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0. 16. 수요일 - 광대정 마을의 아침

 


 

벌써 아침날씨가 차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발이 시려서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다. 실내화를 신어도 발끝이 시려와 오래 버티기가 힘들다. 용담호 때문인지 아침안개가 짙다. 햇살이 좀더 퍼져야 어제 널어놓은 염색천이 마를 듯 하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나섰다. 가을이 짙어지는 개울에서 물고기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피고 싶어졌다. 개울을 따라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갔다.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 듬성듬성 자리 잡은 갈대가 냇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자전거를 세우고 물속을 들여다봤다. 낮선 그림자에 놀란 물고기들이 분주히 꼬리를 흔들며 달아난다. 몇 군데를 더 둘러보고 내친김에 광대정 마을까지 가 보기로 했다. 한산한 도로에는 벼를 말리는 사람들의 느릿한 손놀림이 풍경처럼 지나간다. 들판은 이미 텅 비어있다. 군데군데 쌓아놓은 볏짚만 한 겨울동안 들판을 지키고 있을 듯 하다. 오랜만에 타보는 자전거 때문인지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람이 쌀쌀하게 여겨지더니 귓가를 윙윙대며 스치는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진다.  안성으로 가는 지방도와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광대정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낮선 사람을 경계하는 까치가 먼저 마중을 한다. 볕이 많이 드는 쪽의 황토벽에는 굴비처럼 엮인 토란대가 매달려 있다. 마을은 가을아침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마을 안쪽을 지나가는 도로를 따라 들어갔다. 멀리 잘생긴 소나무가 몇 그루 보였다. 안성에서 능길마을로 들어서는 길에서 늘 보았던 잘생긴 소나무 숲이다. 이곳을 지나칠 때면 늘 가까이 가 보고 싶었던 곳이다. 휘도는 개울을 끼고 논 한가운데 야트막한 구릉에 자리 잡은 소나무 숲은 자연스럽고 넉넉하게 자라 귀한 티를 내고 있다. 소나무 숲 가까이 가자 빈 논에 묶어둔 까만 염소 몇 마리가 낮선 사람의 갑작스런 출현에 놀란 듯 부산을 떨었다. 시멘트 포장길을 벗어나 샛길로 들어서야 소나무 숲으로 갈 수 있었다. 흙길로 들어서자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따라라라락...따라라라락...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리는 소리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조용히 자전거를 세우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딱따구리를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다.

소나무 밑에는 야트막한 풀이 잔디처럼 자라고 있다. 아침이슬이 채 걷히지 않아 촉촉한 기운이 발끝에 채인다. 소나무는 생각보다 키가 컸다. 밑둥에는 군데군데 딱따구리의 키스세례를 받은 자국이 있다. 공생과 공존의 흔적이다. 소리를 죽이며 딱따구리를 찾았다.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가까이서 들으니 두 마리가 번갈아가며 나무를 쪼고 있는 중이었다. 늘어진 소나무 가지를 방패삼아 소리가 나는 나무 밑에 다가 갔다. 조심조심 눈길을 옮기다가 드디어 딱따구리를 찾았다. 솔가지 사이로 눈을 찌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딱따구리는 부러진 곁가지 위에 앉아 부리로 열심히 나무를 쪼고 있었다. 참새보다 약간 큰 몸집에 긴 부리를 가진 놈이다. 가슴부분은 잿빛이고 꼬리 쪽의 배는 주황색이다. 등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까만 바탕에 흰 줄기 무늬가 더러 박혀있다. 나무를 쪼는 사이로 부지런히 주변을 살피다가 다시 나무를 쪼는 동작을 반복한다.

