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킵 - 시간을 뛰어넘어 나를 만나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스킵>을 처음에 손에 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책이 엔터테인먼트 소설인 줄 미리 알았다면 좀더 가볍게 시작했을 텐데' 하고 푸념을 했었다.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장르성을 기대하고 책을 골랐던 내겐, 왠지 허무한 이야기라고까지 생각됐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났더니, 한 백 페이지 읽고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 쉽게 말해 버린 것이 미안해졌다. 그래서 슬그머니 덧글을 단다.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텨내 보려 하는 각오가 왠지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만화 같은 결말이 아니어서 더욱 그랬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몇 십년을 날아와 갑자기 고등학생에서 중년의 여교사가 되었더라면, 난 절대로 그렇게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의 시절의 나를 그렇게 침착하고 그렇게 옹골찬 사람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치기 어리고 불안정하며, 서투르게 성숙해지고 싶었던, 그래서 더욱 우스꽝스럽고 더욱 촌스러웠던 시절. 부모님과 세상에 대한 짜증스러운 결벽증에, 뭐하나 마음의 심지가 되지 못해 여기저기 휩쓸려만 가던 마음.
17살의 내가 단 십 년을 날아와 27살의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난 절대로 그렇게 침착할 수 없다. 하물며 25년씩이야.
'어머니, 아버지, 저는 이제 다시는 당신들을 볼 수 없어요.' (521) 라니.. 난 그렇게 내 마음을 추스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서러운 눈물로 마음을 쓸어안아 버리는 그녀가 얼마나 이를 악물고 있는 건지, 얼마나 사력을 다해 서 있는 건지 상상할 수가 없다. 아마도 엄지발가락이 새하얘지도록 힘을 주고 서있으리라.
29살의 교사인 나는 결코 사력을 다해 살고 있지 않는데, 어딘가의 마리코는 사력을 다해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녀의 이를 악문 모습에 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힘내라. 마리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