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그림자가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82
황선미 지음, 이윤희 그림 / 시공주니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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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그림자가..... 책 제목이 묘했다.

'빛나'는 '그림자'가?

'빛나는 그림자'가?

요즘 유행하는 서술형 문장 제목도 아니고, 명사형으로 끝나는 제목도 아니어서 제목이 묘하게 관심을 끌었다. 어린이책을 읽게 되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이 책은 '제목'과 '작가'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짱나라, 짱빛나, 짱나 혹은 짱아라고 불리는 주인공의 이름은 '장빛나라'이다. 5학년이 시작하는 날, 이 학교로 전학을 왔고 지금은 은재, 유리와 함께 학교생활을 나름 즐겁게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셋은 함께 비밀공책을 쓰고 있다. 어느날 '허윤'이라는 전학생이 오고 은재가 '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빛나라는 학교 숙제로 주어진 '태몽'때문에 고민이다. 학교에서는 '태몽, 원하는 직업, 직업을 생각하게 된 계기, 롤 모델, 찾아본 자료, 인터뷰 내용, 사진' 등을 찾아오라고 숙제를 내주었는데, 진로탐색을 위한 관심 유발, 실마리 정도로 '태몽'을 선택한 것 같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빛나라;가 태몽때문에 고민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조금 답답했다. 보육원 시절에 만난 언니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빛나라는 보육원에서 살다 지금의 집으로 입양을 온 아이였다.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빛나라를 정말 가족처럼 대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언니의 트집을 어린아이답지 않은 아량으로 이해하는 빛나라의 태도가 오히려 이방인처럼 보이게 했다고 할까?

이 책이 '입양 가족'의 갈등이나 고민을 '가족'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 좋았다. 진로 탐색을 위해 주어진 과제를 '당연히 태몽을 꾸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 선생님의 생각이 좀 어이없기는 했지만. 태몽 없이 태어난 아이도 '당연히' 많다. 보육원에서 자라거나 입양되거나 하지 않더라도. 만약 내가 빛나라였다면 '태몽'을 물어볼 수 없어서 짜증내기보다 '태몽'이 없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을텐데. 12살짜리에겐 어려운 일이었을 수도.

전학생 허윤이 빛나라와 은재, 유리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장면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아이들끼리의 오해와 화해의 과정을 보여준다. 학교 다닐 때 꼭 세 명이서 붙어다니다가 사달이 나곤 했는데... 어쩜 딱 그대로인지 웃음이 났다. 이럴 때 가운데 낀 한 명이 얼마나 곤란한 상황이 되는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첫 장면부터 등장한 '눈썹이'는 아이들의 관계를 끊었다, 이었다 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맘때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고민을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막장 주제가 끼어들긴 했지만 '막장스럽지 않은 내용'으로 잘 버무려졌다. 진로 고민, 친구 문제, 가족 문제가 잘 녹아든 이야기로 초등 고학년이 읽기에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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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문학을 먹고 산다 - 인문학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주도하라
한지우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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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돌을 만나면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말하고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칼라일

전 세계가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런 중에도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그룹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이런 가운데 포스트 코로나 혹은 언택트 시대에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주제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중세 유럽, 보수적이고 이성 중심의 사회적 분위기가 강하던 그 시절 단테는 종교나 이성이 아닌 인간의 '감정'이 가진 잠재력을 믿었다.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당대의 사회문제를 포착해내었다. 단테의 영향을 받은 조반니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에 중세유럽을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흑사병의 창궐로 죽음의 공포를 견디며 사는 사람들에게 보카치오의 책은 위안과 힘이 되어주었다. 단테와 보카치오가 강조했던 인간의 감성은 '르네상스'시대를 열었다.

페스트 이후 유럽은 신 중심의 사회에서 사람 중심의 문화로 변화하였다. 인문주의로 복귀하자는 도덕적 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르네상스 시대에 화려하게 꽃을 피운 인본주의는 오늘날 인권의 발원지가 된다.

