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 - 카이사르에서 콘스탄티누스까지, 제국의 운명을 바꾼 리더들 서가명강 시리즈 20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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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협찬 받은 도서를 읽고 쓴 글입니다.

서가명강 시리즈 20번째 책.

로마를 다룬 책을 꽤 많이 읽었다. 그런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이름이 어려워서이기도 하고, 남의 나라 역사를 줄줄 외운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기도 하다.

그래도 몇 권 읽다 보니 이제는 등장인물(?)에서 낯설음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번에 읽은 이 책은, 로마라는 제국의 운명을 바꾼 리더 4명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를 집중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역사 이야기지만, 리더십을 다룬 도서로 봐도 무방한 이유다.

리더 한 사람으로 인해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훌륭한 리더는 그 자신에게도, 국민에게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로마의 역사가 말해 준다.

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 p.10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로 우리에게 익숙한 카이사르를 먼저 살펴보자. 이 말은 카이사르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너 이탈리아로 갈 때 병사들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원래 그리스 희극 작가 메난드로스의 작품과 플루타코스의 영웅전에도 나오는 말이다. 카이사르는 던져진 주사위처럼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선택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의외로 우리는 카이사르의 말을 몇 가지 더 알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이고 또 하나는 '브루투스 너마저'이다. 그가 남긴 말이 우리가 자주 쓰거나 볼 수 있는 문장이라는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카이사르의 풀네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이고 '줄리어스 시저'는 카이사르의 영어식 이름이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을 때 신들의 이름이 다르게 읽히는 것과도 같다. 가이우스는 이름이고 율리우스는 성에 해당하며 카이사르는 가문명이다. 율리우스는 우리 식으로 하자면 '경주김씨'인지 '광산 김씨'인지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설명은 '솔직히 뭔지 잘 모르겠는데 물어보기에는 부끄러운'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찰떡 설명이다. '카이사르'는 코끼리라는 뜻의 카르타고어 'caesai'에서 유래한 것으로 카이사르가 발행한 은화에는 코끼리가 있다.

카이사르의 시대가 열리면서 그가 내건 구호는 '클레멘티아', 즉 '관용'이었다. "폼페이우스는 공화정을 위해 카이사르를 상대로 싸우지 않은 사람을 적으로 간주한다고 선언했지만, 카이사르는 자기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은 사람을 자기편으로 간주한다고 선언했다." p.53 또한 개혁을 통해 로마의 재건을 약속했는데 그중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태양력이다. 로마달력은 카이사르의 씨족 이름을 근거로 율리우스력이라 불리는데 16세기 들어서여 수정되어 그레고리우스력으로 바뀐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롱기누스는 배신자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지만 오늘날에는 독재 타도의 관점에서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카이사르는 정치가로서는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로 평가받지만 권력욕에서 해방되지 못한 독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위대한 정치 지도자로, 누군가에게는 폭군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어느 한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관점과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는 이유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도 시대의 흐름이나 그 시대의 가치에 따라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도 익히 알고 있다. 지금의 선택이 언제나 최선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장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은 잊어서는 안된다.

팍스 로마나의 서막을 연 로마의 초대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이다. 팍스 로마나는 기원전 1세기 말 아우구스투스가 내전을 수습하고 제정을 수립한 때로부터 약 200년간의 안정된 시기를 말한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이름을 올린 옥타비아누스이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카이사르의 죽음으로 갑자기 후계자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등과도 싸워야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를 죽인 자들에 대한 복수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 제2차 삼두정치가 등장한다. 제1차 삼두정치에서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제2차 산두정치에서는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주축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후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손을 잡았고 옥타비아누스와의 경쟁을 펼쳤지만 악티움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와 달리 원로원과 로마 인민에게 국가를 이양한다고 선포를 한다. 그러자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새로운 칭호를 제안하였고 이는 이후 로마 황제를 뜻하는 호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과 땅이 있었다. 개인 재산이 많다보니 나랏일에 자신의 돈을 아낌없이 썯아붓기도 하였다. 저자는 이 점을 오늘날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공금을 제 돈인양 써대는 것과 비교한다.

