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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그녀는 이 거대한 사회의 기저에 흐르는 모순과 갈등들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작가적 책무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호기어린 책무감을 덮고도 남을 만큼의 배짱이 있다. <인생을 훔친 여자(화차)>에서는 그것이 나즈막한 독백처럼 다가왔다면, 이제 <이유>에서는 함께 응원하고 달리는 이어달리기 같다.
르포 형식을 띤 외관부터가 그렇다. 700페이지가 다 되어가는 이 두툼한 책 안에는 얼마나 많은 인간 군상들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 2025호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도를 연습장에 그려가며, 서로를 이어주는 얇디얇은 인연들을 빨간 줄로 그어가며, 그렇게 책 읽기는 수십권 짜리 대하소설 이후로 처음이다. 작가 스스로 이 작업을 즐겼을 것이 틀림없다.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 모으듯 ‘사건’은 많은 사람을 빨아들인다. 폭심지에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 이를테면 각자의 가족, 친구와 지인, 근처 주민,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 나아가 목격자, 경찰의 탐문을 받은 사람들, 사건 현장에 출입하던 수금원, 신문배달부, 음식배달부 등, 헤아려 보면 한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지 새삼 놀랄 정도다.
물론 이 사람들 전부가 ‘사건’에서 등거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며, 또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 대다수는 ‘사건’을 기점으로 방사형으로 그어진 직선 끝에 있는 것이며, 바로 옆 방사선 끝에 있는 다른 ’관련자‘하고는 전혀 면식이 없는 경우도 많다.(91)
처음에는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중심으로 엮여 있는 걸까 하며, 뭔가 거대한 음모 같은 것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들이 서로를 옭아매며 사건의 중심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무엇, 그래, ‘폭심지’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방사형의 그물이 넓혀지면 넓혀질수록 더욱 큰 폭발과 진동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폭심지’ 라는 것은 없더라. 바람 불고 비 내리면 다같이 흔들리고 물방울이 맺히는 거미줄이었을 뿐. 더 이상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는 중요치 않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관계들에 대한 갈등과 고민들이 있을 뿐이더라. 그리고 그 관계들의 중심에 '가족'이 있다. 피를 나눈 가족이든, 피를 나누지 않은 가족이든.
가족이라는 관계는 참으로 어렵다. 가족주의에서 무던히도 벗어나고 싶었건만, 어느새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고 말았다. 애틋하고 살가운 감정과 버겁고 부담스러운 감정이 늘 공존한다. 누나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고민하는 야스타카, 늘 시어머니와 다투고도 집을 선뜻 나가지 못하는 유키에 아줌마, 모진 말로 아버지를 공격했지만 그 아버지를 너무 닮은 나오키. 이들 모두가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벗어나는 것이 자유로운지, 벗어나지 않는 것이 자유로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돌아갈 곳도 갈 곳도 없다는 것과 자유라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사실만 알았을 뿐.

가족이란 고단한 삶 속에서도 서로를 부둥켜 안는 것.
George Tooker [Lovers 2]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