팬데믹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달라진 세상을 새로운 기준이라는 의미에서 '뉴노멀'이라고 부른다. 또한 사람들의 사고 구조도 바꿔놓는데 이를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위기가 닥치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한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미래 사회의 성격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기술발전에 따른 위험성이 커지는 리스크 소사이어티, 지속가능한 그린 소사이어티, 꿈과 이야기를 파는 드림 소사이어티가 그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위험성이 높아진다. 롤프 옌센은 21세기를 위협하는 리스크는 초고난도의 과학기술이라고 말한다. 즉 미래 사회의 격차는 인공지능에 의해 생긴다는 것이다. 타일러 코웬도 평균으로 대변되는 중간층을 소멸시켜 양극화를 발생시킨다고 하였다. 리스트 소사이어티의 위험성은 일자리나 인간의 유능함을 인공지능에게 빼앗기는 것 외에도 삶의 진정한 의미나 행복, 만족감, 즐거움, 성취감도 위험에 노출하게 된다.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는 편협한 사고나 편중된 시선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지속 가능'이라는 키워드는 자주 접할 수 있는데 '기후 변화 대응'과 '경제 성장;을 함께 모색해야 하는 시대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사람들이 더욱 더 자연과 가까워지기를 원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람들은 이동과 집합을 금지당하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상 공간에서 모이기 시작했고 꿈과 이야기를 파는 감성 사회에 집입했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요구되는 인재상은 무엇일까?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하고 주도하는 사람이 현대의 '르네상스형 인간'입니다. 스스로 정체성을 선택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술을 받아들이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P.69~70

코로나19 이전에는 4차 산업혁명의 혁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기술혁신의 시대로 전환되는 것을 인정한다.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전개될 4차 산업혁명은 코로나 19로 진정한 혁신이 가능해졌다.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3D프린팅 기술 등은 모두 4차 산업혁명이 가져 온 혁신이다.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사물이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융합되면서 폭발적으로발전하는 기술 융합, 정보나 데이터를 활용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플랫폼, 그리고 국가나 기업 조직이 아닌 사람이 기술 혜택의 혜택을 누리는 일상성으로 대변된다. 팬데믹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기로 혁신적인 기술을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시켰다. 온라인으로 하는 화상회의, 화상 수업, 인터넷 주문 등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사회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점점 더 인간을 닮아가는 인공지능이 강력해질수록 인간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진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인가? 저자는 이제는 기업들이 저임금의 노동력을 찾아 새로운 국가에 진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법이나 직원 복지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로봇이 안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과 기계는 인간보다 효율적인 '노동'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공지능과 대결하여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미래를 예측하고 죽음을 인식하는 존재라고 한다. 노동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은 진정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려고 할 것이다. 미래에는 '권력'이나 '힘'보다 '즐거움', '행복함', '의미', '유대'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고 감동을 주는 일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메타버스와 같은 최첨단 플랫폼은 사회 생활의 인식, 소유 관념, 일과 여가의 균형 등 삶의 주요한 문제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체성과 인식으로 삶을 구성해야 합니다. 결국, 놀이와 즐거움을 만들어주는 집단과 사람이 더욱 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P.167

따라서, 저자는 인문학적 소양이야말로 기술 시대에 진정한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글로벌 기업이 가장 원하는 인재는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감각을 모두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기술적인 부분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인문학적 소양은 자신의 의지 없이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꾸준한 자기 성찰과 독서와 토론을 통해 길러진다.

지금은 원인과 결과가 명확해서 선형적이던 가거와는 달리 원인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 비선형적인 세계가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사회학, 심리학, 철학, 문학 등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성공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도, 대체불가의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모두 인문학의 힘이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4장에서 읽을 수 있다. 3장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앞당겨진 4차 산업혁명을 이해했다면 4장에서는 인공지능에 대채되지 않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알려준다. 2년 사이에 세상이 뒤집어지고 바뀌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해야 할까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는 책이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협찬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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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캠프로 가는 길
테사 줄리아 디나레스 지음, 아나 고르디요 토라스 그림, 김정하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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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푸른색 표지의 이 그림책은, 살던 집과 나라를 떠나 난민캠프로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동네에서 제일 예쁜 집에 살고 있던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집을 떠나는데, 이 행렬에는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윗집 가족도, 과일 장수 아저씨도, 의사 선생님도, 코흘리개 꼬마도, 내 짝꿍도 있다. 힘든 이동 중에도 아이들은 놀이를 하며 버텨보지만, 이내 다리도 아프고 재미도 없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아이는 엄마 아빠의 손을 놓고 뒤돌아가다 길을 잃어버리고 혼자가 된 무서움과 두려움에 떨다 다시 가족을 만나 난민캠프에 도착한다.