나는, 아우구스투스가 개인 재산이 많아서 나랏일에 돈을 썼다기보다 인간성 자체가 돈에 물욕이 없고 써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다고 해서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국민으로부터 나온 정치권력과 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할 지는 알아서들 판단하길 바란다.

아우구스투스의 평소 죄우명은 '천천히 서둘러라'였다고 한다. 제2차 삼두정치의 최후의 승자이면서 내전이 재현되지 않도록 애쓴 탁월한 군주였다고 평가받는다. 이 평가 역시 고정된 것은 아니기에 어떤 관점, 어떤 가치에 따라 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의 정치적 행동이 어떤 평가를 받든지 간에 그가 로마 인민을 위해 일했다면 그것만큼은 변함없이 기억될 것이다.

다음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위기에 처한 로마제국을 구하고 로마의 새로운 시대를 연 황제로 평가받는다.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의 조상은 노예였다. 그러나 그는 전제정을 확립하고 4제 통치 체제를 창안하여 로마의 안정을 꾀하였다. 로마제국은 로마 본토 출신만이 황제 자리를 독점하지 않았다. 능력만 있다면 제국의 어디 출신이라도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저자는 이것이 로마의 힘이라고 말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와 달리 원로원의 권위를 무시하였다. 군대와 정부 행정 기구를 강화해 황제권 체제를 유지하였다. 화폐재도를 개혁하고 세제를 개편하여 경제적 안정을 꾀했지만 물가상승과 인플레이션은 막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상황과도 비교가 가능할 것 같다. 미친듯이 치솟았던 부동산 가격을 잡느냐 못잡느냐 하는 것으로 지금의 정부를 평가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코로나로 인해 방역 성과를 놓고도 여러 가지 평가를 해댄다. 어느 것이든 후대에 다시 재평가되겠지만, 기본은 이 역시도 '국민'을 먼저 생각했는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종교박해를 통해 폭군의 이미지가 크지만, 죽기 전에 스스로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특별한 사례를 남기기도 하였다. 종교 박해는 민감한 사안이라 뭐라 말하기 어렵다.



네 번째황제는 콘스탄티누스이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를 정책으로 삼았던 황제이다. 그리고 수도를 옮겨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건설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흥미가 조금 떨어지는 황제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 네명의 황제를 다루면서 어떤 사람이 리더가 되는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짐을 이야기한다. 리더 개인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국가가 망하기도 하고 흥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국가의 이미지는 그 어느때보다 최고조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정치인들의 생각과 행동은 그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정치를 맛보고 나면 다들 왜 그렇게 똑같아 지는지. 물론 이 모든 것도 후대의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지금의 잣대가 가장 정확하고 공평한 잣대는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사람을 좀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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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동화집 재미있다! 세계명작 1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종진 옮김, 이상권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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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독서모임에서 은근히 자주 읽게 되는 작가가 바로 톨스토이이다. 그만큼 대작도 많고, 워낙 유명하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혼자서는 쉽사리 읽으려는 생각이 잘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독서모임에서 모처럼 짧지만 읽으면 바로 알 수 있는 책을 골랐다.

'톨스토이 동화집'이라고 해서 이 책에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비롯하여 11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요한의 첫째 편지 3:17~18)"

구둣방 주인이 농부들에게 받을 돈을 받아서 몇년동안 사려고 벼뤄왔던 모피코트를 사려고 했지만, 겨우 20코페이아밖에 돌려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다 교회 옆에 벌거벗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자신이 입을 모피코트 하나 제대로 살 수 없고, 아내와 함께 먹을 빵도 넉넉치 않은 세묜은 그 남자를 못 본채 지나치려고 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의 아내는 그런 세묜과 남자를 보고 화를 내지만, 결국은 그를 받아들인다.

