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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의미
마이클 콕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복잡한 감정에 시달린다. 그런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살의를 품고 있을 때는 그 관계는 심상찮은 것이 된다. 물론 살의를 품고 있다고 하여 누구나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허나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살의를 품고 그 남자를 죽이는 것을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시험으로 다른 사람을 죽일 정도의 살의라면 그 관계에는 뭔가 끔찍하게 어두운 이야기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이 책 <밤의 의미>는 한 건의 무의미한 살인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에드워드 찰스 글리버라는 영민한 남자로 살인자다. 남자는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남자를 살인의 대상으로 점찍고 가만히 뒤를 따라간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무자비한 살인을 행한다. 글리버의 마음에는 살인으로 인한 흥분은 있으나 남자에 대한 죄책감은 없었다. 그는 즉시 흉기를 버린 뒤 자리를 떠나고 그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이 벌인 무자비한 살인과 그 남자의 마음에 한 치의 동요도 없다는 점은 혐오감을 자아냈다. 후에 그가 살인을 한 이유가 밝혀지는데 자신의 적을 죽이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한다.
결코 실패하면 안 되는 상대를 죽이기 위한 실험, 하나의 목숨을 거두면서 그는 그렇게 단언한다. 그의 그런 생각은 오싹하고 역겹지만 동시에 그렇게 하면서까지 죽여야 하는 상대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더구나 글리버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절망에 빠져 자살하려는 여인을 막는다. 그 남자의 마음에 자비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친절한 마음도 남아 있으며 연인에게도 다정했다. 그런 남자가 그렇게까지 뒤틀린 이유가 궁금해서 책장은 계속하여 넘어갔다.
이제 살인자인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 남자의 과거가 하나씩 펼쳐진다. 자신의 적수 포이보스 레인스포드 돈트를 그가 죽이고 싶어 하는 이유, 그들의 운명이 하나씩 풀려 나오는 것이다. 그와 함께 그가 완전범죄라고 생각한 살인에 목격자가 있었고 누군가 그것으로 그를 협박해온다. 협박자는 대담하게도 글리버에게 살해당한 남자 루카스 트렌들의 장례식에서 만나자고 한다. 작가가 30년에 걸쳐 쓴 책이어서 그런지 읽으면서 인상이 계속 바뀌었다.
주인공의 살인에 홈즈가 살인자가 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가 모든 일을 행하는 이유가 복수와 정당한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라고 말할 때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떠올랐다. 작가가 아픈 몸으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답게 한 줄 한 줄이 공들인 티가 나는 책이었다. 하지만 공정함도 잃지 않아서 도처에 결말로 가는 힌트가 숨어 있어서 결말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파리한 가스등 밑에서 벌어지는 살인, 음모, 배신, 사랑이 이어지는 터라 책의 배경이 런던이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세계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초반 주인공에게 혐오감을 품게 되었지만 그가 성장하는 과정, 숨은 비극, 적수의 악질적인 행동에 의해 미래가 일그러진 이야기까지 읽고 나니 혐오감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의 이해는 되었다. 그렇기에 앞의 살인을 뒤집는 행동이 그의 회고에서 이어지기를, 이미 벌어진 미래를 뒤집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나기를 점점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고 무고한 남자가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절대적인 터라 그림자는 짙어져만 간다. 책의 결말은 탄성을 자아내면서도 씁쓸하기도 하고 작가가 속편을 집필중이라는데 어떤 속편이 나올지 감도 안 잡힐 정도다.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운명을 향해 달린 주인공과 그 적수의 이야기가 놀라웠다. 벨라가 바랐던 대로 다른 결말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