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스트 -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 EBS CLASS ⓔ
유영만 지음 / EBS BOOKS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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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면서 철학을 만난다. 어렵고 난해하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부러 외면하게 되긴 하지만 우리 삶의 모든영역에서 '철학'을 만나게 된다. 철학의 과제는 개념 창조에 있다고 말했던 들뢰즈의 말처럼 수많은 철학자들은 각자의 '개념'을 만들어왔다.

사람은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만큼 세상을 보고, '개념'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바뀌지 않습니다.

아이러니스트 P.9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철학자를 사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리고 내 삶에 사유를 투영하여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리처드 로티는 기존의 문법을 파기하고 자기만의 언어 사용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다르게 만들어가는 시인이나 소설가를 이르러 아이러니스트라고 불렀다. 즉 아이러니를 의도적으로 창조하는 사람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관성적으로 움직이려는 삶을 버리고 나다운 삶을 위해 결단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이 책에는 열 두명의 철학자가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 존 듀이, 프리드리히 니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이클 폴라니, 질 들뢰즈, 움베르트 마투라나, 미셸 푸코, 리처드 로티, 자크 데리다, 조지 레이코프, 브뤼노 라투르가 바로 그들이다. 익숙한 이름도 보이고 낯선 이름도 보인다.

지식으로 지시하지 말고 지혜로 지휘하는 방법: 아리스트텔레스의 실천적 지혜

몇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의 시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왔지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다면, 지금은 팬데믹 상황을 거치면서 어느새 우리 삶에 쑥 들어와버렸음을 깨닫게 된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인간 고유의 능력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를 소환해내다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실천적 지혜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신천인지를 숙고하고 이 상황에적절한 대응을 취하는 자세를 말한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는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능력, 타인의 아픔을 가슴으로 생각하는 능력(감수성), 이연연상의 상상력, 그리고 현실 구현의 실천력을 말한다. 질문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교육이 변해야 하고, 공감능력을 키우면 상상력도 키울 수 있다.

가장 와 닿았던 철학자는 비트겐슈타인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관심사의 영향이기도 하다. 언어가 틀에 박히면 생각도 틀에 박힌다.

언어적 해상도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상응하는 적확한 단어를 선정해서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휘력이 짧은 사람은 감정 표현에 동원할 수 있는 단어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쓴 글을 봐도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언어의 해상도를 높이는 방법은 여러 분야의 책을 편식 없이 읽고 적확한 개념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아름다운 문장을 많이 만나는 것입니다.

P.117

한국어처럼 의도를 함축적인 언어로 우회해서 표현하는 고맥락 문화에서는 본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에 드러내서 상대방이 알아서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표현이 많다. 그래서 어떤 말이 왜 여기서 사용되는지 잘 파악하지 못하고 소통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의 변화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위깊게 관찰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사고의 한계를 규정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언어경작이 필요하다.

질 들뢰즈에 의하면 사건은 반복할 때마다 이전과 다른 차이를 드러내며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말한다. 그래서 모든 현상은 낯선 의미, 낯선 기호를 품고 있다. 들뢰즈가 말하는 기호는 나한테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모든 현상이다. 낯선 기호가 나타나지 않으면 이전과 동일한 생각을 반복하게 된다. 우리가 공부하는 과정은 나한테 다가오는 낯선 기호를 해석하는 과정이다. 기호를 품고 있는 사건은 '아장스망'일 때 발생한다. 아장스망은 기존 사물의 낯선 조합과 우연한 마주침으로 형성된 낯선 환경을 말한다. 전문가일수록 낯선 사람과 마주치는 기회보다 깊이 있는 분야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동일성을 반복한다. 그러므로 아장스망을 마주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만나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전공에서 느끼지 못했던 깨움침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아장스망일 때 가능하다.

조지 레이코프의 체험적 은유법은 체험해보지 않으면 사유는 멈춘다고 말한다. 레이코프에 의하면 은유를 바꾸면 부정적 사고방식이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바뀌고, 은유가 바뀌지 않으면 사유는 틀에 박힌대로 움직인다. 은유의 핵심은 겉으로 보기에는 닮지 않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닮은 점을 포착해내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방법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거나 기좀 개념에 담긴 나의 신념을 바꿔서 재정의하는 것이다. 비유는 막힌 사유를 뚫어주는 치유라고 한다.(P.343) 나만의 독창적인 비유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한 권을 읽었을뿐인데 어떻게 살 것인가 내 삶을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인생 제2막을 시작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인문학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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