사실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남을 돕기란 쉽지 않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면면을 보면 자신도 그리 넉넉치 않은 사람들이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없는 사람은 없는 자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들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아마도 이 구둣방 주인 부부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나도 가난하고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보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 바로 그들의 마음 속에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사랑의 이름은 '동정'이기도 하고 '연민'이기도 하고 순수한 '인간애'일 수도 있다. 이름이야 어떻든 톨스토이는 그것을 '사랑'으로 보았다.

구둣방 주인에게서 일을 배우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천사 미하일은 하느님이 낸 문제를 풀어간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사랑이 있어서 사랑으로 살아간다. 다만 그들에게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능력은 없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여러 사람과 함께 생활하며 모자란 것을 보완한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동화집에 수록된 11편의 이야기에서 교육적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이야기로 읽히는 것은 톨스토이가 지닌 문학적 능력 때문일 것이고, 민간 전승되어 살아남은 이야기의 구조와 내용이 보편적인 인간에게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읽히는 맛이 있다. 종교적 색채가 드러나지만 과하지는 않다. 톨스토이의 대작이 겁난다면 이 동화집으로 친해져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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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는 마음 창비청소년시선 36
이병일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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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동에서 청소년으로 넘어오면서, 엄마의 독서도 변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의도와 주도로 이끌 수 있었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주도" 혹은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시기인 것이다.

나의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아이와소통하기 위해 청소년 책을 읽는다.

그래서, 이왕이면 그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책이면 좋겠다 싶어

이것저것 뒤져보다 이 시집을 보았다.

마스크 유행(인스타그램1)

마스크 쓰고 학교에 간다

코로나19때문에 어쩔 수 없다

마스크는 또 하나의 얼굴이 되었다

마스크 쓰고 여행을 가고

마스크 쓰고 시험을 보고

마스크 쓰고 극장에 가고

마스크 쓰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마스크 쓴 얼굴보다

초록빛 명찰이 더 잘 보였다

마스크는 얼굴보다 이름을 빛내 주었다

이병일 시집 『처음 가는 마음』 中 「마스크 유행」 전문

코로나로 인해 변해버린 상황을 잘 표현하였다.

마스크 때문에 아이들은 친구 얼굴도 잘 모를 것 같다.

나도, 마스크 쓰고 처음 갔다가 지금까지 단골로 가는 미용실 미용사를

우연히 밖에서 봤는데 못 알아봤다.

사람들은 이제 얼굴이 아니라 이름으로 기억한다.

누가 그랬더라?

시인은 불명확한 것,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하여 언어로 정의 내리는 사람이라고.

모호하고 어려운 시(詩)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오토바이 사고는 시인으로 하여금 많은 깨달음을 준 듯하다.

누구나 살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지나간다.

어떻게 보면 가장 우울하고, 가장 어두운 시기를

위트와 밝은 생각으로 헤쳐나가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나와 참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가

어둡고 무거운 자기만의 짐을 잘 부려놓길 원한다.

사춘기라는 터널을 씩씩하고, 즐겁게 뛰어나오길 원한다.

"나는 고통에 민감한 소년이고 싶다"(「분홍민달팽기」)거나

"시를 쓰는 흑심고래가 될거다"(「흑심고래를 찾아서」)라거나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검은 털 이야기꾼」)는 그는

그렇게 시인이 되었다.

그렇게 뭔가를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으면 좋겠다.

어디인지 모르지만 모르니까 더 행복한 그곳을 향해 가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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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2-09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제 사춘기를 향해가는군요. 전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는 더 이상 같은 책을 읽지 않았던거 같아요. 그냥 저는 원래의 독서로 돌아오고 아이들은 아이들이 원하는 책을 읽거나 안읽거나..... ㅎㅎ 그래서 요즘 청소년 소설이나 시집같은것들 본지가 한참 되었네요.

