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날에 나는 모든 시간을 모두 어겼다.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자 가차없이 무너져 내리는 시간의 푸른 죽음 앞에서 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울었다. 어긋난 시간 저쪽에 너는 서 있었고 그건 모두 나의 잘못이었다.
과거는, 가끔 그렇게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만 남겨두곤 해. 이를테면 풍경같은 것. 사람은 사라지고 풍경만 남는 거야.
......
소원 같은 건, 어른이 되면서 모두 버렸어.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 그건 너무 깊은 상실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처음부터 나의 것이 아니었던 것들은 언제가 나를 스쳐 지나가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황경신, 모두에게 해피엔딩, pp.31-32]


[2004.10.03]
지난 달 초, 어느 날 저녁 무렵의 노을과 달, 그리고 다음 날의 동트는 모습을 담았던 사진들을 정리했다.


한가위가 지나버리고, 이젠 제법 쌀쌀한 기운이 살갗을 매만진다. 해마다 이쯤이면 알지 못할 미열에 시달리곤 한다. 또 한해를 정리하게 되는 계절이 섬뜩하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