난민캠프로 가는 길은 결코 즐겁고 희망이 넘치는 길이 아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살기 위해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우울과 절망이 드리워져 있다. 그림책의 색감은 그들의 감정을 대변하듯 무겁고 어둡다.

이 그림책은 고향을 잃고 길 위를 떠도는 난민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였고, 지중해를 건너던 난민들이 바다에서 죽는 일도 연거푸 일어나는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난민이 존재한다. 얼마 전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집권하면서 난민 문제는 또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경제력이나 세계적 영향력에 비해 난민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수송 작전의 성공과 난민 정착을 돕는 과정에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프간이나 시리아의 내전으로 생겨난 난민 뿐만 아니라 북한을 탈출하여 새 삶을 찾아 떠나는 탈북 난민도 있다. 우리에게 난민은 낯선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방법을 찾고 관심을 가져야 할 존재이다.

유아나 초등 저학년보다는 초등 고학년 이상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읽고 얘기 나누기 좋은 그림책이다.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논픽션이나 지식 정보를 접하기 전에 정서적 측면에서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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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산책 딱따구리 그림책 19
레이첼 콜 지음, 블랑카 고메즈 그림, 문혜진 옮김 / 다산기획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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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어둠이 내리고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질 때쯤 엄마와 아이가 달을 보러 나간다. 달은 아이에게 쉽사리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건물 사이로 나왔다 들어갔다 반복한다. 쉽게 찾아지지 않는 달을 따라가며 아이는 엄마에게 이것저것 질문하고, 엄마는 답을 해준다. 밝고 하얀 달, 동그랗게 빛나는 보름달이 마침내 눈앞에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오며 아이는 하품을 하고 엄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잠잘 시간이야”라고 속삭인다.

『달빛 산책』은 콜라주 기법을 차용하여 밤거리를 표현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일터에서 돌아오는 사람,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사람도 있다. 도시의 밤은 깜깜하거나 어둡지 않다. 자칫 삭막할 수 있는 도시의 풍경을 따뜻하게 표현했다. 커다랗고 하얀 달이 높은 빌딩 뒤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밀어도, 길거리에 고인 물속에 비쳐도 이질적이지 않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바닥을 보며 걷는다. 그래서 길거리의 멈춤 표시도, 횡단보도의 신호등 색깔도 언젠가부터 바닥에 설치되어 있다. 어른들만 아니라 아이들도 점점 더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없다. 야경이 멋지다는 곳에 가보면 인공 불빛이 반짝인다. 낮처럼 밝은 도시의 밤하늘은 점점 빛을 잃고 멀어진다. 이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밤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게 된다.

번역 그림책을 읽을 때 원작의 리듬감이나 함축된 의미를 놓칠 때가 많아서 어떤 책은 일부러 원작을 찾아 읽어보기도 한다. 다행히 이 책은 잠자리에서 조곤조곤 읽어 주기 좋은 내용과 리듬으로 번역되었다. 한참 호기심이 왕성한 유아에게 읽어 주면 좋겠다. 그리고 『달빛 산책』은 신인 작가에게 수여하는 에즈라 잭 키츠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이 작가의 새 책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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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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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사람들의 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책.

회화는 책과 함께 발달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림은 글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책이 물리적 대상으로서 결정적인 형태를 갖게 된 것은 중세 때라고 한다. 목판, 점토판, 나무껍질, 비단, 파피루스 등의 소재로 서판을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중세에 이르러 코덱스의 출현과 인쇄술의 발달은 책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다. 기독교인들은 두루마리에 모세의 경전을 기록하는 유대인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코덱스를 채택했다고 한다. 중세에는 글을 쓰기 위한 소재가 세가지가 있었는데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가 그것이다. 15세기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필경사가 글을 쓰는 전문가였다. 그들은 글을 쓰기 위해 흑연이나 은, 주석으로 된 필봉, 갈대, 새의 깃 등을 이용하였다. 잉크는 식물 성분에 납이나 철의 황화물을 더해 만들어 썼는데, 특히 붉은 잉크는 저작 전체나 장의 표제에 썼다고 한다. 이것은 '차례'가 없던 시절에 독자들이 특정 대목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