하양물감 2021-12-10 06:5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제 독서로 돌아온지 꽤 되었어요. 아이가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데 사춘기가 시작하려나봐요. 꽤 늦었죠?
나로서는 30년도 더된 과거라 가물가물해요
 
아이러니스트 -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 EBS CLASS ⓔ
유영만 지음 / EBS BOOKS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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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면서 철학을 만난다. 어렵고 난해하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부러 외면하게 되긴 하지만 우리 삶의 모든영역에서 '철학'을 만나게 된다. 철학의 과제는 개념 창조에 있다고 말했던 들뢰즈의 말처럼 수많은 철학자들은 각자의 '개념'을 만들어왔다.

사람은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만큼 세상을 보고, '개념'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바뀌지 않습니다.

아이러니스트 P.9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철학자를 사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리고 내 삶에 사유를 투영하여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리처드 로티는 기존의 문법을 파기하고 자기만의 언어 사용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다르게 만들어가는 시인이나 소설가를 이르러 아이러니스트라고 불렀다. 즉 아이러니를 의도적으로 창조하는 사람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관성적으로 움직이려는 삶을 버리고 나다운 삶을 위해 결단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이 책에는 열 두명의 철학자가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 존 듀이, 프리드리히 니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이클 폴라니, 질 들뢰즈, 움베르트 마투라나, 미셸 푸코, 리처드 로티, 자크 데리다, 조지 레이코프, 브뤼노 라투르가 바로 그들이다. 익숙한 이름도 보이고 낯선 이름도 보인다.

지식으로 지시하지 말고 지혜로 지휘하는 방법: 아리스트텔레스의 실천적 지혜

몇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의 시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왔지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다면, 지금은 팬데믹 상황을 거치면서 어느새 우리 삶에 쑥 들어와버렸음을 깨닫게 된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인간 고유의 능력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를 소환해내다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실천적 지혜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신천인지를 숙고하고 이 상황에적절한 대응을 취하는 자세를 말한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는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능력, 타인의 아픔을 가슴으로 생각하는 능력(감수성), 이연연상의 상상력, 그리고 현실 구현의 실천력을 말한다. 질문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교육이 변해야 하고, 공감능력을 키우면 상상력도 키울 수 있다.

가장 와 닿았던 철학자는 비트겐슈타인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관심사의 영향이기도 하다. 언어가 틀에 박히면 생각도 틀에 박힌다.

언어적 해상도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상응하는 적확한 단어를 선정해서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휘력이 짧은 사람은 감정 표현에 동원할 수 있는 단어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쓴 글을 봐도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언어의 해상도를 높이는 방법은 여러 분야의 책을 편식 없이 읽고 적확한 개념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아름다운 문장을 많이 만나는 것입니다.

P.117

한국어처럼 의도를 함축적인 언어로 우회해서 표현하는 고맥락 문화에서는 본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에 드러내서 상대방이 알아서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표현이 많다. 그래서 어떤 말이 왜 여기서 사용되는지 잘 파악하지 못하고 소통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의 변화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위깊게 관찰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사고의 한계를 규정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언어경작이 필요하다.

질 들뢰즈에 의하면 사건은 반복할 때마다 이전과 다른 차이를 드러내며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말한다. 그래서 모든 현상은 낯선 의미, 낯선 기호를 품고 있다. 들뢰즈가 말하는 기호는 나한테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모든 현상이다. 낯선 기호가 나타나지 않으면 이전과 동일한 생각을 반복하게 된다. 우리가 공부하는 과정은 나한테 다가오는 낯선 기호를 해석하는 과정이다. 기호를 품고 있는 사건은 '아장스망'일 때 발생한다. 아장스망은 기존 사물의 낯선 조합과 우연한 마주침으로 형성된 낯선 환경을 말한다. 전문가일수록 낯선 사람과 마주치는 기회보다 깊이 있는 분야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동일성을 반복한다. 그러므로 아장스망을 마주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만나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전공에서 느끼지 못했던 깨움침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아장스망일 때 가능하다.