딱다구리는 전 세계적으로 200여 종이 살아있는데 크기는 약 15센티미터에서 35센티미터 가량이다. 나무에 구멍을 뚫고 살면서 나무속에 있는 벌레나 곤충을 잡아먹고 산다. 강한 근육과 날카로운 발톱으로 나무에 쉽게 달라붙어 있을 수 있으며 꼬리에 난 빳빳한 깃털은 체중을 나무에 실어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딱다구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많은 먹이가 필요하다. 한자리에서 1천만리 정도의 애벌레나 곤충을 먹어 치울 수 있으며 하루에 2천 마리 이상의 해충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해충으로부터 산림을 보호하는 중요한 파수꾼인 것이다. 나무속에 있는 벌레를 찾아 잡아먹기 위해서는 일 초에 15-16회의 속도로 나무를 쪼아대는 머리속도는 총알의 2배정도라고 하니 놀랄 만 하다. 딱다구리의 머리에는 스펀지같은 조직이 있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고 한다. 머리 속에는 특수한 근육이 있어 부리로 나무를 쪼는 순간 뇌를 반대방향으로 당겨 충격을 덜 받도록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아무것에도 소홀하지 않은 자연의 섭리에 그저 감탄 할 뿐이다. 놈의 아침식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물러났다. 야트막한 풀밭 가운데 흰 꽃을 매단 구절초 한 무리가 솔숲을 비집고 들어오느라 잘게 부서진 가을 햇살을 받으며 빛나고 있다.

자전거를 돌려 능길마을로 향했다. 개울가를 달리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달렸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윙윙대며 운다. 지난해의 수해를 복구한답시고 개울가에 시멘트로 높이 쌓아 놓은 담장이 눈에 거슬렸다. 마을 바로 앞에 맑게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그기조차 어려울 듯 하다. 낫을 들고 콩밭에 엎드려 하나하나 포기를 베는 아낙의 등에도 가을햇살이 눈부시게 앉아있는 길을 따라 달렸다. 더러 피어있는 국화과의 가을꽃들이 더러는 희게, 더러는 노랗게, 더러는 연보라 빛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 곁을 지날 때면 코 속으로 훅 파고드는 향기가 머릿속을 맑게 한다. 마을까지 돌아오는 동안 차를 한대도 만나지 않은 것이 감사하다. 추수를 끝낸 논에는 밑둥에서 새로 자라는 새싹이 겨울이 오기 전에 더 많은 볕을 받으려는 듯 키를 키우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애호박 말리는 소쿠리가 하얗게 빛나고 있다.

 

- 홍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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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9. 29. 월요일 - 또 새로운 시작.

 


 

또 새로운 한 주가 시작 되었다. 실사팀이 오후 2시면 마을에 도착한다고 했다. 오전에는 다들 청소를 하고 미처 손보지 못한 곳을 정리했다.

점심이후 도착한 실사팀은 교육장에 무언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학교를 떠났다. 오후 내내 고요한 정적이 사무실에 감돌았다.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와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시간이 정지한 듯 한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홀씨는 한동안 자리를 비웠다. 집 뒤에 자리 잡은 산에 길을 낸다고 낫을 들고 갔다고 했다

 

- 홍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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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9. 26. 금요일 - 2주 만에 집에 가는 날.

 


 

2주 만에 집에 가는 날이다.

어제 하지 못한 일을 오전 중에 마무리 하고 점심을 먹고는 다들 집에 가기로 했다. 집에 갈 생각으로 다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청소를 하는 손놀림이 다들 경쾌하다.

대강 정리가 끝나고 점심 먹을 때가 되었다.

세대의 차를 나누어 타고 풀씨네는 서울로, 춘천으로 향했다. 가을볕이 유난히 투명하다. 그리운 가족을 만날 생각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아이들과 아내와 그동안 밀린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이 먼저 춘천에 닿는다.

 

- 홍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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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편지 28> 매실이 말하게 하라


유월 들어

한바탕 야단법석을 치렀습니다.



마침내 여무는 매실을

행여 제값받을 때를 놓칠세라

서둘러 따고 나르느라

열흘 정도는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려보니

유월 한달은 거의 지나가 있습니다.



마을에 몇 남지 않은

늙은 아주머니들까지

온통 불러내도 일손은 기본도 채우기 어렵습니다.



분대도 안되는 매실농장 식구들이

팔공산 자락으로,

평복 산골농장으로,

죽전 낙동강변 농장으로

빨치산 유격대 처럼

산 넘고, 강 건너, 너른 매실 들판을

축지법과 공중부양법을 뒤섞어 날라 다녀야만 했습니다.



