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삽 - 바다가 보이는 수녀원에서
이해인 지음, 하정민 그림 / 샘터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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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님의 <꽃삽>, 내겐 무척이나 애착이 가는 글모음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샘터>에 연재되었던 글로 기억되는데, 아마도 93-95년쯤이었다. 그 무렵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무얼해야 할까'에 대한 답을 찾아 헤메고 있었다. 지루하고 남루한 일상은 켜켜히 쌓여 스스로에게 호된 질책으로 자학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때늦은 사춘기 같은, 그런 정체성의 혼돈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끝내 난 외부와의 단절이라는 처방을 내리고는 자폐증 환자인냥 고개를 한껏 접고 홀로 고행이라 했다. 친구와 이웃의 부름을 애써 외면하거나 거부하면서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그렇게 1년여를 보냈다. 뚜렷한 방향이 설정되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한결 가벼워진 건 확실했다. 정말 오랫만에 이웃을 향해 웃음을 보일 수 있어 기뻤고, 더 이상 웅크릴 필요도 없었다.

그때에 나를 옳곧게 만들어준 것이 <꽃삽>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해인 수녀님을 경외하게 된 것이. 물론 이해인님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난 종교적 색채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해인, 그녀의 글은 수수하고 평온한 아이와 같다. 그녀의 언어는 맑고 잔잔하다. 그런 그녀에게서, 어지럽고 헝클어진 내 마음이 걸러지는 건 당연한 이치였나보다. 이제서야,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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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3-1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꽃삽...제가 고교 시절...시험에 나오는 시들 절대 말고 좋아했던 시들의 대부분은 이해인 님의 시들이었지요... 꽃삽 그리고 민들레 영토에 나오던 시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시는 낡은 구두 입니다...

님의 글 읽고 정말 오랜만에 옛추억에 젖어봅니다...
더불어 요즘엔 너무나 시들과는 무관한 생활을 하고 있구나 하는 자각을 했네요!!

김여흔 2004-03-12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란게 얇지만 대하소설만큼 무거울때도 있죠. 저도 좀 멀리 하다가 최근에서야 다시 친근해졌어요. 사랑하면 시가 새겨진다는...

webzzang 2004-04-1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이해인수녀님을 좋아해요. 감사와 미덕이 몸에 베어있는 사람이라 그런가요?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한 번이라도 만나서 악수한 번 청하고 커피한 잔마시면서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눌 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 드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김여흔 2004-04-1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같은 맘을 가지고 계시네요. ^^
찾아주신 발걸음 감사해요, webzzang님.