽과 김창순이 함께 지은 〈한국공산주의운동사〉(전5권·1963~1976), 서대숙의 〈한국공산주의 운동사〉(영문 1967·국문 1985), 스칼라피노와 이정식이 쓴 〈한국의 공산주의〉(1972) 등이 대표적 저작이지만, 냉전체제 아래 영미권의 시각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1987년, 20여명의 소장학자들이 한국역사연구회 안에 ‘사회주의 운동사 연구반’을 만들어 10여년 공동연구를 펼쳐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집단적·체계적 연구활동은 사라졌다. 전국 각 대학의 역사학 교수 가운데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운동사를 전공한 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 젊은 학자들은 ‘자리’를 잡지 못해 연구교수 등에 머물러 있다.
임경석 교수(성균관대)는 “사회적 금기를 넘어 역사인식의 공감을 넓혀 사회구성원의 가치를 통합하고 그 정체성의 외연을 넓히는 구실을 한다”며 공산주의운동사 연구의 의미를 평가했다. 〈박헌영…〉은 그 길을 가로막았던 어떤 ‘금기’를 깨고, 온전한 역사인식으로 가는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셈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박헌영 전집’ 주도적 참여 임경석 교수
“아직도 독자의 가슴속에
검열 시스템이 있다”
냉전적 잣대로 휘둘려온 한국 사회주의운동사 연구에 대한 임경석 교수(성균관대)의 신념은 확고하다. “역사적 사실, 그대로 톺아보는 학문 연구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역사 연구와 다를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데, 근거 없는 경계심 아니면 턱없는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한국적 상황’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다.
그는 1993년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기원’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을 다시 펴내, 이 분야의 맥을 잇고 있는 소장학자다. 〈박헌영 전집〉 편찬 과정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특히 그 일부인 〈이정 박헌영 일대기〉를 직접 집필했다. 박헌영의 일생을 돌아보는 작업조차도 “일제시대와 해방 전후에 큰 영향력을 준 인물을 주목하는 것은 역사학자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담담하게 말한다.
“박헌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지원하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는 그는 이념적 열정 대신 학문적 냉철함으로 한국 사회의 금기를 잇따라 넘어서고 있다.
그런 그에겐 ‘냉전체제’조차도 학문 연구자가 극복해야 할 하나의 과제에 불과하다. “냉전 시기에는 이념적 금기에 도전한다는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고, 냉전 구조가 붕괴된 뒤에는 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1차 자료를 폭넓게 접할 수 있어, 오히려 유리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의 책임도 학계 내부에 먼저 돌린다. “지금까지 이 분야의 역사서술이 무미건조하거나 지나치게 이념적 편향을 보였기 때문에, 대중들과 폭넓은 소통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활발한 사회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매력적인 역사 서술을 꿈꾸고 이를 실현하는 게 역사학자들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대안도 결국 자신을 향한 것이다. 다만 “학문의 자유가 많이 확장됐지만 아직도 연구자와 독자의 가슴 속에 내면적인 검열 시스템이 있고, 한국전쟁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포가 아직도 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결국 임 교수의 작업은 “역사적 불화를 거쳐 이리저리 분열된 사회적 심리상태를 통합하는 것”이고, 그 방법은 “사회적 금기를 연구해 이를 정상적인 담론구조에 소통시키는 것”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역사까지 보듬어 우리의 20세기를 온전히 이해하게 만드는 일이 그의 필생의 과제다.
안수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