열흘동안

삽십톤이 넘는 매실이

유기농 매장, 생협 등을 통해

도시로 옮겨간 듯 합니다.



매실이 농장 문을 나선 직후,

쏟아지기 시작한 도시로부터의 전화 공세는

가히 무차별적입니다.



매실 따고 나르기에 버금가는

치열한 전투양상입니다.



매실이 깨끗하지 않다,

매실이 파랗지 않다,

매실이 작다.



장사꾼에 대한 불신이 평생 몸에 밴

도시의 소비자들의 호전적인 공격이 태반입니다.



이럴 때

사람이 하는 변명은 한계가 있습니다.

일을 더 그르치게 마련입니다.



매사에 사람이 끼어들게 되면

대체로 믿음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매실이 사람 대신

대답해주어야 비로소 정답이 됩니다.



그저

매실보고 대답하라고 할뿐입니다.



우리는

농약을 먹지 않고 자라서 겉보기에 깨끗하지 않습니다,

땡볕에 도시의 아스팔트위로 실려가다보니 노랗게 익었습니다,

토종은 원래 몸집이 작습니다.



열매를 다 털어낸

텅빈 매실 들판에

메아리없는 아우성만

웅성거립니다.

======================  홀씨의 마을편지 2004. 6. 21

홀씨가 작년에 보성차밭 부근의 어느 매실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저런 잡지며 신문에 투고도 하고
책 만드는 일에 매진도 하고 있다 합니다.

아웃사이더 같기도, 방랑자 같기도 하지만
늘 세상의 중심에 서있는 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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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3-15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실이 말하게 하라....
흙과 자연의 목소리를 듣고 갑니다.

김여흔 2005-03-15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
흙과 자연의 목소리, 잉크님은 그것이 들리는 게로군요.
역시 잉크님이십니다.
 

 

지난 주 월요일 아버님이 하늘로 돌아가시고
경황 없는 손놀림, 마음으로 허둥허둥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남한산성 옹성 근처 나즈막한 양지쪽에 아버님을 모시고 뒤돌아서는데
잔가지를 적시는 가을비가 어깨를 두드려 속으로 삼키는 눈물을 감출 수 있었습니다.
평안히 주무십시요. 평안히 주무십시요.
수없이 되뇌어보지만 공허한 울림만 가슴을 헤집고 다녀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많은 지인들이 위로하고, 가시는 길을 부축해 주셔서
경황 없이 치르는 일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을 잡을 수 있을때가 되면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날이 많이 찹니다.
건강에 유의 하시고 날마다 좋은날 되시길 빕니다.

 

======================================== 홍화씨의 편지 2004. 11. 15

 

벌써 넉달이 지났습니다.

홍화씨의 부친께서 세상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포천을 다녀온지도.
이곳에서 포천을 가려면 버스와 전철을 다섯 번 정도 갈아 타야 하더군요.
몇 시간이 걸리든 몇 번을 갈아 타든 상관은 없지만
진흙탕 같은 서울을 거처야 한다는게 큰 곤혹이었습니다.

쾌쾌하고 매스꺼운 그곳을 지나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초췌하기만 한 홍화씨가 멍하니 서 계셨습니다.

아비 같던 그가
우리에겐 꼭 그러하던 사람이
당신의 아비를 떠나 보내는 심정은 어떠할까.

그날 이후
자꾸만 나의 아버지 얼굴을 힐끔 거리게 됩니다.
그리 커 보이던 사람이 한해 한해 작아져만 갑니다.
그 많던 머리숱도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왜 이리 새까맣고 마르셨는지

점점 농사일이 힘에 겨우시다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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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3-1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늦었지만 저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여흔님 아버님도 건강하셨으면 좋겠구요. 힘내십시오. 모르긴해도 아버님께서는 든든한 아들보고 사는 게 낙이실텐데요.^^

김여흔 2005-03-15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감사할 따름이네요.
든든한 아들이라니, 제겐 과분하고 부끄런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