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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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사람들의 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책.

회화는 책과 함께 발달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림은 글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책이 물리적 대상으로서 결정적인 형태를 갖게 된 것은 중세 때라고 한다. 목판, 점토판, 나무껍질, 비단, 파피루스 등의 소재로 서판을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중세에 이르러 코덱스의 출현과 인쇄술의 발달은 책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다. 기독교인들은 두루마리에 모세의 경전을 기록하는 유대인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코덱스를 채택했다고 한다. 중세에는 글을 쓰기 위한 소재가 세가지가 있었는데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가 그것이다. 15세기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필경사가 글을 쓰는 전문가였다. 그들은 글을 쓰기 위해 흑연이나 은, 주석으로 된 필봉, 갈대, 새의 깃 등을 이용하였다. 잉크는 식물 성분에 납이나 철의 황화물을 더해 만들어 썼는데, 특히 붉은 잉크는 저작 전체나 장의 표제에 썼다고 한다. 이것은 '차례'가 없던 시절에 독자들이 특정 대목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

중세 수서본 중에서 삽화가 들어가는 책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그런 책들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삽화는 장식적인 기능과 텍스트의 내용을 보완하는 교육적 기능이 있다. 중세 초기 수도원에서 만들어지던 수서본이 도시로 옮겨가면서 책 시장이 생겨났다. 5세기 로마제국의 붕괴 후 12세기경까지 출판은 수도원에서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책의 상업적 거래가 끊기고, 수도사들이 출판을 하면서 비영리적 활동으로 변모하였다. 수도원에는 수서본을 제작하는 스크립토리움(필사실)을 두고 있었다.

11세기 독서가 묵독의 형태를 띠게 되면서 독자와 책의 관계가 달라졌고, 12세기에는 학교에 다니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책 장사도 본격화되었다. 13세기 초에는 서적상들이 나타났다. 서적상은 서적 생산과 관련된 네가지 직업인들(양피지 제조사, 필경사, 채식사, 제본사)을 지배했다.

중세 사회에서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기독교 대중을 지배하던 성직자와 귀족만이 누릴 수 있던 특권이었다고 볼 수 있다. 독서의 즐거움은 곧 장서의 구비로 이어져 도서관들이 탄생하였다. 서구의 큰 도서관들은 중세 초기 수도원에서 생겨났다. 대부분의 수도워 공동체가 따랐던 성 베네딕투스의 규율은 공동체적 독서를 권했다. 13세기에는 수도원이 쇠퇴하면서 책의 제작과 내용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종교서적은 줄어들고 대학 교재나 문학에 속하는 속어 작품들의 필사가 발달했다.

12세기 서구에서 도시 학교들이 발달하고 뒤이어 13세기에는 대학들이 창설되면서 새로운 대중 독자들이 나타난다. 종교적 묵상을 위한 독서에서 새로운 지식을 알고자하는 독서로 이어졌다. 교사와 학생들은 책을 학문의 도구로 여겼으며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책이 있어야 했다.

영국의 애서가 리처드 베리가 1343년~1345년 사이에 공공도서관에 출입하는 학생들의 행동에 대해 쓴 글(학생 족속의 뒷모습)은 당시의 세태를 보여준다. (p.85 내용 참조) 중세나 지금이나 도서관에서 공공이 함께 보는 책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많다.

책을 읽는 두 가지 방식(낭독과 묵독)은 중세 내내 뱡행되었다. 낭독이 문맹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묵독은 성직자와 학자들의 방식이었다. 묵독은 학교에서 행해지면서 학문의 도구가 되었지만 문맹자들은 '기억력'에 의존하여 배웠다. 12세기와 13세기에는 학교의 발달과 더불어 독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텍스트는 규격화되었고, 장식은 장절을 알아보는데 필요한 머리글자 장식에 제한되었다. 주서와 색인은 수서본을 편리한 학습용 책으로 만들어주었다. 중세말기에는 여성들도 문자 문화에 참여하여 글을 읽고 썼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구 특히 중세 서구의 책과 관련된 사회 문화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수서본을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적 내용을 다룬 책들이 주를 이룰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로지 종교적인 책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더왕의 이야기를 다루거나, 신화를 차용하거나 속인들의 세속적인 관심사를 드러낸 책도 나타난다. 그것은 인쇄술의 발달과 종이의 보급으로 인해 대중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책이 수집의 대상 또는 유산의 한 부분이 될만큼의 가치가 있던 시절에는 당연히 책이 재산이었을 것이다. 요즘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을 것.

얼마전 이사를 하면서 집에 쌓여있던 책을 버리고 묶어서 보내고 기증을 하고 정리를 하였다. 한번 읽고 말 책, 그 한번도 끝까지 읽지 않을 책이 얼마나 많던지. 책이 귀했을 당시에는 책으로 남겨야 할 내용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그러니 그 책은 귀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버리고 비우고 나니 나도 책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진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책의 역사, 도서관의 역사를 가르치면서 알고 있던 내용도 있었지만, 다양한 사진 자료를 보면서 읽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과거의 우리나라 책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있다면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서구 중세 중심의 내용이므로 조금 아쉬움은 있다. 물론 저자는 처음부터 중세의 책에 관한 열정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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