조지 레이코프의 체험적 은유법은 체험해보지 않으면 사유는 멈춘다고 말한다. 레이코프에 의하면 은유를 바꾸면 부정적 사고방식이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바뀌고, 은유가 바뀌지 않으면 사유는 틀에 박힌대로 움직인다. 은유의 핵심은 겉으로 보기에는 닮지 않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닮은 점을 포착해내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방법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거나 기좀 개념에 담긴 나의 신념을 바꿔서 재정의하는 것이다. 비유는 막힌 사유를 뚫어주는 치유라고 한다.(P.343) 나만의 독창적인 비유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한 권을 읽었을뿐인데 어떻게 살 것인가 내 삶을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인생 제2막을 시작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인문학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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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 지친 너에게 권하는 동화속 명언 320가지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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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너에게 권하는 동화 속 명언 320가지,

유독 지친 날, 한 줄기 위로가 되어주는 동화 속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소녀세계명작 같은 전집을 집에 들여놓기가 바쁘게 바깥놀이도 하지 않고 책을 읽어대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림책을 읽은 기억은 거의 없고 동화책을 읽은 기억은 많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동화는 모두 25편. 그 중에 몇 권을 제외하고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르게 하는 책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내 또래 독자라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감동을 받거나 마음에 위로를 느끼는 인물의 대사나 작가의 메시지는 독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을 읽지 않아도' 멋진 문장이나 챙겨야겠다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어떤 맥락과 어떤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원작을 찾아보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또 저자는 좋은 문장이라고 뽑았지만 나는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문장도 당연히 있다. 어쩌면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쓰윽 훑어보는 느낌으로 읽어도 괜찮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도 없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첫 책은 E.B.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이다. 아이들 독서 수업 때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책이다. 아이들에게 친구 관계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오랜 시간을 들여 우정을 쌓은 소중한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를 보자. 틸틸과 미틸의 이야기로 기억되는 책이지만, 작가의 이름은 낯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벨상을 받은 작가이다). "단지 네가 그걸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거지... 앞으로는 우리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여주면 좋겠어. 그러면 더 고귀하고 고상한 행복들을 만나게 될거야."

J.M.데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랜지나무'를 중학교 2학년 때 읽었다. 무려 35년 전 이야기다. 그때는 여섯 살짜리 제제와 밍기뉴의 이야기가 마음을 끌었다면, 지금은 제제와 친구가 되어주었던 뽀루뚜가 아저씨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괴로움을 견디고 기운을 내는 데는 맑은 날이 더 좋잖아요. 슬픈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가 주인공인 것처럼 씩씩하게 고통을 이겨내는 상상을 하는 건 재미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겪는 건 별로예요." 아, 정말 이런 말은 '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또 다른 걱정거리들이 생길 거예요. 항상 골치 아픈 일들은 새롭게 일어나니까요. 한 가지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이어지죠. 나이를 먹으니 생각할 것도, 결정해야 할 일도 많아져요. 뭐가 옳은지 곰곰이 생각하고 결정하느라 늘 바빠요. 어른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한국 작가가 쓴 동화가 있었으면 했는데,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과 정채봉의 '오세암', 이현의 '푸른사자 와니니', 루리의 '긴긴 밤'이 보인다.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은 아이들과 이야기하기 좋은 캐릭터였다. "바람과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잎사귀. 그래서 결국 향기로운 꽃을 피워 내는 게 잎사귀니까. 잎싹도 아카시아 나무의 그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었다." "어리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가, 너도 이제 한 가지를 배웠구나.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읽었던 책을 다시 한 번 리뷰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 책들을 읽지 못했다면(아마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책도 있을 것) 지금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때의 감성과는 달라진 내게 이 책들도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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