중세 수서본 중에서 삽화가 들어가는 책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그런 책들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삽화는 장식적인 기능과 텍스트의 내용을 보완하는 교육적 기능이 있다. 중세 초기 수도원에서 만들어지던 수서본이 도시로 옮겨가면서 책 시장이 생겨났다. 5세기 로마제국의 붕괴 후 12세기경까지 출판은 수도원에서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책의 상업적 거래가 끊기고, 수도사들이 출판을 하면서 비영리적 활동으로 변모하였다. 수도원에는 수서본을 제작하는 스크립토리움(필사실)을 두고 있었다.

11세기 독서가 묵독의 형태를 띠게 되면서 독자와 책의 관계가 달라졌고, 12세기에는 학교에 다니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책 장사도 본격화되었다. 13세기 초에는 서적상들이 나타났다. 서적상은 서적 생산과 관련된 네가지 직업인들(양피지 제조사, 필경사, 채식사, 제본사)을 지배했다.

중세 사회에서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기독교 대중을 지배하던 성직자와 귀족만이 누릴 수 있던 특권이었다고 볼 수 있다. 독서의 즐거움은 곧 장서의 구비로 이어져 도서관들이 탄생하였다. 서구의 큰 도서관들은 중세 초기 수도원에서 생겨났다. 대부분의 수도워 공동체가 따랐던 성 베네딕투스의 규율은 공동체적 독서를 권했다. 13세기에는 수도원이 쇠퇴하면서 책의 제작과 내용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종교서적은 줄어들고 대학 교재나 문학에 속하는 속어 작품들의 필사가 발달했다.

12세기 서구에서 도시 학교들이 발달하고 뒤이어 13세기에는 대학들이 창설되면서 새로운 대중 독자들이 나타난다. 종교적 묵상을 위한 독서에서 새로운 지식을 알고자하는 독서로 이어졌다. 교사와 학생들은 책을 학문의 도구로 여겼으며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책이 있어야 했다.

영국의 애서가 리처드 베리가 1343년~1345년 사이에 공공도서관에 출입하는 학생들의 행동에 대해 쓴 글(학생 족속의 뒷모습)은 당시의 세태를 보여준다. (p.85 내용 참조) 중세나 지금이나 도서관에서 공공이 함께 보는 책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많다.

책을 읽는 두 가지 방식(낭독과 묵독)은 중세 내내 뱡행되었다. 낭독이 문맹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묵독은 성직자와 학자들의 방식이었다. 묵독은 학교에서 행해지면서 학문의 도구가 되었지만 문맹자들은 '기억력'에 의존하여 배웠다. 12세기와 13세기에는 학교의 발달과 더불어 독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텍스트는 규격화되었고, 장식은 장절을 알아보는데 필요한 머리글자 장식에 제한되었다. 주서와 색인은 수서본을 편리한 학습용 책으로 만들어주었다. 중세말기에는 여성들도 문자 문화에 참여하여 글을 읽고 썼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구 특히 중세 서구의 책과 관련된 사회 문화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수서본을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적 내용을 다룬 책들이 주를 이룰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로지 종교적인 책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더왕의 이야기를 다루거나, 신화를 차용하거나 속인들의 세속적인 관심사를 드러낸 책도 나타난다. 그것은 인쇄술의 발달과 종이의 보급으로 인해 대중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책이 수집의 대상 또는 유산의 한 부분이 될만큼의 가치가 있던 시절에는 당연히 책이 재산이었을 것이다. 요즘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을 것.

얼마전 이사를 하면서 집에 쌓여있던 책을 버리고 묶어서 보내고 기증을 하고 정리를 하였다. 한번 읽고 말 책, 그 한번도 끝까지 읽지 않을 책이 얼마나 많던지. 책이 귀했을 당시에는 책으로 남겨야 할 내용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그러니 그 책은 귀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버리고 비우고 나니 나도 책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진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책의 역사, 도서관의 역사를 가르치면서 알고 있던 내용도 있었지만, 다양한 사진 자료를 보면서 읽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과거의 우리나라 책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있다면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서구 중세 중심의 내용이므로 조금 아쉬움은 있다. 물론 저자는 처음부터 중세의 책에 관한 열정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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